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754
화산귀환 1754화. 나 역시 도리를 지키지 못한 사람이니까. (4)(1755/1762)
1754화. 나 역시 도리를 지키지 못한 사람이니까. (4)
“끄으으으으응.”
조걸의 입에서 끝내 앓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러니까 안에 이미 있지만…… 느끼지 못하고 있던 기운을 의식적으로 잡아다 끌어내듯이…….”
그가 중얼거리며 다시 검을 어정쩡하게 휘둘러 보았다. 그러다 이윽고 얼굴을 참혹하게 일그러뜨렸다.
이제는 너무 까마득하여 기억도 흐릿한 시절, 백매관에서 사제들이나 괴롭히며 살던 그 어린 시절 이후로는 단 한 번도 휘둘러 본 적 없는 괴악한 궤적의 검이다.
“아오! 못 해 먹겠네!”
들고 있던 검을 내팽개치려다 움찔 멈춰 섰다. 아무리 화가 난다지만 검을 내동댕이치는 건 아무래도 좀 과하다 싶어서.
그때, 윤종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왜 또 패악질이냐?”
“아니, 패악질이 아니라!”
윤종의 얼굴엔 ‘네가 그러면 그렇지’라고 얼굴에 써 있는 듯했다. 조걸이 이마에 핏대가 불거지도록 열을 올렸다.
“이게 그렇게 쉽게 되는 게 아니라니까요!”
“난 되던데?”
“그거야 사형이니까 그런 거고!”
조걸이 갑갑함을 못 이겨 가슴을 쾅쾅 두드렸다. 하여튼 윤종 이 인간은 한 번씩 자기를 너무 과소평가해서 남을 힘들게 한다.
“보세요! 다들 미치려고 하는 거 안 보입니까?”
그 말에는 윤종도 말없이 쓰게 입맛만 다셨다. 아닌 게 아니라 최대한 풀어서 요령을 알려 줬는데도 연무장에 선 화산의 제자 중 누구도 쉽사리 선기를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원래 있는 거라니까. 그걸 그…….”
“같은 말만 반복하지 말고 요령을 알려 달라니까!”
“지금 알려 주는 게 요령인데…….”
“아이고, 천존이시여. 이러니 도문이 망하지.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니까.”
몇 번째일지 모를 한숨을 내쉬며 조걸이 말했다.
“그걸 떠나서 말입니다.”
“응?”
“괜찮은 겁니까?”
“뭐가?”
조걸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금 그들이 서 있는 곳은 커다란 연무장이다. 원래는 무당의 검을 휘두르고 있어야 할 장소에 화산의 제자들이 집결해 끙끙대며 검을 휘두르고 있다.
“그…….”
“여기가 무당이라는 사실은 신경 쓸 거 없다. 한두 번 본다고 해서…….”
“아니, 그게 아니고요.”
조걸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필요한 일이라는 건 알겠는데, 이게 사형도 보다시피 하루아침에 익힐 순 없지 않겠습니까?”
윤종이야 빠르게 익혔다지만, 다른 이들이 모두 그와 같을 수는 없다. 그리고 사실 윤종도 목숨이 걸린 상황이라 필사적으로 방법을 짜낸 거였다.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이들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지도 모른다.
“제 말은, 사패련이 당장 어찌 나올지도 모르는 판국에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되냐는 말이죠.”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으냐?”
“그야…….”
곧장 답하려던 조걸이 말끝을 흐렸다. 윤종이 그런 그를 가만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노력한다고 해도 큰 성과를 바라기 어렵다는 사실 정도는 나도 안다.”
“예?”
“어쩌면 끝내 아무도 못 익힐지도 모르지.”
“아니, 그런데 왜…….”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으냐?”
조걸은 조금 새삼스러운 느낌으로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마다 선기를 마음처럼 끌어올리지 못해 갑갑해 하는 이들이 보인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이런 광경이 꽤 익숙했다.
‘평소의 화산 같네.’
얼마 전까지 온통 신경이 곤두선 채 죽어 가던 놈들이 지금은 그저 평소와 같아 보였다.
윤종이 빙그레 웃었다.
“그렇지?”
뚱한 얼굴로 반박하려던 조걸은 결국 머리나 벅벅 긁었다. 윤종이 가만히 말했다.
“예전에 청명이 놈이 그랬다. 복잡하고 다급할 때는 수련을 하라고.”
“……그 미친놈이 또.”
“내 말이. 그때는 수련 못 해 죽은 악귀 놈이 또 개소리해 대는구나, 했었는데…… 나중에 물어 보니 그런 게 아니라더라.”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수련이 일상이 된 이들에게는 수련하고 있는 상황이 가장 평시와 같대. 그래서 수련하는 것만으로도 평소와 같은 마음, 그러니까 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다고 하더라. 사람의 몸이라는 게 그렇대.”
“…….”
“곱씹어 보면 일리가 있지 않으냐?”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은데 확실히 생각할수록 반박하기 쉽지 않았다. 당장 조걸의 육신에 은근히 활력이 도는 것만 보아도 그랬다. 복잡한 상황 때문에 끙끙댈 때와는 다르게 말이다.
조걸이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니까…… 당장 어떻게 못 할 복잡한 문제는 다 내버려두고 눈앞에 있는 작은 일이나 건드리겠단 겁니까?”
“정확하게는, 할 수 있는 일부터 한다는 거겠지. 소소해 보일지라도 멈춰 있는 것보단 나을 테니까.”
……황당무계하다.
화산은 백천의 일 이후로 들쑤신 벌통처럼 뒤죽박죽이다. 게다가 이 사태를 수습해야 할 현종은 얼굴조차 보기 쉽지 않다.
밖으로는 사패련의 위협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른다. 아니, 당장 어제 사패련의 습격으로 희생자가 대거 발생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소한 한 걸음?
“뭐 불만이라도 있느냐?”
조걸은 그저 피식 웃고 말았다.
청명이라면 이런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훨씬 더 실전적인 걸 하려 들겠지. 백천 역시 이런 선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방법이 없다는 걸 알아도 더 큰 일을 해결하려는 의지를 거두지 않을 사람이므로.
그러니까 이건 지금껏 화산이 선택해 온 길과는 분명 결이 다른, 오직 윤종만의 방식이다. 하지만…….
“뭐, 제가 불만 있다고 하면 들어줄 생각이십니까?”
“아니. 무시하겠지.”
“……그럴 거면서 왜 묻지?”
조걸이 투덜거렸다.
여전히 이게 옳다는 판단은 안 섰다. 안 그래도 부족한 시간을 쓸데없이 낭비하고 있단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조금은 숨통이 트인 기분이었다.
‘이건…… 지금까지는 숨쉬기도 어려웠다는 건가?’
저도 모르게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는지, 새삼 스스로 묻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 시커먼 그림자가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알았어, 요령.”
“아! 작작하라니까요, 사고!”
“이번에는 진짜.”
“그 말만 열 번은 더 했다고요!”
“진짜야. 느낌 왔어.”
“돌겠네, 진짜.”
“그러니까 이렇게…….”
“아까랑 똑같구만!”
무당의 중앙 연무장에서 옥신각신하는 화산의 제자들을 지켜보던 제갈자인이 옆에 선 이에게 슬쩍 물었다.
“가능하리라 보십니까?”
곁에 서 있던 건 당군악이었다.
제갈세가와 사천당가는 본디 함께 오대세가에 속했었다. 그런 만큼 제갈자인은 이미 당군악과 꽤 안면이 있었다. 그럼에도 지금 당군악을 대하는 제갈자인의 언행은 과거보다 확연히 정중했다.
오대세가의 이인자와 천우맹의 이인자는 그 격이 다름을 인정해야 하므로.
“선기를 다루는 일 말씀이십니까?”
“예.”
“……흠.”
“쉬이 손에 넣을 수 있는 힘이라면, 사술을 쓰는 문파들이 지금껏 명맥을 유지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가주께서 언질 주신 대로 움직이기는 했지만, 이게 정녕 의미가 있는 일일지…….”
화산이 선기를 쓸 수 있음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윤종은 이미 그 사실을 증명했고, 다른 문파도 아닌 화산이라면 몇몇쯤 선기를 다루는 이들을 더 확보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화산의 대부분 인원을 선기 깨우치는 일에 투입하는 건 극심한 낭비다. 당군악이 이를 헤아리지 못했을 리 없다.
그렇다면 제갈자인이 미처 생각지 못한 무언가가 있을 텐데…….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제갈자인의 예상을 깼다.
“선기 같은 건 아무래도 좋습니다.”
“……예?”
“얻어 낼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한다고 해도 저들을 상대할 방법이 아예 없진 않지요. 아마 윤종 도장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럼 어째서?”
“좋지 않습니까?”
제갈자인의 두 눈에 의문이 어렸다. 당군악이 보라는 듯 앞을 향해 턱짓했다.
“누가 뭐라 해도 천우맹의 중심은 화산입니다. 그리고 그건 단순히 전력만을 의미함은 아니지요.”
제갈자인이 가만히 앞쪽을 응시했다.
화산의 요란한 수련 소리에 각자 처소에 흩어져 있던 다른 문파 제자들이 하나둘 나와 연무장을 기웃대고 있었다. 개중에는 숫제 자리를 잡고 구경하는 이들까지 있었다.
타문의 수련을 지켜보는 건 무례한 일이지만, 저 큰 연무장을 차지하고 소란스럽게 수련하는 걸 보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당연히 화산도 감수하고 있을 터였다.
“아니, 왜 수련을 저희를 빼놓고 하는 겁니까?”
‘소가주?’
심지어 남궁도위는 거세게 항의라도 하듯 남궁세가를 이끌고 연무장에 뛰어들었다.
“아니, 이건 그런 수련이 아니라니까 그러시네!”
“수련이 수련이지, 그런 수련이 아닌 건 또 어디 있습니까?”
“도가가 아니면 선기는 못 씁니다. 그리고 남궁세가에는 필요도 없잖습니까.”
“지금 도가가 아니라고 차별하십니까? 내 윤종 도장을 형제처럼 여겼거늘!”
“그건 백천 사숙이겠죠!”
“아, 그랬나? 사소한 건 좀 넘어갑시다.”
떠들썩하게 달아오르는 분위기 때문인지, 점차 더 많은 이들이 연무장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예전에는 흔한 광경이었습니다. 그때의 천우맹에는 활력이 있었지요. 저는 그저 그 모습을 되찾으려는 것뿐입니다.”
“……이런 때에 말입니까?”
“외려 이런 때니까 그런 겁니다. 언제 어디서고 자신을 잃는다면 그저 휘둘리기만 할 테니.”
“음.”
제갈자인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다. 전쟁에서는 기기묘묘한 술책보다는 제 전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몇 배는 더 중요하다.
“무엇을 하시려는 건지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제갈자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러나, 그렇다면 오히려 이건 미봉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
“화산이 천우맹의 중심이라면, 화산의 중심은 화산검협입니다.”
청명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당군악의 표정이 슬며시 굳어졌다.
“그렇다면 천우맹이 과거 같지 않은 이유도, 화산이 과거 같지 않은 이유도 결국은 화산검협의 침묵에 있지 않습니까?”
제갈자인의 시선이 연무장으로 향했다.
“떠들썩하고 활기차 보이지만 결국은 억지로 웃어 대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게 저곳에 응당 있어야 할 사람이 보이지 않아서라 느끼는 건 저 혼자만의 생각입니까?”
이윽고 당군악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같은 생각입니다.”
“하면 어째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까요.”
“예?”
“우리가 도울 수 있었다면 이미 그가 먼저 청했을 것입니다. 이미…… 도우려 애써 보기도 했고.”
청명이 변했다는 걸 당군악이라고 모를 리 없다. 아마 그를 아는 모두가 강한 위화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현재 상황이 위급하기 때문에? 아니, 그럴 리가 없다. 그럴 때일수록 주변을 이끌고 독려하던 이가 청명이다.
그런 그가 지금은 침묵하고 있다. 맹이 이리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말이다.
분명 무언가가 있다. 다른 이들은 짐작할 수 없는 무언가가.
당군악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친구야. 우리는 자네에게 도움이 안 되는 건가?’
두 눈에 씁쓸한 빛이 스쳤다.
“지금은…… 그저 믿고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스스로 이겨 낼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말입니다.”
* * *
늦은 밤.
주르륵.
방 안 가득 퍼진 피 냄새가 시큼했다. 썩어 버린 것처럼 역한 향을 풍겼다.
잿빛 어린 듯한 눈이 제 손을 흠뻑 적신 피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익숙하다는 듯 놀란 기색도 없었다. 입에서 쏟아진 검은 피는 서서히 말라 들어갔다.
한참 후, 사내……. 청명의 입이 열렸다.
“왜, 빌어먹을…….”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검붉은 핏자국 위로, 선명한 핏방울이 점점이 떨어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