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759
화산귀환 1759화. 내가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4)(1760/1762)
1759화. 내가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4)
황종의는 한동안 넋 놓고 청년을 보았다.
마치 혼이 빨려 들어가기라도 하는 듯했다. 청년을 본 순간부터 도무지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상단주님.”
“아.”
눈치를 보던 주변 이들이 슬쩍 부르는 소리를 듣고야 황종의는 아득하던 정신을 붙잡을 수 있었다.
‘이 무슨 추태인가.’
그도 은하상단을 이끄는 몸이다. 천하에 명성을 떨치는 이들을 웬만큼은 두 눈으로 직접 봤다. 게다가 당장 섬서에만 하더라도 현종과 종리곡이라는 천하를 논하는 두 거인이 존재하고, 그 둘 이상의 존재감을 발휘하는 화산검협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 청년에게서 느껴지는 감각은 그들에게서 느끼는 묵직함과 결이 달랐다. 아니, 애초에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도 심혼이 일렁거린다.
“실례……했습니다.”
황종의가 급히 꾸벅했다. 그러고는 여전히 진정되지 않은 눈빛으로 청년을 보며 말했다.
“확인이라는 게…… 유의미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절차라는 게 있으니 감히 결례를 저지르겠습니다.”
잠시 말을 멈추고 심호흡을 한 황종의가 다시 입을 열었다.
“혹 귀하께서…… 포달랍궁의 궁주이자 서장의 왕……. 아니, 큰 스승이신 달뢰라마…… 성하(聖下)이십니까?”
조심스러운 그의 질문을 듣고 주변 이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모두 크게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정작 당사자인 청년은 그저 고요하게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황종의는 그 의미를 곧바로 알지 못하여 숨을 죽였다. 이윽고 귓가에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반선라마였다.
“스승께서 성하라는 명칭은 과하다 하시오. 그저, 라마. 그것으로 족하오. 그대들은 궁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들도 아닐지니.”
황종의가 숨을 훅 들이마셨다.
‘저, 정말로 달뢰라마…….’
그래, 하긴 괜한 질문이었다. 무의미한 대화였다. 이 사람이 달뢰라마가 아니라면 대체 세상 어느 누가 달뢰라마겠는가. 천하에 이런 사람이 둘일 수는 없다.
황종의의 이마에는 어느새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감히 귀하신 분께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천한 상인의 무지로 비롯된 일이니 너른 마음으로 용서해 주시길 감히 청합니다.”
최선의 예의를 담은 말이었다. 상인으로 살며 자신을 낮추는 일에는 익숙했다. 그러나 지금만큼은 비단 상인으로서의 자세만이 아닌, 달뢰라마에 대한 진심 어린 공경을 담은 표현이었다.
달뢰라마는 황종의의 말에 이렇다 할 반응 없이 처음과 변함없는 눈길로 그를 빤히 응시할 뿐이었다.
황종의는 내심 당황했으나, 이내 자신이 달뢰라마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아, 청명 도장은 지금 이곳에 없습니다.”
그러자 반선라마가 물었다.
“여기가 화산파가 있는 곳 아니었습니까?”
“맞습니다. 화산파는 바로 저곳 화산에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화산의 제자들은 호북의 무당파에 거하는 중입니다.”
“호북이라…….”
반선라마가 조용히 읊조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중원에 대해 그리 많이 알진 못하지만, 호북이 이곳에서 그리 가깝지 않다는 사실 정도는 충분히 알았다.
“혹 그들이 언제쯤 돌아올지 아시는지요?”
이 질문을 들으니 황종의는 이들이 중원의 정황에 대해 완전히 무지함을 새삼 실감했다.
“현재 화산이 속한 천우맹은 사패련이라 하는 사파 집단과 전쟁을 치르는 중입니다. 전쟁의 결과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쨌든 못해도 한 달은 걸릴 것입니다.”
“한 달이라…….”
반선라마가 잠시 고민에 잠겼다. 그때, 달뢰라마가 가볍게 합장하더니 황종의를 향해 깊이 고개 숙였다.
“감사합니다.”
“예? 아……. 아니, 아닙니다! 딱히 대단한 일도…….”
아주 심유한 눈빛으로 황종의를 보던 청년이 가볍게 몸을 돌렸다. 반선라마가 물었다.
“스승이시여. 가려 하십니까?”
“그래야지요.”
“이곳에서 기다리는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달뢰라마는 고개를 내저었다.
“같은 시간도 때로는 찰나가 되고, 또 때로는 영겁이 됩니다. 지금은 기다릴 여유가 없습니다.”
반선라마가 고개를 끄덕인 후 달뢰라마 대신 황종의에게 다시 한번 합장했다.
“폐를 끼쳤습니다. 그럼.”
“자, 잠시만! 지금 무당산으로 가시려는 겁니까?”
“스승께서 그러자 하시니 소승은 그저 따를 뿐입니다.”
“아니…….”
황종의는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달뢰라마가 얼마나 대단한 이인지와는 별개로, 그의 육신에서는 무학의 흔적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만일 달뢰라마가 무학을 익히지 않았다면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균현에 가는 건 지극히 위험하다.
“말씀드렸다시피, 호북은 현재 전쟁 중입니다. 지금 호북으로 향하시는 건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닌 듯합니다.”
황종의가 만류하자 외려 반선라마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낯선 이방인을 이토록 걱정해 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닐지니.”
“아…….”
반선라마는 할 말을 모두 했다는 듯 마지막으로 합장했다. 황종의도 얼떨결에 마주 합장하여 그 예를 받았다.
“그럼.”
두 사람이 홀연히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지나간 문을 황종의가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상단주님. 그럼 방금 저분이…… 서장의 왕이라는 달뢰라마란 말입니까? 그…… 대활불(大活佛)이라고 불리는?”
“……그런 것 같구나.”
“세, 세상에. 저런 소년이…….”
은하상단의 단원들이 하나같이 믿을 수 없다는 듯 경악했다.
애초에 ‘대활불’이라고 하면 당연히 나이 지긋한 고승이 연상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막상 마주한 달뢰라마가 청년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할 만큼 어려 보이니 이토록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놀라움과 별개로 의심은 들지 않았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납득이 갈 수밖에 없었으므로.
어째서 저 청년이 대활불이라는 지고한 이름으로 불리는지.
“이, 이럴 때가 아니지!”
“예?”
“당장 무당으로 서신을 보내라. 그리고 혹시 저 두 분께서 다른 일행을 대동하셨더냐?”
“……제가 보기로는 저 두 분밖에는 없었습니다.”
“호위! 저 두 분을 호위할 이들을 수배해라, 지금 당장!”
“저희가 말입니까?”
“당장 움직이라는 말 못 들었느냐!”
황종의가 그답지 않게 벌컥 고함을 내지르고 닦달했다.
무려 대활불이다. 그 달뢰라마가 호북으로 가는 동안 참변을 당하기라도 한다면?
그 후로 벌어질 일은 감히 황종의가 감당할 수 없을 터였다. 아니, 애초에 상상조차 가질 않는다.
“지금 당장 준비하겠습니다.”
황종의의 기세가 심상치 않으니 주변 이들이 화들짝 놀라며 바삐 움직였다. 그제야 황종의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탈진이라도 한 듯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청명 도장을 찾는다고…….”
그제야 때늦은 의문이 들었다.
달뢰라마는 왜 청명 도장을 만나려 하지? 맹과 관련된 일은 아닌 듯한데.
설마 오로지 청명을 만나기 위해 그 먼 서장에서 이곳까지 왔단 말인가? 대체 어째서?
아무리 고민을 해도 의문을 풀 길은 없었다. 황종의는 바싹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이며 달뢰라마가 향한 방향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앞장서서 걷는 달뢰라마를 반선라마가 조심스레 불렀다.
“스승이시여.”
“…….”
“스승이여.”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위험한 길이 될 것입니다. 그래도 가려 하십니까?”
여전히 침묵만이 돌아왔다.
그의 스승에게는 더없이 지고한 깨달음이 있다. 하나 그 깊은 깨달음을 담고 있는 육체는 여리디여린 인간의 것. 그렇기에 반선라마는 우려를 금할 길이 없었다.
이 여정이 혹 고귀한 이의 육신을 상하게 할지도 모르지 않는가.
“스승이시여. 그를 만나 무엇을 하려 하십니까? 제가 여쭈어서는 안 될 일입니까?”
마침내 달뢰라마가 반선라마를 돌아보았다. 그의 투명하고도 깊은 눈빛을 보는 순간 반선라마는 절로 숨이 턱 멎는 것만 같았다.
이미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달뢰라마를 모셔 왔다. 하나 그에 대한 존경심은 조금도 옅어지지 않았다. 아직 사람의 영역에 머무르는 그로서는 감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은 불도(佛道)가 저 눈에 담겨 있기에.
달뢰라마의 입이 열리고, 청량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라마께서 알아서 안 될 일은 아닙니다.”
“하면…….”
“하지만 듣는대도 이해하실 수 없을 겁니다.”
반선라마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감히 달뢰라마와 비교할 순 없겠으나, 어쨌든 그 역시 법왕의 보좌로 수많은 승려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다. 그런 그조차 이해할 수 없는 일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스승이여.”
“그저 아픈…….”
달뢰라마의 시선이 먼 곳으로 향했다.
“고해 가득한 일일 뿐입니다.”
반선라마는 답답한 마음을 지그시 누르며 합장했다.
“막아야 하는 일입니까?”
“막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바꿔야 하는 일입니까?”
“바꿀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저 정해진 대로 흘러갈 뿐.”
반선라마의 눈빛이 의문으로 물들었다.
세상은 인과(因果)의 흐름 안에서 흘러간다.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인과란 모든 게 정해져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노력과 정진에 따라서는 바꿀 수 있기에 인과다.
그리 믿는 것이 불법이고, 그리 행하는 것이 불도일진대 달뢰라마조차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니.
하지만 반선라마의 의문은 의외로 다른 지점을 짚었다.
“정녕 그렇다면, 스승께서도 바꿀 수 없고 막을 수 없는 일이라면…… 어찌하여 이리 서두르십니까?”
“…….”
“정해진 대로 흐를 수밖에 없는 일이라면…… 이리 서두른다 한들 아무것도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바뀌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같지는 않습니다. 설령 그 끝이 같다 한들, 알고 행하는 것과 알지 못하고 행하는 건 분명 다르지요.”
반선라마는 잠시 침묵했다. 알 듯 말 듯 한, 어려운 말이었다. 달뢰라마가 여전히 먼 곳에 시선을 둔 채 말했다.
“그렇기에 가야 합니다.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하는 이에게, 그가 알아야 할 것을 전하기 위해서.”
“……이는 그를 위한 일입니까?”
달뢰라마가 잠시 눈을 감았다. 고뇌하듯 깊게 침묵하던 그가 잠시 후에야 느릿하게 다시 눈을 떴다.
“스승…….”
동시에 반선라마의 표정이 굳어졌다. 달뢰라마의 한쪽 눈에서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를 위한 일이 아닙니다. 결코 그를 위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저 오롯이…….”
“…….”
“고통받을 중생들을 위한 일입니다.”
진정 그러하다면, 고통받을 중생을 구원하기 위한 일이라면…… 스승께서는 어찌하여 눈물을 흘리시나이까?
반선라마는 가슴속에서 머리를 든 질문을 차마 꺼내지 못했다. 듣는다고 해도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알 수 없는 일일 것이므로.
“……모시겠습니다, 스승.”
그저 믿을 뿐이다. 그의 스승이 행하고자 하는 바가 그저 선(善)에 닿아 있음을.
달뢰라마가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먼저 걷는 이와 따라 걷는 이. 두 사람의 걸음이 하염없이 곧게 이어졌다.
대면을 바라지 않을 이를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