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763
화산귀환 1763화(1764/1797)
화산귀환
1763화. 그렇기에 제가 있는 것입니다. (3)
“이거 원 불안해서 살 수가 있나, 빌어먹을. 대체 언제까지 이 난리를 쳐야 하는 거야?”
한산한 거리를 불만 어린 시선으로 보던 상인이 욕지거리했다.
“어이고, 화 좀 가라앉히게. 저 무도한 사패련 놈들이 아직 인근에 있음을 잊었는가? 그놈들이 듣기라도 할까 겁나네.”
“들으면? 들으면 뭐! 뒈지기밖에 더 하겠는가? 그놈들이 안 죽여도 당장 장사가 안돼 굶어 죽을 판인데!”
그 말에는 말조심하라 핀잔을 줬던 이도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솔직히 오가는 사람도 없는 거리에서 난전을 펴고 앉아 있으니, 이러다 굶어 죽겠다는 소리가 안 나올 수 없다.
하지만 나다니지 않는 사람들을 손가락질하기도 어렵다. 무시무시한 사파의 마두들이 인근에 진을 치고 있는데 태연하게 거리를 거닐며 물건을 살 간 큰 사람이 어디 그리 많겠는가.
“관군 놈들은 대체 뭘 하는지 모르겠다니까. 세금은 그렇게 악착같이 받아 처먹고는…….”
“그놈들이 어디 북경 바깥의 일을 신경 쓴 적 있던가? 게다가 듣자 하니 북경도 지금 난장판이라던데.”
“제길.”
평소라면 관군 따위 찾지도 않았을 것이다. 관에서 민초의 삶에 조금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사실쯤은 흙을 일구고 사는 이들이 가장 잘 아니까.
그러나 지금은 그 무용한 관까지 들먹여야 할 만큼 갑갑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럼 천우맹은? 천우맹은 뭘 하나?”
“야, 이 사람아. 양심은 있는가? 저 양반들이 지금까지 사패련이랑 얼마나 싸웠는데.”
“……끙.”
“지금까지 흘린 피만 해도 장강을 물들이고 남을 걸세. 고맙다는 말은 못 해도 왜 더 잘하지 못하냐고 욕해선 안 되지. 금수 새끼가 아니면!”
푸념 좀 하려다 졸지에 금수가 되고 만 이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제기랄, 모아 놓은 돈만 있었어도…….”
혹자는 왜 이런 상황에도 달아나지 않느냐고 쉬이 입방아를 찧지만, 대대로 먹고살던 땅을 버리고 떠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심지어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처지인 마당에, 터전을 버리면 대체 무엇으로 주린 배를 채운단 말인가. 나무껍질이나 뜯어 먹다가 객사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됐네. 자꾸 그렇게 앓는 소리 늘어놓는다고 무어가 바뀌나. 게다가 사실 이만하기를 얼마나 다행인가?”
“다행? 지금 다행이라고 했나?”
“솔직히 그렇지 않나. 저 사파 놈들이 코앞에 있는데도 아직 죽거나 상한 이들이 없으니. 나는 솔직히 저놈들이 무당산을 불태울 때는 이제 꼼짝없이 다 죽었구나, 했네.”
가만 듣고 있던 이가 벌컥 화를 냈다.
“허어. 그래서 뭐? 놈들이 생각보다 착하기라도 하다고?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면서 절이라도 해?”
“아니……. 그런 말이 아니잖은가? 왜 이리 삐딱하게 듣나?”
“이거, 이거! 큰일 날 사람이구먼, 이거! 사파가 왜 사파인 줄 아는가? 멀쩡한 인간이 미쳤다고 사파가 되는가? 다 짐승 같은 놈들이니까, 제 부모도 못 알아보는 후레자식 같은 놈들이니 사파가 되는 거지!”
푹 익은 홍시처럼 얼굴을 붉힌 노인이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열변을 토했다.
“지금 저놈들이 잠잠하다고 언제까지나 그럴 것 같은가? 곧 시퍼런 마수를 드러낼 게 분명하다니까! 자네처럼 순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항상 뒤통수를 맞는 걸세.”
“저기…….”
“잠자코 듣게! 내 말 아직 안 끝났네!”
“그, 그게 아니라…….”
“응?”
심상치 않은 반응에 노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대화하던 이의 얼굴이 삽시간에 창백해져 있었다. 심지어 그는 언제부터인가 노인이 아닌 노인의 뒤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불길함을 느낀 노인이 흠칫하며 서서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보았다.
한 무리가 고을 중앙의 가장 커다란 도로를 꽉 메우며 다가오는 광경을.
“저…….”
내자불선 선자불래(來者不善 善者不來, 찾아오는 자는 선하지 않고 선한 자는 찾아오지 않는다)라는 말을 굳이 찾을 필요도 없었다. 저 무리에게선 흉흉한 기운이 노골적으로 흘러나왔고, 심지어 저마다 섬뜩한 날붙이들을 숨길 생각도 없이 손에 쥐고 있었다.
예측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졌지만, 노인은 결코 기뻐할 수 없었다. 이윽고, 그의 입에서 비명 같은 고함이 터져 나왔다.
“사, 사파 놈들이 쳐들어온다아아아아아아!”
* * *
“아아아악!”
여기저기서 처절한 비명이 울렸다.
허둥지둥 달아나려던 양민의 등에 칼이 무참히 박혔다. 사패련도의 눈에 흉흉한 기운이 넘실거렸다. 이내 박힌 칼이 끔찍한 소리와 함께 옆으로 틀어졌다.
거의 숨이 넘어가던 양민이 극심한 고통에 눈을 부릅뜨며 몸을 뒤틀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사파는 육신의 피가 끓는 느낌에 아랫입술을 핥았다. 손을 통해 전해지는 감각이 짜릿했다.
‘이거지!’
그동안 얼마나 참았던가.
물론 전투는 충분히 치렀다. 하지만 적과 싸우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는 몸이었다면 굳이 사파에 투신하지 않았을 터다.
싸움이 아닌 유린을 즐기는 이들. 강자를 이겨 내는 게 아니라 약자를 짓밟는 데서 쾌감을 느끼는 이들.
사파란 애초에 그런 족속들이다. 그간 련주가 두려워 본능을 억눌러 왔을 뿐.
그런데 지금은 련주의 허가가 떨어진 상황이다. 더는 두려워할 것도 꺼릴 것도 없다.
“사, 살려…….”
쇄애애액!
전력으로 휘둘러진 칼이, 어떻게든 꿈틀거리며 물러나려던 이의 가슴을 갈랐다. 살이 갈라지고 뼈가 끊기는 감각이 손목을 타고 전해진다.
심장이 크게 두방망이질했다.
쓰러지는 이를 아예 난자해 버렸다. 빛을 잃어 가는 이의 두 눈을 보며 밀려드는 희열에 파르르 몸을 떨었다.
“멍청하게 굴지 말고 불을 질러라! 모조리 태워 버려!”
사패련도가 입맛을 다셨다.
‘굳이?’
불을 지른다면 인근에 즉각 그들의 습격 사실이 알려질 터. 딱히 이유를 알 수 없는, 성가시기만 한 지시다.
뭐, 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은 억눌러 온 걸 분출할 수만 있으면 되었으니까.
지시대로 불을 놓은 이들이 재빨리 주변을 훑었다.
아직 모자라다. 더 많은 피를 봐야 한다. 다른 놈들이 차지하기 전에 한시라도 먼저.
균현 인근 여러 마을에서 동시에 시커먼 연기가 솟구쳤다. 대낮의 태양이 가려질 만큼 검고 자욱했다.
* * *
“저…….”
백천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마을에서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올라오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았다. 척 보아도 평범한 화재와는 규모가 달랐으므로.
게다가 장강의 사파 놈들이 날뛸 때 이미 몇 번이고 봐 온 광경이 아닌가.
‘습격.’
하지만 지금 와서?
잠시 고민하던 그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유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의 그는 천우맹의 한 축이자 화산의 장문대리로서 적의 움직임을 예측해야 하던 그때의 백천이 아니니.
중요한 건 지금 눈앞에서 죄 없는 양민들이 사파 놈들의 마수에 비명횡사하고 있단 사실, 오직 그뿐이었다.
그럼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싸운다.’
혹은 지킨다.
어쨌든 당장에라도 달려가 막아 내야 한다. 백천이 허도진인에게 사사를 청하며 고개 숙이고, 그리하여 마침내 저 무당산을 내려온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그는 본능적으로 팔을 내려다보았다.
‘할 수 있을까, 내가?’
아무리 허도진인에게서 사량발천근의 묘리를 익혔다고 해도, 검을 쥘 수단을 손에 넣었다고 해도, 그가 지금 저 짐승 같은 사파 놈들을 상대하는 게 가능할까?
몸이 멀쩡한 상태로도 홀로 저들과 대적하기는 쉽지 않았을 터다. 그런데 본신의 무력을 거의 다 상실한 지금, 과연 저들을 상대로 싸울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손이 떨려 왔다.
‘맹은?’
섣불리 뛰어드는 대신 맹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를 고민해 보았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최근에 있었던 습격으로 천우맹은 본진의 방비를 다지고 있었을 것이다. 이 연기를 보고 최대한 빠르게 달려온다 해도 한 시진 이상은 걸린다.
한 시진이면 모든 것이 끝나 버리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검을 가만히 움켜잡았다.
최악의 경우 그는 죽을 것이다. 심지어 그 죽음을 누구도 알지 못할 것이다.
달려오는 수레에 앞발을 들고 맞서는 사마귀처럼, 처참하게 죽어 다른 시신들과 함께 까맣게 타들어 가겠지. 맹도, 화산도 어쩌면 그가 이곳에서 그리 죽어 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수 있다.
죽음 그 자체보다, 그 죽음이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그럼에도 백천은 짧게 심호흡했다.
파르르 떨리던 눈꺼풀이 천천히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백천의 눈에 어려 있던 떨림과 불안함이 어느새 사라졌다.
‘그래서 그게 뭐가 어쨌는데?’
대단한 이가 되고자 한 게 아니다. 그저 본분을 지키려 했을 뿐이다.
‘상관없어.’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다. 지금 그가 맞서야 할 상대는 오직 자신, 정확히는 내면의 두려움뿐이다.
파앗!
백천이 땅을 박찼다.
결의라 치장하기에는 간지럽다. 처음 들었던 검이 여전히 그의 손에 쥐여 있다. 그러니 처음 먹었던 마음도 달라질 이유가 없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검을 든다.
이는 강자를 위한 말이 아니다. 강자만을 위한 말이어서는 안 된다.
전력을 다해 달린 그가 단숨에 검은 연기가 솟구치는 마을로 뛰어들었다.
쓰러진 여인의 목에 칼을 들이민 사파인의 모습이 마침 눈에 들어왔다. 생각 이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어색하게, 하지만 자연스럽게. 무디게, 하지만 쾌속하게 검을 휘둘렀다. 그 일격에 사파인의 목이 몸뚱이에서 분리되었다.
파아아앗!
붉은 피가 허공에 뿜어져 나왔다.
툭!
떠올랐던 머리가 땅에 나뒹굴었다. 피가 사방으로 비산하는 그때, 백천은 본능적으로 제 검을 내려다보았다. 피로 붉게 물든 검신에 그의 얼굴이 비쳤다.
형편없는 일격이었다. 과거의 그라면 무디기 짝이 없는 검격이라며 비웃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감상이 달랐다.
‘싸울 수 있다.’
차오르는 확신을 느끼며 백천이 고개를 돌렸다.
무언가 변고가 생겼음을 깨달은 사패련도들이 그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백천은 두려움이 밀려오기 전에 숨을 깊이 들이마셔 가슴속을 채웠다.
“……뭐냐, 네놈은?”
딱히 기세가 대단치도 않은 이가 괴상한 장치를 팔에 달고 나타난 모습이 괴이해서일까, 아니면 사파에게 딱히 동료 의식 따위가 없어서일까.
동료의 목이 떨어져 나갔음에도 백천을 향해 다가오는 사패련도들의 표정에는 딱히 분노가 느껴지지 않았다.
“뭐 하는 놈이냐고 물었다.”
재차 들려온 질문에, 백천은 가만히 숨을 내쉬었다.
가슴팍에서 언제나 그와 함께하던 매화 문양은 이미 떼어 냈다. 더군다나 그는 이제 천우맹의 맹도조차 아니다.
새삼, 자신을 정의할 말이 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다 보니 결국 할 말은 이런 것뿐이다. 과거에는 무척 조악하고 작위적이라 생각했던, 그렇기에 그저 전해지는 이야기에서나 나오는 거라고 여겼던 그 문장 말이다.
“지나가던 협객이다.”
아니나 다를까, 사패련도들의 얼굴이 괴상망측하게 일그러졌다.
좀 어색하고 민망해진 백천이 이를 털어 내기 위해 한마디 덧붙였다.
“개자식들아.”
“…….”
어색한 정적 속, 백천은 검을 뻗어 적들을 겨누었다. 과거와는 사뭇 달라진 자세. 그러나 그 마음만은 다르지 않았다.
“더는 이 사람들에게 손대지 못할 거다. 덤벼라. 내가 상대해 줄 테니까.”
더는 떨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