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764
화산귀환 1764화(1765/1797)
화산귀환
1764화. 그렇기에 제가 있는 것입니다. (4)
백천과 마주 선 사패련도들의 얼굴이 괴상하게 일그러졌다.
“……협객?”
“협객이라고?”
그러다 이내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미친놈인가?”
화도 나질 않았다. 그저 황당무계할 뿐이다.
‘협객’이라는 말에 담긴 허무맹랑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병색이 완연한 얼굴에,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팔. 이것만으로도 황당한데, 심지어는 한쪽 팔에 듣도 보도 못한 기이한 기구를 달고 있다.
그 와중에 표정은 또 나름대로 비장해서, 보는 입장에선 웃지도 울지도 못할 몰골이었다. 조화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거야말로 정신 나간 괴인이 눈 뒤집혀 앞뒤도 못 가리고 달려온 꼴 아닌가.
아무래도 그 눈먼 칼에 어느 멍청한 놈 하나가 재수 없게 얻어걸린 모양이었다.
“생긴 건 멀쩡한데 아예 정신이 나가 버린 모양이군.”
“……그런데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자꾸 드는데?”
“봤다고? 설마. 저런 자를 보고 잊을 수 있을 리가 있나.”
“그도 그렇네.”
살짝 들던 경계심이 빠르게 내려앉았다.
확실히 저자의 모습은 한번 보면 잊기 불가능할 만큼 강렬했다. 비록 좋은 의미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자. 가라, 가. 사파니 뭐니 해도 우리도 나름대로 측은지심을 느끼는 사람이다. 이번엔 살려 줄 테니 그냥 가라.”
선두에 선 사패련도가 성가시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물론 상대가 광인이나 팔병신이라고 해서 딱히 자비심을 베풀 만한 이들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흉심을 채워 줄 먹잇감이 도처에 널려 있다. 굳이 이런 놈까지 상대해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앞에 선 괴인은 그들이 기껏 드물게 베푼 선심에 감사하지는 못할망정, 뭘 해 보려는 심산인지 덜덜 떨리는 팔을 어렵사리 들어 올렸다.
“응?”
워낙에 희한하고 또 힘겨운 광경이라 자연히 시선이 모였다. 마침내 그 괴인의 검지가 제 귀를 파고들었다. 그가 읊조리듯 입을 떼었다.
“어디서…….”
사패련도들이 눈을 가늘게 뜨며 집중했다. 고개를 든 백천이 비웃음을 흘렸다.
“개 짖는 소리가 들린 거 같은데.”
“…….”
“아니, 이러면 개한테 미안하군. 개만도 못한 놈들이 지껄이는 소리라고 해야 하나?”
사패련도들의 눈길이 삽시간에 날카로워졌다. 저자가 정신이 이상하지 않다는 사실을, 말투만 보아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놈이…… 정말 죽고 싶어 환장했나?”
선두에 선 이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백천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거친 걸음걸이에 경계심 같은 건 조금도 묻어나지 않았다.
노기를 잔뜩 뿜으며 지척까지 다가간 사패련도가 일말의 망설임 없이 도를 사선으로 내그었다. 백천을 일도양단해 버리겠다는 듯.
“어엇.”
“하여튼, 저 무식한……!”
지켜보던 동료들이 그 광경을 보며 혀를 차거나 웃음을 흘렸다.
사지가 멀쩡하지도 않은 이를 상대로 너무 과한 공격이 아닌가 싶어서였다. 이 말인즉, 모두가 저 공격이 괴인의 몸뚱이를 둘로 갈라 버릴 거라고 확신했단 뜻이다.
딱히 재미있을 광경도 아니니 다들 김샜다는 듯 돌아섰다.
하지만 그 순간.
카각!
“응?”
몸을 돌리던 이들의 귓가에 기이한 소리가 꽂혔다.
도가 살을 가르고 뼈를 끊는 소리가 아니다. 익숙한 금속음이다. 이런 소리가 지금 들릴 리 없는데 말이다.
푸욱.
연이어 들려온 살을 뚫는 소리에 모두가 멈칫하여 다시 돌아보았다.
아까 사패련도가 휘둘렀던 도가 하늘을 찌를 듯 높게 뻗쳐 있었다. 분명 좌상에서 우하로 강하게 내리쳤던 도가 왜 돌연 하늘로 뻗어 있는가.
이상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희한한 장치 끝에 묶인 괴인의 검이…… 조금 전까지 도를 맹렬히 휘둘렀던 동료의 목에 박혀 있었다.
“어……?”
“끄…르륵…….”
툭. 투둑.
피가 줄줄 흘러내려 땅을 흠뻑 적시는 소리가 이어졌다. 멍하니 그 광경을 보던 다른 사패련도들이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무슨……!”
털썩.
검을 뽑자 스르륵 허물어진 시신이 땅에 곤두박질쳤다.
정말이지 믿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목이 뻥 뚫려 버린 동료의 시신, 괴인의 검 끝에서 톡톡 떨어지는 핏방울이 없었다면 끝내 믿지 못했을 터다.
흑귀보에서부터 지금까지 수두룩한 사선을 넘어온 동료다. 그런 이가 저 쥐 한 마리 제 손으로 못 잡을 것 같은 등신에게 목숨을 잃었다. 이를 쉬이 믿는 게 오히려 비정상일 것이다.
“너…….”
말을 잇기조차 어려웠다. 아무리 몸이 온전치 못하다 해도, 최소한의 기세만이라도 느껴졌다면 쉬이 경계를 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미 한 사람, 아니 조금 전 목이 달아난 이까지 둘의 목숨이 끊긴 지금까지도 저 괴인에게선 그 어떠한 기세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삼류. 아니, 어쩌면 그 이하. 그 정도에 불과해 보이는 작자에게 동료가 목숨을 잃자 나머지가 느끼는 기분은 참으로 기이했다.
특별히 동료애 따위를 느끼지 않는 이들이라도 지금만큼은 각종 감정에 휩쓸렸다. 황당, 분노, 경악, 불신……. 그리고 알 수 없는 허무함까지.
“무슨 짓을 한 거냐?”
제멋대로 뒤섞인 감정들이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불쾌감을 주었다.
행여나 그들이 놓친 부분이 있었는지 몇 번이고 점검했지만, 역시 저 사내에게서 특별함 따윈 느껴지지 않는다.
게다가 저자의 행색이 혼란스러웠다. 흔한 문파의 상징 하나 붙어 있지 않고, 저 괴이한 기구로 지탱하며 쥔 검조차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싸구려 철검에 지나지 않는다.
“대답해라! 이 개 먹이로 줘도 시원치 않을 놈아!”
불쾌감을 못 이긴 사패련도 하나가 소름 끼치는 노호성을 지르며 성마르게 달려들었다.
“자, 잠깐!”
알 수 없는 불안을 감지한 다른 이가 만류해 보려 했지만, 이미 그의 도가 백천의 정수리 지척에 이르러 있었다.
그리고 이번엔 모두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카강!
마치 물이 위로 흐르는 듯한 검격을 말이다.
물론 이치에 맞지 않는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법이므로. 그럼에도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물이 흐르는 듯 부드럽게 위로 움직인 검이 내력을 잔뜩 실은 채 아래로 내리쳐지는 도의 옆면을 흘리듯 밀어 내었다.
탕.
그 바람에 도가 백천의 머리 옆으로 비껴간 순간, 도면(刀面)을 밀어 내고 있던 검이 도의 뒤쪽으로 스르륵 이동하더니 아래로 내리쳐지는 도에 힘을 보태었다.
“엇?”
자신이 휘두른 힘보다 더욱 강하게 도가 강하했다. 자연히 도를 쥔 이는 통제력을 잃을 수밖에.
콰아아아앙!
도가 땅을 부수며 틀어박혔다.
서걱!
도가 땅에 박히는 반동을 고스란히 이용한 검이 상승하며 사패련도의 목을 가르고 지나갔다.
“끄…….”
목을 베이고도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믿지 못하는 눈빛이 스쳤다. 제 목을 가른 이를 뚫어지게 보며 뭐라도 말하려는 듯 입을 뻐끔거렸지만, 그 어떤 소리도 그의 의지를 드러내 주지 못했다.
그저 갈라진 틈으로 새어 나온 바람 빠지는 소리만이 공허하게 퍼졌을 뿐.
털썩.
또 하나의 생이 끊기며 나뒹굴었다.
타오르는 불, 여기저기서 산발적으로 들려오는 비명, 쾌감에 젖은 지독한 고함이 들려왔지만, 그 틈으로 기이한 정적이 고여 들었다.
그 속에서 백천은 쥐고 있던 검을 더욱 힘껏 잡았다.
‘된다.’
검이 적의 목을 거의 꿰뚫었다.
솔직히 이때까지는 확신하지 못했다.
아무리 허도진인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고 하나, 실전은 엄연히 다른 법이니까. 남은 모든 것을 쥐어짠 이러한 방식이 적에게도 통할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순간 의심이 가시고 확신이 차올랐다.
한 줌밖에 없는 내력을 검을 휘두를 때마다 끌어 올리는 것도, 정면으로 맞받는다면 부서질 수밖에 없는 공격을 흘리는 것도, 전처럼 신속하지 못한 발을 끌듯이 움직이며 적을 상대하는 것도, 모두 여전히 어렵다.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싸울 수 있다.’
확신이 찾아들자 머릿속이 급격히 차가워졌다.
“네놈…….”
서늘하다 못해 형형한 눈빛이 백천을 서늘하게 꿰뚫어 온다.
앞선 몇 번이 그저 요행이었음을 백천도 알았다. 그의 행색을 보고 섣부르게 경시한 적들의 허를 찌르며 빚은 결과일 뿐임을.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저들은 백천을 우습게 보지 않을 것이다. 요행 따위는 바랄 수 없다.
하지만 새삼스러운 두려움 따위는 찾아오지 않았다.
중요한 사실은, 그가 싸울 수 있다는 것. 검을 다시 휘두를 수 있다는 것뿐이었다.
“꼴같잖은 몰골이라 살려 주려 했더니……. 이리된 이상, 처참하게 죽여 주마.”
“이 몰골이어도 내가 너보단 훨씬 나은 것 같은데?”
“이……!”
사패련도의 두 눈에 살기가 휘몰아쳤다.
“그 건방진 주둥아리를 찢어발겨 주마!”
살을 찌르는 듯한 기파와 함께, 사패련도들이 백천을 향해 달려들었다.
과거와 같았다면 일검에 정리되었을……. 아니, 감히 백천의 앞에 서기조차 두려워했을 이들이다.
그러나 지금의 백천에겐 목숨을 걸어도 이긴다고 장담하기 힘들 난적들이었다.
두렵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두렵다. 그러나 이 또한 당연하지 않은가. 두렵지 않아 싸우는 게 아니라 두렵기에 싸우는 것이므로.
“와라!”
백천이 있는 힘껏 기합을 지르며 검을 들어 올렸다.
* * *
까맣게 타 버린 나무들과 쌓인 재를 뚫고 근근이 자라나는 풀.
이렇듯 끝과 시작이 공존하는 무당의 산자락을 일련의 무리가 쏜살같이 질주하고 있었다.
“서둘러라, 더!”
“달리고 있잖습니까!”
“더 빨리 가야 한다고!”
“빌어먹을, 안다고요!”
안색을 한껏 굳힌 화산의 제자들이 서로를 채근하며 필사적으로 내달렸다.
‘제기랄!’
내려다보이는 마을마다 시커먼 연기가 솟구친다. 자세히 보지 않아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밖에 없다.
물론 함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서 뭐가 어떻단 말인가. 함정일 게 뻔하니 죽어 가는 사람들을 마냥 외면해야 하는가?
그럴 순 없다. 그런 일이 있어서도 안 되고.
설사 저곳이 지옥의 불구덩이라고 해도 그들은 가야 한다.
“다 죽여 버리겠다, 이 망할 사파 새끼들!”
누군가가 분을 못 이겨 포효했다. 빠르게 내달릴수록 가슴이 거세게 두방망이질했다.
양민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도 태산 같았고, 또 한편으로는…….
“사형. 사숙은 괜찮겠죠? 혹시라도…….”
“불길한 소리 하지 마라!”
“……예.”
당소소의 말을 딱 잘라 버린 윤종이 몰래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만약 백천이 아직 주변에 머무르고 있다면, 그 몸으로 이 환란을 피할 수 있을까? 아니, 그 성정에 과연 숨죽이고 참으며 목숨을 보전할 수 있을까?
가장 먼저 뛰쳐나가지만 않았어도 다행 아닌가?
파앗!
윤종의 다리에 더욱더 힘이 들어갔다. 속도가 더해졌다. 그때 조걸이 당소소에게 물었다.
“청명이는?”
“모르겠어요. 어디 있는지.”
“그 망할 새끼는 요새 왜 자꾸 따로 놀아!”
조걸의 짜증 섞인 목소리를 들으며 윤종은 말없이 악다문 입술에 힘을 주었다.
숱한 일이 정리되지 않고 산재해 있다. 계속해서 머릿속을 괴롭힌다.
지금껏 그가 하지 않아도 되었던, 그러나 이제는 그가 오롯이 짊어져야 할 고민들이다.
“괜찮을까요? 아니면 일단 청명 사형을…….”
“청명이가 없어도 우린 화산이다.”
“…….”
“그리고 화산은 위기에 처한 이를 외면하지 않는다. 그거면 충분하다. 안 그래?”
“예!”
다부진 당소소의 대답을 들으며 윤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유는 이거로도 충분하다.
“서두르자!”
“예!”
모두가 우렁차게 대답했다.
‘제발…….’
아무쪼록 저 일에 백천이 휘말리지 않았기만을 바라고 또 바라는 윤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