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780
화산귀환 1780화(1781/1797)
화산귀환
1780화. 그럼 어디 확인해 보지. (5)
머리가 멍해졌다. 머릿속에 벼락이 떨어진 느낌마저 들었다.
기나긴 삶을 살며 누구보다 많은 걸 겪었다. 그런 청명에게 이토록 큰 충격은 흔치 않았다.
그의 동공이 거친 풍랑을 만난 조각배처럼 흔들렸다.
‘지금 뭐라고…….’
그렇지 않은 이.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흔들리는 시선으로 달뢰라마를 좇았다. 홍안의 청년은 흔들림도 없이 청명을 지그시 바라볼 따름이었다.
청명은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저자는 자신이 꺼낸 말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을까? 저자가 생각 없이 내뱉은 말에 내가 홀로 흔들리고 있을 뿐인가? 만약에 안다면, 대체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세상의 모든 게 흐려지는 듯했다.
쌓아 올려 온 경계가 흐려지고, 공들여 쌓은 벽이 무너졌다. 아득하게만 느껴지던 거리가 돌연 숨 막히게 좁혀졌다가 또다시 벌어지기를 반복했다.
그 안에서 그저, 또 그저…….
“옴 마니 반메 훔.”
순간 맑고 청량한 진언이 청명의 귀를 파고들었다.
동시에 흐려지던 모든 것이 선명해졌다. 현실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까끌까끌해진 입술의 건조함과, 말라붙은 듯 옥죈 식도까지 고스란히 느껴졌다.
청명은 반사적으로 얼굴을 훔쳤다. 그새 흘러내린 식은땀이 손을 축축이 적셨다.
“너…….”
“그조차 다르지 않습니다. 그저 살아갈 뿐이지요.”
청명이 굳게 입을 다물었다. 비아냥거리지도 않았다. 그도 이제 더는 달뢰라마의 말을 허투루 흘려들을 순 없게 되었으므로.
무엇을 물어야 할까.
묻고 싶은 건 너무도 많았다. 당장 떠오르는 것만으로도 태산을 쌓아 올릴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모든 걸 미뤄 두어야 함을 청명은 알았다. 지금 해야 할 가장 온당한 질문이 무엇인지도.
“내게 하고 싶은 말이 뭐지?”
지금 무엇을 묻는다고 해도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을 순 없을 거란 예감이 들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이미 청명은 겪어 보았다. 초월한 자가 어떤 존재인지. 그들에게 대답을 듣고자 함은 바다에 대고 돌팔매질을 하는 것과 다름없다.
어떤 것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들 스스로 내어주려 하지 않는 이상은.
그리고 이 순간 청명은 또 하나를 알게 되었다.
그들이 스스로 내어주려 하는 것조차 그리 쉽게 손에 넣을 수는 없음을 말이다.
“시주. 제게서 무엇을 보셨습니까?”
청명의 입술이 살짝 못마땅하게 뒤틀렸다.
“내가 먼저 물었다.”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최소한의 도리겠지.”
“인간사의 도리는 중하되, 또한 중하지 않은 것이외다.”
청명이 입술을 짓깨물다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이자를 상대로 이런 걸 따지기는 무의미하다. 머뭇거리다 입술을 달싹였다.
“……이미 한번 보았던 것.”
“무엇입니까?”
달뢰라마가 다시 물었지만, 청명은 대답을 망설였다.
그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눈앞에 있는 이 홍안의 청년이 어째서 ‘그것’과 닿아 있다고 느껴지는지. 논리와 이론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청명의 감각은 분명 그리 말하고 있다.
눈앞의 이 작은 존재……. 손을 뻗는 것만으로도 목을 분지를 수 있을 듯 하찮은 이가, 그가 아는 가장 강대한 것과 닮았다고 말이다.
입에 담기조차 불길하고 끔찍한 존재 말이다.
“……천마.”
청명이 어렵게 꺼낸 말에, 달뢰라마가 고요하게 그를 응시했다. 투명한 눈빛에서는 어떠한 감정도 읽어 낼 수 없었다.
“이유는 나도 몰라. 그저…….”
“그를 그리 부르는 건 온당하지 못합니다.”
청명이 눈을 커다랗게 치떴다. 그러나 달뢰라마는 그 반응을 보지 못한 사람처럼 담담히 말을 늘어놓았다.
“천자마(天子魔). 분명 그 이름을 짊어지기에 걸맞은 존재입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불령해탈(不令解脫)을 이루는 이니까요. 하지만 결과가 그렇다고 하여 그의 바람이 불령해탈에 닿아 있다고는 할 수 없지요.”
당최 무슨 소리란 말인가? 청명조차 알아듣지 못할 말이었다.
“그렇기에 맞지 않고,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맞아떨어지겠지요.”
“뭔 소리를…….”
“무의미한 말이지요. 시주가 아니라면 말입니다.”
“좀 알아듣게 지껄여. 선문답 같은 소리만 주절대지 말고.”
그러자 달뢰라마가 미미하게 고개를 들었다. 그의 가라앉은 눈길이 청명을 응시했다. 관찰하듯, 참선하듯, 달관하듯.
시선의 무게가 청명의 심장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청명이 못 견디고 무어라 말하려던 찰나, 달뢰라마의 입이 느릿하게 열렸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
“그가 이미 예토에 발을 들였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청명의 숨이 턱 막혔다.
정토(淨土)란 부처가 사는 세상을 일컫는다.
하지만 예토(穢土)는 고해가 가득한 세상, 즉 사람이 살아가는 이곳.
“너…….”
“시주의 몸이 이미 알고 있지 않습니까.”
청명이 입술을 짓깨물었다. 순간 배 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덩어리가 솟구쳤다. 그는 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큭!”
악취 풍기는 검은 핏덩이가 목구멍을 역류하여 넘어왔다. 아무리 삼키려 해도 삼켜지지 않았다. 이건 아무리 눈감으려 해도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입을 틀어막은 손가락 사이로 검은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쿨럭!”
청명이 격하게 기침을 토하자, 곁에서 대화를 듣던 반선라마가 놀라 몸을 일으켰다.
“도장!”
한달음에 달려오려는 반선라마를, 달뢰라마가 표정 없이 손을 살짝 들며 막았다.
“스승?”
그러더니 말없이 청명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손이 은은한 금빛 광채를 흘렸다.
달뢰라마의 손은 청명의 몸에 닿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청명은 속에서 들끓던 악귀가 진정되어 가는 걸 느꼈다. 줄곧 몸을 좀먹던 고통도 서서히 사라졌다.
청명이 놀란 눈으로 달뢰라마를 바라보았다.
“뭘…… 어떻게 한 거지?”
달뢰라마에게선 여전히 무학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았다. 달뢰라가 설령 상상을 초월하는 고수라고 해도, 청명의 눈을 완전히 속일 수는 없을 터였다.
하면 청명이 느끼고 있는 이 감각은 무엇이란 말인가? 무학이 없는 이가 어떻게 입마(入魔)를 진정시킬 수 있는가?
청명이 묻지 않았음에도 달뢰라마는 모두 안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무학이 아닙니다.”
“…….”
“번뇌에서 비롯된 고통은 번뇌가 잦아들면 사라지는 게 당연합니다. 저는 그저 그 번뇌를 잠시 밀어낸 것뿐. 하지만 시주께서 번뇌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곧 다시 찾아올 굴레입니다.”
“……번뇌? 내게 번뇌가 있다고?”
청명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물론 수많은 게 청명을 옥죄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지금 달뢰라마의 말은 조금 다른 걸 뜻하는 듯했다.
“인간사 고해란 인연에서 시작되는 법.”
“…….”
“그 인연의 흐름을 시주의 육신이 먼저 느낀 것이겠지요. 결코 피할 수 없는 조우를, 그 미래를 말이외다.”
욱신.
청명이 가슴께를 움켜쥐었다. 심장이 죄어드는 기분이었다.
기껏 진정되었던 속이 다시 뒤틀렸다. 달뢰라마의 말이 틀리지 않는다고, 온몸이 외치는 것만 같았다.
“번뇌…….”
“이어짐.”
천마.
놈이 돌아온다.
순간 청명의 시야에 그 광경이 펼쳐졌다. 십만대산의 정상. 그 참혹한 광경이.
‘다시…….’
잊고자 했지만, 잊을 수 없었던 과거.
피하고자 했지만, 결코 피할 수 없을 미래.
‘다시!’
반드시 극복해야만 하는 종막(終幕)이지만, 여전히 극복할 자신이 들지 않는 파국(破局)이기도 하다.
파멸이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청명은 제 육신조차 다스리지 못하고 있다.
만일 청명이 천마라는 이름의 번뇌에 시달리고 있다면, 그리고 다가올 파멸을 막아 내야 한다면…… 시작은 오직 하나. 그 천마라는 번뇌를 떨치는 것일 터.
“……그 번뇌는 어떻게 극복해야 하지?”
“고뇌도 번뇌도 자신의 것이고, 거기서 벗어나는 것 또한 중생의 일. 하여 구도란 고독하고도 외로운 길이지요. 결국 아(我)와 타(他)는 다를 수밖에 없으니, 시주는 누구에게서도 그 길을 구하지 못할 것입니다.”
“…….”
“타인이란 그저 바라보는 존재입니다. 진정한 고뇌는 나눌 수 없지요. 구도란 자신을 스스로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 의미를 잊지 마십시오.”
“……나눌 수 없다고.”
“그러합니다. 다만…….”
달뢰라마가 소매에서 흰 무명천을 꺼내 내밀었다.
청명은 달뢰라마가 내민 걸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새겨지지 않은, 그저 하얀 무명천이었다.
“그저 지켜보는 게 전부는 아니겠지요.”
달뢰라마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피어났다.
그 미소를 보던 청명이 이내 짧은 숨을 내쉬었다. 달뢰라마가 내민 천을 받아 입가를 훔쳤다. 무명천이 금세 검은 피와 악취로 검게 물들었다.
“얼룩이 지겠군. 갚아 주지.”
“그러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래 봐야 얼룩 아니겠습니까.”
“…….”
“얼룩이 진다 한들, 찢어지고 헤진다 한들 수건은 수건이지요. 본질이 달라지지 않을진대 그깟 얼룩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욱신거렸다. 무엇이 욱신거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청명이 짧게 심호흡했다.
‘대충은 알겠군.’
인외(人外). 벗어나 있는 존재.
세상이 부처라 부르고, 신선이라 부르고, 또한 마귀라 부르는 것들. 인간의 형상을 갖추었으나, 결코 인간이라 부를 수는 없는 존재들. 그렇기에 추앙받고, 신성하게 여겨지고, 또한 그렇기에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것들.
그들은 인간이 원하는 답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청명은 그게 그들의 의도가 아님을 알았다.
사람이 아닌 존재가 사람처럼 말할 수는 없는 법이다. 애초에 맞물리지 않는 톱니바퀴를 열심히 돌려 본들 아귀가 맞아떨어질 수는 없다.
인간이 들을 수 있는 건 맞물리기 어려운 톱니가 수없이 돌아 겨우 맞아떨어지는, 짧은 한순간의 진실뿐이었다.
이는 의지와 노력을 벗어난 ‘법칙’의 영역에 닿아 있다.
청명 역시 머리가 아닌 감각으로 이 사실을 이해했다. 그는 가만히 달뢰라마를 주시했다.
달뢰라마는 왜 고행에 가까운 여정을 통해 이곳까지 찾아왔을까? 아마 청명에게 반드시 전해야 할 말이 있어서겠지.
하지만 그것을 전하는 것은 달뢰라마의 의지대로만 할 수 없는 일. 그 열쇠는 아마…….
“대답해 봐.”
“…….”
“천마……. 그 마귀가 살아난 게 맞나?”
“맞습니다. 또한 틀렸습니다.”
청명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럼 질문을 바꾸지. 그가 지금 이 땅에서 숨 쉬고 있나?”
이번에는 달뢰라마가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부터.”
“다섯 달 하고도 열흘 전.”
“…….”
“어쩌면 세 해의 시간과 네 달의 시간 전. 혹은 스물셋의 해와 두 달의 시간 전.”
“…….”
“아니면 그보다 더 오래전. 여든일곱의 해. 그보다 더 오래, 수도 없는…….”
“그만.”
청명이 신경질적으로 손을 내저었다. 밭은 숨이 새어 나왔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는데, 또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었다.
청명은 굳이 더 캐묻지 않았다. 사실은 더 물을 수도 없었다. 가슴속에서 들끓는 격정이 풍랑처럼 모든 걸 집어삼켰다.
“왜.”
“…….”
“어째서 놈은 다시 살아나는 건데! 왜!”
“…….”
“그 빌어먹을 새끼를 죽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렀는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어 나갔는데! 그런데 왜 그놈은 태연히 다시 살아나는 건데? 이게 이 빌어먹을 세상의 방식이냐? 대답해 봐!”
피를 토할 듯 절절한 청명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달뢰라마가 눈을 감았다. 이 작은 움직임에서, 청명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느꼈다. 그리고 서글픔까지도. 설명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설명을 요구받은 자 같았다.
청명의 두 눈이 분노로 타들어 가는 듯 번뜩였다.
“아니. 아니야. 법도니, 방식이니 내 알 바 아니지.”
청명은 찾아냈다. 이 꽉 막힌 바다에서 그가 구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가치를 말이다.
“어떻게 해야 하지?”
“…….”
“대답해 봐. 너는 알고 있어. 그러니까 내게 말해.”
청명이 아랫입술을 짓깨물었다. 이미 다 터 버린 입술이 찢기며 피가 흘렀으나, 청명은 조금도 느끼지 못했다.
이 질문이 가장 중요하고, 이제 들려올 대답이 가장 중요하므로.
청명의 두 번째 삶은 온전히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해야 놈을 완전히 죽일 수 있지?”
“…….”
“다신 부활하지 못하게. 영원히! 영원히 말이야.”
감정이 폭포처럼 쏟아지고 급류처럼 휘몰아쳤다. 지독할 만큼 순수한 증오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를 지켜보던 달뢰라마가 파르르 속눈썹을 떨었다.
대답을 기다리는 청명 역시 한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세상이라는 바다에 홀로 뜬 청명이라는 등불이 갈 길을 모르고 부유했다. 참으로 외롭고도 애처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