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794
화산귀환 1794화(1795/1797)
화산귀환
1794화. 저게 대답이란다. (4)
‘이건…….’
호가명이 형용하기 어려운 심정으로 전장을 바라보았다.
이런 광경을 두고 뭐라 표현해야 할까.
사실 그는 답을 알고 있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낼 용기가 없었다.
‘꿈틀댄다.’
이따위 말을 군사로서 어찌 내뱉을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이 표현 외에는 저 광경을 나타낼 다른 말을 찾을 수 없었다.
막대한 수의 군세가 흡사 살아 있는 근육처럼 약동하고 있다.
밀리는 곳으로 순식간에 밀어닥치고, 비어 있는 곳을 단번에 채운다.
‘이런 게…….’
병법을 모르는 이라면 앞으로 나서서 사기를 끌어 올리는 저 어린놈들에게 시선을 줄 것이다. 하지만 호가명은 병법가다. 저 어린놈들이 뒤틀어 놓은 진영을 순식간에 복원해 내는 후방의 움직임에 더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이런 짓거리가 가능하지?’
엄밀히 따지자면 그리 대단하지는 않다. 호가명도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말에 절대적으로 복종할 수하들과 몇 달의 시간만 주어진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이 이상의 움직임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을 터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복종할 수하도, 몇 달의 시간도 없는 상태에서 이런 광경을 만들어 냈다는 건, ‘대단함’의 차원을 넘어선다.
“련주님…….”
“뭘 그렇게 놀라고 그러니?”
장일소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내가 그래서 말했잖니. 저놈들과 시간을 들여 오래 싸우는 건 우리 목을 죄는 일이라고.”
“…….”
“저놈들을 저리 만든 건 바로 우리란다.”
그 말이 호가명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 * *
“좌측이 비었잖아, 이 새끼야!”
“아오, 빌어먹을! 못 해 먹겠네! 에헤이, 사숙! 뭐 합니까? 좌측이라잖아요!”
“너 이 새끼, 너는 전쟁 끝나고 두고 보자! 죽여 버릴 거다!”
조걸에게 욕지거리를 퍼부은 백자 배가 좌측으로 신호를 보내다가 답답한지 아예 땅을 박차며 날아올랐다.
“흐음, 조걸 도장. 인(寅)시 방향도 슬슬 위험한 것 같소만?”
“인시 방향이 어딘데!”
“남동쪽 말입니다. 어우, 무식해서는.”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면 되잖습니까! 사파가 유식한 척하기는! 과거도 떨어져 놓고!”
“붙었다니까!”
“웃기시네, 증거 있어요?”
“개소리하지 말고 빨리 지시나 내려, 인마!”
“아니, 왜 나한테만 그러냐고! 사형은 손이 없습니까?”
조걸이 악을 쓰면서도 재빨리 수신호를 보냈다.
“아오 씨! 이럴 줄 알았으면 수기(手旗) 들고 올걸!”
“그럴 상황이 아니었잖아. 어차피 수신호로 다 통하는데 뭐.”
“잘 안 보잖아요! 야, 사숙 놈아! 여기 안 봐? 야!”
“……넌 진짜 참회동 한번 들어가야겠다.”
조걸이 수신호를 보내자 신호를 받은 화산의 제자가 주변에 뭐라 소리를 질러 대었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이들이 단숨에 이동해 빈 곳을 채우기 시작했다.
“방향이 틀렸잖아!”
“틀렸잖아요, 사형!”
“……그냥 죽여라, 그냥.”
조걸이 망연자실하게 주저앉았다. 임소병은 그런 그를 보다가 나직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걸 잘도 해내네.’
멋모르는 이들에게야 딱히 대단치 않게 보이겠지만, 병법을 논하는 이들은 이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광경인지 한눈에 알 것이다.
군에 필요한 것은 첫째도 훈련, 둘째도 훈련이다. 지시에 즉각적이고도 올바른 반응을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천우맹은 급조된 세력이다. 서로 살아온 길도, 지향하는 바도 다르다. 그런데 지금 단순한 수신호만으로도 훈련받은 군대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게 기적이 아니면 뭐가 기적이란 말인가.
‘이를 가능케 할 수 있는 건 천하에 오직 화산뿐이겠지.’
화산만이 지니고 있다. 이 기적을 가능케 하는 두 가지 요소를.
하나는, 완벽한 체계. 이들은 과거 항주에서 지시를 통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음을 이미 증명했다. 게다가 그 이후로도 서로 꾸준히 그 방식을 되새겨 왔다.
그리고 화산이 정말로 대단한 건, 두 번째 요소 때문이다. 이는 오로지 화산만이 지닐 수 있다.
“야, 이 미친놈아! 전방이 비잖아! 바로 앞! 이 새끼야! 눈이 삐었어?”
“아! 직접 하시라고, 직접!”
조걸이 쌍욕을 내뱉으며 좌측에 다시 수신호를 보낸다. 그러자 그곳에 있던 화산 검수의 지시에 따라 주변의 인원들이 일제히 앞으로 달려 나갔다.
‘저거지.’
임소병이 저도 모르게 부채를 꽉 움켜쥐었다.
저들은 조금 전까지 군사, 그러니까 제갈가주가 내린 명령조차 제대로 듣지 않았다. 그랬던 이들이 화산의 이름 없는 검수의 명을 받고 피와 살이 튀기는 전방으로 뛰쳐나가길 주저하지 않는다.
제갈에는 없고 화산에는 있는 것. 그건 단순히 무력이 아니다.
‘절대적인 신뢰’.
화산은 결코 그들을 홀로 사지에 보내지 않는다. 그들은 반드시 적과 마지막까지 싸울 것이다. 심지어 적과 항상 싸워 온 그들이야말로 사패련을 상대하는 법을 가장 잘 알고 있다.
천우맹의 대다수가 화산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게 중요한 것이다.
말과 논리가 아닌, 행동과 행적으로써 화산이 증명해 내었다. 그 증명은 지금 화산을 향한 천우맹도들의 절대적인 신뢰로 화했다.
“아니! 이럴 바에는 앞에 나가서 싸우자니까?”
“……아미타불. 주둥이 놀릴 시간에 수신호 한 번 더 보내십시오, 조걸 시주.”
“주, 주둥이라고 했습니까, 스님?”
“어허! 손, 손! 손이 놀잖습니까!”
“…….”
윤종이 피식 웃었다.
그의 마음이라고 조걸과 크게 다를까. 윤종 역시 당장에라도 앞으로 나서서 싸우고 싶다. 다른 이들이 피 흘리는 것보다 스스로 피 흘리는 편이 마음 편하다.
하지만 윤종은 또한 알고 있었다. 지금 제게, 그리고 화산에게 주어진 역할은 그런 게 아님을.
“윤종.”
“예, 사고.”
“보여?”
윤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보입니다.”
무엇이라 말하지 않았건만, 윤종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유이설이 하고자 하는 말을 이미 알아서다. 그가 느끼는 감정을 그녀 역시 똑같이 느끼고 있을 테니까.
‘싸우고 있다.’
가장 앞, 적의 칼날이 겨눠진 곳. 어디보다 위험하고, 그렇기에 치열한 곳. 바로 화산의 자리.
윤종도 한때는 의문을 품었다.
어째서 그곳에는 항상 화산이 있어야 하는 걸까.
스스로 그곳에 서기로 했음에도, 때로는 다른 이들에게 불쑥 원망이 들었다. 어째서 너희는 이곳에 서려 하지 않느냐고, 어째서 우리가 흘리는 피를 당연히 여기느냐고.
그런데 이제는 화산이 아닌 다른 이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앞다투어 달려 나가 목이 터지도록 외치고 있다.
커어어어헝!
어디선가 우렁찬 울부짖음과 함께 나타난 야수 떼가 무자비하게 적들을 물어뜯었다.
“놔, 놔라! 한낱 더러운 짐승이 감히……!”
“으하하하하핫! 짐승보다 못한 사파 놈들이 입은 살아 잘도 지껄이는구나. 오늘 네놈들을 모조리 늑대 밥으로 던져 주겠다!”
침묵하던 야수궁이 전면으로 나섰다. 거대한 육체에 우렁우렁한 목소리와는 달리, 맹소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냉정했다. 그가 턱짓하며 명령했다.
“약세를 보이는 놈들을 놓치지 마라!”
“예! 궁주님!”
빙궁도 뒤지지 않았다.
곳곳에서 하얀 검기가 솟구치는 게 보였다. 종남의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한없이 시리고 투명한 검기는 북해의 혹한을 이곳에 고스란히 옮겨 오기라도 한 듯 적의 살을 얼리며 부르트게 했다.
“박살 내 버려라!”
한이명과 설소백이 소리치는 광경이 윤종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면…… 함께 싸워 왔는데도.’
저들의 자리는 언제고 화산보다 조금 뒤였다. 그런데 지금만은 저들이 스스로 화산의 앞에서 적과 맞서고 있었다.
누구의 지시나 부탁이 없었음에도 말이다.
윤종의 시선이 천천히 돌아 한쪽으로 향했다.
“생각하고 한 건 아니겠죠? 아무리 녀석이라도 이리되리라고는…….”
“글쎄.”
유이설이 고저 없는 어투로 대답했다.
“하지만 알 것 같아. 한 가지는.”
“……뭘 말입니까?”
“누군가에게는 의미가 있었겠지. 우리의 등도.”
윤종이 입술을 깨물었다.
말주변이 없는 사고는 아마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들이 청명의 등을 보고 여기까지 온 것처럼, 누군가는 화산의 등을 보며 이곳까지 왔을 거라고.
그들이 자라다 만 싹에서 커다란 매화나무가 될 시간 동안, 저들 역시 과거와는 달라졌다고 말이다.
“의도했는지 그 여부야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결국은 그리되었다는 점이죠.”
“…….”
“커다란 나무가 자라면 주위로 자연히 짐승이 모여들고, 언젠가는 숲이 되듯 말입니다. 그렇게 생겨난 숲이 나무가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결국 한 그루의 나무에서 시작된 일일 겁니다. 합포지목 생어호말(合抱之木 生於毫末). 아름드리나무도 티끌만 한 싹에서 시작된다. 그게 당신들이 섬기는 가르침 아니었습니까.”
임소병이 제 부채를 촥 펼쳐 냈다.
“흔들리고, 꺾여도 자연히 그리된다. 그게 도(道)겠지요.”
윤종이 잠시 침묵했다. 그러더니 이윽고 얼굴을 거칠게 쓸어내리고는 손바닥으로 눈두덩을 꾹 눌렀다.
“문자 쓰지 마십시오. 산적 주제에.”
“……이 양반이 좋게 말해 줘도.”
“어? 사형 지금 혹시 우는…….”
“저 옆이 비었잖아! 이 멍청한 자식아!”
“……지옥에나 떨어져라, 망할 인간.”
이를 악문 윤종은 눈시울이 붉어진 채 앞을 응시했다.
‘이길 수 있다!’
질 리가 없다. 이렇게 모두 한마음이 되어 싸운다면. 전력이 더 강한 우리가 패배할 이유가 없다.
“오늘 종지부를 찍어 주마, 장일소!”
윤종의 가슴속에 뜨거운 불길이 일었다.
* * *
전황은 확연히 사패련 쪽에 불리하게 기울어지고 있었다.
짧은 틈에 이리 상황이 바뀌었으니 실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만일 호가명이 단독으로 명을 내리는 상황이었다면 이미 한참 전에 새로운 대책을 세웠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장일소가 있다. 감히 그가 새로운 지시를 내릴 순 없었다.
“련주님.”
호가명이 조바심을 이기지 못하고 장일소를 불렀다.
“흐음.”
“놈들이 기세를 굳히…….”
“이게 다일까?”
“……예?”
호가명이 움찔하며 장일소를 돌아보았다. 반 발짝 뒤에서 바라본 장일소의 옆얼굴에 시큰둥한 빛이 떠올라 있었다.
“여기까지는 너무 뻔하지. 그렇지?”
“뻔……하다고 하셨습니까?”
“그렇잖니. 겨우 이 정도가 아니어야지. 우리 잘나신 협의지사들께서 고작 이 정도라면 실망인걸.”
장일소의 눈매가 그믐달처럼 가늘게 휘어졌다. 보는 이를 섬뜩하게 하는 미소였다.
“이래서야…… 내가 제대로 된 적이 아니라서 저들이 성장하지 못한 꼴이 되어 버리잖니. 자존심 상하게.”
“련주님……?”
장일소의 말을 가장 잘 알아듣는 호가명마저도 이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대체 이 상황을 뭐라 생각하시는 걸까. 그의 목숨은 물론이고 강호의 운명을 모두 건 상황에서 이런 너스레를 떠는 게 말이 되는가.
“련주님, 지금은…….”
“아아.”
호가명이 참지 못하고 다시 재촉하려는 순간, 장일소가 심드렁하게 손을 휘휘 내저었다.
“서두를 것 없다, 가명아.”
“……예?”
“저들만 필사적인 게 아니란다. 어차피 뒤가 없는 건 우리도 마찬가지 아니니.”
호가명은 더욱 당혹스러웠다. 그러니 지금 당장 무엇이라도 해야 하지 않는가.
그때, 장일소가 턱을 느리게 괴며 손가락을 톡톡 움직였다.
“그러니 움직여야 할 거란다. 내가 몰락하길 바라는 것들조차도.”
“예? 그게 무슨…….”
콰아아아아아아앙!
그 순간, 전방에서 거대한 폭음이 터져 나왔다.
쇄도해 오는 기파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움츠렸던 호가명은 이내 놀란 눈으로 그 방향을 바라보았다.
화려한 금의를 입은 장년인이 그곳에 오연히 서 있었다.
“……태양궁주.”
“인내심이 가장 짧은 녀석부터 나섰군.”
장일소가 빙그레 웃었다.
“자, 어디 보자꾸나. 오늘 여기서 몇이나 살아남을지.”
그의 여유롭고 태연자약한 미소를 보며, 호가명은 등골이 서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