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795
화산귀환 1795화(1796/1797)
화산귀환
1795화. 저게 대답이란다. (5)
시선이 한순간 한곳으로 집중되었다.
강렬한 폭음과 함께 등장한 이는 지극히 화려한 금의를 걸쳤지만, 그 모습이 우스꽝스럽지 않을 만큼 얼굴에 귀티와 기품이 넘쳤다.
그러나 이 혼란 속에서 외양이 시선을 잡아끌지는 않았을 터.
원인은 저 장년인이 뿜는 기세가 사위를 압박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의 기운은 명확한 ‘열기’의 형태로 대기를 말라붙게 하고 있었다.
태양궁주. 그의 열양지공이 뚜렷하게 유형화되어 주변을 불태우는 것이었다.
“하잘것없는 것들이…….”
태양궁주의 입에서 분노를 억누르는 듯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멍청하기 짝이 없다. 이따위 조무래기들이 날뛰도록 방치해 두다니. 이대로 적의 기세가 상승을 이어 간다면 어느 순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진다는 사실을 왜 모른단 말인가.
‘하긴, 진짜 전쟁을 겪어 보지 못한 놈이 뭘 알겠는가.’
중원 사파 놈들의 전쟁이라고 해 봐야 고작 무인 몇 놈이 저 잘났다고 날뛰는 국지전에 불과했을 터. 그리 생각해 보면 이 멍청한 짓거리도 이해되었다. 이해할 수 있다는 게 용납할 수 있단 뜻은 아니지만 말이다.
다만 지금 그는 저 멍청한 놈들과 한배를 탄 처지다. 이미 한차례 뼈아픈 실패를 경험한 그는 이 이상으로 상황이 악화하는 것을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태양궁주의 시선이 뒤쪽으로 향했다. 시선이 닿은 곳엔 붉은 적포 차림의 장일소가 있었다.
이글이글 타는 듯한 태양궁주와 눈빛과 섬뜩한 웃음기가 어린 장일소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흥.”
태양궁주가 짧게 코웃음 쳤다.
‘그래 봐야 흑도 놈. 잘난 체해 봐야 한계는 극명하지.’
언제고 저 콧대를 꺾어 주겠다는 마음은 여전했다. 장일소에게 당했던 굴욕은 태양궁주의 가슴속에 또렷하게 남았다. 천하기 이를 데 없는 자 앞에서 몸을 떨었던 기억은 어쩌면 태양궁주가 생을 마치는 순간까지 잊히지 않을지 모른다. 화인처럼.
그러니 반드시 이 굴욕을 갚아야겠지만…… 적어도 그게 지금은 아니다.
망망대해를 떠도는 중 배에 구멍이 뚫렸다면 아무리 지독한 원한이라도 일단은 묻어 두는 게 현명한 처사다. 대의를 모르는 소인배만이 사소한 원한에 집착하는 것이다.
태양궁주는 장일소에게 보내던 눈길을 거둬들였다.
대신 눈앞의 젊은 검수들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돌연 전장의 분위기를 뒤틀어 놓은 놈들. 반드시 꺼뜨려야 할 불씨.
태양궁주의 우수에 거대한 힘이 모이기 시작했다.
고오오오오오.
“중원 놈들은 하나같이…….”
태양궁주는 안다. 인간은 권위에 복종하지만, 그 권위를 만들어 내는 것은 결국 힘이라는 것을.
항거할 엄두조차 못 내게 할 만큼 거대한 힘이야말로 완벽한 권위의 상징이다.
“……주제라는 걸 모르는구나!”
그의 손에 모인 힘이 장력으로 발출되었다. 흡사 새하얀 태양이 쏘아진 듯했다.
콰아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사위를 휩쓸었다.
압도적인 내력을 바탕으로 한 가공할 위력. 여파가 아닌 힘 그 자체가 사방을 휩쓸며 빽빽하게 뭉쳐 있던 천우맹도들을 단숨에 날려 버렸다.
직격당한 이들은 단말마조차 남기지 못한 채 녹아내렸고, 용케 목숨을 건진 이들도 전신이 타들어 가는 고통에 몸부림쳐야 했다.
“으아아아아아악!”
“아악! 내 다리! 내 다리이이이이!”
그러나 이토록 처절한 비명도, 그들의 끔찍한 몰골도 주위의 이목을 끌지 못했다. 태양궁주의 장력이 꽂힌 땅에 모두의 시선이 쏠린 탓이었다.
치지지지지직.
끓어오른다.
땅이 붉은 피가 된 듯 흐르고 있었다. 조금 전 내리꽂힌 장력이 지독한 고온으로 대지마저 녹이고 만 것이다.
“저…….”
모두 경악으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떻게 사람이…….’
안면을 익힐 듯 밀려오는 열기도, 함께하던 동료를 잃었다는 슬픔도 저 충격적인 광경 앞에서는 의미를 발하지 못했다.
무학의 결은 무인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일격의 날카로움을 극한까지 가다듬고, 또 누군가는 일권으로 산을 부수는 데 평생을 바친다. 다른 누군가는 단절을 목표로 삼고, 누군가는 자연과 동화되려 한다.
모두 저마다의 길을 걷는 것이니 무엇 하나 틀렸다고 할 순 없다. 그저 나아가는 길이 분명히 다를 뿐.
이렇다 보니 설령 같은 경지에 오른다고 해도, 그 무학으로 해낼 수 있는 것은 제각각 달랐다.
태양궁주의 무학은 실로 대단하다. 가공할 만한 위력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다. 물론 천하에 태양궁주와 대등한 무인이 없지는 않겠으나, 과연 누가 저런 광경을 만들어 낼 수 있겠는가.
전해 듣기만 한 힘은 의심의 대상이 된다. 또한 오래전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힘은 우상이자 목표가 된다.
하나, 눈앞에서 펼쳐진 힘은 뼈와 살에 와닿는 공포다.
기파로 거세게 펄럭이던 태양궁주의 장포가 천천히 내려앉았다. 무시무시한 광경을 이 자리에 펼쳐 놓은 당사자라기에는 너무도 태연자약한 모습이었다.
오히려 그래서 더 지켜보는 이들에게 위압감을 더했다.
“제 분수를 아는 건 중요하지.”
태양궁주가 느릿하게 뒷짐을 지며 눈앞에 있는 이들을 내려다보았다. 눈높이가 다르지 않다고 해도, 그 시선에는 분명 고하가 뚜렷하게 존재했다.
“분수를 모르는 이들은 주제넘은 짓을 하게 되니까.”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다르다. 하찮은 것들이 아무리 날뛰어 봐야 타고난 걸 뒤바꿀 순 없다. 이는 태양궁주에게 절대적인 진리에 가까웠다.
자격도 갖추지 못한 이들이 주제넘게 설쳐 대는 모습은 그에게 차마 봐 주기 어려울 만큼 끔찍한 광경인 셈이다.
지금도 가슴속에는 분노가 치밀었지만, 그는 최대한 자제하며 말을 이었다. 이들을 상대로 언성을 높이며 속에 쌓인 분노를 내보이는 것조차 그의 격에 걸맞지 않은 일이므로.
“눈이 있다면, 느낄 수 있다면 그 하찮은 머리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저벅.
태양궁주가 앞으로 한 발짝 내디뎠다. 그러자 그의 앞에 보이는 수많은 것이 동시에 요동쳤다.
그건 거대한 울림이자 파동이었다.
권력은 작은 노력으로 얼마나 큰 움직임을 불러올 수 있는가로 정의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지금 이곳에서 태양궁주의 권력은 왕의 그것도 하찮아 보일 만큼 거대하다 할 수 있으리라.
이 사실이 태양궁주를 더없이 흥분시켰다.
“그러니…….”
또다시 내디딘 한 걸음이 더 큰 물결을 자아낸다. 흥에 겨운 태양궁주가 다시 한 발을 떼려던 순간이었다.
그의 걸음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모두를 하찮게 내려다보던 그의 시선이 어딘가에 닿았다. 그리하여 보고 만 것이다. 그가 누구도 서 있기를 허락하지 않은, 붉은 땅 위에 아직 두 발로 선 한 사람을.
당연히 쓸려가 버렸어야 했음에도 기어이 버텨 낸 존재를.
“흐음.”
태양궁주의 묵직한 음성이 작게 새어 나왔다.
감탄이 아닌, 불쾌감에서 비롯된 소리였다. 미세하게 깎이고 만 자존심의 부스러기라고 봐야 할지도 몰랐다.
태양궁주가 못마땅한 듯 눈썹을 꿈틀했다.
“잘도 버텼군.”
물론 이 이상 불쾌감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하찮은 이에게 그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조차 그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윽고 들려온 말은 그의 인내심에 상처를 남기기에 충분했다.
“딱히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태양궁주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네놈은?”
상대의 이름을 알아 두겠다는 정도의 짧은 말이나, 이는 태양궁주에게 무척 흔치 않은 일이었다.
“종남의 이송백.”
횡으로 뻗은 검면을 손바닥으로 받친 이송백이 검 위로 드러난 눈으로 태양궁주를 주시했다. 사형제를 바라보던 부드러운 눈길과는 확연히 달랐다.
태양궁주가 비웃음을 흘렸다.
“방자하구나. 한 번은 요행으로 잘 버텼을지 모르나, 고작 그 정도 실력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이송백이 긴 숨을 깊게 내쉬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금도 다리가 후들거렸다. 기교도 뭣도 아닌, 그저 내력의 문제였다. 가공할 힘으로 짓눌러 오는 장력을 상대하기에 이송백의 검은 그리 적절치 못했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서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송백이 검을 양손으로 잡고 중단세를 취했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가 죽기 전까지는 물러서지 않을 겁니다.”
“……이래서 내가 분수 모르는 놈들을 싫어하지.”
태양궁주의 눈가가 미미하게 일그러졌다.
권위란 저항하는 이가 나오는 순간 훼손된다. 그만큼 섬세하고 위태로운 것이다.
하지만 태양궁주는 권위를 쥔 채 살아온 자였다. 이미 훼손된 권위를 어떻게 다시 세워야 하는지 무척 잘 알았다.
“너는 그 살 한 점조차 세상에 남기지 못하리라.”
그 방법은 바로 징죄다. 거역하는 자를 무자비하게 처벌하는 것.
고오오오!
태양궁주의 우수에 다시 한번 내력이 모이기 시작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침이 마르고, 솜털이 곤두설 정도의 내력이었다.
이는 단순한 느낌이나 감상 따위가 아니었다. 실제로 저 내력이 뿜어내는 열기는 어마어마했다. 이송백의 피부가 익을 듯이 달아올랐다.
“큭……!”
이송백이 검에 힘껏 내력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이 얇디얇은 검으로는 장력은커녕 들끓는 열기조차 막아 낼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이송백의 숨이 차츰 가빠졌다.
모든 곳을 막아 낼 수 있다. 하지만 막아 낼 힘이 충분하지 않다면 무의미하다. 회의감이 밀려왔다. 그의 검이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었단 말인가?
‘아니. 아니야!’
이송백이 입술을 짓깨물었다.
부족한 게 있다면 그의 검이 향하려는 곳이 아니다. 그가 닿은 경지가 부족할 뿐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다른 곳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녹아 사라져라!”
콰아아아아!
태양궁주의 우수에서 발출된 원형의 장력이 이송백을 향해 쇄도했다.
거의 동시에 이송백의 검 역시 전방위로 쏘아졌다.
존재하는 모든 방위에 그의 검이 새겨진다. 거듭 쏘아 내고, 그러고도 또 쏟아 내는, 육신을 학대에 가깝도록 지독히 몰아붙이기를 반복하여 만들어 낸 검의 벽.
이는 천수(千手)의 만다라(曼茶羅)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다.
철벽에 다다른, 어쩌면 완벽(完璧)에 닿았을지도 모를 지고한 수검(守劍)의 경지였다.
하지만…….
쿠구우우웅!
그 지고의 벽이 이내 비틀리고 녹아내렸다.
아직 완벽을 논하기란 일러도 너무 이르다는 듯, 태양궁주의 장력은 이송백의 검벽을 짓뭉개며 끝없이 밀려들었다. 물 샐 틈 없는 철벽조차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종잇장처럼 구겨질 뿐이었다.
“사라져라!”
이송백이 부러뜨릴 듯 이를 악물었다.
포기? 그런 것이 그의 안에 존재할 리 있는가!
그는 다시 한번 검을 전개하려 했다. 부질없는 저항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멈춰서는 안 된다. 이송백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
이송백이 목이 터지도록 기합을 내지르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앙!
그의 바로 뒤에서 발출된 무언가가 전방으로 무섭게 뻗어 나갔다.
‘뭐?’
장엄한 황금빛 불광. 그리고 태양궁주의 장력보다 더욱 희고 찬란한 검강이었다.
두 가지 기운이 날아드는 태양궁주의 장력과 맞닥뜨리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아아아아앙!
“컥!”
바로 앞에서 전해진 엄청난 충격에 이송백의 몸이 뒤로 거세게 튕겨 날아갔다. 그러나 멀리 가기도 전에 단단한 두 개의 손이 그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눈을 질끈 감았던 이송백이 충격이 잦아들자 뒤를 돌아보았다.
“아미타불.”
시선이 채 뒤로 돌기도 전에 귓가에 익숙한 불호가 들려왔다.
“훌륭합니다, 시주. 다만 혼자 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
“상성이 안 맞는 듯하군. 여긴 우리가 맡지.”
굳이 보지 않아도 이송백은 알 수 있었다. 이 두 사람이 누구인지.
만일…… 청명이 없는 세상이었다면, 당연히 세상 가장 높은 곳을 두고 경쟁했을 두 사람이다. 그리하여 어쩌면 두 사람이 이송백의 목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두 분…….”
소림의 혜연과 남궁의 남궁도위가 이송백의 어깨를 붙들었던 손을 놓고 앞으로 나아갔다.
“만만찮은 것 같습니다. 조심하십시오, 시주”
“확실히 그래 보입니다, 스님. 그래도 뭐…….”
남궁도위가 빙긋 웃었다.
“누구만 하겠습니까?”
“하하. 그야 그렇지요.”
나란히 선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마침내 태양궁주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