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922
921화. 거, 진짜 염치 더럽게 없네. (1)
화산의 산문에 사람들이 가득가득 들어찼다.
“아, 밀지 말라니까!”
“아니, 이 사람이? 당신이 끼어들어 놓고는 어디다 남 탓이오!”
“끼어들다니? 내가 오늘 새벽부터 줄을 섰는데!”
“새벽? 새벼어억? 나는 어젯밤부터 여기서 밤이슬 맞으면서 기다렸소! 어디 느지막이 새벽에 와 놓고는 빨리 온 척하고 있어! 이거 안 될 사람이구먼!”
“그, 그럴 리가 있나! 어디서 허세를⋯⋯!”
두 사람이 서로 드잡이하려 하자 옆에 서 있던 이들이 뜯어말렸다.
“이 양반들이 미쳤나? 여기가 어디라고 드잡이질을!”
“여기 화산이요, 화산! 날벼락 맞을 일 있소?”
“당신들 때문에 우리까지 쫓겨나면 절벽에서 밀어 버릴 줄 아쇼!”
연무장을 쓸다 그 모습을 본 윤종은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걸아.”
“예, 사형.”
“저분들은 왜 저렇게 다들 몰려온 것이더냐? 저 짐들은 다 뭐고?”
“아니, 장차 장문인이 되실 양반이 그런 것도 몰라서 어떻게 합니까? 화산이 봉문을 풀었다는 말을 듣고 얼굴 비추러 온 사람들 아닙니까?”
“⋯⋯저렇게나?”
“많지도 않⋯⋯. 아니, 뭐 많기는 한데.”
산문 너머로 끝이 보이지도 않을 만큼 줄을 선 인원들을 보며 조걸이 헛기침했다.
“따져 보면 그렇게 신기할 일도 아닙니다. 원래 봉문 전에도 화산에는 방문자가 많았잖습니까.”
“그렇긴 하지.”
“그런데 삼 년 동안 못 본 사람들이 인사를 하러 일제히 들르고 있으니 이 정도야 당연한 거지요. 게다가 예전에 비해서 화산의 입지가 더 오르기도 했고요.”
봉문 전에도 화산의 섬서의 대표 문파 자리를 거의 차지한 상황이었다. 거기에 이번 사파의 침입을 막으며 그 자리를 거의 확고하게 굳혔다.
종남이 봉문을 푼다 해도 이 상황을 뒤집기는 쉽지 않으리라는 것이 세간의 평가이니만큼, 섬서의 유력자들은 하나같이 화산에 줄을 대지 못해 안달이었다.
심지어 천우맹에 줄을 대려 하는 외지인들까지 먼 길을 마다 않고 몰려드는 상황이니 저 줄은 날이 갈수록 줄기는커녕 더 늘어날 것이 분명했다.
“참 세상일이라는 게⋯⋯.”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윤종을 보며 조걸이 낄낄대며 웃어 댔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사형은 익숙해져야 합니다. 나중에 장문인이 되시면 저 사람들을 사형이 상대해야 할 텐데.”
“⋯⋯.”
윤종은 질린 얼굴로 산문에 몰려든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저 사람들을? 그가 다?
“아니, 아니지. 겨우 저 정도가 아니겠구나. 지금도 이 정도니 사형이 장문인이 되었을 때쯤에는 거의 화산 입구까지 줄을 설지도 모릅니다.”
“서, 설마 그렇게까지야⋯⋯.”
“거, 속 편한 소리를 하십니다. 그것도 최소로 잡은 겁니다.”
“최, 최소로?”
“당연하죠. 사형이 장문인의 자리에 오를 때면 적어도 이삼십 년은 뒤 아닙니까? 아직 장문인도 정정하시고, 사숙도 눈을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으니까.”
“⋯⋯표현이 좀 이상하긴 한데. 여하튼.”
“그 삼십 년 뒤에 청명이 놈이 어떻게 되어 있을 것 같습니까?”
“⋯⋯.”
화산이 아니라 청명이?
“처, 청명이가 어떻게 되다니. 삼십 년 뒤면⋯⋯.”
윤종이 입을 닫았다.
“얼마 전까지는 화산신룡이다가 이제는 화삼검협인데, 삼십 년쯤 지나면 뭐⋯⋯. 환우제일매화무적검황(寰宇第一梅花無敵劍皇)쯤 되어 있겠죠.”
“⋯⋯농담에는 같이 웃어 줘야 하는데, 농담같이 안 들려서 문제구나.”
“농담 아닌데요?”
“⋯⋯.”
“그런 놈을 데리고 장문인 노릇 하려면 사형도 골머리 좀 썩어야 할 겁니다.”
조걸이 낄낄대며 웃었다. 윤종은 처음으로 진지하게 장문인 자리를 조걸에게 넘겨줄까를 고민했다.
“⋯⋯장문인도 고생이 많으시겠구나.”
그때였다.
“화산신료오오오오오옹! 아니, 화산검혀어어어어어업! 크, 큰일 났다아아아아아!”
누군가가 화산의 산문을 벼락같이 뛰어넘으며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질러 댔다.
“⋯⋯저런 양반들도 상대해야 할 테니.”
“그러게요.”
산문을 뛰어넘은 거지, 홍대광을 확인한 두 사람이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매화도를요?”
“그, 그렇다니까!”
홍대광은 현영이 준비해 준 물을 꿀꺽꿀꺽 마시며 바짝 타는 목을 축이고는 말을 이었다.
“남궁세가가 매화도를 점령했다! 우리 귀여운 천리청구가 말 그대로 천 리를 날아와서 전한 소식이다!”
“⋯⋯그쯤 되면 동물 학대 같은데.”
그래 봐야 비둘긴데, 날개 좀 파랗다고 심심하면 천 리씩 날려 대네. 불쌍한 것.
청명은 홍대광의 어깨에서 깃을 고르고 있는 푸른색 비둘기를 뚫어지게 보았다.
저건 뭐 맛난 걸 얻어먹는다고, 천 리씩 오가면서 도망도 안 가나? 우리 백아 같았으면 도중에 멧돼지 두 마리는 잡아먹고 배 까고 드러누워 술까지 한잔 걸치고 올 텐데.
그것참⋯⋯ 그러네. 생각해 보니 참 유용한⋯⋯.
“아, 안 된다!”
홍대광이 화들짝 놀라며 어깨에 올려진 천리청구를 양손으로 감싸 잡았다.
“뭐가요?”
“너 지금 우리 천리청구한테 눈독 들이고 있는 거지? 이건 개방의 영물이란 말이다! 절대 안 돼!”
“아니 뭐 그렇게 쩨쩨하게 구세요. 좋은 건 같이 쓰고 그러는 거지.”
“안 된다니까!”
“쯧. 개방도 각박해졌네.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대체 네놈이 말하는 옛날은 언제냐?”
“그런 게 있어요.”
그렇지. 그때는 안 그랬지.
품에 술 단지 숨겨 가다가도 나랑 마주치면 드시라고 공손히 양손으로 바치고, 괜찮다고 해도 굳이굳이 주고 가는 그런 정이 있었는데, 쯧쯧. 요새는 영⋯⋯.
“아니. 그건 됐고.”
그때 현영이 상황을 딱 끊고 다시 물었다.
“남궁세가가 수적들을 몰아내고 매화도를 점거했단 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장로님. 장강에서 그 사실을 확인한 개방의 제자들이 바로 천리청구를 날려 왔습니다. 본단에서 가장 먼저 저희에게 보내온 따끈따끈한 소식입니다.”
“흐음. 남궁세가가⋯⋯.”
현영이 영 마뜩잖은 얼굴로 현종을 돌아보았다.
“일이 심상찮게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장문인.”
“⋯⋯그렇구나. 설마 남궁세가가⋯⋯.”
현종과 현영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홍대광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청명을 흘끗 보았다.
‘이건 대체 뭐 하는 놈이지?’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정말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이 일이 벌어지기도 전에 청명은 그를 찾아와 남궁세가의 움직임에 대해 물었다. 아무도, 심지어 개방조차도 남궁세가라는 변수를 떠올리지 못하고 있을 때, 이놈은 이 먼 섬서에 앉아서 혼자 저 장강에서 벌어질 일을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그냥 똑똑하다고 가능한 일인가?’
이제는 청명에 대해서 충분히 알 만큼 알았다고 자신했는데, 이 괴상한 도사 놈은 알면 알수록 더 예측이 힘들었다.
“이보오. 홍 분타주.”
“예, 장문인.”
홍대광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현종을 바라보았다. 한 문파의 장문인, 특히 화산의 장문인을 앞에 두고 딴생각을 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니까.
“개방은 이 일에 대해 어찌 생각하고 있는가? 아무래도 사패련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은데.”
“안 그래도 개방 역시 장강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홍대광이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쉬이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아시다시피 워낙에 변수가 많아서⋯⋯.”
일반적인 전쟁이 벌어진다면 그 흐름을 예측하는 건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전쟁에 참여하는 이의 수가 많아진다고 해도 그 군을 움직이는 이들은 결국 몇몇에 지나지 않으니까.
하지만 강호의 전쟁은 그 궤를 달리한다.
워낙 각 문파의 개성이 강하고, 각각 독립적인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보니 명령이라는 게 잘 먹히질 않는다. 그렇기에 전쟁을 구상한 이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흐름이 만들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이번만 해도 삼 년간 쥐 죽은 듯 지내던 남궁세가가 이 소식을 듣자마자 장강으로 달려가서 수적들을 때려잡을 것이라고는 누구도⋯⋯. 아니, 거의 모두가 생각조차 못 하지 않았던가?
“그리하여 개방에서는 화산의 의견도 물어왔습니다.”
“우리 의견을?”
“예.”
홍대광의 눈알이 옆으로 슬쩍 돌아갔다.
그 눈빛을 놓치지 않은 현종이 쓰게 웃었다. 정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개방이, 굳이 화산의 의견을 물을 이유가 무엇인가 했더니.
‘청명이 놈이로군.’
아마 그가 모르는 새 청명이가 장강의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홍대광에게 뭔가를 말한 모양이었다. 그 말이 옳게 흘러간 것이겠지.
“청명아.”
“네?”
“너는 저 사패련이 어찌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그거야 뭐⋯⋯.”
청명이 태연히 어깨를 으쓱했다.
“장일소 마음이겠죠.”
“그, 그렇긴 한데.”
정말 옳은데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말이다.
“그런데 사실 그건 별로 안 중요하죠.”
“그건 또 무슨 말이냐?”
청명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사실 사패련은 상수예요. 그 새끼들이 이제 어떻게 나올지는 너무 뻔하죠.”
“그런데?”
“변수는 오히려 저 새끼들이죠. 민머리랑 말코 새끼.”
“마, 말코⋯⋯.”
물론 민머리는 소림을 말하는 것이고, 말코는 무당을 말하는 것이다.
“일단 말코가 어떻게 나올지 봐야죠.”
청명이 낄낄댔다.
“아무리 봉문을 했더라도 귀를 다 막고 있는 건 아닐 텐데, 저 남궁세가가 사파를 때려잡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분명히 부글부글 할 거란 말이죠.”
“⋯⋯분명 그렇겠구나.”
지금 누구보다 명예 회복을 원하는 이들은 다름 아닌 무당이다. 아무리 남궁세가가 장강참변의 치욕에 몸을 떨어 왔다고 해도, 그 치욕과 분노가 무당에 비할 수 있겠는가?
“저 같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봉문을 풀고 장강으로 달려갔을 건데⋯⋯. 거긴 하필 장문인이 허도란 말이죠.”
청명이 뺨을 긁적였다.
허도진인의 생각은 너무 예상이 가다 보니 오히려 예상하기가 힘들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민머린데⋯⋯.”
“끄응.”
구석에 앉아 있던 혜연이 앓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청명은 그런 혜연의 반응을 깔끔하게 무시하고는 입을 열었다.
“그 양반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서 상황이 많이 달라지겠죠.”
“어떻게 나올 것 같으냐?”
“⋯⋯제 생각이요?”
“그래. 네 생각 말이다.”
“제 생각이라면⋯⋯.”
청명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알 것 같긴 한데.”
“그래.”
“가급적 안 그랬으면 좋겠네요. 사람이 최소한의 염치라는 게 있으면 안 그러겠죠. 그런데 염치가 없는 인간이니까 그럴 것 같거든요?”
“그, 그건 또 무슨 말이냐?”
“그게 참 설명하기가 힘든데, 그러니까 제 생각이 맞으면 아마 지금쯤⋯⋯.”
그때였다.
“장문인!”
벌컥!
운암이 급하게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얼굴이 살짝 질려 있었다.
“무슨 일이냐?”
뭔가 심상찮은 일이 터졌음을 직감한 현종이 물었다. 운암이 당혹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지금!”
“⋯⋯응?”
운암의 말이 채 흘러나오기도 전에 누군가가 먼저 입을 뗐다. 모두의 시선이 입을 연 이, 청명에게로 향했다.
“산문에.”
“⋯⋯.”
“소림의 방장께서 오셨습니다.”
“⋯⋯.”
“맞죠?”
운암은 귀신이라도 맞닥뜨린 것 같은 얼굴로 멍하니 그를 보다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어떻게 알았느냐? 내 보자마자 뛰어왔거늘.”
“허.”
청명이 피식 웃고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거, 진짜 염치 더럽게 없네. 차라리 빌어먹는 거지가 더 염치 있겠다. 썩을 대머리 새끼. 돈도 많은 중놈이 거지만도 못해.”
“⋯⋯.”
구석에 앉은 혜연의 머리가 매화처럼 빨갛게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