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Sword God-Rank Civil Servant RAW novel - Chapter (156)
검신급 공무원의 회귀-156화(148/346)
“에, 먼저 이번 사태에 대하여 저희 대헌협에선 깊은 유감을 표하고 있는 바이며…….”
대본은 특별하지 않았다.
천편일률적인 대본.
이번 사태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하고 있고 그동안 소속 헌터들의 고충에 대해 잘 몰랐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구시대의 잔재를 없애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연설을 잇던 장경환이 보좌관에게서 마정석을 건네받았다.
이번에 수호가 암흑협곡에서 확보해 온 1성급짜리 보스 몬스터의 마정석이었다.
“……말뿐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우선 협회장의 권한으로 이번 봉인 게이트 공략에서 획득된 1성급짜리 마정석을 안수호 사무관에게 지급하겠습니다. 안수호 사무관?”
장경환의 부름에 대기하고 있던 수호는 그가 건네는 마정석을 받았다.
찰칵! 찰칵! 찰칵!
그 과정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연신 터졌다.
마치 감사패를 주는 듯한 모양새.
우스웠다.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마치 상처럼 주다니.
하지만 내색 않고 마정석을 받은 뒤 뒤로 다시 물러났고 장경환의 연설은 계속됐다.
“이밖에도 부상으로 퇴직한 국가 헌터분들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이뤄 나갈 것이며…….”
장경환은 침착하게 대본을 읊었다.
모든 건 수호가 썼고 박규민을 통해 전달된 대본이었다.
대본을 쓰는 건 어렵지 않았다.
전생에 최종적으로 뜯어고쳐진 협회의 모습을 문서화시킨 게 대본의 전부였으니까.
이윽고 장경환의 연설이 끝나자 기자들이 손을 들어 질문하기 시작했다.
“케어는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 예정인가요?”
“이번에만 전리품을 돌려주는 척하는 거 아닙니까?”
“여태 국가 헌터들의 고충을 몰랐다는 게 말이 됩니까?”
쏟아지는 질문들이 꽤나 매섭다.
기자들은 무서울 게 없었다.
애초에 기자들은 용서하거나 대변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공격하는 것에 최적화된 사람들이었으니까.
장경환은 웬만큼 질문을 받더니 더는 못 견디겠는지 사회자에게 눈짓했고 신호를 받은 사회자가 급히 마이크를 잡았다.
“질문은 여기까지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끝으로 안수호 주무관의 말이 있겠습니다.”
불리할 땐 방패 뒤로 숨는 게 최고다.
장경환에게 그 방패는 수호였다.
드디어 자기 차례가 된 수호는 떠난 장경환을 대신해 마이크를 잡았다.
기자들의 셔터 소리가 아까보다 더 커졌다.
사실 이번 사건이 일어난 시발점이 바로 수호였으니까.
수호는 마이크를 잡기 전 기자들을 한번 쭉 둘러보더니 조진휘와 눈을 한번 맞춘 후 말을 이었다.
“우선 저희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셔서 대단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으며…….”
수호의 멘트 역시 천편일률적이었다.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몰랐다.
관심을 가져줘서 너무 고맙다.
덕분에 협회의 아쉬웠던 부분들이 고쳐질 것이라는 희망을 보게 되어 기쁘다.
이 모든 건 관심 가져주신 여러분들 덕분이다 등등.
마지막엔 협회장에게 받은 1성급 마정석을 들어올리며 기부 의사까지 밝혔다.
“오늘 받은 마정석은 공개입찰을 통해 정당하게 처분한 후 여전히 고통받고 계신 은퇴한 국가 헌터분들을 위해 쓰겠습니다.”
펑! 펑! 펑!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
화룡점정이었다.
본인이 피땀 흘려 벌어온 것일진대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부상 은퇴한 국가 헌터들을 위해 쓰겠다고 하는데 이것만큼 멋진 마무리가 또 있을까?
이윽고 수호 역시 질문을 받을 때가 되었다.
모든 기자들이 손을 들었다.
아까 전까진 질문 한번 하지 않았던 조진휘까지 말이다.
두 사람의 시선이 한번 더 허공에 얽힌다.
수호가 받기로 한 질문은 세 가지.
우선은 두 명의 이름 모를 기자들에게 질문권을 주었다.
“암흑협곡은 어떻게 공략하신 건가요?”
“일부러 검을 많이 가져가신 겁니까?”
쓸데없는 질문이었다.
그래서 더 좋았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질문권이 남았을 때 수호는 그제서야 조진휘를 지목했다.
마치 우연인 것처럼.
지목받은 조진휘 역시 그제서야 천천히 일어나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PBS의 조진휘 기자라고 합니다.”
평범한 자기소개.
그러나 여기 있는 사람들 중 그를 평범하게 여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번 특집기사의 주인이 그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일순 장내가 조용해졌다.
모두들 신경을 쏟는 것이다.
수호가 이번 사건의 장작이라면 그는 불쏘시개였으니까.
수호가 웃으며 말했다.
“예, 조진휘 기자님. 이번 특집기사 잘 봤습니다. 덕분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닙니다. 전 기자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럼 이제 질문드리겠습니다. 안수호 헌터님, 만약 이번 기자회견 이후에도 협회가 바뀌지 않는다면 그땐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조진휘의 물음.
그 물음에 모두들 마른침을 삼키고 수호를 응시했다.
천편일률적인 사과와 천편일률적인 감사.
긴급 기자회견이었지만 누가 공무원 아니랄까 봐 모든 것들이 천편일률적으로 진행되던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크게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남탓이 좀 섞여 있긴 하지만 어쨌든 대헌협 대표가 나와 사과했고 이번 일의 시발점인 수호가 감사함을 표했으며 현장에서 즉석으로 기부까지 한다고 했으니까.
게다가 조진휘의 특집기사 덕분에 사람들이 관심조차 안 갖던 은퇴 헌터들의 문제까지 해결의 조짐이 보였으니까.
그래서 불만을 가지지도 더 이상의 잡음을 만들지도 않았던 것이다.
이번 이슈는 이 정도만 되어도 그 수명을 다하고 소멸될 기미가 보였기에.
그래서 수호는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
자신의 입이 아닌 그 누구보다 ‘참기자’로 비춰질 조진휘를 통해서.
‘내가 먼저 목소리를 내기엔 아직 내가 가진 힘이 적으니까.’
수호는 전생에 많은 기자회견들을 해보았다.
수많은 기자회견을 하면서 느낀 바가 있다면 힘이 없을 때 뱉는 말들은 모두 다 객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준비되지 않은 객기는 모두 어떠한 형태로든지 독이 되어 자신의 발목을 잡는다는 것.
그렇다고 해서 납작 엎드리고만 있을 생각은 없었다.
납작 엎드리고만 있기엔 자신은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었으니까.
수호가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을 한번 쓱 둘러본 후 웃으며 말했다.
“일전에 어떤 인터뷰에서 제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제 꿈이 게이트의 박멸이라고. 그렇게 선택한 곳이 바로 대헌협입니다. 길드도 있을 테지만 제가 굳이 대헌협이라는 정부기관을 선택한 건 국민을 지키는 건 결국 정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말을 잇던 수호는 한 템포 쉰 후 한 번 더 주변을 둘러보고 아까보다 더 강렬해진 눈빛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전 앞으로도 세상 모든 게이트의 박멸을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혼자서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대헌협에 들어온 것이지만 결국엔 국민 여러분들의 도움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국민 여러분들께 함께 게이트에 들어가자고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저를 비롯한 다른 국가 헌터들이 국민 여러분을 지키고 수호하는 것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저희가 앞으로도 더 힘을 낼 수 있도록 항상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어쨌든 게이트와 맞설 수 있는 건 각성자들뿐이니까요. 그러니 앞으로도 저희가 오랫동안 싸워나갈 수 있도록 항상 저희 일에 관심을 주셨으면 합니다. 저흰 그것만으로도 큰 위로를 받으며 나라의 가장 위험하고 낮은 곳에서 묵묵히 싸워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수호는 단상 옆으로 나왔다.
그리고 정수리가 보이도록 고개를 숙였다.
찰칵! 찰칵! 찰칵!
터지는 플래시 세례.
대답은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은 다 했다.
이제 남은 건 무소의 뿔처럼 우직하게 약속을 이행하는 것뿐.
수호는 몇 초 더 고개 숙인 뒤 그제서야 허리를 폈다.
그때였다.
짝. 짝. 짝. 짝. 짝.
박수 소리.
회견장에서 박수라니?
사람들의 시선이 박수 소리를 쫓아 한데 엉킨다.
박수 소리의 주인은 조진휘였다.
박수는 수호가 시킨 것이 아니었다.
순전히 수호의 말을 듣고서 조진휘 혼자서 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다른 기자들 또한 함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놀라운 광경이었다.
기자회견장에서 그 누구보다 중립을 유지하고 날카로운 시선을 가져야 할 기자들이 박수라니?
이런 광경은 수호조차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민망함에 웃음이 조금 났다.
수호는 짧게 목례하며 조용히 회견장을 나섰다.
이후, 예정대로 기사들이 쏟아지고 여론 또한 뜨겁게 달궈지기 시작했다.
– 회견장에서 고개 숙인 검신, 앞으로도 더 많은 관심을 부탁……
– 검신 안수호! 전리품으로 받은 마정석을 은퇴 헌터들의 지원을 위해 기부하다!
– 사상 초유의 사태! 기자회견장에서 쏟아지는 박수갈채!
– 검신! 국민 여러분들에게 부탁드립니다!
자극적인 헤드라인.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어그로를 끌기 위한 썸네일이 아닌 기자들이 직접 보고 들은 날것 그 자체였다.
그렇기에 사람들의 반응 또한 매우 우호적이었다.
– 와, 미쳤다 ㅅㅂ……
– 거기서 기부를 갈겨버리네?
– 마지막 멘트 ㅈ된다……
– ㅋㅋㅋㅋ 이정도면 안수호 정치 생각 있는 거 아니냐? 어떻게 멘트가 하나같이 주옥같지?
– 진짜 피범벅이 된 와중에도 혼자서 봉인 게이트를 공략하고 온 안수호가 새삼스럽게 대단하게 느껴진다.
– 안신전은 늘 열려 있습니다, 여러분!
우호적인 댓글들.
하지만 그들 중에는 수호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제대로 파악한 사람들도 많았다.
– 혹시라도 반짝하고 끝나지 않게 계속 관심달라는 거네. 당연히 줘야지. 다른 업계도 아니고 헌터들 일인데.
└ ㅇㅈㅇㅈ 장작 계속 넣어줘야 이슈가 오래 가니까.
– ㅋㅋ 솔직히 이번에 협회장이 사과박긴 했지만 이것도 이전 세대 핑계 대면서 빠져나간거지 ㅋㅋㅋㅋ└ 검신이 기부 안 했으면 또 흐지부지했겠지.
└ 앞으로 협회 행보 주시한다.
└ 계속 지켜봐야겠음. 그리고 야랄날 때마다 개지랄해줘야 알아먹지.
└ 님 시간 많음?
└ 나 시간 빌게이츠임 ㄱㅊ
└ 난 시간 워렌버핏임
└ “어쩔 수 없군, 이번에만 임시 동맹이다.”
└ “그런 자잘한 건 나중에 얘기하고…… 온다!”
└ 니들 뭐함?
그리고 이외에도 큰 성과가 하나 있다면.
– PBS가 웬일이래? 맨날 연예부 기자처럼 유명 헌터들 가십거리만 쫓아다니더니ㅋㅋㅋ
– 근데 조진휘 기자 전부터 봤는데 전부 굵직한 거만 터뜨렸네.
– 이번에도 제대로 된 질문한 사람 조진휘 기자밖에 없던데?
– 간만에 기레기 말고 참기자님 한분 탄생한듯
– 조진휘 기자 블로그 찾았다.
그것은 바로 조진휘 기자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들이었다.
‘이번 일을 시작으로 이제 PBS 내에서 조진휘에 대한 입지는 감히 무너뜨릴 수 없을 만큼 단단해지겠지.’
내부 정치 싸움으로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던 전생과는 확연히 다른 결과였다.
수호가 태블릿을 덮으며 휴대폰을 들었다.
‘그럼 슬슬 두 번째 스텝을 진행시켜야겠군.’
수호가 전화를 건다.
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 아닌 김승환 검사였다.
검신급 공무원의 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