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10
◈ 10화
키아아앗!
[보스 몬스터 ‘악령 군주 본디시’가 포효합니다.]최하나의 몸이 순간적으로 움츠러들었다.
감히 항거할 수 없는 위암감!
D급의 보스 몬스터가 내지르는 포효는 듣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갈려 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고작 등급이 한 단계만 올랐을 뿐인데.
수준이 차원이 달랐다.
‘……도망가야 해.’
상황은 바뀌었다.
놈이 D급이 되었다면 계획도 바꿔야 마땅했다. 이젠 놈을 사냥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놈에게서 안전하게 도망치는 법을 고려해야 한다.
최하나는 뒤늦게 나타난 오대수와 정체 모를 사내를 재촉하며 말했다.
“갑시다. 지금이라면 이 던전을 빠져나갈 수 있을 거예요.”
“네? 보스 몬스터는요?”
“끝났어요. 이제 우리 손을 떠났다고요.”
본디시는 아직 진화한 모습에 적응하진 못한 상태였다. 그러므로 아직 정신을 차리기 전인 지금이라면 던전을 벗어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의문의 사내는 최하나의 말을 듣지도 않았다.
“뭐 하는 거예요? 정신 안 차려요? 아직도 당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 실감이 안 나는 겁니까?”
“네?”
“이젠 저놈을 죽이는 건 불가능하다고요. 어떻게든 도망쳐서 살아남는 것밖에 방법은 없어요.”
최하나가 더더욱 위기감을 느끼는 이유는 그녀에게 더는 화살이 날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를 비롯한 그룹원을 습격한 의문의 일당.
그들은 마치 할 일을 다했다는 듯 손을 털고 이곳을 진즉에 빠져나갔다는 걸 뜻했다.
아마 놈들이 있을 위치는 뻔하다.
던전의 입구.
‘도망치는 걸 방해하려 할 거야.’
D급의 던전을 공략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 아마 놈들의 목적이 그녀의 죽음이라면 애써서 죽이기보단 던전을 벗어나는 걸 막는 게 훨씬 쉬운 일일 터였다.
‘하지만 그 정도는 뚫을 수 있어.’
번 블러드로 체력이 다소 소모됐어도 아직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놈들이 수십 명이 몰려와도 D급 보스를 상대하는 것보다는 낫지.
그때 남자가 말했다.
“어차피 당신의 ‘번 블러드’로도 못 죽였을 거예요.”
“……네?”
“총을 쏘기 직전에 이미 놈은 악령 군주로 성장했었으니까요.”
그러더니 남자는 제멋대로 본디시를 향해 걸어갔다. 너무 당당한 태도에 벙 찐 얼굴을 하던 그녀가 다급하게 그의 옷깃을 붙잡았다.
“어디 가요? 미쳤어요?”
최하나는 남자의 옷차림을 주목했다.
쥐고 있는 무기는 튜토리얼에서 지급하는 ‘투박한 장검’에, 대단할 것도 없는 일상복이었다.
기껏해야 초보자 복장인 것이다.
해서 최하나는 그를 막고자 했다.
제아무리 멋모르고 그녀의 공격을 방해했다지만 이대로 사지(死地)로 들어가는 걸 방치하고 싶진 않았다.
하나 돌아본 남자의 얼굴엔 의문이 가득했다.
왜, 말리냐는 표정.
그는 혼자 납득하더니 말했다.
“확실히 이 무기로는 조금 시간이 걸리겠네요. 오대수 형사님? 혹시 그 무기 빌릴 수 있을까요?”
“……무기요?”
“네. 곱게 쓰고 돌려 드릴게요.”
거의 강탈하듯 오대수의 푸른 창을 쥔 남자는 다시 본디시를 향해 몸을 돌렸다.
“잠깐만…… 지금 뭐 하는?”
최하나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돌연 남자의 손에서 푸른 물결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경악스러운 장면이었다.
최하나는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이를 바라봤다.
푸른 물결이 어느덧 푸른 창을 휘감고 있었다. 그건 저 아이템의 본명을 떠오르게 했다.
‘파도잡이의 창.’
레벨 80제 아이템.
본래 마력으로 파도를 일으켜 무기의 공격력을 더하는 ‘마창’이었다.
해서 사용자의 수준이 무기에 적합하지 못하면 본연의 힘은 끌어내지 못하도록 봉인된 물건이었다.
최하나의 애총인 ‘마탄의 리볼버’가 본래 성능의 10분의 1도 발휘하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그러니까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저 남자의 레벨이 80을 넘지 못한다면 불가능한 일.’
새삼스럽게 남자의 모습이 다시 보였다. 그녀의 추측이 정확하다면 저 남자는 그녀보다 레벨이 더 높은 플레이어라는 것이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들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이 남자는 ‘번 블러드’ 상태인 최하나를 무리 없이 전장에서 끄집어냈다. 신체 강화로 온몸이 무기나 다름없던 그녀를 말이다.
그게 가당키나 할까.
확실해진다.
‘고렙 플레이어…….’
그때 남자가 뒤를 돌아봤다.
“슬슬 사냥을 시작해 볼까요?”
그 모습이 왠지 낯익었다.
***
강서준은 눈을 가늘게 떴다.
D급의 보스 몬스터 「악령 군주 본디시」는 확실히 이전보다 훨씬 위협적인 느낌이었다.
하지만 질 것 같진 않았다.
애초에 그는 혼자도 아니었으니까.
“이걸 마시고 체력부터 회복해요.”
강서준은 인벤토리에서 HP포션을 꺼내어 최하나에게 던져 줬다. 그녀는 날아온 포션을 낚아채더니, 약간 미심쩍은 눈으로 물었다.
“정말 잡을 수 있는 거예요?”
“네.”
망설임 없는 대답.
강서준의 시선을 마주한 최하나는 더는 질문하지 않았다. 그저 포션의 마개를 열고 쭉 들이마셨다.
강서준도 더는 그쪽에 시선을 주지 않았다.
이제 신경 쓸 놈은 한 놈이었다.
‘악령 군주 본디시!’
그는 지체하지 않았다.
시간은 금이요, 기회는 놓치면 똥이다.
최하나의 회복을 기다리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본디시의 체력을 깎아 두는 게 유리했다.
키아아앗!
본디시의 사각으로 접근하자 놈이 반응했다. 대검이 빠르게 휘둘러져왔지만 최소한의 간격으로 피할 수 있었다.
“흐읍!”
그의 눈은 금빛으로 물들었다.
‘약점은 똑같아.’
하지만 놈도 이를 알고 있는지 쉽게 공간을 내어주질 않았다.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위태로운 공방이 순식간에 휘몰아쳤다.
강서준은 푸른 창을 꽉 쥐었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파도가 본디시의 시야를 흔들었다. 쉴 새 없는 공방은 이어졌고 본디시는 부표처럼 떠밀려 가며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강서준은 확신했다.
‘역시 아직 완전한 성장은 아니야.’
드림 사이드는 기본적으로 뭔가 크게 변화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숨 고르기’ 시간이 적용된다.
던전화를 감행하던 몰리가 초짜 플레이어였던 강서준의 검에 싸늘한 주검이 되어야 했듯.
본디시도 똑같았다.
놈은 D급의 보스 몬스터가 됐지만, 아직 그에 걸맞은 수준으로 강해진 건 아니었다.
말하자면 D급의 최약체.
‘지금이라면 놈을 처치할 수 있어.’
강서준은 틈을 주지 않았다.
파도는 점차 폭풍처럼 움직였고, 더욱 크기를 키워 나갔다. 손발이 어지러웠지만 가까스로 컨트롤할 수 있었다.
하나 시간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머지않아 본디시는 레벨 90, 100, 120에 버금가는 개체로 점차 성장할 것이다.
숨 고르기가 끝나는 순간, 모든 상황은 뒤집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끝내야 한다.
다행히 기다리던 순간이 다가왔다.
“비켜요!!”
공간을 가르고 날아온 총알이 본디시의 어깨를 적중시켰다. 연달아 발사된 총알이 본디시의 머리, 다리, 어깨를 명중시켰다.
본디시가 당황하며 뒤로 물러났다.
강서준의 옆에 선 최하나가 물었다.
“도대체 당신 누구예요? 어떻게 상급 포션을 갖고 있는 거죠?”
최하나는 술에 취한 것처럼 붉은 얼굴이었다. HP포션이 그녀의 몸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 정도면 마음껏 날뛸 수 있겠죠?”
“물론이죠!”
최하나는 질풍처럼 뛰어나가, 본디시를 향해 무자비한 총알을 난사했다. 번 블러드로 강화된 그녀의 움직임은 이미 본디시가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진 상태였다.
타앙! 타앙! 타아앙!
강서준이 말했다.
“출력을 더 높여요. 안 그러면 HP포션에 당신이 잡아먹힙니다.”
“안 그래도…….”
타아아앙!
“그럴 생각이었어요!”
최하나는 말 그대로 무시무시한 기세로 총알을 쏟아부었다.
체력을 매개로 하는 기술인 ‘번 블러드’.
그리고 상급포션에서 끝없이 차오르는 에너지가 그녀의 강력한 총알이 되어 주고 있었다.
반면 본디시의 에너지는 청산가리라도 한 움큼 삼킨 것처럼 듬성듬성 떨어지고 있었다.
“좋아. 이 정도면…….”
강서준의 오른팔이 실핏줄로 도드라졌다. 그리고 투창 자세를 취하며 총알 세례에 정신을 못 차리는 본디시를 조준했다.
‘맹렬한 파도.’
파도잡이의 창에 각인된 무기 전용 스킬.
강서준이 쏘아 낸 창이 노도와 같은 기세로 본디시의 목을 향해 날아갔다.
키이잇!!
본디시가 당황하며 검을 이리저리 휘둘렀지만 한순간에 파고든 창을 피하는 건 무리였다.
콰지직!
무수한 총성 사이를 가로지른 단 하나의 창이 본디시의 목을 꿰뚫었다. 이내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해골들이 힘없이 비산했다.
[보스 몬스터 ‘악령 군주 본디시’를 처치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던전 ‘무너진 학교(D)’를 성공적으로 공략했습니다.]전장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
던전의 입구.
무너진 학교의 정문을 통해서 내부의 스켈레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키앗! 키아앗!
덜그럭대며 움직이는 언데드들은 목적 없이 서울의 시가지 너머로 흩어졌다.
아마 저들은 앞으로 무수한 생명을 해치겠지. 던전 브레이크로 인해 빠져나온 몬스터는 아무런 제약도 없이 어디든 갈 것이다.
“전원 전투 준비.”
그리고 스켈레톤이 관심조차 주지 않는 곳이 있었다. 가면을 쓴 사람들이 저마다의 무기를 쥐고 점차 빠져나오는 스켈레톤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슬슬 클라크가 나올 것이다. 그녀는 이번 계획의 핵심…… 절대 살아서 나가게 둬선 안 된다.”
가면인들은 긴장했다.
그건 당연했다.
E급의 보스 몬스터 ‘본디시’를 혼자서 상대하는 막강한 전투력, 심지어 그 와중에 그들의 동료를 넷이나 데려갔다.
그게 어찌 레벨이 80을 넘기지 못한 플레이어의 피지컬이란 말인가.
괜히 천외천이라 불리는 게 아니었다.
검은색 가면을 쓴 남자가 말했다.
“걱정 마라. 그녀는 많이 지쳤어. 어쩌면 본디시에게 사냥 당했을 수도 있겠지.”
슬슬 확신이 든다.
던전 브레이크가 진행된 지 꽤 된 시점, 그녀가 도망쳤으면 진즉에 던전을 빠져나왔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여태까지 나오지 않았다는 걸 무얼 말하겠는가.
본디시에게 죽은 것이다.
제아무리 그녀라고 해도 D급 보스를 이긴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던전 ‘무너진 학교(D)’가 공략되었습니다.] [던전 ‘무너진 학교(D)’의 던전 브레이크가 강제로 종료됩니다. 해당 던전엔 몬스터 리젠 제한이 생겨나며, 향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던전 브레이크’는 종식됩니다.]정문으로 생성된 시스템 메시지.
가면인들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때 선두에 선 남자의 핸드폰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문자였다.
[‘블랙리스트 0’이 ‘선택의 미로’에서 실종되었다는 정보입니다.]블랙리스트 0.
가면인은 나지막이 침을 삼켰다.
절대 가능할 리 없다고 여겼던 D급 던전의 공략 성공.
동시에 전해진 블랙리스트 0의 실종 소식.
“……공교롭군.”
블랙리스트 0─ 랭킹 1위 ‘케이’가 선택의 미로에서 행적을 감췄다는 소식은 가면인의 고민을 짧게 끊어 줬다.
그는 미련 없이 말했다.
“전원 퇴각한다.”
이번 임무는 실패였다.
***
그 시각.
강서준은 허물어진 본디시의 사체에서 푸른 창을 뽑아 오대수에게 건네고 있었다.
“잘 썼습니다.”
“아, 네…….”
오대수는 얼떨떨한 얼굴로 무기를 받아 들었다.
한편 HP포션과 그 힘을 다해서 붉게 물들었던 얼굴이 다시 하얗게 돌아온 최하나가 다가왔다.
한층 안정된 얼굴색이었지만 어째 그녀로부터 전해지는 흥분이 뜨겁게 느껴질 즈음이었다.
그녀가 물었다.
“혹시 케이 님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