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101
◈ 101화
약 123층에 다다르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 로테타워의 정상에 선 강서준은 확 트인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어때요? 기억이 좀 나요?”
원래 일정대로라면 바로 아크로 향해야 했지만 조금 돌아가더라도 로테월드 쪽부터 향한 그들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잊혀질 양이 많아지는 꿈의 특성 때문이었다.
그나마 기억이 날 때 와야 한다.
“네. 이런 곳이었어요. 전 여기서 분명히…….”
처음엔 신기해하기도 하며 무서워도 했던 카린은 금세 서울에 적응했다. 그녀는 로테타워의 전경을 둘러보더니 말했다.
“꿈속에서도 이렇게 높은 곳에 있었어요. 모든 것들이 불타오르고 있었죠.”
아무래도 그녀가 봤던 장소가 여기가 맞은 모양이다.
깎아지를 듯이 높은 탑.
하나의 단서는 해석했다.
문제는 다른 정보들이 너무 막연하단 건데.
‘불타오르는 하늘, 눈이 멀어 버릴 것만 같은 빛. 대체 뭘 본 거지? 어디 폭발이라도 일어났나?’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였다.
“잠깐만요. 꿈에서도 이렇게 높은 위치였다고요?”
“……네. 아마 확실할 거예요.”
그 말에 강서준은 로테타워에서 멀리 뻗어 나간 서울의 풍경을 내려다봤다.
우후죽순 솟아났던 건물들이 반쯤은 무너진 풍경이었지만, 이곳 로테타워보다 높은 건물은 없었다.
당연했다.
여긴 서울에서 가장 높은 곳이니까.
‘근데 하늘이 불타올랐다고?’
보통 이렇게 높은 위치에서 무언가가 불타올랐다면 하늘이 불탔다고 표현하진 않는다. 불바다 혹은 불타는 땅 같은 단어가 더 어울릴 테니까.
‘하늘이 불탔다. 잠깐…….’
강서준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 몇 점이 떠 있는 푸른 하늘.
강서준은 불타는 하늘을 떠올려 봤다.
‘만약 여기보다 더 높은 곳에서부터 시작된 불꽃이라면?’
멀리 하늘을 올려다보던 강서준은 그제서야 깨닫고야 만다. 어째서 이걸 이제야 알아봤을까.
강서준은 최하나에게 물었다.
“혹시 달의 표면까지 볼 수 있어요?”
고개를 끄덕인 최하나는 달을 올려다봤다. 그녀의 스킬 ‘매의 눈’은 이번에 전직하면서 S급이 되었으니, 달을 볼 수 있는지도 모른다.
잠시 집중하던 최하나가 말했다.
“……네, 보여요.”
그리고 그녀도 강서준의 추측을 알아차린 듯했다. 아무렴 강서준보다 더 많은 걸 방금 봤을 거다.
최하나가 말했다.
“설마…… 예지몽이 말하는 게?”
낮달.
서울이 게임이 되기도 전에도 종종 낮달은 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가 올려다본 낮달은 그 의미가 남다를 것이다.
왜냐면.
“아무래도 달이 던전이 된 것 같아요.”
달은 추락하고 있었으니까.
***
이후로, 아크에 돌아온 강서준은 링링을 만나 바로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새로 얻은 정보의 사안이 시급한 것도 물론, C급 던전의 공략 소식과 여러모로 전할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금방 사람들은 모여들었다.
“아아, 자리에 앉아 주세요.”
박명석은 능숙하게 마이크를 쥐더니 말을 이었다. 시끌벅적하던 플레이어들이 대번에 입을 다물었다.
“오늘은 케이 님이 제안한 긴급회의입니다. 다들 아시죠? 이번에 C급 던전을 훌륭하게 공략하시고 금의환향하신 진짜 케이 님이십니다.”
박명석은 몇몇의 사람들을 노골적으로 노려보며 입을 놀렸다. 특히 하르트를 강하게 지지하던 플레이어들이 그 대상이었다.
박명석은 씨익 웃었다.
“다들 뭐 하십니까?”
“……?”
“박수라도 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르트 팀원이었던 고렙 플레이어들은 마지못해 손뼉을 마주쳤다. 몇몇은 얼굴도 제대로 들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럴 만도 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은 없겠지.
‘하르트는 인간조차 아니었으니까.’
결국 이들은 몬스터에게 놀아난 건 물론, 컴퍼니의 하수인을 믿고 따르며 충성을 맹세했다.
트롤 짓도 이런 트롤 짓은 없지.
게다가 C급 던전이 공략되는 내내 그들은 감옥에 갇혀 잠만 잤다고 들었다.
얼굴을 제대로 들고 다니기조차 어려울 것이다.
“다들 C급 던전 공략 수고하셨습니다! 축하합니다!”
반면 강서준의 팀은 역전의 용사가 되어 있었다.
C급 던전을 공략하는 데에 중차대한 역할을 수행한 것부터 퀘스트를 독식하면서 엄청난 성장을 했다.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그들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이 유난히 빛났다.
“케이! 케이! 케이!”
“와아아아아!”
금세 회의실은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입으로 휘휘 소리를 내면서 점차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츠츠츳.
링링이 앞으로 나서며 화려한 마법을 발동시켰다. 순식간에 눈을 휘어잡은 마법은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됐고. 회의해야 돼. 입 다물어.”
괜히 무안을 준 링링에게 하르트 팀원들이 은근슬쩍 고마운 시선을 보냈다.
순수하게 기뻐할 수만은 없었던 그들에겐 상당히 고역인 시간. 끊어 준 것만으로도 고마웠던 것이다.
‘잘들 노네…….’
여태 링링과 박명석이 어떻게 이 오합지졸을 이끌고 왔는지 그 면모가 보이는 장면이었다.
한쪽은 몰아세우고, 다른 한쪽은 부둥켜안고. 서로 역할을 돌아가면서 수행해 왔겠지.
어차피 하나로 뭉치기 힘든 사람들이라면 처음부터 나눠 놓고 적당히 조절하는 게 편하니까.
링링은 좌중을 돌아보며 말했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어. 어느 쪽부터?”
하지만 대답을 원해서 물은 건 아닌 듯했다. 링링은 바로 좋은 소식부터 입에 담았다.
“리자드맨의 우물이 공략돼서, 그곳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됐어. 식량난은 끝이야.”
사람들은 환호성을 내지르고 싶은 기분을 삼켰다. 그간 골치를 썩였던 C급 던전 공략부터 식량난까지 해결됐으니 속이 시원해야 마땅하겠지만, 당장 그러긴 어려웠다.
“이제 나쁜 소식이야.”
링링은 가볍게 좌중을 향해 핵폭탄을 던졌다.
“달이 떨어지는 것 같아.”
“……네?”
너무 훅 들어온 말이었다. 사람들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얼굴로 링링을 바라봤다.
“그게 무슨 소리죠?”
“말 그대로야. 달이 낙하하는 중이라고.”
링링은 스마트폰을 조작해서 달이 떨어지는 근거를 스크린에 띄웠다. 최근 아크를 비롯하여 서울 곳곳에서 벌어지는 기현상들이었다.
전조 증상들.
재난 영화의 도입부에서 볼 법한 것들이 현시점 서울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어쩌면 링링은 카린의 예지몽이 아니더라도 이 일을 알고 있던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세세한 정보들이었다.
“……진짜입니까?”
“이렇게 증거가 널렸는데 자꾸 부정하는 게 병신이지.”
게임이 된 세상에 불가능을 논하는 건 우스운 일이었다. 느닷없이 달이 떨어져도 하등 이상하지 않은 세계였다.
“충분히 가능해. 일명 달 던전이 B급을 앞두고 있다면 말이야.”
종전까지 환호성을 내질렀던 것이 무색하게 사람들 사이로 무거운 적막만이 감돌았다.
하르트 팀, 강서준 팀…….
그런 구분도 이젠 없었다. 다들 벙 찐 얼굴로 스크린만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만큼 현실성이 없는 얘기였다.
달이 떨어진다니.
강서준도 믿기 싫었다.
하지만 링링은 다른 사람들의 태도가 어떠하든 신경조차 쓰질 않았다.
“다들 알다시피 B급 던전부터는 외부 환경조차 몬스터에 맞게 바뀌어. 훗날 B급 개체들이 밖에 나오기 편하도록 침식이 이뤄지는 거지.”
그래서 C급 던전이 B급이 되면, 던전 외부에 재난이 일어나기 쉬웠다.
만약 리자드왕이 던전의 주인이 되었다면, 광화문 일대는 늪지대로 돌변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떤 몬스터인지는 몰라도, 이번엔 운석이 충돌해야만 그 환경이 조성된다는 거겠지.’
얼추 관련 몬스터에 대한 정보는 머릿속에 있었지만, 속단하진 않았다.
여긴 드림 사이드 2니까.
누군가가 손을 들어 물었다.
“얼마나 남은 겁니까?”
“예상으로는 앞으로 한 달.”
“……고작 한 달.”
링링은 단호하게 말했다.
“한 달 안에 저 던전을 공략하질 못하면 우린 유례없는 운석을 맞이하게 될 거야.”
그것이 카린이 본 예지몽의 진실이었다.
***
이후로도, 많은 논의를 거쳤다.
“우선 달을 공략하려면 달에 올라가야 해요. 이건 어떡하죠?”
“……나사(NASA)로 가 볼까요.”
“그전에 그곳은 멀쩡하대요?”
달을 공략하는 건 둘째로 치더라도 그곳까지 올라갈 우주선을 구하는 것부터 문제였다.
어디서 구해야 할까.
의외로 그건 박명석이 해결했다.
“우주선…… 들어 본 적 있어요.”
“네?”
“멀쩡한지는 모르겠지만, 기밀로 가려진 한 무인도에서 남몰래 우주선을 제작 중인 걸로 알고 있어요.”
국회의원인 그는 기밀 정보에 능했고, 현재는 국정원까지 관리하고 있는 입장이라 알게 된 정보라고 한다.
확인해 볼 가치는 있었다.
“그쪽은 박명석 당신이 맡아. 플레이어는 알아서 뽑아 가고.”
“서준 씨는…….”
“걘 안 돼.”
“알고 있습니다. 그냥 해 본 말이죠.”
박명석은 결국 이동이 빠른 멤버들 위주로 뽑았다. 그중 최하나가 선택되는 건 꽤 당연했다.
그녀는 소리 없는 암살자. 전직까지 마쳐 아주 유능한 전투원이었다.
만약의 사태도 대비할 수도 있었다.
“그럼 거긴 그렇게 마무리하고.”
당장 달 하나에 집중하기도 모자란 형편이었지만, 공교롭게도 아크엔 당장 발에 치이는 문제가 많았다.
전부 가만히 놔둘 수 없는 것들.
그중 가장 골칫거리는 아무래도 서울 전역에 기승을 부리는 ‘죽음의 화원’이었다.
“케이가 가져온 정보로는 이 근처에만 일곱 개나 있어. 그쪽 공략 안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그리드를 누가 모를까.
전염병을 막기 위해서는 아크에서도 특별한 공략 팀을 구성해야 했다.
마법사 위주로 나서는 게 좋았다.
식물들은 불 질러 버리는 게 최선이니까.
“거긴 나랑 근육 바보가 맡을게.”
나도석이 잠깐 발끈했지만 신경조차 쓸 링링이 아니었다.
한편 링링이 선뜻 죽음의 화원 공략에 나서기로 한 건 의외였다. 일곱 개나 되는 던전을 돌아야 하는 강행군이었다.
그 시간 동안 아크엔 링링과 박명석 둘 다 없게 되는 꼴인데.
“당분간 봉쇄령을 유지할 거야.”
강서준이 C급 던전을 공략하는 동안 링링은 놀고만 있지 않았다는 듯, 봉쇄령의 마법진을 3구역까지 넓혀 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다들 그런 눈치였기에 링링은 바로 답해 줬다.
“걱정 마. 여긴 얘가 지킬 테니까.”
링링의 말에 회의실로 들어온 건 의외로 지상수였다.
“잭이랑 오대수 씨가 아크를 맡는다. 이견 있어?”
없었다.
지상수는 고등학생에 불과했지만, 천외천이었다. 그것도 던전 상인 ‘잭’은 현재의 아크에도 꽤 유명했다.
사실상 아크의 재정 상태나 식량 사정이 나아지기 시작한 건, 잭의 전철이 아크를 오간 이후부터니까.
최근엔 진짜 전철처럼 플레이어들을 던전으로 이송시켜 주고 돈을 받아먹고 있다던데.
아, 은행도 한댔지.
‘설마 저런 놈에게 돈을 빌리는 멍청이들이 있진 않겠지.’
지상수의 등장과 함께 몇몇 안색이 검게 죽어 버린 사람들이 있었지만 신경 쓰진 않기로 했다.
어쨌든 지상수와 오대수 조합이라면 아크도 문제없었다. 경찰인 오대수는 리더십이 있으며 현명한 사람이니까.
링링은 차분하게 말했다.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 당장 세력 다툼 따위를 할 만큼 한가하지 않으니까. 어찌 보면 리자드맨 따위보다 훨씬 위험하다고.”
달이 추락한다는 건 ‘종말’을 논해도 할 말이 없다. 레벨이 높은 플레이어들이야 살아남겠지만 그들의 터전은 초토화되고 말 테니까.
아크의 주민들? 생존은 결코 장담할 수 없다.
‘유사시엔 리자드맨의 우물이 도피처가 되어 주겠지만…….’
그건 최후의 일이다.
아무도 서울이 폐허가 되길 원치 않았고.
할 수만 있다면 막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였다.
문득 회의에 집중하던 김강렬이 손을 들어 물었다.
“저…… 그럼 강서준 님은요?”
“응?”
“강서준 님은 어느 쪽으로 향하죠?”
링링이 말했다.
“얜 따로 할 일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