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105
◈ 105화
새벽이었다.
간간히 잠 못 든 이름 모를 몬스터의 울음이 아스라이 들릴 무렵.
강서준은 여의도 선착장을 바라보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
“작전 개시합니다.”
앞선 플레이어들이 어둠을 틈타 선착장으로 진입했다. 소리 한 점 일으키지 않은 귀신같은 움직임.
암살 특화 플레이어들이었다.
무전은 금방 돌아왔다.
-선착장 클리어. 바로 타깃으로 접근합니다.
뒤따라 강서준도 선착장에 진입하며 주변을 살펴봤다. 이상할 정도로 고요한 분위기에 더욱 긴장감이 샘솟았다.
-활성화된 던전 확인했습니다. D급입니다. 던전 브레이크 컬러는 오렌지. 다시 반복합니다. 던전 브레이크 컬러는 오렌지입니다.
주황빛의 문 색깔은 던전 브레이크의 임박을 알려 주는 ‘레드’의 바로 전 단계.
그나마 다행이었다.
강서준은 미간을 좁히며 던전의 입구에도 다다랐다.
앞서 도착한 플레이어들은 섣불리 진입하질 않고 조용히 본대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링링이 말했다.
“역시 수상해.”
그녀의 손끝엔 마력이 실처럼 흘러나와 인근을 이리저리 휩쓸고 다녔다. 일종의 탐지 마법.
“너무 조용해. 반발이 거셀 것 같아서 일개 대대는 끌고 왔건만.”
그녀의 말마따나 도합 100에 다다르는 아크의 플레이어들이 김빠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맞아. 너무 조용해.’
이곳은 컴퍼니의 거점으로 추정되는 장소였다. 모르긴 몰라도, 놈들과의 전면전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곳.
한데 여태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
강서준이 말했다.
“함정이겠지?”
놈들이 아크의 습격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그런 행복회로를 돌릴 수는 없는 것이다.
‘최근에 죽음의 화원만 다섯 개를 불태웠어. 놈들이 바보가 아니고서야 경계 태세를 올리지 않을 이유가 없지.’
하물며 상대는 크록이다.
다른 사람의 눈 속에 기생하여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귀찮은 스킬을 가진 NPC.
그놈이라면 눈치챘을 것이다.
또한 예상했겠지.
“……최대한 조심하고. 1조부터 천천히 진입해.”
“알겠습니다.”
함정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들은 나아가야만 했다.
쏟아질 듯 등 뒤를 비치는 달빛. 그 소름 끼치는 빛자락이 눈앞이 절벽이더라도 자꾸 떠밀고 있었으니까.
[D급 던전, ‘환상의 여객선’에 입장하였습니다.]***
“조용하군…….”
D급 던전 ‘환상의 여객선’은 그 이름이 무색하게 그저 으스스한 유령선 같았다.
전등이 모두 깨진 선내, 곳곳에 인테리어처럼 장식된 거미줄과 이끼.
축축한 공기 속에서 쇠 냄새가 지독하게 풍겼다.
당장 보이는 것만 봐도 금방이라도 언데드형 몬스터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군.”
미간을 좁히며 주변을 둘러봤다.
던전 진입 이래로 꽤 긴 복도를 걸어서 선내를 누볐음에도 아직 그들은 무엇도 만나지 못한 것이다.
그게 가당키나 할까?
여긴 오렌지 컬러의 던전인데.
“…….”
그저 어둠이 소리를 잡아먹은 것처럼 고요한 적막만이 주변을 감쌌다.
서늘한 분위기에 잠시 몸을 떤 김훈은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어둠을 응시하면서 말했다.
“앞에 큰 홀이 있어요.”
이래서 공간지각 능력을 가진 플레이어는 던전에서 유용하다. 안 보여도 길을 찾아낼 수 있으니까.
일행은 김훈의 안내에 따라 선내의 메인 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스마트폰 플래시에 깨진 샹들리에가 번쩍이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긴 했군.”
링링의 말에 강서준도 고개를 끄덕였다. 가까이 갈수록 지독하게 피 냄새가 진동을 해 댄 것이다.
실제로 메인 홀엔 시체가 있었다.
“이놈들. 뒤통수를 맞은 거야.”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들의 공통점은 전부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는 점.
그렇다면 무엇으로부터 도망친 걸까.
아직 알 수 없었다.
그저 곳곳이 부서진 흔적만 남아 있었다. 벽이고, 바닥이고, 무대고…… 메인 홀의 선명하고 새빨간 핏자국이 무슨 사건이 벌어졌다는 것만을 증명하고 있었다.
“반란이라도 일어났나.”
모를 일이었다.
뭘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이곳 어디에도 영혼은 단 1g도 남아 있질 않았으니까.
“여기서부터는 갈라져야겠어. 케이, 넌 아래쪽을 맡아.”
“그래.”
슬슬 팀을 나눠서 움직이기로 했다. 던전의 크기가 D급답게 컸으니, 이대로 한 팀으로 움직여선 주구장창 시간만 낭비할 것 같으니까.
“수상한 점이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10분에 한 번씩 보고하는 거 잊지 마.”
그렇게 링링을 일별한 강서준은 핏자국이 흥건한 메인 홀을 지나, 더욱 아래로 내려갔다.
하지만 그 아래에도 여전히 거칠게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흔적만 역력했다. 특별히 그들을 위협했을 무언가를 특정할 수 없었다.
“……쉐도우일까요?”
최하나가 어둠속을 둘러보며 나지막이 의문을 던졌다. 일리 있는 질문이었다.
이 던전에서 가장 적합한 형태의 몬스터는 ‘그림자 속을 기생하는 쉐도우’가 제일 어울리니까.
하지만 정답은 아니다.
“쉐도우는 빛을 싫어해요. 진즉에 우릴 공격했을 겁니다.”
애초에 놈들이 그림자 속을 기생하고 있었다면, 강서준의 류안을 피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무려 S급 스킬인데.
‘그나저나 영혼은 다 어딜 간 거지?’
한껏 수상함으로 치장한 이곳에서 그 수상함의 정점을 찍은 건, 여객선의 아래 화물칸에 도달한 이후였다.
강서준을 따라 아래로 내려왔던 김훈이 선뜻 멈춰 섰다.
“여기 방에 뭔가가 있어요.”
화물칸 곳곳에 있는 녹슨 철문. 왠지 모르지만 음습한 기분이 들어서 오한이 들었다.
“……다들 긴장해요.”
각자 무기를 쥐고 심호흡을 했다. 도통 알 수 없는 흔적만이 가득했던 던전에서의 첫 유의미한 흔적.
이 안에 보스방이 있든, 함정이 있든, 열어 봐야 한다는 데에서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엽니다.”
차가운 철문이 듣기 싫은 소리를 내면서 끼기긱, 열렸다. 동시에 안쪽에서부터 확 밀려온 건 ‘썩은 내’였다.
강서준은 미간을 구기며 안을 들여다봤다.
“대체 이게 무슨……?”
마치 테트리스라도 한 것처럼 억지로 구겨져 있는 게 있었다.
다름 아닌 시체들.
죽은 지 얼마나 됐을까.
이름 모를 사람들이 억울한 듯 눈을 뜬 채 죽어 있었다. 벌어진 입에서 구더기가 기어 나왔다.
“……우욱!”
누군가가 헛구역질을 했다.
정말이지 꿈에 다시 나올까 두려운 장면. 강서준도 순간적으로 밀려나오는 역한 걸 겨우 참아 냈다.
최하나가 참담한 얼굴로 말했다.
“정말…… 지독해요.”
그래도 시체들의 면면을 확인해 봤다.
아무래도 던전화 당시에 이 던전에 고립된 사람들일까? 플레이어가 아닌 일반 시민들의 모습들이 역력했다.
옆에서 김훈이 질린 얼굴로 말했다.
“설마…… 여기에 있는 방 전부?”
강서준은 다른 방의 문도 열어 봤다. 빌어먹을, 예상했던 대로 종전과 비슷한 풍경만을 볼 수 있었다.
몇몇 개는 아직 피가 굳지도 않은 채로 구겨져 있었다. 하얀 가면을 쓴 걸로 보아 ‘컴퍼니원’들의 시체였다.
도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문득 최하나가 문패를 확인했다.
“……메모리?”
강서준은 한 층을 가득 메운 방들을 둘러보며 침음을 삼켰다.
메모리(Memory)란 이름의 시체방.
불현듯 깨닫는다.
“전리품이구나.”
그때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알아보는구나?』
강서준은 빠르게 재앙의 유성검을 손에 쥐었다. 아쉽게도 류안을 발동해도 목소리의 주인을 찾을 수 없었다.
마력이 사방에서 요동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누군지는 알 수 있었다.
『여태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군. 나도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했거든.』
“……너는.”
『케이. 오랜만이다.』
칼로 쇠를 긁는 듯한 소름 끼치는 목소리였다. 그래, 이런 짓을 저지를 법한 괴상한 취미는 그놈뿐이다.
“크록.”
놈은 농장이란 이름으로 서울 곳곳에 ‘죽음의 화원’을 가꾸던 자.
그리고 사람의 욕망을 꽃피워 괴물을 양산해 댄 놈이다.
『그래서 소감은?』
“뭐?”
『내 추억을 엿본 소감은 어땠냐고 물었다.』
열린 문틈으로 누군가의 손과 발이 삐져나와 있었다. 이젠 썩어 버려서 표정조차 알아볼 수 없는 사람들.
“널 죽여야만 한다는 확신이 들더군.”
『만족했다니 다행이네.』
놈이 웃어 대자 마치 거친 파도라도 만난 것처럼 배가 크게 흔들렸다. 실제로 어디선가 물소리가 크게 울렸다.
착각이 아니었다.
쿠오오오.
『그럼 여기까지 와 줬으니 선물을 줘야겠지?』
사양하고 싶은데.
거부권은 없는 모양이었다. 강서준은 복도 끝에서 밀려오는 검은색 물결을 확인했다.
“……강서준 님!”
다급히 플레이어들이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검은 물은 뒤편에서도 흘러들어왔다.
또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위층으로 올라가던 계단 자체가 사라지고 없었다.
안색이 새하얗게 질린 김훈이 외쳤다.
“완전히 막혔습니다!”
공간지각 스킬로도 이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길을 찾지 못한 것이다.
무엇인진 몰라도 검은 물은 금세 복도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플레이어들의 턱 끝까지 물이 차올랐다.
“어떡하죠?”
천장을 뚫기 위해 최하나가 마탄을 발사해 봤지만, 소용은 없었다. 천장은 시스템의 보호라도 받는 듯 멀쩡했다.
그리고 이젠 숨 쉴 공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플레이어들은 결국 패닉에 빠지고 있었다.
강서준이 차분하게 말했다.
“일단 진정해요. 이건 진짜가 아니니까.”
“네?”
“천천히 모든 걸 받아들여요. 그러면 될 겁니다.”
“네? 그게 무슨……!”
검은 물결은 천장까지 모두 채우고 말았다. 다들 검은 물에 수장되어 괴로워했다. 몇몇은 참질 못하고 꺽꺽대며 질식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속에서 강서준은 눈을 부릅떴다.
밀려오는 검은 물결이 그의 목구멍을 통과했고, 코를 막았으며, 호흡을 완전히 정지시킬 때에도.
그저 가만히 있었다.
[스킬, ‘침착(S)’을 발동합니다.]그리고 어느 순간.
숨을 가로막던 검은 물결도, 괜히 떠내려 와 흘러 다니던 시체들의 풍경도.
메모리로 적혔던 참혹한 어떤 방도.
전부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
[스킬, ‘환상감옥(A)’를 이겨 냈습니다.]다시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건 종전에 들렀던 메인 홀이었다.
“역시 너에겐 통하지 않는 건가.”
강서준은 한쪽에서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는 크록을 마주할 수 있었다.
놈은 부서진 피아노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어떻게 알았지?”
그리고 공중에 어떤 영상들이 송출되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정신이 나간 사람들처럼 허공을 상대로 전투를 펼치는 동료들의 모습이 보였다.
링링, 나도석조차 그랬다.
“다른 천외천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역시 케이는 다르다 이거야?”
강서준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시체에 영혼이 없더군.”
“……영혼?”
“그래서 생각했지. 이게 진짜가 아니라면, 과연 이 상황을 무어라 판단하면 될까.”
마침 던전의 이름이 떠올랐다.
환상의 여객선.
그렇다면 이 모든 일을 ‘환상’으로 보면 납득할 수 있었다.
영혼이 없는 시체도 전부.
크록은 킥킥대며 말했다.
“고작 추측으로 목숨을 걸었나?”
“추측이라니. 근거 있는 확신이었지.”
강서준이 차오르는 검은 물결을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은 그때.
‘위기 감지’가 발동하지 않았다.
이 스킬이 모두 환상이라는 증거였다.
“아아…… 지긋지긋한 케이여.”
크록은 활짝 날개를 펼치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터무니없지만 그 등 뒤로 긴 꼬리가 좌우로 흔들렸다.
오랜만에 보는 진체(眞體)였다.
드림 사이드 1 이후로 다시는 안 볼 줄 알았던 모습이었는데.
쯧.
놈은 사나운 눈초리로 양손 가득 마력을 끌어올리면서 말했다.
“드디어 종지부를 찍을 수 있겠구나.”
용아병 크록.
S급 몬스터 ‘용’이 자신의 신체 일부와 갖가지 몬스터들을 조합해서 만든 일종의 키메라.
놈이 사납게 검을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