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110
◈ 110화
[당신은 ‘폐급 대장장이, 드워프 씬’이 되었습니다.]익숙하지 않은 유황 냄새가 코끝을 저몄다. 더더욱 지워지지 않는 통증이 온몸을 장식했다.
끝을 모르고 내리쳐지는 폭행.
“……크윽!”
강서준은 한껏 멍든 눈으로 가해자들을 올려다봤다.
생긴 건 고블린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못생긴 녀석들이었다. 무심한 발길질은 계속됐다.
상황은 바로 이해했다.
‘……최악은 현실이 됐네.’
[C급 테마 던전 ‘재앙의 유성’에 진입했습니다. 시스템에 의해 페널티가 부여됩니다.] [스텟이 봉인됐습니다.] [스킬이 봉인됐습니다.] [당신은 ‘드워프 씬’의 스텟과 스킬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말 그대로 ‘드워프 씬’이 되었다.
종전까지만 해도 가볍던 몸이 더더욱 무거워지고, 아무리 맞아도 ‘초재생’이 발동하지 않는 이유였다.
‘인벤토리는 잠기지 않았으니 그건 다행인가.’
“야, 야…… 얘 죽겠다.”
“뭐? 벌써? 얼마나 맞았다고?”
“괜히 송장 치우기 전에 그만 가자.”
겨우 폭행을 멈춘 드워프들이 침을 칵 뱉은 뒤, 그대로 가벼운 발걸음으로 멀어졌다.
통증을 겨우 밀어낸 강서준은 긴 한숨을 뱉어 냈다.
“후우…… 더럽게 아프네.”
천무지체로 인해 통증은 꽤 익숙해졌었는데. 그조차 ‘드워프 씬’이 되니 하나하나 생생하게 느껴졌다.
전신을 날카로운 날붙이로 베어 낸 듯 후끈거리기도 했다.
강서준은 멍든 눈을 겨우 치켜뜨며 주변을 둘러봤다.
“여긴 창고인가?”
가까이에 걸린 은빛 방패에 다가갔다. 일단 확인하고픈 게 있었다.
“하…….”
은빛 방패로부터 반사되어 비친 강서준의 얼굴.
대단히 잘생긴 편은 아니었지만 꽤 훤칠했던 그의 얼굴은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
한라봉처럼 두터운 코. 툭 째진 눈. 여기저기 뾰루지가 올라온 피부에 길게 늘어진 수염까지.
일단 그는 ‘인간’이 아니었다.
종전의 그를 때리고 떠나간 놈들과 생김새도 다를 게 없었다.
‘정말 드워프가 되다니.’
그렇다면 그의 동료들도 하나같이 알 수 없는 모습으로 변했을 것이다.
과연 다들 어디로 갔을까?
강서준은 가볍게 혀를 찼다.
‘남 걱정할 때가 아니지.’
그는 뻐근한 몸을 억지로 여기저기 움직여 봤다. 뭐가 됐든 스스로의 상태를 파악해 보는 게 우선.
‘상태창.’
곧 정보가 나타났다.
+
이름 : 드워프 씬 ─ Lv. 120
나이 : 21세
직업 : 폐급 대장장이
스텟 : [근력 37], [민첩 43], [체력 20], [마력 495]
고유 스킬 : [파괴(S)], [분해(A)], [제작(F)], [조립(F)]
* 플레이어 ‘강서준’의 데이터는 봉인되었습니다. 시나리오 퀘스트를 클리어하십시오.
+
……이 무슨 괴랄한 수치란 말인가.
‘마력만 495라고?’
터무니없는 스텟 분배다. 어찌 대장장이가 근력과 체력이 합해서 100을 못 넘긴단 말인가.
‘이러니 폐급 대장장이라는 소리나 듣지. 어이가 없네. 왜 마력만 뻥튀기되어 있는 건데?’
물론 대장장이에게 마력이 있으면 나쁠 건 없다. ‘마검’이나 ‘마도구’를 만들 땐 당연히 마력이 필수로 필요하니까.
하지만 그조차 제작이 가능하다는 선에서 필요한 능력이 아닌가.
‘이 정도 수치로는 어려워. 망치도 제대로 못 휘두를 것 같은데.’
레벨이 120이다.
즉 그만한 수준의 망치를 휘둘러 무기를 제작할 텐데, 그의 근력은 ‘드워프의 망치’는커녕 ‘인간의 망치’조차 다루지 못한다.
쉽게 말하자면 직업을 잘못 고른 케이스였다.
이런 수치는 마법사가 되어야 한다.
‘스킬도 제작은 F면서 파괴는 S네.’
마력이 과하게 넘친 대가였다.
씬이 휘두르는 망치엔 저도 모르게 ‘강대한 마력’이 깃들 것이고, 정갈하게 정돈되지 못한 마력은 재료만 상하게 만든다.
정말이지 대장장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 몸은 전투조차 안 돼.’
고효율 엔진을 장착한 종이 인형과 다를 게 없을 것이다. 출력을 높이면 여기저기 신체에 과부하가 걸려 찢겨 나갈 테니까.
어느 정도 체력이 뒷받침해 준다면 더 좋았을 텐데…….
“이잇! 아직까지 여기서 뭐 하는 거얏!”
돌연 시선을 잡아끄는 목소리가 있었다. 고개를 돌려 확인해 보니 그와 마찬가지로 땅딸보 같은 드워프가 성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누구지?
“재료를 만들어 오는 것이냐? 심부름조차 제대로 못해서 대체 무얼 하려는 게야!”
“…….”
“네놈은 스승의 말이 말 같지 않더냐?”
스승이었나.
이놈의 드워프들은 하나같이 노안이라 종전까지 그를 괴롭히던 놈도 구분하기 어려웠다.
심지어 21살인 ‘씬’조차 노인 같았다.
강서준은 바로 납작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에잉! 쓸모없는 놈. 됐다! 네놈에게 뭘 시킨 내가 잘못이지.”
스승은 강서준의 어깨를 팍 밀치고 휘적휘적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튕겨 나간 강서준은 터무니없어서 헛웃음을 지었다.
‘도대체 뭔 몸이…….’
고작 어깨를 부딪쳤을 뿐인데도 HP가 감소했다. 어깨빵조차 꽤 아픈 것이다.
“한심한 놈…… 언제까지 농땡이를 부릴 셈이냐? 얼른 안 튀어나와?”
수북하게 재료를 양쪽 어깨에 짊어진 스승은 욕을 읊으면서 창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강서준도 부랴부랴 정신을 차리고 무거운 문을 밀어 그 뒤를 쫓았다.
쿠르르륵.
콰앙!
화아악!
바로 느껴지는 열기!
사방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며 무언가를 만드는 드워프가 득실거리는 곳이었다.
뭐랄까.
첫 느낌은 장인들의 공방보다는.
‘……공장 같네.’
일정한 리듬에 맞추어 두드리는 망치질.
레일에 따라서 움직이는 기성품들.
다들 하나의 기계처럼 같은 물건을 양산하고 있었다. 스승이 대뜸 큰 목소리를 냈다.
“납품은 내일이다. 정신 똑바로 차려! 늦으면 국물도 없어!”
“네! 스승님!”
그리고 멀뚱멀뚱 서 있는 강서준을 향해 스승이 더욱 호통을 쳤다.
“얼른 자리로 안 돌아가냐! 에잉! 쓸모없는 놈!”
그 호통에 주변 드워프들의 비웃음이 노골적으로 들려왔다. 꽤 익숙한 상황으로 받아들여졌다.
‘……후우.’
일단 강서준은 씬의 자리를 찾기로 했다. 모르긴 몰라도 ‘폐급 대장장이’라 불리는 씬이 공장처럼 돌아가는 레일 쪽에서 일할 것 같진 않았다.
저들처럼 망치질을 하다보면 씬은 진즉에 과로로 죽었다.
이윽고 그는 후미진 곳에 위치한 ‘폐기처리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고장 난 장비들을 한데 모아서 용광로에 녹이고, 다시 재료를 추출하는 곳이었다.
“……괜찮아?”
가까이 다가가니 이름 모를 드워프가 다가왔다. 친절하게 말을 거는 걸로 보아 씬의 지인인 걸까.
“심하게도 당했네. 기다려 봐. 약초가 남았을 거야.”
눈앞의 드워프는 깨진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의 몰골도 여기저기 찢어져 있어서 씬과 상태는 크게 다르진 않았다.
아무래도 괴롭힘을 당하는 건 씬만이 그런 게 아닌 듯했다.
‘모두…….’
모르긴 몰라도, 이곳 ‘폐기처리장’에서 근무하는 드워프들 중 정상은 없을 것이다.
모두 하자가 있는 이들.
공방의 다른 드워프들에게 배척받는, 일종의 ‘폐급 대장장이의 집합’이 따로 없었다.
그리고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여기로구나. 퀘스트의 시작점.’
테마 던전의 장점 아닌 장점은, 애써 시나리오를 찾을 필요도 없이 알아서 시나리오가 굴러 들어온다는 것.
강서준이 폐기처리장의 제 자리에 앉은 시점이었다.
[시나리오 지역에 입장했습니다.] [새로운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분류 : 시나리오
난이도 : C+
조건 : 씬은 ‘폐급 대장장이’로 스승의 관심 밖의 인물입니다. 당신은 ‘폐급 대장장이’ 씬을 어엿한 ‘대장장이’로 성장시켜야 합니다.
제한 시간 : 9일
보상 : 스승의 인정
실패 시 : 추방
* 주어지는 미션을 수행하십시오. 당신에게 도움이 될 겁니다.
+
이후, 도착한 첫 번째 미션.
+
불순물 제거 (0/100)
* 성공 시, 근력이 1 상승합니다.
+
‘……대장장이가 되라고.’
강서준은 조심스레 망치를 꽉 쥐어 보았다. 작은 소도구 주제에 천근이라도 되듯 무겁게 느껴졌다.
그래도 두드려 본다.
깡! 깡! 깡!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망가진 장비를 두드릴수록 어깨가 빠질 듯이 아파 왔다.
그래도 퀘스트가 있으니 해 본다.
100개의 장비에서 불순물만 제거해도 근력을 추가로 상승시킬 수 있으니 뭐가 됐든 움직이는 게 이득이었다.
‘……근데 이게 정답일까.’
100개의 장비를 분해하면 주어지는 스텟이 고작 근력 1.
과연. 이런 방식으로 9일 안에 공략할 수 있을까?
까아앙!
복잡한 머릿속과는 다르게 손은 무아지경으로 불순물을 제거해 나갔다.
***
“흐음…….”
최하나는 그윽한 커피향이 가득한 서재에서 눈을 떴다.
정갈하게 정리된 서재. 먼지 한 톨 찾아보기 어려웠다.
“백작님.”
옆에서 시중을 들던 노령의 집사. 그가 다가오더니 대뜸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마차가 준비됐습니다.”
“……조금, 조금만 기다리라고 해라.”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을 꺼내려던 그녀였지만, 문득 느껴지는 낯선 목소리에 잠시 경직됐다.
그래도 일단 자연스럽게 넘겼다.
집사는 물러가고 최하나는 서재에 깔린 여러 서류들을 흘깃 살펴봤다.
최하나는 서류들을 대충 훑어보고 겨우 한숨을 내뱉었다.
새삼스레 던전에 들어왔다는 게 실감이 났기 때문이었다.
또한 테마 던전일지도 모른다는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렇다 해도 남자가 되다니…….”
백작 카므리엘.
거울에 비친 모습은 핏기가 하나도 없는 새하얀 안색의 미남이었다.
자세히 보아하니 얼굴에 하얀 분을 덕지덕지 발라 놓고 있었다.
“……백작님.”
“알겠네. 곧 가지.”
최하나가 시간을 꽤 끌었을까. 집사가 불안한 얼굴로 다가와 그녀를 재촉했다.
최하나도 어쩔 수 없이 서재를 벗어나 그 뒤를 따라 움직였다.
‘큰 성이야. 하긴 백작이면…….’
문득 종전에 봤던 서류들을 떠올렸다. 그녀가 수행해야 할 ‘백작 카므리엘’은 이 나라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에 선 자 같았다.
‘남자가 된 건 의외지만, 시작은 괜찮겠어.’
태생은 운이다.
같은 시나리오에 떨어지더라도 누구는 밑바닥부터 시작하겠지만, 또 누구는 별다른 노력 없이도 그 위치에 다다른다.
최하나는 멋스럽게 꾸며진 마차에 도착했다. 기사들이 도열해 있었다. 집사가 앞서서 문을 활짝 열었다.
“……공주님?”
공주 비올레타.
마차 안쪽에는 서재에 있는 서류로 미리 확인해 뒀던 ‘비올레타 공주’가 앉아 있었다. 자칫 큰 실수를 저지를 뻔했다.
최하나는 가능한 능숙하게 연기했다.
가수 생활에 연기 경력 10년.
이 정도 정극이야 문제없다.
“공주님께서도 함께하시는군요.”
“……그렇게 됐어.”
여린 외모만큼이나 목소리도 청량했다. 가수를 했다면 음원 차트 상위권은 가뿐히 차지하지 않을까.
탐나는 음색이다.
“그럼 출발하지.”
마차의 문이 닫히고 덜컹이는 마차는 말들의 작은 투레질과 함께 이동을 개시했다.
그나저나 어두운 밤.
백작과 공주가 한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곳이 대관절 어디일까.
최하나는 살짝 커튼을 열어 바깥을 살폈다. 마차는 산골 깊숙이 들어가고 있어 당장 어두운 수풀만이 보이고 있었다.
정보는 없었다.
최하나가 다음으로 집중한 건 비올레타 공주였다.
공주라면 뭘 알긴 알겠지.
“저, 공주님?”
“응?”
다시 봐도 청순가련한 얼굴이다.
생각해 보면 그녀가 속했었던 걸 그룹에도 비슷하게 생긴 동생이 있었다.
나이도 네 살이나 어려서 꽤 챙겨 줬는데.
……살아는 있으려나?
후우.
“불편한 곳은 없으신지요?”
일단 친해지는 것부터 시작하자.
한눈에 봐도 공주는 경계심이 많은 눈치였다. 그녀에게서 무언가를 끄집어내려면 마음의 문에 노크부터 해 봐야 할 것이다.
“난 괜찮…….”
그때였다.
마차가 한 번 크게 덜컹이더니, 바깥에서 괴이한 소음이 울렸다.
언뜻 옆으로 젖혀진 커튼.
그 너머로 괴상하게 생긴 얼굴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공주가 대뜸 말했다.
“으, 시발. 깜짝이야.”
그러더니 곧 입을 막았다.
당황한 얼굴로 최하나의 눈치를 보며 입술을 잘근 깨무는 공주.
그녀는 조심스레 손뼉을 마주쳤다.
짜악, 짝짝짝.
간절한 얼굴로 보고 있는 공주.
최하나는 낮게 한숨을 내뱉으며 익숙한 국뽕 비트로 응답해 줬다.
당황했던 공주의 안색이 대번에 밝아졌다.
“휴, 살았네. 너 누구야? 강서준?”
그리고 깨닫는다.
아이돌 동생을 떠올릴 정도로 청초하고 아리따운 공주의 정체가 누구인지.
“……나도석 씨.”
하여간 편견 없는 게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