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111
◈ 111화
강서준은 대뜸 말했다.
“우리도 출품하자.”
“……씬,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조만간 왕국 연회에 제출할 ‘신작’ 말이야. 그거 우리도 한번 도전해 보자고.”
폐기처리장에서만 이틀.
강서준은 그동안 근력과 체력을 도합 10 가까이 올렸으며, 씬을 연기하며 동료들 사이에 완전히 녹아들 수 있었다.
추가로 얻어 낸 정보는 덤.
그래서 확신했다.
첫 번째 시나리오 퀘스트는 단순 노가다를 통해서 스텟을 올려 공략하는 퀘스트가 아니었다.
‘요점은 어엿한 대장장이가 되는 거야. 스텟은 상관없어.’
어엿한 대장장이라는 기준에 반드시 대장장이에 어울리는 스텟을 올리라는 규칙이 있었나?
아니.
오히려 퀘스트 내용엔 씬이 ‘폐급 대장장이’라 불리는 이유는 다르게 적혀 있었다.
‘스승의 관심 밖이라서.’
즉 폐급 대장장이인 이유는 고작 스승의 인정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막말로 마력만 쓸데없이 많은 스텟이라 해도 물건만 잘 만들어 낸다면 평가는 달라지는 것이다.
‘그땐 마력이 많은 폐급이 아니라 개성이 되겠지. 이런 대장장이가 세상에 어디에 있냐고.’
물론 준수한 스텟을 쌓아 기술과 역량을 끌어올리는 것도 좋은 방법일지도 모른다. 자연스레 스승에게 인정받을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이번 퀘스트에선 실패한 공략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특별한 이벤트를 찾아야 해.’
강서준은 호기심을 품고 자신을 바라보는 폐기처리장의 드워프들에게 재차 입을 열었다.
“폐기처리장의 직원이라고 출품하지 말란 법은 없잖아.”
여기서 말하는 ‘출품’이란 반기마다 왕국 연회에 공방에서 내보이는 신작품을 선출하는 과정이었고.
‘신작’은 말 그대로 공방에서 스승의 인정을 받아, 왕에게 선보일 정도로 우수한 작품을 말했다.
‘스승의 눈에 들기 딱 좋아.’
하지만 동료들은 벙 찐 얼굴을 했다.
“그러니까 우리 따위가 뭘 어떻게 한다는 거야? 매주 납품하는 보급형 장비조차 제대로 못 만들어서 여기에 있는 건데…….”
폐기처리장에서 유일하게 안경을 쓴 알베르토가 우려 섞인 목소리를 냈다. 말은 하진 않아도 다른 드워프들도 같은 표정이었다.
그리고 맞는 말이었다.
폐기처리장은 말 그대로 하자 있는 드워프들을 모아 둔 일종의 쓰레기 집합소.
강서준처럼 대장장이에 어울리지 않는 스텟이나 스킬을 가진 이들만이 근무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반기마다 공방을 대표하는 신작을 만들어 내겠다고?
웃기지도 않는 일이었다.
강서준은 혀를 차면서 말했다.
“언제까지 여기서 장비만 부숴 대며 지내고 싶진 않잖아.”
“그야 그렇지만…….”
그때였다.
멀리 재료를 운반하러 떠난 폐기처리장의 막내 ‘콜’이 단말마의 비명을 지른 건.
“으아앗!”
그 앞으로 쏟아진 재료 더미. 수북하게 흩뿌려진 재료는 철 조각이었고, 그 위로 넘어진 콜의 얼굴엔 철 조각이 가득 박혔다.
“에이씨, 폐급 새끼가…….”
그리고 철 조각에 파묻혀 다친 콜의 상태를 살펴보지도 않는 드워프들. 그들은 오히려 걸리적거린다는 이유로 콜의 복부를 걷어찼다.
“저리 안 꺼져? 쓸모없는 새끼가!”
“크헉!”
“재수 없게 진짜.”
놈은 껄렁대는 말투로 침을 칵 뱉고 멀어졌다. 바닥에 피투성이로 쓰러진 콜은 폐기처리장의 동료들이 데려갈 때까지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알베르토는 빠르게 콜의 얼굴에 박힌 철 조각들을 떼어 주었다. 몇몇 동료들은 자석도 가져왔다.
다행히 각막까지 손상된 건 아니었다.
콜의 상태는 금세 나아졌다.
하지만 폐기처리장은 무거운 침묵에 둘러싸였다.
이런 상황을 원한 적은 없었지만, 미묘하게 흐름은 강서준에게 나쁘지 않게 흘러가고 있었다.
“……씬.”
“응?”
“신작을 만들자고 했지?”
그리고 그들의 눈엔 고요하게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종전까지만 해도 패배감에 휩싸였던 폐급들의 눈동자는 아니었다.
알베르토가 말했다.
“요 며칠 동안 손이 부르트도록 망치를 휘두르는 널 보면서 많이 반성했어. 나도 여태 너만큼 노력한 적이 있는지 고민하게 되더라.”
가만히 있기도 뭣하고 조금이라도 스텟을 올리면 도움이 되겠지 싶어서 한 노가다였다.
“업무 시간이 지나도 잠 한숨 안 자고 공방의 불이 켜진 걸 봤어. 너는 그 수모를 겪고도 포기하질 않는 거겠지.”
남은 시간이 7일이다.
그 시간 안에 이 던전을 공략하질 못하면 지구는 멸망한다. 밤을 새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난 하겠어.”
“정말?”
“내가 이따위로 살려고 태어난 건 아니야.”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알베르토의 눈엔 열망이 차올랐다. 그 불꽃은 동료들의 시선을 따라 옮겨붙었다.
결국 폐기처리장 전원이 강서준의 의견을 따라서 ‘신작’에 도전하는 ‘출품작’ 생산에 동의한 것이다.
그리고 알베르토가 말했다.
“근데 마감까지 이틀밖에 안 남았는데.”
“그러니까 같이 만들어야지.”
“……같이 만든다고?”
강서준은 피식 웃으면서 동료들의 머리를 모았다. 이번 공략의 첫 단추는 ‘협업’이었다.
***
시간은 금방 흘렀다.
“어떡해, 어떡해? 오늘이야. 어떡해?”
“알베르토. 진정해.”
“하지만 씬! 나 출품 처음이란 말이야!”
강서준은 쓰게 웃으며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은 동료들을 이끌고 경연이 펼쳐지는 스승의 자리로 향했다.
“으응? 폐급들 아니야?”
“쟤네들이 여길 왜 와?”
“설마 출품할 생각인가?”
숱한 의문을 토해 낸 다른 드워프들의 목소리가 비웃음으로 이어지는 건 금방이었다. 그들은 지나가는 폐기처리장 동료들을 향해 비아냥을 해 댔다.
알베르토를 비롯한 드워프들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강서준이 말했다.
“어깨 펴. 우리가 더 잘났으니까.”
“……씬, 너는 떨리지도 않아?”
“떨리지. 근데 그게 날 좌우하진 않아.”
두려움을 마주하는 일은 떨리는 게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강서준은 그 감정으로 현실이 결정되길 원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폐급? 웃기고 있네.’
강서준은 보무도 당당하게 스승을 향해 나아갔다.
스승은 뭐가 그리 불만스러운지 잔뜩 구겨진 얼굴로 출품작들을 발로 뻥뻥 차 대고 있었다.
“에이잉, 전부 똑같은 것들뿐이잖아. 보고 베꼈어? 나 망신 주려고 다들 작정이라도 한 거야? 응?”
“이것도 장비라고 만든 것이냐? 장난해?”
“에이이잉,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구나!”
한창 못 미더운 눈을 치켜뜨던 스승은 강서준을 발견하더니 물었다.
“뭐야? 설마 제출하러 온 것이냐?”
스승의 말에 발로 깡깡 차였던 출품작 주인 놈들도 강서준 일행을 보면서 비웃음을 터뜨렸다.
그들보다 못나 보이는 폐급 대장장이들의 등장에 어깨도 살짝 펴진 모양이었다.
강서준은 놈들을 가볍게 무시하며 스승을 바라봤다.
“이건 무엇이냐?”
“흑철 슈트라고 합니다.”
“슈트? 흑철? 설마 내가 아는 그 흑철이 맞느냐?”
흑철은 폐기처리장에서 특히 남아도는 찌꺼기 철들을 모은 걸 말했다. 본래라면 장비를 만드는 데에 쓰이는 재료가 아니었다.
“네. 흑철로 만든 장비입니다.”
예상대로 주변에 있던 드워프들의 웃음이 터졌다. 비난에 가까운 적나라한 말투였다.
“크하하! 흑철 따위로 만드는 장비라니 획기적이긴 하네!”
“쓰레기들 모아서 쓰레기를 만들다니. 폐급들 머리통은 정말 이해할 수 없다니까. 크큭!”
거참.
자기들 출품작들은 허접해서 발로 차인 주제에, 뭘 그리 잘나서 입만 나불대는지.
‘제 스승의 눈빛이 어떤지도 모르고.’
강서준은 씨익 웃으면서 스승의 두 눈이 얼마나 더 커질지 기대하며 바라봤다.
스승은 꽤 진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슈트라고 했더냐.”
“그렇습니다.”
“혹 이건 완성품이 아닌 게냐?”
강서준은 기다렸다는 듯 주머니에서 설계 도면을 꺼냈다.
부품과 부위마다 각종 수식이 복잡하게 적혀 있었고 모든 내용은 세밀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설계를 짜는 데에만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던 막내 대장장이 드워프 ‘콜’의 작품이었다.
‘사실 이게 가장 놀라운 점이지.’
설마 상상이나 했을까.
폐급이라 불리는 대장장이들이 각자의 재능을 하나로 뭉치면 과연 어떤 아이템을 만들게 되는지.
‘이들이 폐급이라 불린 건 고작 스텟 분배가 잘못됐을 뿐이니까.’
반대로 말하자면 대장장이에 어울리는 스텟이 아닐 뿐이지, 다른 쪽에서는 우수한 인재들이란 거다.
어쩌면 천재라도 불려도 될 것이다.
‘결국 아이템이 증명할 거야.’
강서준은 자신만만한 어조로 출품작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이건 시제품으로 오른손에만 착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나머지 부품을 전부 모아 합치면…….”
설명이 이어질수록 스승의 눈동자는 설계 도면에 빠질 듯이 침잠했다. 가만히 스승이 설명만 듣고만 있자, 떠들썩하던 드워프들의 비웃음에도 살얼음이 끼고 말았다.
나쁘지 않은 흐름이었다.
강서준은 쐐기를 박기로 했다.
“일단 시연을 보시겠습니까?”
“……아직 미완성이 아니었더냐?”
강서준은 어깨를 으쓱이며 흑철 건틀렛을 착용했다. 그리고 가까이에 있던 무거운 모루를 한 손으로 들어 올렸다.
“허억!”
여기서 씬은 ‘마력’에 스텟이 올인된, 힘 없기로 유명한 대장장이. 구태여 설명할 것도 없이 흑철 건틀렛의 능력을 증명할 수 있었다.
“말도 안 돼…….”
“고작 건틀렛으로 저게 가능하다고?”
한쪽에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한 채로 앞으로 나선 무명의 드워프가 말했다. 이름이 콜리보라는 놈이었나.
“믿을 수 없어. 어떻게 폐급 따위들이 이런 걸 만들어?”
“뭐?”
“분명 뭔가 수상해. 애초에 흑철 따위로 장비를 만든다는 것부터 이상하잖아? 네놈들 감히 스승님을 상대로 사기라도 치려는 것이냐?”
터무니없는 주장이었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대충 정황만 끼워 맞춘 억지 주장.
하지만 우습게도 그 말은 드워프들 사이에서 신빙성을 얻고 있었다.
“확실히…… 폐급들이 제대로 된 장비를 만들 수 있을 리가 없지.”
“수상해.”
“스승님. 명명백백 밝혀내야 합니다!”
드워프들의 목소리에 기세를 올린 콜리보란 놈이 대뜸 그가 만든 대검을 들고 오더니 말했다.
“조잡한 건 티가 나기 마련이지!”
그러더니 대뜸 강서준이 착용하고 있는 흑철 건틀렛에 공격을 가한 것이다. 알베르토가 말했다.
“……안 돼! 씬!!”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강서준은 공격을 눈치챘지만 피할 만큼의 여력은 없었다.
드워프들은 강서준의 팔이 흑철 건틀렛째로 부서지는 걸 상상했는지 눈살을 찌푸렸다.
까아앙!
그리고 흑철 건틀렛과 부딪친 대검이 두 동강이 나면서 공중을 부유했다. 공격을 가한 검이 오히려 부서지고 만 것이다.
강서준은 씨익 웃었다.
‘흑철 건틀렛은 마력으로 경도를 높이는 무구라고. 멍청한 드워프야.’
모두의 예상이 비켜 나가고, 멀쩡한 강서준의 형태를 본 드워프들은 입을 쩍 벌렸다.
침묵이 길게 흘렀다.
그리고 스승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흐응…… 더 볼 것도 없겠구나.”
두말할 것도 없이 결론은 지어졌다.
[‘스승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클리어했습니다.]폐급 대장장이들의 승리였다.
***
이후로 시나리오는 더없이 순조로웠다.
스승은 왕궁 연회에 흑철 슈트를 완성해서 선보이겠다고 모두에게 공언했고, 폐기처리장의 드워프들 전원이 왕궁으로의 출장이 결정된 것이다.
“빨리 움직여! 뭐 해? 얼른 망치 안 쥐냐!”
스승의 재촉 속에서 부랴부랴 움직이던 드워프들은 하루를 꼬박 새워서 겨우 흑철 슈트를 완성할 수 있었다.
강서준은 유려한 외관의 흑철 슈트를 손으로 쓸어 봤다.
‘기깔나네.’
소싯적에 즐겨 봤던 영화 속 슈트. 강철맨이 지구를 구하기 위해서 날아다니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물론 영화처럼 새빨간 슈트는 아니었다. 이름처럼 흑철은 그 특성을 따라서 새카만 외관이었으니까.
그리고 생각했다.
‘아마도 왕궁에 다음 시나리오가 있겠지? 모르긴 몰라도 연회는 이 던전에서 가장 큰 이벤트니까.’
강서준은 그렇게 생각하며 왕궁으로 떠나는 드워프들의 무리에 합류했다. 왕국을 대표하는 대장장이답게 별다른 검문도 없이 통과할 수 있었다.
“왕은 안에 계시나?”
“네. 안내하겠습니다.”
그리고 기사들을 따라서 강서준을 비롯한 일행은 멋스러운 왕궁을 거닐었다. 꽤 긴 복도를 가로질러 화려하게 꾸며진 접견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잠시 이곳에서 쉬고 계시면 곧 기별을 넣겠습니다. 그럼…….”
접견실엔 다양한 음식이 마련되어 있었다. 드워프들이 좋아하는 시원한 맥주까지 가득했다.
여기까진 참 좋았을 것이다.
아마 문제가 있다면.
“……어쩐지 쉽더라니까.”
기사가 문을 닫고 나간 지 얼마 안 되어, 하얀 연기가 바닥에 낮게 깔리면서 뭉게뭉게 방 안을 뒤덮는 것 정도겠지.
[조건을 만족시켰습니다.] [시나리오 퀘스트가 갱신됩니다.]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