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112
◈ 112화
방 안 깊숙이 스며든 연기를 쭉 둘러본 강서준은 현 상황에 대한 이해를 빨리 해낼 수 있었다.
‘진짜 시나리오는 여기부터구나.’
그럼 그렇지.
비록 폐급 대장장이로 시작해서 약간 고생하긴 했으나, C급 테마 던전이라는 이름에 비해 어려운 수준이 아니었다.
아마 지금부터가 진짜겠지.
[조건을 만족시켰습니다.] [시나리오 퀘스트가 갱신됩니다.]강서준은 새롭게 갱신된 퀘스트 내역을 살피면서, 우선 스승의 가방에서 흑철 건틀렛을 꺼내어 착용했다.
이걸 따로 챙겨 두길 다행이지.
+
분류 : 시나리오
난이도 : C+
조건 : 왕궁에 입성하는 데엔 성공했습니다만, 이미 왕궁엔 적들이 침입한 상태입니다. ‘조력자’를 찾아 왕궁을 되찾으십시오.
제한 시간 : 동틀 녘까지
보상 : 대량의 경험치
실패 시 : 시나리오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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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왕궁에 침입한 적은 흡혈귀일 것이다. 본래 이 세계는 흡혈 바이러스가 판을 치는 곳일 테니까.
‘그러고 보면, B급 던전이던 재앙의 유성에선 이미 흡혈귀들에게 장악된 왕국이 배경이었지?’
만약 공략해 내질 못한다면 시나리오는 그렇게 흘러가는 걸까. 강서준은 일단 숨을 참아 내며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다행히 바깥에서 인기척이 느껴진 건 금방이었다.
“이쯤이면 됐을 것이다. 문을 열어라.”
문을 열고 구둣발로 들어온 기사들. 창문을 열어 연기를 완전히 밖으로 빼낸 그들은 바닥에 널브러진 드워프들을 확인했다.
“완전히 곯아떨어졌군.”
툭툭 스승과 동료 드워프를 발로 차 대며 확인하더니 무심한 얼굴로 말한다.
“옮겨라. 제단에 쓰일 것이다.”
기사들은 드워프들의 발목을 잡더니 질질 끌어서 방을 나섰다. 하나둘…… 동료들이 끌려갔지만 강서준은 꾹 참고 기다려야만 했다.
드워프 씬.
가능하면 들키지 않는 게 최선이다.
하지만 운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으음?”
마지막으로 방을 나서던 기사 한 명이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를 떠올렸는지 미간을 좁히더니 중얼거렸다.
“숫자 하나가 모자란 것 같.”
타닷!
더 숨을 이유가 없었다.
최대한 조심스레 접근한 강서준이 기사의 뒤통수를 노리고 뛰었다.
짧은 발놀림으로 해내는 최선의 공격!
하지만 기사는 능숙하게 몸을 비틀어 강서준의 공격을 피해 냈다. 또한 재빠르게 강서준의 목을 휘어잡았다.
“어떻게 멀쩡한지는 모르겠지만, 멍청한 드워프여. 넌 기사를 너무 얕보았구나.”
알고 있다.
못해도 C급 던전의 기사를 마력만 495에 불과한 드워프가 어찌 감당해 내겠는가.
당연한 결과였다.
그래서 의도한 순간이다.
“으음?”
강서준은 자신의 목을 움켜잡은 기사의 팔을 흑철 건틀렛으로 꽉 쥐었다. 이렇듯 붙어 있으면 피하는 건 불가능한 법.
“그래서 뭘 어쩌겠…….”
기사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흑철 건틀렛에 내장된 마력이 구동하면서, 엄청난 괴력을 뿜어냈으니까.
기사의 팔은 으스러지다 못해 완전히 가루가 되었다. 목을 쥐던 힘이 헐렁해진 틈을 노려 바로 접근할 수 있었다.
“……끄아악! 이 무슨!”
놈이 고통스러워하며 표독스럽게 눈을 떴지만, 이미 놈의 머리를 움켜쥔 흑철 건틀렛은 용서가 없었다.
콰직!
기사가 허물어지는 건 금방이었다.
“허억…… 허억. 이래서 눈치 빠른 놈들은 싫다니까.”
거칠게 숨을 몰아쉰 강서준은 바로 남은 체력을 확인했다.
웃기게도 방금 목덜미를 움켜잡힌 것만으로도 가진 체력의 3분의 1이 날아갔다.
진짜 몹쓸 몸이다.
“일단 흑철 슈트부터 찾아야겠네.”
그가 흑철 슈트를 만든 이유.
출품작으로 내세울 목적도 있었지만, 진짜는 본인이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언제까지 물 몸으로 다닐 순 없으니까.
“그 전에 여기부터 빠져나가야겠지.”
강서준은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복도를 가로질렀다. 어둠이 내리깔린 복도엔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
왕국 연회.
분기마다 펼쳐지는 이 연회는 이름처럼 단순히 먹고 노는 행사는 아니었다.
흡혈귀를 상대로 싸운 이들을 위로하고, 각지의 귀족들을 소집해서 사태를 보고하는 전략을 곁들인 연회.
해서 꽤나 중차대한 행사였다.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행동해요.”
“……말이야 쉽지. 이런 거추장스러운 걸 입고 어떻게 잘 움직이냐? 아씨. 진짜 숨 막히겠네.”
“말 좀 예쁘게 해요. 공주답게.”
그리고 왕국의 귀족인 ‘카므리엘 백작’과 ‘비올레타 공주’도 당연히 연회에 참여한 상태였다.
특히 비올레타는 초대를 하는 입장이었기에, 연회엔 빠질 수가 없는 법.
나도석은 한 걸음 내딛다, 바로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여자들은 굉장하군. 이걸 어떻게 신고 다니는 거지?”
“자주 신다 보면 익숙해져요. 전 그거 신고 춤도 추는 걸요.”
최하나는 능숙하게 소매를 정돈하고 나도석에게 팔을 내밀었다. 하이힐이 익숙하지 않은 나도석을 보조하기 위함이었다.
“애도 아니고. 됐어.”
“그러지 말고 잡아요. 공주가 옷차림이 불편해서 넘어졌다는 것만큼 어색한 건 없으니까.”
“……끄응.”
나도석은 뚱한 얼굴로 살포시 최하나의 팔을 붙잡았다. 여전히 뒤뚱거리는 모양새였지만 그래도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최하나는 복화술로 말했다.
“웃어요.”
“……으으.”
“연기가 장난인 줄 알아요?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려면 자기 속마음까지 속여야만 한다고요.”
그럼에도 경직된 미소로 얼굴 근육을 당겨 부르르 떠는 나도석이었다. 발 연기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나조차도 발 연기 딱지 떼는 데 5년 걸렸어. 뭐라 할 처지는 아니네.’
예전에 드라마 캐스팅이 돼서 호기롭게 도전한 적이 있다.
그때 그녀는 ‘로봇이 와도 최하나보단 연기를 잘하겠다.’라는 악플까지 받아 봤다.
무수한 연기 연습을 통해 ‘연기돌’이란 별명을 얻어 내기 전까지, 그녀의 꼬리표엔 항상 ‘로봇돌’이 따라왔다.
‘그래도 이번엔 얼굴도 전부 바뀐 상태야. 완벽한 연기까지 필요하진 않아.’
그나마 위안 삼으며 최하나는 나도석을 에스코트했다. 왕궁의 주인인 왕이 한쪽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 카므리엘. 왕을 뵙습니다.”
최하나는 능숙하게 한 손은 뒤로, 그리고 나머지 한 손은 복부를 가리면서 허리를 숙였다.
이 왕국 특유의 예법이다.
미리 확인해 두고 연습까지 한 덕에 군더더기 없었다. 아무도 그녀가 가짜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없었다.
“환영하네, 카므리엘 백작.”
“예, 전하.”
왕은 최하나의 옆에서 긴장한 얼굴로 웃고 있는 공주도 발견했다.
“비올레타 공주. 늦었구나.”
“예? 예, 아버지.”
여전히 어색한 말투에 경직된 웃음이었지만 왕은 크게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왕은 자애롭게 웃으며 말했다.
“한쪽에 네가 좋아하는 연어 샐러드를 준비해 뒀다.”
“……감사합니다.”
이후로도 왕은 그에게 다가오는 수많은 귀족들을 맞이해야 했다.
안타깝지만 나도석도 여기서 일별해야 했다.
그도 왕의 옆에서 귀족들을 맞이해야만 하는 입장이었으니까.
‘차라리 잘됐어. 왕의 옆자리만큼 사람들을 감시하기 좋은 위치는 없으니까.’
최하나는 연회장에 준비된 음식들을 가볍게 먹고 마시며 눈치껏 귀족들 사이를 오고 갔다.
각지에서 올라온 귀족들은 카므리엘 백작을 기쁘게 맞이했고, 많은 정보를 교류해 줬다.
그 와중에도 최하나의 눈은 예사롭지 않게 빛났다.
‘흡혈귀가 아닌 자들을 찾는 게 더 어렵겠어. 이거 생각보다 사태가 심각한데?’
사실 최하나는 모종의 임무를 맡고 연회장을 누비는 중이었다.
이틀 전, 왕국의 비밀 조직 ‘그림자’를 접선한 그녀는 이미 왕국의 고위 귀족까지 흡혈귀에게 감염됐다는 걸 알았다.
‘이번 연회는 피의 축제가 될 거야.’
던전 브레이크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흡혈귀는 최후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시발점이 여기였다.
“아아, 카므리엘 백작. 오랜만이군.”
최하나는 자신에게 알은체를 하는 누군가를 발견했다. 그녀의 기억대로라면 북쪽을 지키는 사령관 ‘알리트 공작’이었다.
‘……흡혈귀군.’
흡혈귀가 접근하면 색깔이 붉게 물드는 카므리엘의 반지가 부르르 떨어 댔다.
모르긴 몰라도 북쪽의 사령관이 흡혈귀가 되어 버렸다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고 말할 수 있다.
“알리트 공작님이시군요. 지난 전투에서 대승을 거뒀다고요.”
“이거 부끄럽군. 별것 아닐세.”
정말 별것 아닐 것이다.
이미 흡혈귀가 됐다면 전투 보고야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었으니까.
과연 북쪽이 함락된 건 언제일까.
“그나저나 카므리엘 백작도 소식 들었네. 왕국의 위기를 이용하여 패악질을 일삼던 무리를 토벌했다지?”
“……네. 운이 좋았습니다.”
“겸손하군.”
한편 알리트 공작 근처를 지나는 이름 모를 하인이 최하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비밀 조직 그림자의 일원.
그가 신호를 보냈다.
“전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자리를 비워야겠군요.”
“허, 이제야 재밌어질 참이었는데.”
“죄송합니다. 그럼…….”
바쁘게 알리트 공작을 일별한 최하나는 미리 준비해 둔 자리에 섰다. 그곳의 테이블 아래에 카므리엘의 애병인 세검을 숨겨 뒀기 때문이었다.
‘연회장 내부의 흡혈귀와 아닌 자들의 구분이 끝났어. 이제 그들을 나누기만 하면…….’
하지만 그때였다.
키아아아앗!!
돌연 연회장 한쪽에서 괴성이 울리더니 테이블이 뒤집어졌다.
근처를 배회하던 귀족들이 화들짝 놀라며 비명을 질렀다.
“흐, 흡혈귀다!!”
한쪽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사방에서 종전까지 얼굴을 맞대며 대화를 나누던 귀족들이, 흡혈귀로 변모하면서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모두 무기를 들어라!”
선두를 빼앗기긴 했지만 계획에 변동 사항은 없었다.
최하나는 테이블 아래에 숨겨 뒀던 세검을 뽑아 들며 가까운 귀족의 목에 찔러 넣었다.
알리트 공작이었다.
“네, 네놈이 어떻게……?”
빠르게 알리트 공작을 처치한 그녀는 세검을 높이 들면서 외쳤다.
“당황하지 마라! 예정대로 흡혈귀를 처단하고 왕국의 백성들을 지켜라!”
곳곳에서 칼부림이 일어났다. 흡혈귀 대 그림자로 벌어진 전투는 말 그대로 사방을 피로 물들였다.
최하나도 전투에 빠질 수 없었다.
그녀의 장기인 총을 쓸 수는 없어 아쉬웠지만, 카므리엘의 스킬이 있으니 썩 괜찮았다.
그녀라고 근접전을 못 할까.
문제는 다른 곳에서 벌어졌다.
“으아아아악!”
왕의 거친 함성이 울리면서 연회장은 씻은 듯이 조용해졌다.
언제 저기까지 간 거지?
흡혈귀 한 마리가 왕과 비올레타 공주의 목에 손톱을 겨누고 있었다.
“모두 무기를 버려라!”
“전하……!”
“얼른 투항하지 못할까!”
왕의 목덜미에 손톱이 파고들어 피가 새어 나왔다. 저기서 1cm만 더 찔려 들어간다면 왕의 생사는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림자들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얼굴로 최하나를 바라봤다.
“무기를 버리지 마라. 흡혈귀와 타협은 없어.”
“네놈들은 왕이 죽어도 괜찮다는 것이냐?”
“죽일 수 있으면 죽여 보든지.”
“뭐?”
그녀의 배짱 두둑한 말.
그 당당함에 흡혈귀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허세인 줄로만 아는 모양이었다.
최하나가 말했다.
“전하는 안전하시다! 모두 적들을 몰아내!”
그 말에 맞추어 인질로 붙잡혀 있던 비올레타, 아니 나도석이 팔꿈치로 흡혈귀의 복부를 가격했다.
그리고 자세를 낮게 낮추면서 빙글 돌아 흡혈귀의 다리를 걸어 넘어트렸다.
쓰러진 놈의 머리를 하이힐로 찍어 버리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끄아아악!”
뒤이어 다른 흡혈귀와도 근접전을 벌였지만 나도석이 활약하는 경우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그녀가 주먹을 휘둘러 때릴 때마다 그녀의 손이 퉁퉁 부어올랐기 때문이었다.
“아이씨. 더럽게 아프잖아아!!”
결국 불편한 구두를 벗어서 무기로 활용한다. 최하나는 미간을 구기며 나도석의 전투를 살폈다.
‘비올레타는 마법사라니까…….’
어쨌든 주먹을 쓰는 게 훨씬 익숙한 그녀는 부상을 감당하며 이윽고 왕까지 구출해 냈다.
“끄아아아악!!”
나도석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왕에게 물었다.
“왕…… 그니까. 아버지?”
“비, 비올레타여.”
“뛸 수 있어요?”
왕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흡혈귀 무리를 찢어 버리면서 최하나가 그곳에 당도한 건 그때였다.
“이동해야 합니다. 따라오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