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119
◈ 119화
몇 번을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그, 그만……!”
“김훈 씨, 부탁할게요.”
“끄아아아악!”
한 몬스터의 처절한 비명이 울리면서 볼보의 체력이 차올랐다. 김훈의 특수 포션 치료는 효과가 확실히 좋았다.
“아, 악마 같은 놈들! 그냥 날 죽여!”
“안 돼. 아직 때가 아니라고 했잖아.”
“다가오지 마!”
다시 체력이 차오른 볼보가 발버둥을 쳤지만 강서준의 공격을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물며 몇 번이나 반복한 일이었다.
패턴도 익숙해졌다.
재앙의 유성검의 제물이 되어 피가 쪽 빨린 볼보는 새파란 입술로 다시 놈에게 다가가는 김훈을 올려다봤다.
사신이라도 보는 눈빛이다.
“제, 제발…… 안 돼애애애!!”
그렇게 17번을 더 반복했을까.
결국 볼보의 오만한 정신 상태도 개조되고 말았다. 강서준을 비롯한 일행에게 극존칭을 붙이는 것이다.
“이, 인간님이시여…….”
강서준은 그제야 손을 털었다.
볼보의 썩은 동공을 보아하니 완전히 반항의 의지를 꺾어 버린 모양이었다.
그래도 강서준은 재앙의 유성검으로 놈의 목을 겨누면서 으름장을 냈다.
“또 까불어 봐. 어떻게 되는지.”
“아, 아, 아닙니다. 죽여만 주십쇼.”
영혼에도 내구력은 있다.
아마 놈의 영혼은 아마 제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로 마모되었겠지.
반을 죽이고 살리길 반복했다.
제아무리 C급의 보스 몬스터라고 해도 언제 끝날지 모르고 계속 반복되는 고통 속에선 버틸 수 없었던 것이다.
강서준은 볼보를 묶어서 한쪽에 놓았다. 그리고 라이칸과 오가닉을 소환해서 감시를 붙여 뒀다.
“걱정 마라. 이놈을 감시하는 것 정도야 리자드맨의 꼬리를 비트는 것보다 쉬우니.”
“맞습니다, 왕이시여! 저희만 믿으십시오.”
두 백귀의 든든한 말에 강서준은 더는 그쪽에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아무렴 영혼이 연결된 존재들.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바로 알 수 있었다. 강서준은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남은 문제는 이제 하나네요.”
“네?”
“그것 때문에 할 말이 있어요. 다들 이리 좀 와 볼래요?”
사실 모두에게 밝히지 않은 게 하나 있었다. 던전을 롤백시킨다는 터무니없는 작전에서 빠질 수 없는 고질적인 문제점.
강서준은 차분하게 설명해 줬다.
김훈이 먼저 헛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그러니까 한 사람은 던전에 남아야만 한다는 겁니까?”
“네. 누군가는 보스 몬스터를 죽여야만 하니까요.”
롤백을 시킨다는 계획의 첫 단추는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는 시각에 맞추어 보스 몬스터를 죽이는 일’이다.
그리고 그 계획을 온전히 실행하려면 누군가는 던전에 남아서 보스 몬스터의 죽음을 조작해야 한다.
로테월드의 피에로를 죽였을 때처럼.
‘결국 누군가는 던전에 고립되어야 한다는 거야.’
강서준은 그 말을 듣자마자 결연한 표정을 짓는 최하나를 살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보였다.
그녀라면 그렇게 생각할 줄 알았다.
강서준은 최하나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아무도 희생할 필요는 없어요.”
“네?”
“마지막에 남는 건 저니까요.”
최하나가 미간을 구기며 반문했다.
“안 됩니다. 지구엔 서준 씨가 필요해요. 고작 이딴 던전에서 서준 씨를 잃을 순 없어요.”
“알아요. 그리고 그건 최하나 씨도 마찬가지잖아요.”
최하나는 단순한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아이돌 최하나.
클라크 이전에 연예인인 그녀는 노래로 많은 사람을 위로하고 있다.
지금도 그녀의 노래를 들으며 희망을 간직한 사람들이 적진 않으리라.
그녀의 희생은 아무도 원치 않는다.
‘나조차도 그녀는 살았으면 하니까.’
이기적인 바람일지라도 강서준의 솔직한 심정은 그랬다.
한편 최하나는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얼굴이었다. 강서준은 그녀의 어깨를 꾹 누르면서 입을 열었다.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요. 제가 희생하겠다는 얘기도 아니었으니까요.”
강서준은 손을 옆으로 뻗었다.
[장비 ‘도깨비 왕의 반지’의 전용 스킬, ‘도깨비의 부름’을 발동합니다.]푸른 불꽃이 감투에 저장되어 있던 하나의 영혼을 소환하고 그대로 실체화시켰다.
리자드맨 백부장.
강서준의 스킬로 인해 재탄생한 놈이 고개를 꾹 숙이면서 충성을 맹세했다.
“남는 건 제 스킬입니다.”
최하나는 그제야 납득한 얼굴이었다.
강서준이 사용하는 ‘도깨비의 부름’으로 소환된 영혼은 결국 일회용으로 그 쓸모가 다하면 사라지는 특징이 있다.
던전에 고립되어 소멸한들 그들이 손해 볼 일은 없다는 것이다.
김훈이 약간 질린 안색으로 말했다.
“그럼…… 끝난 겁니까?”
강서준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공략, 성공입니다.”
***
시간은 활시위를 떠나간 화살처럼 쏜살같이 지나갔다.
강서준은 던전의 정보를 확인했다.
[던전 브레이크까지 30분.]한편 일행은 카므리엘의 저택으로 찾아온 드워프들을 마주하고 있었다. 스승 코브는 한껏 걱정스러운 안색으로 말했다.
“그럼 씬은 살아 있는 겁니까?”
“물론이다. 조금 다치긴 했지만 멀쩡하다더군.”
“그렇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정말 압권이었다.
코브는 드워프 ‘씬’의 얼굴을 확인하지 않으면 오늘 이곳에서 돌아가지 않겠다고 강경하게 주장했다.
뭐라더라?
늘그막에 얻은 수제자라고. 그토록 끈기 있는 대장장이는 여태 본 적이 없다고, 반드시 그의 뒤를 이을 거라고도 말했다.
강서준은 쓰게 웃으면서 코브의 주름진 얼굴을 바라봤다.
‘폐급이라고 무시할 때는 언제고…… 그나저나 그때 정신이 멀쩡하지 않아 천만다행이네. 집착이 상당하잖아?’
코브는 왕성에 들어온 이후로의 기억이 모두 사라져 있었다. 볼보가 그에게 주입한 마기가 잠시지만 코브를 장악한 것에 대한 부작용이었다.
“미안하지만 절대안정이라는군. 다음에 찾아오게. 일어나면 바로 기별을 주도록 하지.”
“끄응…… 기다리면 안 되오?”
“돌아가시오.”
카므리엘(최하나)의 축객령.
코브는 폐기처리장의 동료들에게 질질 끌려서 저택을 나섰다. 그들과 함께한 시간은 얼마 되진 않았지만 참으로 의리 있는 드워프들이었다.
문득 김훈이 물었다.
“근데 이 던전이 롤백되면 저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네?”
“그렇잖아요. 여긴 고작 게임이 아닌데.”
스승 코브.
폐기처리장의 동료들.
그리고 이곳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NPC들은 모두 살아 있는 생명이다.
김훈이 지적하는 건 그 부분이었다.
롤백이 진행된다면 이 모든 것들은 무시무시한 백스페이스와 쉬프트, 잘라 내기로 인하여 삭제될 테니까.
강서준은 드워프들의 뒷모습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으며 말했다.
“괜찮을 겁니다.”
롤백에서 삭제는 소멸을 의미하지 않는다. 로테월드처럼 던전화 자체가 발생하질 않았던 시기로 돌아가는 게 아니니까.
‘C급 던전. 과거로 돌아갈 뿐이야.’
아마 지워지는 건 이곳에서 강서준 일행이 진행했던 시나리오에 관련된 내용일 뿐이다.
아마 강서준이 연기했던 드워프 씬이나 다른 일행들이 보여 줬던 인물에 대한 기억들만 지워지겠지.
‘그나저나 진짜 드워프 씬은 어떻게 된 거지? 단순히 조작된 인물에 불과한 건가.’
모를 일이었다.
거기부터는 시스템의 영역. 일개 플레이어가 알 턱이 없다.
강서준은 집어먹던 다과를 마지막으로 손을 털고 일어났다.
그때 입안 가득 과자를 우물우물 씹던 이루리가 다급하게 말했다.
“자, 잠깐만. 지금 하려고? 아직 24분이나 남았는데?”
“그건 던전 브레이크고.”
그들은 먼저 던전을 빠져나가서 우주선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었다. 롤백이 진행되기 전에 그 범위 바깥으로 빠져나가야만 했으니까.
“히잉…… 다 못 먹었는데.”
“나가면 더 맛있는 거 사 줄게.”
“거짓말.”
이루리는 잔뜩 토라진 얼굴이었지만 순순히 강서준의 의도대로 움직여줬다. 백작 카므리엘이 최하나로 돌아오는 것도 금방이었다.
최하나는 숨을 길게 내뱉더니 말했다.
“서준 씨, 정말 같이 안 가실 겁니까?”
“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보고 갈게요.”
“그건 몬스터에게 맡겨도 되잖아요.”
“확률의 문제예요. 가능하면 여기에 제가 오래 붙어 있는 게 계획을 성공시킬 확률을 높여 줄 겁니다.”
“하지만…….”
강서준은 단호하게 말했다.
“이미 끝난 얘기잖습니까. 최하나 씨, 너무 걱정 마세요. 제가 누굽니까?”
“……케이죠.”
“네. 이번에도 실패하지 않을 겁니다.”
최하나는 체념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강서준은 김훈과 나도석과도 시선을 마주쳤다.
“그럼 지구에서 뵙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들은 인벤토리에서 우주복을 꺼내어 입었다. 그대로 바깥으로 나가니 곳곳에서 소란이 들려왔다.
우주복은 이 던전과는 너무나도 괴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플레이어, ‘김훈’의 정체가 발각되었습니다. 던전에서 추방됩니다.] [플레이어, ‘나도석’의 정체가 발각되었습니다. 던전에서 추방됩니다.] [플레이어, ‘최하나’의 정체가 발각되었습니다. 던전에서 추방됩니다.]서서히 빛으로 산화하는 일행들.
문득 최하나는 고개를 돌려 강서준을 보고 있었다.
“…….”
모두가 빛으로 산화하고 홀로 남은 강서준은 말이 없었다.
문득 옆에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청승맞네.”
“……뭐야? 다 알고 있다는 그 표정은.”
“정말 모를 줄 알았어? 내가 누군지 잊은 건 아니겠지.”
하기야 이루리는 ‘진실 혹은 거짓’이란 이름으로 거짓된 것을 간파하는 스킬을 갖고 있었다.
그녀 앞에서 거짓말은 통하지 않겠지.
그녀는 강서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적합자. 정말 괜찮겠어?”
“뭐를?”
“적합자가 말한 계획이 거짓이라면 적합자도 던전에 고립된다는 얘기잖아.”
강서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도깨비의 부름’으로 소환한 ‘리자드맨 백부장’을 던전에 두고 빠져나간다는 계획은 불가능했다.
‘던전을 빠져나가는 즉시, 영혼과의 연결이 끊기면서 스킬은 해제될 테니까.’
다른 사람들은 ‘도깨비의 부름’이 어떤 방식으로 운용되는지 잘 몰라서 그리 쉽게 속아 넘어간 것이다.
이루리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대안은 있어?”
“글쎄. 이제부터 알아봐야겠지.”
“없다는 거구나.”
약간 침울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는 이루리를 보면서 강서준은 약간 미안한 감정을 느꼈다.
“다른 사람이 널 깨웠으면 너도 이 던전을 나갈 수 있었을 텐데. 미안하게 됐어.”
“뭘 사과까지야.”
“진심이야. 만약 성물이 살아 있는 존재인 줄만 알았으면 네가 나한테 귀속되는 일이 없게 했을 거야.”
강서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던 이루리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왠지 자조적인 웃음 같은 건 그만의 착각일까.
이루리는 말했다.
“어차피 너 말고는 날 깨울 수 있는 사람은 없었어요.”
“하긴, 파괴 스킬은 나만 갖고 있었으니까.”
그러자 이루리가 고개를 저었다.
“무슨 소리야? 고작 파괴 스킬 하나로 내가 눈을 뜰 수 있을 것 같아?”
“……봉인을 해제하는 방법은 네가 알려 줬잖아.”
“그 얘기가 아니야.”
이루리는 가볍게 혀를 차면서 말했다.
“적합자가 아니었으면 내 자아는 깨어나지도 않았어. 난 오직 한 명에게만 반응하니까.”
“……뭐?”
“모르겠어? 적합자. 난 ‘도깨비왕’인 당신이 아니었으면 고작 ‘아이템’에 불과했을 거라고.”
강서준은 약간 벙 찐 얼굴로 이루리를 바라봤다.
시스템 메시지에도 드러나지 않았던 내용이었다. 그러니까, ‘진실의 성물’이 ‘도깨비’와 관련된 아이템이란 거야?
[NPC, ‘진실의 성물: 이루리’에 대한 정보를 습득했습니다.]이루리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뭐, 그래 봐야 이젠 부질없지. 삭막한 흡혈귀들이 나도는 왕국에 또 갇히게 생겼으니.”
그러고 보면 이루리란 존재는 좀 특이했다. 단순히 NPC이자 아이템이기 때문에 하는 생각이 아니었다.
‘소개팅을 알고 있었지?’
과연 흡혈귀와 싸우던 왕국의 아이템이 알 수 있는 단어일까. 언뜻 한국인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닮은 생김새는 또 어떻고.
이름도 ‘이루리’ 석 자이지 않은가.
이루리는 기지개를 켜면서 말했다.
“에이, 내 팔자가 그렇지 뭐.”
강서준은 그런 그녀를 보며 여러 가지 떠오르는 생각을 접기로 했다. 어쨌든 지금은 그녀의 정체를 파헤칠 때가 아니었다.
그에겐 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다.
“슬슬 내려가 보자.”
그는 바로 지하 마굴로 향했다.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라이칸과 오가닉이 그를 반겼다.
영혼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서로 생각을 공유했고, 어떤 상황인지도 빤히 알고 있는 그들이었다.
라이칸이 결연한 얼굴로 말했다.
“왕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미안해하실 건 없습니다.”
“너 말고 오가닉한테 미안한 건데.”
“……크흠.”
강서준은 쓰게 웃으면서 라이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처음 만났을 땐 덩치도 무지막지하게 커서 위압감만 주는 놈이었는데.
이젠 귀엽기만 하다.
“그래도 함께하는 친구들이 있어 쓸쓸하진 않겠네.”
강서준은 던전 브레이크까지 남은 시간이 이제 초 단위로 줄었다는 걸 확인했다.
그리고 나지막이 리자드맨의 백부장의 영혼을 허공에 흐트러트렸다.
“볼보야. 죽기 딱 좋은 날씨다. 그치?”
강서준은 그렇게 던전에 고립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