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12
◈ 12화
강서준은 귀여운 날다람쥐 인형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레벨 150쯤에 만난 그의 오랜 펫이자, 세 번째 섭종 보상.
「마수 그래고리」
그에게 있어 다른 이름은 고롱이.
‘고롱이는 던전에서 나고 자란 것만 먹는다는 설정이 있었어.’
인간의 음식은커녕 던전 이외의 것은 그 어떤 것도 입에 대질 않는 특이체질을 갖고 있었다.
즉, 고롱이가 무언가에 반응을 가졌다는 건 반드시 그것이 ‘던전’과 관련이 되었다는 건데.
‘왜 여기서 고롱이가 반응을 한 거지?’
이곳은 생존자들이 거주 구역으로 개조한 버려진 플랫폼이었다. 고롱이가 반응해도 될 것들이 있어선 안 되는 장소인 것이다.
‘플레이어에게 반응하는 건가?’
잠시 그렇게 생각해 봤지만 고롱이가 여태 플레이어에게 반응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혹시 스켈레톤이……?’
던전 브레이크로 파생된 스켈레톤이라면 고롱이가 반응할 만했다. 오늘에야 던전에서 나온 따끈따끈한 녀석들이 그 냄새가 오죽 독할까.
하지만 강서준은 그 생각도 접었다.
‘난입했다면 벌써 공격했겠지.’
E급의 몬스터는 지성이 부족하다 못해 없는 수준이었다. 하물며 걸어 다니는 시체일 뿐인 언데드 계열의 스켈레톤이 생각을 할까.
더더욱 뒷일을 생각하지 않는 게 정상이었다.
강서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결국 고롱이가 냄새를 맡았다는 두 가지 가능성을 나타냈다.
‘고롱이의 감각 기능에 이상이 생겼거나, 진짜 이곳에 뭔가가 있거나.’
강서준은 일단 전자에 무게를 두기로 했다. 이 시점에서 활성화 된 고롱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건 어리석은 생각이었으니까.
‘페널티가 적용됐을 수도 있어.’
규격을 벗어난 섭종 보상은 일단 페널티를 먹게 된다. 천무지체의 기능이 전부 봉인됐듯, 고롱이는 본래 능력을 10분의 1도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일지도 몰랐다.
실제로 인형이 되어 버리지 않았는가.
‘고롱이가 가장 자신하던 능력이 마침 후각이고.’
고롱이는 후각을 활용하여 던전을 탐색하거나 숨겨진 아이템을 찾아내는 능력이 탁월했다.
페널티를 받는다면 그 후각 센서부터 건드렸을 것이다.
‘역시 착각일까?’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던 강서준은 문득 사람들의 모습에서 기이한 점을 몇 가지 발견할 수 있었다.
얼굴에 띤 홍조, 가빠진 숨.
낮게 신음을 흘리며 누워 있는 사람들은 단순히 아픈 사람이라고 보기엔 꺼림칙한 증상들이 있었다.
그중 새카맣게 변색된 손톱을 보면서 강서준은 침음을 삼켰다.
‘……그렇게 된 거였군.’
불행하게도 가능성은 후자 쪽으로 추가 기울었다.
***
잠시 후, 생존자 캠프의 한쪽.
사람들은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고 있었다. 대다수의 시선이 오대수에게 고정되었다.
“스켈레톤을 잡으러 간다고요?”
“네.”
“긁어 부스럼이 아닐까요?”
스켈레톤을 사냥하자는 오대수의 주장에 사람들은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유는 E급의 던전으로 무리해서 들어가는 것과 전제부터 다르다는 것이다.
상황이 바뀌었다.
그때는 ‘던전 브레이크’로 파생될 처치 불가 던전인 D급 던전의 생성을 막아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스켈레톤을 피하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상황.
조금만 숨어 지낸다면 스켈레톤은 서울의 곳곳으로 흩어질 것이고, 그들은 위협으로부터 안전해진다.
사람들은 굳이 위험을 감수하며 스켈레톤 사냥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었다.
오대수는 솔직하게 말했다.
“위험하겠죠. 다들 지쳤고, 상대는 무려 E급의 던전 몬스터니까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대수는 잠시 침을 삼켰다가 말했다.
“하지만 필요한 일이에요. 이대로 스켈레톤이 서울로 활보하게 놔둘 수는 없잖아요.”
“그야 그렇지만…….”
던전 브레이크로 파생된 몬스터는 활동 반경에 제약이 없었다. 제멋대로 던전을 벗어난 만큼 어디든 양껏 갈 수 있었다.
오대수는 그런 상황 자체를 막고 싶었다.
“그리고 이건 기회일 수도 있어요.”
“기회요?”
“렙업의 기회요.”
사람들의 시선이 약간 바뀌었다.
레벨 업.
과거라면 게이머를 제외하고는 신경조차 쓰지 않을 얘기였을 테지만, 지금은 달랐다.
레벨 업은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의 요소.
“밖에 있는 스켈레톤은 던전에 있던 놈들과 다릅니다. 많이 약해졌죠.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요.”
“그건 무슨 소리죠?”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어느덧 주목을 이끈 오대수는 차차 말을 이어 나갔다. 또한 마냥 불안해하던 사람들의 얼굴 표정이 다른 색깔을 보이기 시작했다.
“던전 몬스터는 던전 안에 있기에 강해요.”
던전에선 ‘던전의 축복’이라는 몬스터들에게만 적용되는 일종의 버프 효과가 있었다.
같은 등급의 몬스터라도 던전 내부의 몬스터가 한층 더 강한 것이다.
한데 던전을 벗어나면 당연히 던전 버프는 적용될 수 없다. 던전 브레이크로 파생된 몬스터는 전보다 약해지는 것이다.
하물며 지금은 낮.
햇빛이 강렬한 때, 언데드는 전반적으로 약해진다.
‘도합 두 개의 너프가 적용된 거야.’
어쩌면 레벨이 부족한 사람도 고렙의 몬스터를 힘 안 들이고 쉽게 사냥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강요는 하지 않습니다. 목숨이 달린 문제니까요. 선택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어느덧 흐름은 바뀌고 사람들의 의견은 반으로 나뉘었다.
찬성과 반대.
그렇게 ‘스켈레톤 사냥조’와 ‘캠프 방어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강서준은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사냥조를 선택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레벨 업을 할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
햇빛 아래의 스켈레톤은 이동속도도 현저하게 느려졌다. 던전을 빠져나간 몬스터들은 이곳 반주동 반경 안에서 아직 서성이고 있을 확률은 더더욱 높은 편.
그리고 강서준에게 있어 그건 고작 경험치 덩어리들이었다.
3달 동안 튜토리얼 퀘스트에 얽매여 있던 그에게 있어 아주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찾을 것도 있고.’
무엇보다 이쪽이 메인이었다.
“사냥조는 전부 이쪽으로 모여 주세요.”
한편 사냥조의 사람들은 플랫폼을 벗어나기 전에 간단히 소개를 겸한 브리핑을 하기로 했다.
신입이 몇몇 늘어서 필요한 과정이라고 들었다.
먼저 오대수가 화두를 열었다.
“저는 오대수입니다. 다들 알다시피 경찰이고요. 근접 전투는 어느 정도 자신 있습니다.”
강력계 출신인 만큼 움직임 자체는 기민한 편이었다. 아직 레벨이 낮아 창술도 부족하고 그 수준은 모자랐지만…… 잠재 가능성은 누구보다 높았다.
“저는 공지원이고요. 영업사원이었습니다. 지금은…….”
“저는.”
“전.”
단점은 오대수의 자기소개가 잘못된 양식을 만들어 냈다는 점이었다. 그가 TMI처럼 자신의 과거 직업까지 풀어 말한 게 점차 부풀려지고 있었다.
쯧.
이 자리가 MT의 레크레이션 자기소개 시간도 아니고.
이윽고 최하나의 차례가 왔다.
“최하나입니다. 레벨 79. 총 잘 쏴요.”
그것으로 끝이었다.
간단명료하면서도 그녀의 포지션만은 명확하게 알려 주는 소개.
구태여 아이돌 가수였던 과거를 언급하지 않아도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굳이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중요하지 않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말해야 하는 건 앞선 전투에서 그가 무얼 할 수 있는지였다.
오히려 그 이외의 정보는 독이었다.
‘사망 플래그는 세우지 말아야지.’
만약 전장에서 죽기라도 한다면 남은 사람은 어떡한단 말인가. 정은 가능하면 쌓질 않는 게 좋았다.
그리고 다음이었다.
“저는 장기용이라고 하고요. 아버지 회사에서 일했어요. 집은 강남에 하나, 서초구에 하나, 이 일이 터지기 전에는 이 근처에 집을 사러…….”
와, TMI.
오대수 뺨칠 TMI 폭격에 사람들은 금세 지쳐갔다. 흔히 말하는 투 머치 토커. 들으면 들을수록 쓸모없는 정보만은 나열하는 게 참으로 대단했다.
그래도 뽑아낼 수 있는 유익한 정보가 하나 정도는 있었다.
‘나름 드림 사이드 1의 플레이어.’
그도 오대수와 마찬가지로 섭종 보상을 가진 경험자였다. 어째서 그의 복장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유난히 깔끔한 모양인지 궁금했는데.
저 옷 자체가 장비였던 모양이었다.
‘기억나. 저 옷…… 비싸기만 더럽게 비싸면서 효율은 단 1도 없는 이벤트 캐시 템.’
현질이 필요한 아이템이지만 코스튬 이외의 기능은 전혀 없는 옷이었다. 성능 면에서는 깔끔하게 옷차림이 유지된다는 것뿐인 쓸모없는 아이템.
강서준에게 있어 그저 쓰레기나 다름없었다.
“경험자인 만큼 여러분들이 다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만 믿으십쇼!”
겨우 끝난 자기소개.
약간 지친 사람들의 표정을 뒤로하고 만족한 장기용이 물러났다.
다음은 강서준의 차례였다.
먼저 오대수가 입을 열었다.
“자, 다음은 모두 생소하실 텐데요.”
강서준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대수롭게 넘기며 앞으로 나섰다. 대개 그를 몰라보는 눈치였다.
당연했다.
강서준이 전투에 직접적으로 참여한 건 오대수를 구하기 위해 황동수 일당을 처치할 때와 보스 몬스터를 잡을 때뿐.
그는 그저 외부자였고.
쭈욱 방관자처럼 따라만 다녔으니, 애초에 다른 사람의 시선에선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
해서 고민이 됐다.
무어라 자신을 설명할까.
가진 능력? 레벨? 무얼 할 수 있는지?
일단 그가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저는─.”
“혹시 너 강서준이냐?”
장기용이 대뜸 말을 잘라 먹으며 끼어들었다. 하등 쓸모없는 슈트를 뽐내며 그가 말했다.
“맞지? 반주고 강서준.”
“……절 아십니까?”
“알지. 너 꼬질이잖아.”
강서준은 10년 전 어느 기억을 떠올렸다. 그다지 좋은 기억은 아니었지만 선명하게 떠오르는 몇 개의 얼굴이 있었다.
그중 아주 못생겼던 한 놈이 있었는데.
그놈 이름이.
‘설마…….’
“나야, 장기용!”
잊고 지냈던 불쾌한 기억.
강서준보다 한 뼘 키가 커서 한걸음 다가오니 내려다보는 위치가 된 장기용은 만족한 듯 웃었다.
“여전히 꼬질하네. 한눈에 알아봤어.”
장기용은 서슴없이 악수를 청해 왔다. 강서준이 멀뚱멀뚱 바라만 보자 그는 머쓱한 얼굴로 손을 뒤로 뺐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간 살기.
강서준은 미간을 좁히며 대답했다.
“넌 몰라보게 변했네. 그 정도면 환생한 수준인데.”
도대체 얼굴에 얼마를 쏟아부은 거야.
아까 부모님 재산이고 뭐고 하는 얘기는 거짓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저렇게 얼굴을 재건축할 수는 없었겠지.
‘이 정도면 의사 선생님에게 평생 절을 해도 모자랄 거야.’
강서준이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는지 짐작도 못한 장기용은 비열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어떻게 지냈어? 여전히 꼬질한 거 보면 잘산 것 같진 않은데.”
“…….”
“이렇게 있으니까. 네가 내 빵 사 주던 때가 생각난다. 다 추억이야, 추억.”
혼자 상상의 나래에 빠져서 흐뭇하게 웃는 꼬락서니를 보면서도 강서준은 가만히 있었다.
보다 못한 최하나가 나설 때까지도 말이다.
“당신 뭐 하자는 거죠?”
“……네, 네?”
“강서준 씨는 우리의 은인입니다. 당신이 뭔데 은인에게 함부로 막말하는 거죠?”
“은인이라고요?”
최하나는 날카롭게 말했다.
“시시콜콜한 과거사는 됐습니다. 당장 사과하세요. 강서준 씨가 아니었으면 우리는 진즉에 죽은 목숨이었어요.”
최하나는 사나운 눈으로 장기용을 노려봤다. 고렙의 플레이어가 화를 내니 상대적으로 저렙인 장기용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
한편 최하나는 강서준을 돌아보며 표정을 싹 바꿨다. 약간 홍조를 띤 얼굴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이러려고 브리핑을 한 게 아닌데.”
“괜찮습니다. 병신한테는 먹이는 그만 주고 마저 브리핑이나 하죠.”
장기용이 살벌한 눈으로 이쪽을 노려봤다.
“……병신이라고?”
뭐, 어쩔 건데.
시선을 맞부딪친 강서준은 가볍게 혀를 차면서 입을 열었다. 생각해 보면 정작 변하지 않는 건 저놈인 듯했다.
‘10년 전 일인데.’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전의 일을 아직도 들먹이나. 불과 세 달 만에 모든 게 변해 버리는 것이 이 세상이란 건데.
너무 어이가 없어 피식 웃어 버린 강서준은 ‘병신에게 먹이는 금지’라는 인터넷 격언을 떠올리며 마저 브리핑을 이었다.
그가 여기서 할 말은 하나였다.
앞선 전투에서 무얼 할 수 있는가.
생각해 보면 그건 한 단어면 충분했다.
“제가 케이입니다.”
사람들의 눈에 의문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