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121
◈ 121화
강서준은 나지막이 물었다.
“……당신, 누구야?”
말하면서 깨달았다.
백도어.
외부에서 누군가가 프로그램에 개입하도록 만들어 둔 게임 속 정체 모를 비밀 통로.
그렇다면 이곳으로 메시지를 보내 오는 사람이 누군지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계에서 그게 가능한 건 오직 한 사람일 테니까.
‘관리자.’
하지만 상대는 쉽게 정체를 입 밖으로 꺼낼 생각이 없는 듯했다.
강서준의 질문과는 전혀 다른 대답이 돌아왔으니.
[사실 전 당신의 팬이었습니다. 당신이 드림 사이드에서 보여 주던 모든 업적들을 지켜봐 왔죠. 존경합니다.]“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지난번, 로테월드 사건 때 깨달았어요. 당신이 기어코 CMD 영역까지 들어왔었다는 걸.]몇 번인가 문답을 반복해 보니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눈앞의 시스템 메시지는 쌍방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전달될 뿐이라는 걸.
아무래도 강서준의 말은 상대에게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혹시 몰라 백도어를 깔아 뒀습니다. 당신이라면 언젠가 또 이곳에 들어올 것 같았으니까.]슬슬 백도어로 만들어진 공간이 뭉개지기 시작했다. 허공에 금이 가고 그 사이로 검은 물결이 스멀스멀 파고들었다.
이곳도 결국 임시방편이란 거다.
[많은 얘기를 나눌 시간은 없을 겁니다. 백도어의 내구성은 그리 단단하지 않으니까.]그때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0114 채널이 연결되었습니다.] [이동하시겠습니까?]0114 채널?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이 오갔다.
강서준은 침음을 삼키며 이루리와 시선을 교차했다. 그녀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 뿐이었다.
눈앞의 메시지는 여전히 제멋대로 나타나고 있었다.
[세계를 넘으세요. 당신을 기다리겠습니다.]대답을 재촉하는지 메시지는 몇 번인가 깜빡였다. 미간을 한껏 구긴 강서준은 선택해야만 했다.
어차피 선택지는 하나였다.
[#0114 채널로 이동합니다.]강서준은 자신의 몸이 유령처럼 흐려진다고 생각했다. 달에 올라갔을 때보다 훨씬 가벼운 무게감이었다.
아니.
그는 공기가 되고 있었다.
[아이크라는 이름을 찾으세요. 당신이 나아갈 길을 안내해 줄 겁니다.]약간의 구토감이 밀려오면서 엄청난 흡입력이 생겨났다. 동시에 그는 어딘가로 빨려 들어간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정신을 잃지 않으려던 그가 쓰러지기 직전에 한 문장이 눈에 걸렸다.
[당신의 꿈을 이루어 주는 드림 사이드!] [환영합니다. 이곳은 ‘판타지 아일랜드 에어리어’입니다.] [플레이어, ‘케이’가 로그인했습니다.]……뭐?
***
-적합…….
기분이 멍했다.
술에 취한 것처럼 감각이 흐물거렸고 귀에 물이라도 들어갔는지 먹먹한 소음이 주변을 뒤덮었다.
-적합자아아…….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긴 꿈. 결코 깨어나고 싶지 않은 꿈을 꾸는 것처럼 강서준은 더더욱 꿈에 취하고 싶었다.
하지만.
-적합자아아아!
강서준은 귀가 얼얼할 정도로 큰 목소리를 들으며 정신을 퍼뜩 차렸다.
먹먹하던 세상이 허물어지고 점차 현실 감각이 도드라졌다. 생생하게 느껴지는 촉감 속에서 그는 아이러니하게 살아 있다는 걸 확신했다.
그는 머리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으…….”
먼저 그의 시야를 가린 건 메시지였다.
[‘독’에 중독되었습니다.] [스킬, ‘초재생(F)’을 발동합니다.] [누적된 양이 너무 많습니다. 해독할 수 없습니다. 5분 이내에 사망합니다.]쏟아지는 빗줄기에 함유된 건 독.
우주의 방사선도 버텨 내던 초재생 스킬조차 완전히 해독해 내질 못하는 독이었다.
일단 그는 인벤토리부터 뒤적였다.
[상급 HP포션을 사용했습니다.]다행히 멀쩡하게 열린 인벤토리에서 아껴 뒀던 상급 포션을 꺼내어 마셨고, 덕분에 몸을 잠식해 나가던 독들도 서서히 밀려 나갔다.
“후우…….”
강서준은 겨우 한숨을 돌리며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그곳은 사방이 꽉 막힌 작은 동굴이었다.
강서준이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하늘에서 독은 떨어지지. 적합자는 잠꼬대나 하고 있지. 내가 여기까지 적합자를 끌고 오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흐음…….”
이루리의 코트 곳곳은 뻥뻥 구멍이 뚫려 있었다. 독이 함유된 빗방울은 산성도 포함됐던 모양이었다.
강서준은 인벤토리에서 다른 옷가지를 꺼내어 건넸다.
“됐어. 내 스타일 아니야.”
이루리는 약간 지친 얼굴로 말했다.
“그보다 먹을 거 남는 건 없을까? 좀 다쳐서 그런지 허기져.”
“여기에 먹을 게 어디…… 아.”
강서준은 문득 인벤토리 한쪽에 넣어 놨던 가방을 떠올렸다. 바로 꺼내자 그 안에 담긴 각종 주전부리가 눈에 띄었다.
강남역에서 신우현이 감사 표시로 줬던 선물들.
강서준은 그가 좋아하는 취향이 가득 담긴 과자들을 꺼내어 이루리에게 건네줬다.
“뭐야! 적합자! 이런 좋은 게 있었으면서 이제야 꺼낸 이유가 뭐냐고! 혼자 먹으려고 했지?”
“……아니거든.”
“우와아아!”
이루리는 과자를 꺼내 한 움큼씩 집어삼켰다. 와그작와그작 과자 씹는 소리만 나지막이 울려 댔다.
“넌 한 입 먹어 보라는 권유도 안 하냐?”
“……먹을래?”
“됐어.”
대신 강서준은 열량 흡수에 탁월한 에너지바 하나로 만족했다. 초코 함유량도 높고 아몬드도 있어 꽤 든든한 맛이 났다.
츠츠츠츳.
게다가 이루리가 과자를 섭취하는 양이 늘어날수록 그녀의 구멍 난 코트가 원상복구되고 있었다.
아픈 걸 참고 여기까지 그를 끌고 왔을 그녀에게 미안해서라도 뺏어 먹을 생각은 없었다.
“그나저나 정말 여긴 어디지?”
굵은 빗줄기가 주룩 떨어지는 동굴 밖 풍경은 적어도 ‘재앙의 유성’ 속에서 봤던 세계는 아니었다.
적당한 녹림도 있었던 그곳에 비해선 여긴 황량한 황무지에 불과했으니까.
풀 한 포기 자라나지 않은 불모지에 그 혼자 동떨어진 기분이었다.
‘하긴 풀이 자랄 환경도 아니야. 닿는 것만으로도 중독되는 독비가 떨어지는 땅이었으니.’
강서준은 일단 류안을 발동해서 좀 더 정보를 파악하기로 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뭐라도 알아낸다면 생존 확률은 껑충 뛰어오르는 것이다.
[스킬, ‘류안(S)’을 발동합니다.]‘……마력이 불안정해. 폭발할 것만 같은데.’
그래서일까.
종종 땅은 흔들리고 거센 바람이 휘몰아쳤다. 멀리 하늘에선 낙뢰가 우수수 쏟아지기도 했다.
불안정한 마력이 자연에 영향을 줘 재해를 일으키는 듯했다.
다음으로 강서준은 로그 기록도 차분히 살펴봤다.
[칭호 ‘세계를 넘은 자’를 획득했습니다.] [세계를 넘을 때의 충격을 100% 상쇄합니다.]‘세계를 넘은 자라고……?’
확실히 ‘관리자’로 추정되는 인물이 그에게 세계를 넘으라는 말을 했다. 당시엔 몹시 수상했어도 마땅한 방법이 없었으니 일단 선택한 건데.
정말로 세계를 넘었다면.
그럼…… 여긴.
그때였다.
“저, 적합자?”
과자를 집어먹던 이루리가 당황한 얼굴로 한쪽을 가리켰다. 황무지 너머에서 빗줄기를 뚫고 일직선으로 달려오는 커다란 형체를 발견한 것이다.
강서준도 미간을 좁혔다.
‘……켈베로스?’
당황도 잠시.
강서준은 빠르게 채비를 마치고 이루리와 함께 동굴을 벗어났다. 빗줄기가 다시 그를 적셔 독 데미지가 누적됐지만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았다.
크롸아아아아아!
머리만 세 개가 달린 지옥견이 불꽃을 내뿜고 있었으니까.
보랏빛 죽음의 불꽃!
종전까지 몸을 숨길 수 있던 동굴이 통째로 불타오르는 뜨거운 마법이었다.
“……돌겠네.”
지옥의 마수, 켈베로스.
레벨만 300을 넘어서는 괴물.
A급 던전에서나 등장할 법한 몬스터였다.
크롸?
놈의 또 다른 머리가 강서준을 찾아서 털을 바짝 세웠다.
그 입에서 쏘아진 건 세상 모든 걸 얼릴 것만 같은 서늘한 한기였다.
강서준은 날개를 활짝 펴 날아올랐다.
[장비, ‘용아병의 날개’를 발동합니다.] [10분간 자유비행을 할 수 있습니다.]“이루리, 내 손 잡아!”
일단 얼음 광선을 피해 공중으로 날아올랐지만 당장 해결된 문제는 아무것도 없었다.
켈베로스의 등짝에서도 날개가 돋아나더니 비행을 개시했기 때문이었다.
“적합자! 놈이 쫓아온다!”
“알아!”
강서준은 이를 악물고 빠르게 허공을 주파했다. 놈의 세 번째 머리가 크게 입을 벌리더니 벼락을 뱉어 내고야 말았다.
[스킬, ‘위기 감지(A)’를 발동합니다.]가까스로 날개를 접어 벼락을 피해 냈다. 그리고 류안으로 켈베로스의 움직임을 살피며 머릿속에 다양한 전략을 구상해 봤다.
일단 놈은 가짜가 아니었다.
‘진짜 레벨 300대 몬스터…….’
이렇게 도망칠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그 격부터 차이가 나는 몬스터였다.
지금의 강서준이 백날 노력한들 저 몬스터 한 놈을 후려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현재의 강서준이 감당할 수 있는 몬스터는 고작 레벨 200대였으니까.
“적합자!”
하지만 상황은 더욱 최악으로 흘러갔다.
용아병의 날개가 가진 제한 시간도 3분 남짓 남은 시점에서, 한쪽 허공으로 뭔가가 머리를 길게 내민 채로 날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강서준은 그 정체도 파악해 냈다.
‘외눈박이 가고일.’
그의 불행은 한 놈으로 부족했는지 레벨 300대 몬스터가 또 합류한 셈이었다.
강서준은 이를 악물고 협곡 쪽으로 몸을 숨겼다. 날개를 접고 곡예비행을 펼치다 겨우 바닥에 착지했다.
기왕이면 몸을 숨기고 싶었는데.
기이이이이잉!
문제는 가고일의 스킬이었다.
‘역시 음파 탐지를 쓰는구나.’
해서 가고일의 앞에선 은신이 무의미했다. 애초에 저놈은 마왕성에 몰래 숨어드는 놈을 찾기 위해 만들어진 키메라가 아닌가.
숨는 건 불가능했다.
“젠장……!”
예상대로 가고일은 강서준이 있는 방향으로 정확하게 날아왔다.
그 뒤를 따라 켈베로스도 포효하며 무사히 착지했다.
[장비, ‘용아병의 날개’가 해제되었습니다.]진퇴양난의 순간.
“……적합자.”
강서준은 입술을 잘근 깨물며 재앙의 유성검을 꺼내어 앞으로 겨눴다. 전혀 위협조차 안 되는지 켈베로스가 콧방귀를 뀌고 있었다.
이루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적합자. 그간 즐거웠어.”
젠장.
사망 플래그를 세게 밟는 이루리에게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레벨 300대의 몬스터만 둘.
강서준이 아니라 케이의 할아버지가 오더라도 이 상황을 돌파할 방법이 있을까?
제아무리 공략법이 중요한다 한들 절대적인 레벨 앞에선 무의미한 게 현실인데.
“……그래도 쉽게 죽어 줄 생각은 없다고.”
이를 악물고 강서준은 재앙의 유성검을 극성으로 발동시켰다. 블러드 석션이 피를 빨아들이고 이매망량으로 변신하여 더욱 힘을 강화했다.
백귀들도 차례로 꺼내어 전투를 준비시켰다. 이루리도 앙증맞은 주먹을 꽉 쥐었다.
“후우…….”
한숨을 내뱉으며 남아 있던 긴장을 털어 냈다. 그가 각오했고 용기를 내려는 순간이었다.
-……데이터 발견.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축구공만 한 동그란 구슬이 켈베로스와 가고일의 옆에 생겨나 있었다.
기계? 드론?
정체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동그란 구슬에서 눈동자가 하나 나타나더니 켈베로스와 가고일을 노려봤다.
-버그를 제거합니다.
퍼석.
동그란 구슬에서 쏘아진 광선은 켈베로스의 머리 한쪽을 일격에 소멸시켰다. 나머지 머리가 구슬을 공략했지만 수차례 쏘아진 광선이 켈베로스의 몸에 벌집 구멍을 내는 건 금방이었다.
키잇…… 키이이잇!
당황한 가고일이 날개를 활짝 펼치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하지만 구슬이 그 뒤를 쫓아 빠르게 광선을 쏘아 냈다.
퍼서석.
도망치던 가고일조차 먼지처럼 소멸하는 데에 걸린 시간은 몇 초였다.
“…….”
그리고 돌연 구슬은 강서준의 앞에 나타났다. 놈이 강서준의 위아래를 빠르게 스캔했다.
-사용자 식별. ‘플레이어 케이’를 확인했습니다. 데이터가 부족합니다. 정보를 수집합니다.
그러더니 나타날 때처럼 놈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후로도 한참을 덩그러니 서 있던 강서준은 구슬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겨우 긴장을 내려놓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그는 옆에서 덜덜 떨고 있던 이루리와 시선을 마주했다.
“대체…… 뭐였지?”
아무도 답을 할 수 없었다.
난생처음 보는 것이었으니까.
다만 확실한 건 하나였다.
“여기 아무래도 내가 알던 세계는 아닌 것 같은데.”
강서준이 드림 사이드 1으로 전입한 지 불과 1시간 이내에 벌어진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