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123
◈ 123화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젠장! 뭐 이리 빨라?”
“쫓아! 놓치면 안 돼!”
거친 숨을 내뱉으며 어둑한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부서진 잔해를 밟고 뛰어넘으며 전력으로 내달렸다.
“뭐 하는 거야? 고작 어린애 하나 못 잡아?”
“너네 이대로 소멸당하고 싶어?”
김시후는 무심코 푹 꺼져 버린 바닥 때문에 그대로 앞으로 굴러야만 했다. 바닥에 널브러진 날카로운 잔해들이 온몸에 박혔다.
상당히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바로 일어났다. 이대로 쓰러지면 속수무책으로 잡히는 건 예정된 미래.
그는 그 미래를 원치 않았다.
‘잡히면 끝이야.’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반복한 생각을 또 한 번 떠올리며 억지로 다리에 힘을 밀어 넣었다.
죽을힘을 다해 앞으로 내달렸다.
“거기 서!”
쇄애애애액!
불길한 바람 소리.
김시후는 뒤도 안 돌아보고 바로 옆으로 펄쩍 뛰었다. 그가 달리던 자리로 화살이 빠르게 지나쳐 갔다.
아슬아슬했다.
“쳇, 귀찮은 스킬을 갖고 있어!”
“난사해! 쏘다 보면 맞겠지!”
젠장.
그날 괜히 부모님에게 화를 낸 게 잘못이었을까? 친구한테 돈을 빌려 놓고 모른 척 안 갚은 게 문제였을까.
어쩌면 일찍 일어난 것부터 잘못이었는지도 모른다.
‘젠장…… 젠장. 젠장. 젠장!’
플레이어 김시후.
방년 19세.
그가 기억하는 마지막 한국의 모습은 흔한 등굣길이었다.
버스를 타고 50분.
꽤 학교에서 먼 거리에 살고 있는 그는 누구보다 일찍 등굣길에 올라야만 했다.
뭐, 그렇다고 꼭두새벽같이 집을 나설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그가 그날 새벽 6시도 안 돼서 밖에 나온 건, 사실 전날 부모님과 한탕 크게 싸웠기 때문이니까.
‘아들한테 롱패딩 하나 사 주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야? 그게 그리 아까운 일이냐고!’
한때는 그렇게 한탄하면서 부모님의 얼굴도 보기 싫어, 꼭두새벽부터 등굣길에 올랐더랬다.
그리고 새벽 6시.
정확하게 5시 50분쯤에 도착한 새벽 버스를 타고 뉘엿뉘엿 밝아 오는 새벽녘을 볼 즈음이었다.
키릇키릇…….
어디선가 들려온 울음.
김시후는 잠결에 잘못 들은 거라 생각하고 다시 눈꺼풀을 닫았지만, 곧 그의 몸이 갑자기 롤러코스터라도 탄 듯 붕 떠올라 버렸다.
“으아아아악!”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그가 있는 곳은 한국이 아니었다.
“골목이다! 놈이 골목으로 들어갔어!”
김시후는 벽을 박차 올라 쌓여 있는 높은 잔해를 넘어섰다. ‘바람의 정령’이 그를 도왔고 종종 날아오는 화살도 미리 알려 줬다.
하지만 정령술사인 그에게 체력은 늘 부족한 법.
“헉, 헉, 허억…….”
마나도 거의 다 떨어졌고, 정령을 유지할 힘도 없었다. 곧 그의 정령들이 아쉬운 얼굴로 눈앞에서 사라졌다.
김시후는 토할 것 같은 기분을 밀어내며 앞을 가로막은 벽을 바라봤다.
작은 마나라도 남았다면…….
그는 여길 넘었을 것이다.
‘아니야. 어제 내가 피곤하다고 일찍 잠들지만 않았으면.’
레벨을 조금이라도 올려 뒀다면.
아니, 아니, 아니.
그날 부모님과 싸우지만 않았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도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김시후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후우…… 쥐새끼 같은 놈. 이제야 멈추는구나.”
뒤를 돌아보니 승냥이 떼처럼 모여든 수십의 NPC들이 보였다.
NPC라…….
본래라면 게임에서 플레이어에게 도움을 청하고, 또한 보상을 지급할 뿐인 인물들.
그리고 퀘스트나 쥐여 주던 이놈들에게 쫓기는 건 어느덧 이 세계에선 가장 흔한 일이었다.
‘하필 광신도들에게 걸리다니!’
NPC도 NPC 나름이다.
특히 드림 사이드란 게임에서 NPC의 자유도는 상당히 높았고, 악 성향 NPC들은 종종 플레이어들을 곤란에 빠트리곤 했다.
물론 눈앞의 NPC들이 악 성향이라면 그건 또 아닐 것이다.
“순순히 운명을 받아들여.”
“……젠장.”
“우리도 젠장이야. 너희 때문에 이게 다 뭔데?”
광신도의 성향엔 선과 악이 없다.
한마디로 저들 중엔 이전에 플레이어와 꽤 친했던 NPC도 있고, 사이가 나빴던 NPC도 있다.
이유는 간단했다.
NPC들도 결국 먹고살기 위해서 ‘플레이어’를 사냥하는 것이다. 해서 ‘그들’에게 바쳐야만 한다.
“이런다고 너희들을 정말 그들이 살려 줄 거라고 생각해?”
“시답잖은 개소리로군.”
“그들이 정말 너흴 지켜 줄 것 같냐고.”
하지만 광신도들이 괜히 광신도라 불릴까. 저들은 뼛속 깊이 생존을 위해서 자신의 신념 자체를 갈아 버린 자들이다.
씨알도 안 박힐 말들이었다.
“됐고. 잔챙이는 이만 잡혀 주시지.”
그때 김시후는 눈치껏 옆으로 뛸 수 있었다. 작은 구멍이 보였고, 그쪽으로 도망칠 심산이었다.
쇄애애액!
“끄으윽……!”
문제는 그에겐 마나가 바닥이었고, 주특기인 정령술은 전혀 시도조차 할 수 없다는 점.
광신도가 쏘아 낸 화살이 김시후의 다리를 꿰뚫었다. 아킬레스건을 정확하게 노린 걸로 보아 아예 도망칠 생각조차 없앨 속셈이었다.
그럼에도 김시후는 절뚝이며 도망치려 했다.
“이대로 잡힐 수는…….”
그러자 광신도 중 한 명이 한숨을 길게 내뱉으며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는 김시후의 등을 걷어차 바닥에 나뒹굴게 만든 뒤, 그의 등을 발로 밟으면서 말했다.
“왜 플레이어들은 끝을 모르는 걸까.”
아득바득 일어나려는 김시후와 그를 짓밟고 선 NPC의 모습.
몇 번이나 더 반복하려니 NPC가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가만히 좀 있으라고!”
퍼억!
복부를 걷어차이니 숨이 안 쉬어졌다. 꺽꺽대는 사이 의식이 점차 흐려졌다.
김시후는 문득 과거를 보고 있었다.
숱한 후회 속에서 살아온 나날.
이런 식으로 죽게 될 줄은 몰랐다.
‘제발…… 한 번만. 딱 한 번의 기회만 있다면.’
그는 올바른 선택을 하고 싶었다.
롱패딩이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그딴 게 없어도 부모님과 화목하게 잘 지낼 수 있었다.
친구에게 빌린 돈?
다 갚을 거다.
그래. 제발, 제발 신이 있다면.
간곡한 마음으로 빌어 봤지만 김시후는 이 세계의 신 따위는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신이 이 세계를 이딴 식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일.
결국 그가 NPC에게 잡혀서 소멸하는 이유도 신의 뜻일 것이다.
“쯧. 완전히 맛이 갔군.”
김시후는 발작을 일으키는 정신을 겨우 붙잡으며 눈을 부릅뜨고자 했다. 하지만 보잘것없이 떨어진 HP 총량이 끝을 가리키고 있었다.
남은 힘은 없었다.
그렇게 두어 번 숨을 헐떡일 즈음.
쿠우우우웅.
눈앞으로 기적이 당도했다.
***
강서준은 미간을 구기며 일단 상황을 관망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플레이어의 등장.
그리고 정체 모를 NPC들의 모습.
여태 만나지 못했던 사람과의 재회의 기쁨보다도, 그들이 갖고 있는 미스터리가 그를 멈추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강서준은 조심해야 했다.
‘당장이라도 도와주고 싶지만 NPC들의 수준을 알지 못하면 오히려 내가 당한다.’
여긴 서울이 아니었다.
드림 사이드 1에서도 블랙 그라운드를 접경에 둔 최전선, 알론 제국의 도시 ‘카누비스’였다.
그곳에서 만난 NPC는 과연.
어쩌면 300레벨의 켈베로스 따위를 가뿐히 물리칠 정도의 강자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난입은 위험한 짓이다.
‘……그나저나 플레이어라.’
발목에 화살이 꽂히고 가까스로 버티는 학생이었다. 그가 입은 교복은 그의 기억 속에도 남아 있는 서울의 한 고등학교의 옷.
과연 이 사람은 어떻게 여기에 있을까.
혹시 플레이어들 중 드림 사이드로 난입한 경우가 또 있는 걸까?
하기야 강서준만이 특별하진 않을 것이다. 그가 이곳에 왔다면 또 다른 누군가 이곳으로 흘러들어 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대체 얼마나…….’
강서준은 미간을 구기며 일단 생각을 접었다. 관련된 내용은 꾸준히 생각해 봐야겠지만 당장 중요한 건 이게 아니었다.
[스킬, ‘류안(S)’을 발동합니다.]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본 결과, 골목 어귀에 소년을 포함한 NPC들의 숫자는 도합 15명이다.
다행히 수준은 높지 않았다.
얼추 200레벨?
물론 그조차 서울의 그 누구보다도 강했지만, 강서준에겐 대단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일단…… 오가닉, 라이칸, 로켓.’
강서준은 감투 속에서 숨어 있던 백귀들을 소환했다. 의사소통은 생각으로 통했기에 백귀들은 금세 수긍하며 원하는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타이밍을 조율했다.
‘3, 2, 1…….’
마음속으로 0을 떠올린 순간.
[장비 ‘도깨비 왕의 반지’의 전용 스킬, ‘도깨비의 부름’을 발동합니다.]강서준의 손끝에서 도깨비불이 화려하게 타올랐다. 동시에 사방에서 우후죽순 푸른 빛깔의 몬스터가 생성되고 있었다.
몬스터들이 일제히 포효했다.
“뭐, 뭐야?”
“몬스터? 이곳에 아직 몬스터가 남아 있다고?”
“리자드맨이 왜 여기서 나와?”
당황한 NPC들이었지만 그들의 수준으로는 가히 애들 장난에 불과했다. 물론 강서준도 저렙의 영혼들로 뭔가를 할 생각은 없었다.
‘눈속임만으로도 충분해.’
강서준은 빠르게 아래로 떨어져 내리며 학생의 머리를 짓밟던 NPC의 등에 재앙의 유성검을 찔러 넣었다.
[칭호, ‘기습의 선수’를 발동합니다.] [기습에 한하여 공격력의 2%가 증가합니다.]“커흑……!”
아쉽게도 일격으로 죽이진 못했다.
레벨 200대 NPC는 강서준과 비등한 전투 실력을 가졌다고 보면 되는 이들.
강서준은 호흡을 길게 내뱉으며 이미 의식을 잃은 학생을 들쳐 멨다. 극성으로 발동한 초상비로 건물의 외벽을 번갈아 걷어차며 금세 옥상 위에 다다랐다.
“저놈도 플레이어다!”
“잡아!”
“젠장! 뭐야? 이 리자드맨들은!”
강서준은 위로 올라서자마자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로켓의 등 위에 학생을 올려 태웠다.
그리고 로켓은 예정대로 빠르게 발을 굴려 전장을 벗어났다.
“빌어먹을…… 반드시 잡아!”
“쫓으라고! 쫓아! 젠장!”
이후로 NPC들도 건물을 박차고 올라왔지만, 그들이 로켓을 따라갈 틈은 없었다.
“크헉…… 뭐야? 이놈은!”
“도깨비야! 도깨비라고!”
[장비 ‘도깨비 왕의 감투’의 전용 스킬, ‘이매망량’을 발동합니다.]한 마리의 도깨비가 된 그는 쫓아오는 NPC들을 향해 도리어 공격을 가했다.
초상비와 류안을 발동시켜 그를 쫓아 옥상으로 올라오려던 NPC들을 공략했다.
쿠구구궁!
또한 오가닉과 라이칸도 합을 맞추어 NPC들의 시야를 교란했다.
합을 많이 맞춰 본 적도 없는 데도 둘은 마치 한 몸이라도 된 듯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한 놈이 아니야!”
“낙원에서 나온 건가?”
“……그분을 불러!”
요란스러움도 잠시.
레벨 200대의 NPC들은 금세 사태를 파악하고, 뭔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눈살을 찌푸린 강서준은 그들의 마력이 기묘하게 뒤틀리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흐름은 익숙했다.
‘저건 분명히 그때 그…….’
불현 듯 블랙 그라운드에서 켈베로스와 외눈박이 가고일이 소멸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때도 저런 흐름을 가진 존재가 있었다.
츠츠츠츳.
입술을 잘근 깨문 강서준이 건물을 박차고 놈들에게 접근했다. 그를 막아서려는 놈들을 겨우 따돌릴 수야 있었지만.
츠으으읏!
-데이터를 발견했습니다.
그들에게 접근하기도 전에 그 사이로 동그란 구슬이 떠오르고 말았다.
-사용자 식별, ‘플레이어 케이’로 확인되었습니다.
숨이 막힐 듯한 긴장감 속에서 구슬 위로 메시지가 연달아 떠올랐다.
-식별 코드 0. 최우선 제거 목록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동그란 구슬이 서서히 눈을 뜨고 있었다. 그 속에 담긴 알 수 없는 감정이 소름이 끼칠 정도로 고스란히 강서준에게 향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잘려 나가는 기분이었다.
-플레이어 케이. 데이터를 삭제합니다.
눈앞으로 광선이 발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