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125
◈ 125화
[연결 중입니다.] [연결 중입니다.] [연결 중입니다.]폐허가 된 도시를 내려다보며 미간을 구기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아직 답신이 없어?”
“네…… 한 번 더 해 보겠습니다.”
남자는 고요해야 마땅한 몰락한 도시에서 들려오는 폭음에 입술을 몇 번이나 짓씹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광신도가 그들보다 한 걸음 더 빨리 ‘플레이어의 접속 시그널’을 알아차렸고.
그로 인해 안내자로 붙여 둔 플레이어들이 불의의 습격을 당해 뿔뿔이 흩어지게 될 줄이야.
“괜찮을 겁니다. 그 녀석…… 바람의 정령을 다루잖아요. 도망치는 건 누구보다 잘합니다.”
“그야 그렇지만…….”
“게다가 나이는 어려도 이곳 짬밥은 우리보다 길잖아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하지만 남자의 미간은 좀처럼 펴지질 않았다.
왜냐면 광신도에게 쫓기고 있는 ‘김시후’가 무사히 도망쳤다면 그들의 연락을 씹을 일은 없을 터였고.
폐허가 된 도시에서 폭음이 계속 들려올 이유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GPS 신호는 폭음과 반대 방향이란 건데…….’
남자는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얼른 쫓읍시다. GPS 신호가 멈춘 걸 보면 아무래도 숨어 있는 것 같으니까.”
그렇게 GPS 신호를 따라서 근방을 수색하던 일행은 오래 걸리지 않아 일련의 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한데 문제가 있었다.
“……몬스터? 리자드맨?”
잔뜩 경계성을 토해 내며 노려보는 한 마리의 커다란 도마뱀과, 그 곁을 지키는 신원 불명의 여자.
복장과 외모만 봐선 ‘한국인’이 분명했다. 혹시 최근에 이 근방에 떨어진 ‘플레이어’인 걸까?
그녀가 말했다.
“당신들 뭐야?”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남자는 리자드맨의 등에 피로 칠갑한 채로 쓰러진 김시후를 발견했다. 살아 있는지도 확인하기 어려운 몰골이었다.
“그 아이…… 살아 있습니까?”
“아, 얘 동료야?”
“그렇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로켓아. 괜찮은 것 같아.”
여자가 도마뱀의 머리를 쓰다듬자, 신기하게도 몬스터는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꼬리를 내리면서 몸도 같이 낮췄다.
여자가 말했다.
“뭐 해? 안 데려가?”
“아.”
남자는 빠르게 다가가 김시후부터 받아 들었다. 다행히 피가 난 상처는 전부 자잘한 것들이었다.
이 정도면 포션 치료로도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었다.
남자는 김시후를 동료들에게 넘긴 뒤, 조심스레 여자를 향해 물었다.
“당신이 최근에 이 근처로 접속한 플레이어입니까?”
“응?”
“반갑습니다. 전 이곳에서 수색 및 탐사를 담당한 나한.”
“잠깐.”
여자는 말을 끊더니 사람들을 돌아봤다. 그리고 조금 심각한 얼굴로 그들에게 말했다.
“그보다 도와줘야 할 게 있어.”
“……?”
“지금 이 도마뱀 표정을 봐. 똥줄이 길게 탄 얼굴이지 않아?”
“……네?”
여자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인사는 나중에. 우선 날 도와줘야겠어. 그러면 너희들이 찾는 ‘최근에 접속한 플레이어’에게도 안내해 줄 테니.”
“……그게 무슨.”
“내 이름은 이루리. 보이는 것처럼 거짓말 따위 할 줄 모른다고.”
그러더니 여자, 아니 이루리는 로켓의 등에 훌쩍 올라탔다. 도마뱀은 잔해들을 밟고 재빠르게 움직였다.
조금 앞서 나간 그녀는 잠시 멈춰 서서 뒤돌아보더니 말했다.
“빨리 와. 급하니까.”
남자는 일단 그 뒤를 쫓기로 했다.
***
쿠우웅!
콰앙!
쿠아아앙!
그리고 현재.
폐허가 된 도시에서 묘한 느낌을 자아내는 소녀, ‘이루리’를 따라 이동한 남자는 호수를 앞두고 있었다.
그들은 약간 벙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봤어?”
“응. 분명 2단계였어.”
“어떻게 2단계가 등장했지?”
남자도 뭐라 말을 잇지 못하고 헛웃음을 흘렸다. 대관절 저 사내가 누구이기에 ‘2단계’로 그 수준이 격상된 걸까.
‘2단계는 자고로 레벨 400대부터 등장하는 개체인데.’
그사이 물속으로 첨벙 뛰어든 사내와 2단계 모드로 접어든 그놈의 모습이 보였다.
그 후로 벌어진 일은 더욱 터무니없었다.
“……저런 고전적인 방법이 통하다니.”
“하긴 메커니즘은 비슷해.”
솔직히 감탄스러울 정도였다.
데이터를 소멸시키는 개체를 공략하는 방법은 그보다 더 많은 데이터를 주입시켜 ‘과부하’를 거는 것뿐.
그걸 공식화해서 무기로 바꾼 게 최근 드림 사이드에 전입한 플레이어들의 가장 큰 전적이었다.
하지만 저 사내는.
‘아마도 가장 최근에 접속한 플레이어겠지.’
수많은 플레이어가 머리를 맞대어 겨우 만들어 낸 공략법을 그는 단 며칠 만에 떠올린 것이다.
“허…… 결국 통했군.”
누군가가 헛바람을 내며 수위가 잔뜩 줄어든 호수를 내려다봤다. 물 먹은 구슬은 더 이상 움직이질 못했다.
‘과부하 직전’이라는 증거!
남자는 미간을 구기며 사태를 관망했다. 고전적인 방법이 통해서 신기했지만 사태가 끝난 것 같질 않은 것이다.
“어? 어어? 저거 설마!”
“……3단계라고?”
구슬이 점차 형상을 갖추고 인간의 모습을 했다. 저놈이 3단계의 모습을 갖춘다는 건 그만큼 진심이라는 뜻이었다.
또한 상대를 그만한 괴물로 인식했다는 증거였다.
‘용을 상대로 해야 겨우 3단계에 진입하던 놈인데…… 도대체 저 남자는 누구지?’
그때 놈이 말했다.
-케이. 널 과소평가했군.
순간 숨이 막히는 줄 알았다.
남자는 눈을 부릅뜨고 플레이어로 추정되는 사내를 눈여겨봤다. 저 복장, 저 얼굴…… 그래, 틀림없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확실해. 들었던 정보 그대로야.’
거기까지 생각하니 모든 순간들이 쉽게 납득이 되었다.
2단계? 3단계?
케이를 상대하려면 확실히 그 수준은 격상될 법했다.
남자는 인벤토리에서 기다란 총을 꺼내었다. 3단계로 변한 녀석이 손을 앞으로 내뻗는 순간이었다.
-나는 조정하는 자. 악성 프로그램을 단죄하고 꼬여 버린 찌꺼기를 정리하도록 만들어진 존재.
남자는 바로 특수 탄환을 장전하며 전투를 준비했다.
자칫 잘못하면 그를 포함한 모든 플레이어가 사살당하는 건 순식간일 테지만 망설임은 없었다.
왜냐면 그는.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남자는 빠르게 호수를 향해 내달렸다. 그 뒤를 따라 플레이어들도 각자 총알을 장전해서 남자의 뒤를 쫓았다.
말하지 않아도 남자의 의도를 다들 알고 있는 눈치였다.
-나는 이 세계의 백.
더 길게 들어 줄 것도 없지.
타앙!
창졸간에 쏘아 낸 그의 총알이 놈의 머리를 저격했다. 하지만 총알은 닿기도 전에 소멸했다.
‘역시 안 통하네. 다음은…….’
놈이 느릿하게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진득한 살기가 묻어나기에 소름이 끼쳤지만 플레이어들의 사격은 이제 시작이었다.
타타타탕!
남자도 다시 장전했다.
타아앙!
이번엔 효과가 조금 있었다. 남자는 그 미세한 변화를 확인하고 빠르게 총알을 재장전했다.
-너, 너, 너, 너는 누, 누구, 누구냐, 가, 가감, 감히, 이, 이, 이런, 이런, 이런 걸 만들.
놈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리고 온몸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모든 걸 소멸시키는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놈의 최후라기엔 가히 기괴했다.
남자는 무심하게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시끄러워. 백신 새끼야.”
타아앙!
쏘아진 총알과 함께 백신은 그대로 눈앞에서 소멸했다. 그가 가진 특수 탄환의 특별한 힘이었다.
남자는 참았던 숨을 토해 내며 뒤를 돌아봤다.
그를 바라보고 있는 ‘케이’가 그곳에 있었다.
“……강서준 씨?”
“네?”
“반갑습니다. 여기서 이렇게 만나 뵙게 되는군요.”
강서준은 남자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 하지만 그가 남자를 알아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왜냐면 그들은 오늘 처음 만났으니까.
강서준이 물었다.
“절 아십니까?”
“물론이죠. 케이시잖아요.”
“그건 어떻게…….”
“유명하잖아요?”
그러더니 남자는 손을 앞으로 내밀면서 말했다.
“전 아크의 정보부 소속 대위 ‘나한석’이라고 합니다.”
***
대위 나한석.
얼굴 한 번 본 적은 없지만 들어 본 적은 있는 이름이었다.
강서준은 지상수의 말을 상기하며 나한석과 시선을 마주했다.
‘분명 로테월드에서 실종된 김강렬 대위를 찾아 달라는 의뢰를 맡긴 사람이었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롤백된 로테월드에서 만났던 아크의 또 다른 구조 팀. 그들의 대표가 바로 ‘나한석 대위’였다.
“근데 당신이 어떻게 여기에 있습니까? 어쩌다가…….”
“말하자면 깁니다.”
그러면서 나한석은 주변을 살피더니 스마트폰을 꺼내어 뭔가를 확인했다.
“광신도들이 돌아오고 있어요. 여기서 얘기를 나눌 여유는 없겠군요. 일단 같이 이동하시겠습니까?”
강서준은 두말할 것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일단 따라갈 생각인데, 아는 사람이니 더욱 마음은 편했다.
“저희들의 도시로 모시겠습니다.”
“……도시가 남아 있습니까?”
“드림 사이드 1에 있는 또 다른 아크라고 할까요. 그곳으로 가면 이곳보다는 안전할 겁니다.”
나한석은 카누비스의 동쪽, 블랙 그라운드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곳을 빠져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강서준의 입장에선 약간 기함을 토할 일이었으나, 딱히 투정은 부리지 않았다.
결국 강서준은 블랙 그라운드의 앞에 다시 다다를 수 있었다.
이루리가 낮게 중얼거렸다.
“적합자…… 나는 데자뷔를 느끼고 있어.”
“조용히 해.”
어쨌든 저들이 저토록 당당히 블랙 그라운드로 걸어가는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적어도 이들은 강서준보다 섭종한 세계에서 더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이니까.
경험자들의 말은 무시하는 게 아니다.
예상대로 이들은 재난으로부터 완전히 안전할 수 있는 방법을 이미 구비해 둔 상태였다.
“잘 따라오세요. 그리고 기억해 두시길. 앞으로 자주 이용할지도 모르니까요.”
블랙 그라운드에서도 끝자락.
정확하게 알론 제국의 변경과 맞닿는 접경. 나한석은 그 애매한 지점을 따라 걸었다.
“재난이 많지 않은 변경엔 몬스터가 없습니다. 아무렴 백신을 피해서 재난 속에 숨은 놈들이니까요.”
강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실제로 그는 블랙 그라운드를 벗어난 이후로 단 한 마리의 몬스터도 만나지 못했다.
초고레벨 몬스터를 만날까 전전긍긍했던 나날이 허무할 정도로 말이다.
결국 몬스터는 블랙 그라운드를 빠져나오질 못하는 것이다.
나한석은 씁쓸하게 말했다.
“아마 이곳 블랙 그라운드에 남은 몬스터가 드림 사이드 1에서 생존한 유일한 개체일 겁니다. 그 이외의 구역에선 더는 몬스터를 찾을 수 없으니까요.”
그 많던 몬스터가 어디로 갔을까.
구태여 물어볼 것도 없었다.
답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나저나 광신도는 뭡니까?”
“아, 그 NPC들 말이죠.”
“네. 제가 보기엔 그들이 플레이어를 공격하는 데엔 모종의 이유가 있는 듯했는데요.”
나한석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불쌍한 자들입니다.”
“네?”
“세계로부터 버려진 자들이니까요.”
광신도.
드림 사이드 1에 남은 NPC들 중에서도 생존을 위해서 시스템에 굴복한 이들.
그들의 행동 원칙은 하나였다.
“그들은 그저 살기 위해서 발버둥 치고 있는 겁니다. 플레이어를 시스템에게 바쳐서 목숨을 구걸하는 거죠.”
누가 시작한 일인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NPC들은 플레이어를 잡아서 백신에게 넘겨주는 일을 수행한다. 그리하면 시스템이 그들을 살려 줄 거라고 굳건히 믿는다는 것이다.
나한석이 몇 번 설득해 보려 했지만 영 소득은 없었다고 했다.
“강서준 씨도 놈들을 만나면 조심해요. 특히 구슬을 소환하기 전에 쓰러트리는 게 최고죠.”
그리고 걸음을 멈춘 나한석은 일단 한숨을 돌리고 강서준을 바라봤다.
“그럼 바로 도시로 이동하겠습니다.”
“……여기서요?”
“네.”
하지만 블랙 그라운드의 접경을 따라 도달한 그곳은 멀리 수평선이 펼쳐진 바다만이 보이는 절벽.
세상의 끝.
드림 사이드의 동쪽 끝에 있는 이 바다였다. 대체 ‘도시’랄 만한 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나한석은 허공을 향해 한 걸음 내디디면서 말했다.
“9와 4분의 3번 승강장을 아십니까?”
“네?”
“그곳에서 뵙겠습니다.”
나한석이 눈앞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