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127
◈ 127화
“일단 우리가 상대하는 적이 무언지 먼저 이해하는 게 빠를 겁니다.”
나한석은 대뜸 스마트폰을 꺼내어 사진을 몇 장 보여 줬다. 첫 장엔 눈동자 같은 구슬 녀석이 찍혀 있었다.
“우린 이놈을 1단계 형태라고 말합니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혼자서 레벨 300대 몬스터도 감당해 내는 괴물이죠.”
켈베로스나 외눈박이 가고일이 저항 한 번 못 하고 소멸했던 장면이 아스라이 떠올랐다.
그게 고작 1단계.
“그리고 이게 2단계 모습이죠.”
카누비스에서 날개가 돋아났던 구슬의 모습부터 다양한 형태를 한 구슬들이 있었다.
어떤 놈은 덩치만 대단히 컸다.
또 어떤 놈은 크기는 작았지만 그 숫자가 수십 개로 분열되어 있었다.
나한석은 혀를 차면서 말했다.
“2단계부터는 형태 변화란 걸 합니다. 상대하는 적의 수준에 맞추어 진화하죠.”
해서 어지간해선 2단계의 수준까지 올라가진 않는다고 했다.
애초에 그 정도에 이르려면 못해도 레벨만 400을 넘겨야 하니까.
“해서 저도 많이 놀랐습니다. 2단계를, 그것도 갓 전입한 플레이어를 상대로 보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요.”
강서준은 쓰게 웃었다.
레벨 400대 몬스터라…….
그런 괴물에 맞추어 진화한다는 백신이 대관절 왜 강서준을 상대로 2단계 진화를 거듭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이었다.
혹시 ‘케이’라는 유명세 때문일까.
“그리고 이놈이 3단계입니다.”
한눈에 봐도 완전한 사람의 형태였다. 강서준은 이놈을 잠깐이지만 실물로 봤고, 그 강함을 직면했다.
“이놈은 어느 정도죠?”
“혼자서 용도 때려잡아요.”
“……S급.”
“네, 그러니 이번엔 운이 좋은 겁니다. 기습으로 어렵지 않게 처치할 수 있었으니까.”
만약 기습으로 처치하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S급 용을 죽인다는 백신이 본격적으로 공격을 감행했다면?
강서준은 밀려오는 두통을 느꼈다.
문제는 나한석의 말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보다 높은 진화 단계가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저조차 본 적은 없습니다.”
“용보다 높은 수준이라고요.”
“네. 이곳은 드림 사이드 1이니까요.”
맞는 말이었다.
용…… 물론 상당히 강한 놈들이지만 이 게임이 섭종을 할 즈음엔 충분히 공략 가능한 개체였다.
슬슬 S급 던전의 공략법도 익히 알려진 뒤였으니까.
나한석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아시다시피 이놈들, ‘백신’이라 불립니다. 이미 서비스가 종료된 세상에서 꾸역꾸역 살아가는 ‘찌꺼기’를 지우려고 나타난 존재들.”
“……꽤나 표현이 적나라하군요.”
“틀린 말은 아니니까요. 저들의 입장에서 우린 버그일 따름입니다.”
강서준은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닿는 것들은 모조리 소멸…… 아니 삭제시키는 놈들이 ‘백신’이라면, 그 반대에 위치한 이들은 ‘버그’라 불려도 하등 이상할 게 없다.
다소 불쾌하더라도 현실이었다.
이미 서비스가 종료된 세계…….
종말된 세계를 살아간다는 건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힌트를 얻었죠.”
“……네?”
“우리의 처지를 이해하고 상대를 인정하니, 그제야 적을 상대하는 방법을 알겠더라고요.”
나한석은 총에서 탄알집을 제거하더니 그 안에 장착된 총알을 보여 줬다. 자세히 보니 빼곡하게 무언가가 가득 적혀 있었다.
“이것이 우리가 찾아낸 답이자, 우리를 지켜 줄 유일한 힘입니다. 무언지 아시겠습니까?”
강서준은 미간을 좁히며 총알을 살펴봤다.
상대가 백신, 그들이 버그이기에 찾아낸 유일한 무기라.
강서준은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헛웃음을 삼켰다. 백신에게 치명적일 게 뭔지 생각해 보면 간단한 문제였다.
“……바이러스군요.”
“네. 정확히는 ‘자가 복제 바이러스’입니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복제해서 데이터를 폭주시키죠.”
“과연…….”
구슬 형태의 1단계 백신은 고작 호수에서 무수한 데이터를 주입당해 ‘렉’이 걸렸다.
3단계로 각성한 덕에 쓰러트리진 못해도, 2단계까지만 해도 호수 작전은 성공이었다.
‘자가 복제 바이러스는 끝없이 스스로를 복제해서 데이터양을 부과시킬 거야. 말 그대로 백신에겐 치명적인 독이겠어.’
바이러스로 인해 백신의 데이터 삭제 총량을 넘기는 일.
그게 버그가 되어 살아남은 플레이어와 낙원의 NPC들이 찾아낸 생존법이었다.
“흥미롭군요.”
서비스가 종료된 세계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무기가 아닌가.
나한석은 다시 탄알집을 장착하며 말했다.
“우리도 우연히 발견한 기술입니다. 낙원엔 생각보다 많은 게 숨겨져 있었으니까요.”
낙원은 일종의 관리자가 남긴 안배였다.
섭종 된 이후의 세계에서 지도에도 드러나지 않는 마을. NPC의 기억을 봉인할 수도 있는 특이한 아이템이 숨겨진 장소.
그런 곳이 일반적인 게임 시스템일 리는 없다.
결국 강서준이 재앙의 유성에서 ‘백도어’를 발견했듯, 플레이어나 NPC는 멸망한 세계에서 이곳을 발견한 것이다.
거기서 백신과 싸울 무기를 찾아내고, 활용법을 연구해서 실사용하는 단계까지 다다른 것이고.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총을 직접 쏴 보면서 바이러스를 다루는 법을 익히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지금은 좀 어렵습니다.”
“괜찮습니다.”
양해를 구하던 나한석은 조심스레 강서준을 바라봤다. 그는 잠시 머뭇대다가 물었다.
“혹시 서울의 소식을 알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구체적으로 어떤…….”
“아크요. 아직 멀쩡하죠?”
불안한 듯 떨리는 그의 시선을 보며 강서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을 것이다. 지금쯤 달이 추락하고 있을 테지만 아마 무사하겠지.
“멀쩡할 겁니다. 사소한 문제가 남아 있지만 그조차 해결 못 할 이들이 아니니까.”
김훈, 나도석, 링링, 최하나…… 유능한 플레이어들이 고작 2회 차 공략이 진행되는 던전을 실패로 마무리할 리가 없었다.
강서준이 없더라도 충분히 해낼 것이다.
믿을 수 있었다.
나한석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말했다.
“정말 다행이네요. 하아…….”
“그나저나 나한석 씨는 이곳에 대체 언제 유입된 거죠? 듣기론 플레이어들의 유입 시기는 전부 다른 듯하던데.”
“전 아마 로테월드가 소멸되고 2주 정도가 지났을 쯤입니다.”
나한석은 소멸한 로테월드에서 관련 정보를 조사하고, 탐색하던 중 알 수 없는 ‘웜 홀’에 빠졌다고 한다.
그가 괜히 9와 4분의 3번 승강장이랍시고 장난을 치는 이유가 그곳에 있었다.
“……고생이었겠군요.”
“네. 아무래도요.”
대화는 길게 이어졌다.
이후로도 경험담을 섞어서 한참을 떠들던 나한석은, 달이 뉘엿뉘엿 사라지고 아침 햇살이 창가를 밝힐 즈음에야 그의 숙소로 돌아갔다.
**
다음 날.
거의 밤을 새운 주제에 체력도 많은지, 아침 일찍부터 회의까지 마친 나한석은 다시 강서준을 찾아왔다.
바이러스를 이용한 총기 활용법을 알려 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강서준은 나한석을 따라 낙원의 한쪽에 마련된 비밀 훈련장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오늘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강서준 씨의 능력을 파악하기 위함이죠. 새로운 플레이어의 등장이니 다들 대충 이해하고 넘어갈 겁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입성한 훈련장은 생각보다 말끔했다. 본래 드림 사이드 1의 세계관이던 ‘판타지’는 도통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새하얀 벽면으로 둘러싸여 있는 게 또 신기했다.
갑자기 SF 영화 속에 들어온 기분이네.
“이게 다 뭡니까?”
“보기와는 다르게 훈련장입니다. 어쩌면 백신을 상대하기 위해 만든 바이러스 연구소라고 봐도 되고요.”
방 한가운데엔 덩그러니 투명한 유리방이 있었는데, 그 안엔 구슬 하나가 두둥실 떠 있었다.
강서준이 물었다.
“이놈…… 진짜입니까?”
“진짜처럼 만든 가짜죠.”
터무니없지만 나한석은 서울에서 컴퓨터를 조작하듯, 기계를 만져 유리방의 문을 열었다.
판타지 세계관이던 드림 사이드 1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강서준은 나한석이 건넨 총을 받아 들었다.
“어때요. 한 번 쏴 보시겠어요?”
“네. 그럼…….”
“사용법은 간단해요. 여기 버튼을 누르시면 ‘특수 탄환’이 장전될 겁니다.”
강서준은 나한석의 말마따나 특수 탄환을 장전하자, 철컥이는 소리와 함께 뭔가가 걸렸다.
“한 번 쏴 보세요.”
고개를 끄덕인 강서준은 호흡을 가다듬고 차분하게 총구를 구슬에게 겨눴다.
이미 20대 초반에 병장 만기전역을 한 예비군 8년 차 강서준에게 있어 총을 다루는 건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타아아앙!
하지만 총알은 가짜 백신에게 닿자마자 소멸했다. 강서준이 미간을 구기며 나한석을 바라보자, 그는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강서준은 재차 장전했다.
타앙! 타아앙!
이번에도 총알은 속절없이 소멸했다. 아무래도 나한석이 알려 준 것 이외의 사용법이 더 있는 듯했다.
강서준은 총구를 내리면서 말했다.
“슬슬 방법을 제대로 알려 주시죠.”
씩 웃는 나한석. 그는 옆에 진열되어 있던 또 다른 총을 가져와, 강서준이 했던 것처럼 비슷한 과정을 거쳐 구슬을 조준했다.
“2단계 백신을 보면 형태가 다 다르듯 백신이라고 모두 다 같은 백신은 아닙니다. 즉 같은 바이러스가 통할 수는 없다는 거죠.”
타아앙!
쏘아 낸 총알은 강서준이 그러했듯 소멸했지만, 나한석은 당황하지 않았다.
타앙!
그가 버튼을 눌러 또 뭔가를 조작한 뒤, 다시 발사한 총알은 종전보다 더 느리게 소멸했다.
나한석은 몇 번 더 조작하면서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타앙!
백신의 몸을 노리던 총알이 점점 더 깊숙이 박혀 들어갔다. 이내 코앞까지 근접하자 나한석이 말했다.
“저마다 필요한 바이러스가 다릅니다. 이놈은 B097 바이러스가 적합하겠어요.”
타아아앙!
나지막이 울린 총성 너머로 적중당한 백신은 부들부들 떨다, 소멸했다. 드디어 바이러스가 통한 것이다.
“이해하시겠습니까?”
“……꽤 까다롭군요.”
“걱정 마세요. 금방 익숙해지실 테니까.”
이후로도 몇 번 시범 삼아 바이러스를 다루는 법을 보여 준 나한석은 다시 뒤로 물러났다.
그가 조언하듯 말했다.
“요점은 하나입니다. 백신에게 통할 바이러스를 찾아내세요.”
“……범위를 조금씩 좁혀 가는 거군요.”
“네. 그것만이 방법입니다.”
나한석은 다시 가짜 백신을 소환해 냈다. 강서준도 총구를 겨누면서 버튼을 조작해 봤다.
‘A부터 Z까지…… 거기에 0에서 100 사이의 총알이라.’
일단 A탄을 조준해서 쏴 봤다.
미동도 없는 백신.
‘A탄은 아니고.’
다시 총알을 장전하며 버튼을 조작했다. B탄을 넘어 E탄에 다다랐을 즈음에 백신이 살짱 일렁였다.
‘E탄에서 범위를 좁힌다.’
1에서 100까지 나뉜 E탄 중 일단 50번째 총알을 쏘았다. 반응이 강렬해진다면 50번에서 가까운 탄을 찾아내면 될 것이다.
‘……반응이 없어. 그러면?’
E015탄을 쏴 보고, 다음엔 E075탄을 쏴 봤다. 반응은 75번 탄에서 나왔으니 범위는 확 좁아졌다.
강서준은 연속으로 발사하다 겨우 E064탄으로 백신을 소멸시킬 수 있었다.
“후우우…….”
긴 숨을 토해 내니 박수를 치는 나도석이 보였다. 그는 진심으로 축하하면서 말했다.
“배우는 게 빠르시네요.”
“……그러면 뭐 합니까? 이거 실전에선 도통 못 써먹겠는데요.”
“뭐 연습은 필요하겠죠.”
확실히 나한석은 몇 발 쏘지도 않았는데도 적합한 바이러스를 찾아냈다. 과연 거기까지 해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 왔을까.
“요령은 놈들의 반응을 잘 기억하는 겁니다. 전혀 반응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어떤 바이러스에 적합하냐에 따라 그 반응이 다 다르게 존재하니까.”
그 미세한 차이를 찾아내어 분석하고, 또 연구한 뒤 전부 외워서 쓰는 거란다.
실제로 E탄에서도 50번 이하의 바이러스는 그 떨림이 거칠고, 그 이상은 떨림이 느리다고 했다.
이런 걸 전부 세분화해서 적에게 걸맞은 바이러스를 찾는 것이다.
“노력만이 답입니다.”
강서준은 쓰게 웃으면서 밀려오는 두통을 억지로 무시했다. 어쨌든 이 기술을 배우질 못하면 살아남지 못하는 세계.
징그럽게도 어려운 사용법이었지만 어떻게든 몸에 익혀야만 했다.
‘요령은 바이러스의 반응을 기억하는 거야.’
마침 강서준은 반응을 더욱 유심히 살펴볼 수 있는 스킬이 있었다. 이걸로 더 세세하게 기억하면 될 일.
[스킬, ‘류안(S)’을 발동합니다.]그리고 미간을 좁혔다.
‘……음? 그러고 보니.’
백신들, 이놈들의 몸엔 어떠한 흐름이 뭉친 곳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