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134
◈ 134화
광신도 NPC.
자칭 ‘순례자’ 달리아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황무지나 다름없는 땅을 걷고 있었다.
풀 한 포기 자라나지 못한 피폐한 땅을 지나는 순례자만 물경 수백.
이 세계에 남은 최후의 생존자들이었다.
“다들 조금만 더 걷자고. 목적지가 코앞이야.”
순례자들은 군말 없이 메마른 땅을 가로질렀다. 종종 칼바람이 휘몰아쳐도 합심하여 땅을 파서 버텨 냈다.
예전 같았으면 접근조차 안 했을 ‘블랙 그라운드’였지만, 그들은 끊임없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정지! 여기서 백신님을 소환하고 이동한다.”
달리아를 비롯한 순례자들은 지친 몸을 쉴 틈도 없이 각자 아이템을 꺼내어 의식부터 펼쳤다.
곳곳에서 백신이 솟아나 사방으로 흩어지는 건 금방.
한편 달리아는 옆에서 짜증 섞인 소리를 내는 그녀의 친구 ‘멧지’를 볼 수 있었다.
그는 유난히 백신에 대해 험담을 늘어놓는 경향이 있었다.
“뭐가 또 불만이야?”
그러자 멧지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그냥…… 이게 맞나 싶어서.”
“뭘?”
“우린 결국 이 세계를 지워야만 살아남는다며. 그게 정말 정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순례자들이 정체 모를 괴물을 도와 세계를 지우려는 이유가 뭘까.
이유는 하나였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
그들의 행동엔 그런 정의가 있다.
“정답이 뭐라고 중요해? 이렇게 해야 살 수 있는 건데…… 오답이라도 선택해야지?”
“것도 그래. 대체 세계를 지우는 데에 살 수 있다는 말이 어딨어. 대체 어떤 방법으로? 달리아. 넌 이해할 수 있어?”
“몰라! 하지만 황제 폐하께서 우릴 대신하여 백신님과 협상하셨잖아.”
“그놈의 백신님님님!”
멧지의 목소리가 조금 커졌을까. 달리아는 슬쩍 백신들의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우린 그냥 따르면 돼. 그게 우리가 살 길이라고.”
황제는 ‘그날’ 이후로 그들에게 순례자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종종 방황하는 플레이어를 포획해서 세계를 지우는 데에 일조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리하면 살 길이 나온다고.
믿고 따르는 자는 ‘에덴’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멧지는 여전히 반발하듯 말했다.
“그걸 어떻게 확신하냐고. 저것들도 결국 세계를 지울 뿐인 괴물이잖아?”
“쉿…… 그만 좀 해. 백신님들이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
“들으라고 해. 막말로 내가 틀린 말 했어?”
달리아는 노심초사한 얼굴로 재차 백신들을 살펴봤다. 다행히 멧지의 말이 들리지도 않는지 그들은 그저 자기 할 일만을 묵묵히 하고 있었다.
아니.
처음부터 그랬다.
백신은 단 한 번도 그녀를 비롯한 순례자들에게 말을 건 적조차 없었다.
3단계 인간형 백신도 그랬다.
그들이 입을 여는 순간은 오직 명백히 판명된 ‘버그’의 앞에서였다.
‘그도 아니면 플레이어…….’
달리아는 한숨을 삼키며 말했다.
“어쨌든 우리에게 다른 방법이 있어? 이 거지 같은 세계에서 살아남을 방법은 에덴으로 들어가는 것뿐이라고.”
“알아…… 알지만.”
“그럼 군소리 그만하고 너도 일이나 좀 도와. 듣기로는 플레이어 놈들이 오고 있다는 것 같으니까.”
달리아의 말에 멧지도 결국 의식을 반복하며 백신 소환을 이어 나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수백의 백신을 소환해 내자 선두에 있던 한 순례자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황제의 심복인 기사 ‘벨’ 경이었다.
“이번에 킬 스위치만 제대로 찾아낸다면 지긋지긋한 플레이어를 지우고 우린 에덴으로 들어갈 것이다.”
슬슬 말을 꺼내는 걸 보면 출발할 때가 온 모양. 달리아는 지친 다리를 두드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옆에 있던 멧지가 황당하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달리아.”
“……뭐야? 왜 또? 뭐가 불만이야?”
“그게 아니라 달리아. 블랙 그라운드에 몬스터가 있던가?”
달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많진 않지만 아직 생존한 개체가 있댔어. 여기가 이 세계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곳이잖아. 그래서 백신님들을 소환해서 완전 소탕을…….”
“확실해? 많지 않다는 거.”
“멧지. 왜 자꾸 뚱딴지같은 소리야?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건데?”
그러자 멧지는 달리아의 어깨를 흔들며 한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게 아니라 저길 보라고! 저쪽!”
그제야 멧지가 가리킨 방향에서 거대한 먼지구름이 일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설마 ‘칼바람’이라도 부는 걸까.
‘아니야. 저건…….’
그녀가 먼지 구름의 정체를 깨닫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가까워질수록 그놈들의 울음소리는 사방으로 울려 퍼지고 있었으니까.
키이이이익!
키에엑!
쿠오오오오!
달리아는 헛웃음을 흘렸다.
“저거…… 설마 몬스터?”
“그런 거 같은데.”
그리고 다른 순례자들도 몬스터의 접근을 알아차리고 말았다. 기사 벨이 당황하는 순례자들을 진정시키면서 말을 이었다.
“괜찮아! 저쪽엔 백신님들이…….”
그의 말마따나 백신을 마주한 몬스터는 속수무책으로 소멸했다. 제아무리 레벨이 높은 몬스터라 해도 역시 이 세계를 잡아먹는 백신에겐 소용이 없는 것이다.
“헉! 또 옵니다!”
하지만 지평선을 응시하던 달리아는 제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보는 동안에도 믿기 어려웠다.
“어떻게 이 세계에 저만한 몬스터가 아직도…….”
블랙 그라운드엔 몬스터가 있다.
하지만 그 숫자는 소수.
기껏해야 B급에서 A급 수준의 몬스터가 전부일 거라는 추측이었다. 백신도 구태여 3단계까지 갈 필요가 없을 줄 알았다.
분명 그럴 줄 알았는데…….
‘외눈박이 가고일, 켈베로스, 미노타우르스, 오우거대전사, 오크대족장, 고블린부족장…….’
대충 몬스터들을 분류해도 그 종류가 수십 개나 될 정도로 각양각색(各樣各色)이었다.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던 모든 몬스터를 총망라한 꼴이 아닌가.
“이, 이동한다! 얼른 이동해!”
“네?”
“저건 플레이어들의 수작이 분명해! 정신 똑바로 차려! 놈들에게 킬 스위치를 빼앗기면 안 돼!”
더더욱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순례자들은 부랴부랴 짐을 싸서 이동을 개시했다.
다행히 운도 좋게 선두의 순례자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더, 던전입니다!”
“전방에 던전입니다!”
뒤를 살짝 흘겨 몬스터 무리를 살펴보던 달리아는 황무지 한쪽에 덩그러니 솟은 던전의 입구로 향했다.
킬 스위치가 있는 곳.
이 세계의 운명을 결정지을 던전.
달리아는 그렇게 숫자를 셀 수 없는 몬스터와 백신의 격돌을 뒤로하고.
“진입!”
던전으로 진입했다.
***
몬스터들의 대진격을 보던 강서준은 나지막이 침음을 삼켰다.
드림 사이드 1의 케이가 가진 능력치라면 응당 가능할 줄은 알았지만…….
‘실제로 보니 더 장관이네.’
게다가 블랙 그라운드의 도처에 깔린 영혼의 숫자도 상당했다.
아무래도 백신들을 피해 이곳까지 흘러 들어온 몬스터들인 모양인데…….
‘내구성이 전혀 소모되지 않았어. 서비스 종료한 세계라 그런 건가.’
모르긴 몰라도 영혼들은 갓 죽은 상태처럼 싱싱했고, 내구도도 상당한 편이라서 즉시 전력감으로 충분했다.
“일어나라!”
해서 뽑아낸 대단위의 몬스터 부대.
도깨비의 부름에 응답한 영혼은 수만을 넘어갔고, 강서준의 마력은 이미 블랙 그라운드 전역으로 뻗어 나가고 있었다.
그러자 조용해진 건 플레이어 쪽이다.
“대체 마력이 몇이야? 와…… 여태 난 뭘 했나 자괴감 드는데.”
“괜히 케이 님이 아니시구나.”
“이건…… 흐음. 격차가 과한데.”
말로만 듣던 것보다 실제로 눈으로 봤을 때의 파급력은 차원이 다르다. 해서 조금이나마 강서준을 의심했던 소수의 플레이어들조차 바로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강서준은 쓰게 웃었다.
‘내 게임 경력 5년이 아깝지 않았어.’
강서준이 눈을 빛내면서 전장을 둘러봤다. 더욱 본격적으로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그는 여유로웠다.
수만의 몬스터들을 소환하고도 케이의 마력은 끝도 없이 확장되고 있었다.
메마를 턱이 없는 우물 같네.
막말로 당장 눈앞의 태산을 무너뜨리라고 해도 그는 손짓 한 번에 가능할 것이다.
아무렴 랭킹 1위의 스텟이니까.
비록 스킬은 없다고 해도 가히 드림 사이드의 최강에 등극한 그의 능력치는 규격을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났다.
그는 플레이어들에게 말했다.
“슬슬 이동하죠.”
벙 찐 얼굴의 플레이어들을 일별한 강서준은 앞서 달려 백신들과 전투를 펼치는 몬스터들의 선두를 따라잡았다.
역시 백신들의 저력은 대단했다.
수만 마리의 몬스터들의 접근에도 꿋꿋하게 버텨 나가고 있는 걸 보면 확실히…….
오히려 수천의 백신이 수만의 몬스터를 압도하고 있었다.
강서준은 뒤늦게 따라온 플레이어들에게 짧게 브리핑을 이었다.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던전까지 바로 이동하세요. 그 안으로만 들어간다면 백신 걱정은 없을 테니까.”
“안 그래도 그럴 참이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전부 해야 할 일쯤은 알고 있겠지.
각자 총알을 장전하고 만전의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강서준은 플레이어들에게 경고하듯 말했다.
“뭐 해요? 달릴 준비나 해요.”
“네?”
“섣불리 나서지 말라고요. 방해되니까.”
바닥을 톡톡 발끝으로 차던 강서준이 순간이동을 하듯 다시 나타난 곳은 몬스터와 백신들이 뒤엉켜 전투를 벌이는 땅의 상공.
그곳에서 총구를 아래로 겨눴다.
[스킬, ‘류안(S)’을 발동합니다.]동시에 그의 눈으로 보이는 수십, 수백…… 아니 수만 개의 흐름.
제아무리 S급 스킬이라고 해도 스텟이 따라 주질 못한다면 감히 상상도 못 할 정보를 단번에 읽어 들였다.
강서준은 수만 가지의 흐름을 한 번에 읽고, 그중 백신들의 흐름만을 따로 분류해 내기까지 했다.
‘시작은 어디 가볍게…….’
그리고 수백 개의 점에 선을 잇듯 그의 총구가 빠르게 발사되기 시작했다.
투타타타타타타!
다소 터무니없지만 그가 쏘아 낸 ‘바이러스’는 모조리 백신들의 취약점에 꽂혀 들어갔다.
일대를 장악하던 백신들이 일격에 소멸한 것이다.
“우, 우와아아아!”
그 장면을 관망하던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터트렸다. 바닥에 착지한 강서준은 백신들의 시선도 이쪽으로 몰린 걸 확인했다.
-상황을 분석합니다.
-상황에 따라 3단계로 조정합니다.
바로 3단계로 성장한 놈들.
하지만 강서준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3단계로 진화한 백신들에게 접근했다.
총구에서 불을 내뿜고.
투타타타타탕!
3단계 백신들이 속절없이 소멸하기까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3단계는 용을 상대하는 수준이랬지.’
그렇다면 결과는 빤했다.
‘기껏 용 정도야…….’
용은 상대할 수 없을 때야 무서운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 케이의 능력치는 용을 월등히 상회했다.
즉 3단계 백신은 우습다.
강서준은 여전히 드잡이를 멈추질 않고 백신을 학살했다.
그리고 한 가지 깨달았다.
‘결국 3단계가 최종 단계였나…… 황제는 별개였어.’
황제와 비슷한 급으로 진화하는 개체는 더는 없다는 사실을.
하기야 본래 NPC였던 그가 백신의 진화 단계에 들어 있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다.
그는 백신과 별개로 봐야 한다.
“정말 대단하군요. 가히 랭킹 1위답습니다.”
“……뭘요. 예전만도 못한데.”
아이크의 말에 어깨를 으쓱이며 답한 강서준은 빠르게 달려 나가는 플레이어들을 따라잡았다.
“그나저나 던전은 어디죠?”
“이 길을 쭉 따라 달리면 나올 겁니다.”
강서준은 지평선 너머로 새로 백신들이 몰려오는 걸 확인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우후죽순 수만 마리의 몬스터가 솟아나 길목부터 막아 냈다.
적어도 던전에 입장하기 전엔 더 이상 방해받을 일은 없겠지.
“여기입니다. 알아보시겠습니까?”
“……여긴?”
이윽고 도착한 던전.
묘하게 익숙한 생김새였다.
‘그래. 여긴 와 본 적이 있어.’
아이크는 쓰게 웃으면서 말했다.
“맞아요. 여긴 최후의 던전을 모티브로 만든 곳입니다.”
“……최후의 던전이라고요?”
“네. 당신이 결국 실패한 이 세계의 마지막 던전이죠.”
강서준은 미간을 구겨야만 했다.
‘실패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