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135
◈ 135화
던전에 진입한 강서준은 익숙한 풍경을 둘러보며 헛웃음을 삼켜야 했다.
‘실패한 던전이라고?’
짧지 않은 5년의 게임 업적에서 그가 자랑할 게 있다면, 단연 100%에 다다르는 그의 던전 공략일 것이다.
목숨 하나를 잃었던 ‘용의 무덤’조차도 그의 노력 앞에선 결국 무릎을 꿇지 않았던가.
적어도 그는 던전 공략에서 항상 진심이었고, 랭킹 1위라는 어마어마한 결과를 이룩할 때까지 늘 성공을 이어 왔다.
어쩌면 현실에서 늘 패배를 거듭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강서준은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드림 사이드에 몰입했고, 그만한 성적을 얻어 냈으니까.
‘그런데도 실패했다고?’
믿기 어려운 얘기였지만 결과가 이를 증명했다. 정말 성공했더라면 적어도 이 세계는 이 꼴이 되진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납득하기 어려워. 분명 이 던전은 공략에 성공했었으니까.’
어찌 잊겠는가.
드림 사이드 1에서 공략했던 마지막 던전을…….
조금 까다롭긴 해도 충분히 공략해 낼 만한 수준으로, 대단히 어려운 던전도 아니었다.
막말로 실패하는 게 이상한 수준인 곳.
‘경험치, 보상까지 빠짐없이 받았어. 심지어 공략 성공 메시지까지 확인했어. ……내가 모르는 뭔가가 남아 있는 건가?’
강서준은 과거의 던전을 본따 만든 탓인지 퀴퀴한 냄새가 풍겨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허름한 고대 사원.
모든 장면이 그때와 같았다.
“케이. 당신은 이 던전에 대해 어디까지 기억하죠?”
“아마 거의 다 기억하겠죠. 그리 오래전 일도 아니었으니.”
“그럼 NPC 호크도 기억하십니까?”
NPC 호크.
곰곰이 머리를 굴리던 강서준은 어렴풋이 한 남자를 떠올릴 수 있었다. 분명 던전 공략을 돕던 이 중 하나였다.
“그 사람이라면 아마…….”
“네. 당신의 뒤통수를 쳤죠.”
호크는 겁도 없이 이 던전에서 강서준을 배신하고 암살을 기획했던 자였다.
아이크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게 이 던전이 최후의 던전으로 불리는 이유고, 실패라고 여겨지는 원인입니다.”
강서준은 미간을 구기며 아이크를 바라봤지만 그가 한 말의 속뜻을 이해할 순 없었다.
아이크는 강서준을 향해 물었다.
“케이. 당신은 그 사람을 어떻게 했죠?”
“당연히 죽였……죠.”
드림 사이드에서의 케이는 자신의 뒤통수를 치는 자를 혐오했다.
컴퍼니에게 워낙 당한 것도 많았고 권모술수가 넘치는 게임 판이라 그런지 어지간해선 용서해 주지도 않는 편이었다.
그건 NPC라고 예외는 없었다.
감히 그의 뒤통수를 치고도 살아남은 자는 없으며, 호크 또한 같은 운명을 처하게 됐다.
PK를 걸었으니 응당한 대가를 준 것이다.
‘……결국 게임이었으니까.’
강서준은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미간을 구겼다.
“설마 그 사람이 죽은 게 문제가 되는 겁니까?”
“공교롭게도 그렇더군요.”
다소 터무니없는 이야기였지만 호크는 NPC 중에서 꽤 중요한 위치에 선 자라고 한다.
그의 죽음이 곧 서비스 종료로 이어질 정도로…….
“그게 말이 돼요? 고작 게임 속 NPC 하나를 죽였다고 한 세계가 멸망한다는 게.”
“어쩌겠습니까. 당신에겐 고작 게임이라도 이들에겐 그렇지 못했는걸요.”
아이크는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어떤 세계든 핵심이 되는 인물은 존재해요. 기둥 같은 존재랄까요. 호크가 그런 인물이었죠. 그리고 기둥이 없는 세계는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들어 본 적이 없는 얘기였다.
드림 사이드 1에 그런 중차대한 NPC가 있었다고?
황당할 정도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의 연속이었다.
‘정리하자면 내가 홧김에 NPC를 죽여 버린 탓에 이 세계가 멸망했다는 건데…….’
그제야 황제의 말도 이해가 됐다.
세계의 멸망에 강서준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그 말.
그건 이걸 두고 한 말이었다.
‘빌어먹을……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새삼스럽지만 그간 별 감흥도 없이 죽이고 또 죽는 걸 방치했던 이름 모를 수많은 NPC가 뇌리를 스쳐 갔다.
그들 중 핵심 인물이 또 있었을까?
‘아니…… 대단히 중요한 인물이 아니더라도 여태 내가 NPC를 죽여 온 건.’
살인일 것이다.
결국 그들은 단순한 게임 속 캐릭터가 아니라 실존하는 인간이었을 테니까.
누군가에겐 부모였고.
자식이며.
가족인 사람을…….
“너무 자책하진 마세요. 결국 그자가 약해서 벌어진 일입니다. 막말로 핵심 인물 주제에 플레이어에게 당한 게 황당한 거죠.”
또한 왜 강서준을 보고 저주받은 재능을 가졌다고 비난했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결국 강서준이 플레이한 케이가 지나치게 강했기에 벌어진 일.
“케이. 그저 지난 일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일 뿐이죠.”
앞서 걸어가는 아이크의 뒷모습을 보면서 강서준은 입술을 짓씹었다.
돌이킬 수 없는 일…… 그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의 탓이 아니라는 것도.
‘먼저 배신한 것도 NPC였고, 그간 내가 죽인 이들도 전부 비슷한 경유로 죽었으니까.’
강서준은 그에 따른 대응을 했을 뿐이다.
하지만.
‘결국…….’
고작 NPC를 죽였을 뿐인 일은 한 세계를 서비스 종료시켰고, 나아가 다른 세계에도 영향을 줬다.
‘드림 사이드 2.’
현실이 게임이 된 원인이었다.
***
오래된 고대 사원은 그저 과거의 모습을 본따기만 한 건지 다른 몬스터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그저 누군가가 침입했다는 발자국만이 있었다.
“이상하리만치 조용해요. 너무 늦은 건 아니겠죠?”
“……일단 더 진입해 보죠.”
일단 걱정을 미뤄 두고 던전을 가로지르다 보니 과거의 보스방에 다다를 수 있었다.
예상대로 선객이 있었다.
“플레이어들이다!”
“광신도.”
순식간에 대척점이 만들어지고 무기를 꺼내 쥐었다. 그리고 그중 익숙한 남자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도 강서준을 알아보았다.
“조금 늦었군.”
“……멜빈 황제.”
문득 황제가 서 있는 땅을 눈여겨 볼 수 있었다. 세세하게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아마 이쯤이겠지.
NPC 호크가 죽은 곳.
이곳에서 그는 강서준의 뒤통수를 쳤다 처참하게 되갚음당했다.
황제는 피식 웃었다.
“아이러니하지 않나? 모든 게 끝난 곳이면서 모든 게 시작한 곳이라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죠?”
“난 그런 아이러니가 좋아. 본디 세상사 전부 그런 것 아니겠는가.”
황제는 천천히 강서준의 두 눈을 마주했다.
단순히 시선을 마주쳤을 뿐인데도 눈알을 도려낼 듯한 분위기가 흘렀다.
또한 능력치를 복구하니 이젠 보인다.
‘4단계는 무슨…… 5단계라 해도 믿겠어.’
그만큼 황제와 3단계의 백신과는 차이가 과했다.
모든 능력치를 복구한 강서준조차 긴장감으로 손에 땀을 쥘 정도였으니.
황제는 무심하게 검을 뽑아 들었다.
“보아하니 과거의 힘은 되찾은 모양이군.”
“……덕분에.”
“그래. 그렇다면 어디…….”
문득 강서준은 황제의 얼굴에서 깊은 회한을 깨달았다. 그 선명한 눈동자는 무언가를 울부짖듯 강서준에게 향했고.
별안간 공격이 시작됐다.
“발버둥 쳐 보거라.”
채애애앵!
눈 깜짝할 새에 그의 앞으로 도달한 황제의 대검.
본능적으로 재앙의 유성검을 맞대어 튕겨 낼 수 있었다. 강서준은 류안을 발동시키며 바로 자세를 잡았다.
“전력으로 맞부딪치거라…… 너의 한계를 보여 달란 말이다!”
채애앵! 챙!
순간을 수십 개로 쪼개고 거기서도 찰나에 멈춰야만 공격을 볼 수 있다. 그만큼 빠르게 휘둘러지는 검격 속에서 강서준은 겨우 버티어 서고 있었다.
그럼에도 놓치는 공격은 있었다.
“크윽……!”
[스킬, ‘초재생(F)’을 발동합니다.]초재생이 시작됐지만 깊게 새겨진 자상은 쉽사리 지워지질 않았다.
상처는 늘어나고 그는 속수무책으로 뒤로 물러났다.
‘크윽…… 너무 빨라.’
아마 스텟 수치는 비슷할 것이다.
황제가 여태 본 적 없는 괴물일지라도, 케이라는 캐릭터 또한 만만치 않으니까.
차이점이 있다면 ‘스킬의 유무’였다.
‘멜빈 황제는 알론 제국의 황제이자 소드 마스터인 자.’
그는 한 세계의 최강자였다.
그의 검술은 단연 S급을 가뿐히 넘었고, 이를 연마해 온 세월 또한 수십 년에 다다랐다.
분명 왼쪽을 벨 줄 알았던 검이 오른쪽을 베고 있었으니…… 이 얼마나 신묘한 기술인지.
류안으로도 쉽게 파악할 수 없었다.
“가히 케이로구나. 나의 검술이 이토록 통하질 않으니.”
“……여기서 그만하면 안 되겠습니까?”
“무얼 말이냐.”
“구태여 세계를 멸망시킬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이곳은 여태 당신이 평생을 걸쳐 지키고자 한 곳인데.”
황제는 던전에 의해 침식되던 세상에서 최전선에 선 NPC였다.
솔직히 그런 자가 왜 백신의 앞잡이 노릇이나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황제는 헛웃음을 흘렸다.
“이상 속에서 살아가는구나.”
“아뇨. 지극히 현실적이죠. 방법이 있고 대항할 수단이 있어요. 백신은 무적이 아닙니다.”
“그래. 네놈들이 바이러스를 활용한 건 꽤 볼만했어.”
“그럼…….”
황제는 더욱 칼을 현란하게 휘둘렀다. 어깨가 베이고 핏물이 튀었다. 강서준은 이를 악물고 마법도 발동시켰다.
[스킬, ‘파이어볼(F)’을 발동합니다.]위력이야 F급 스킬이라 한계가 있겠지만 그 숫자는 정해지지 않을 것이다.
허공에 놓인 수천 개의 불덩어리는 먹이를 노리는 아귀처럼 황제에게 들러붙은 건 그때.
솨아아악!
하지만 황제는 단 한 번의 휘두름으로 마법을 모조리 소멸시켰다.
물론 예상했다.
강서준은 자세를 정돈하며 빠르게 접근했다. 황제는 검을 앞세워 휘두르며 말했다.
“하나 거기까지다.”
“……네?”
“제아무리 수단과 방법이 있다 하더라도 이 세계의 멸망은 막을 수 없으니.”
“그걸 어떻게 확신을……!”
“서버엔 유통기한이 있으니까.”
황제는 다소 서글픈 어조로 말을 이었다.
“뭔 짓을 해도 이 세계의 멸망은 막을 수 없어. 서버의 유통기한…… 그러니까 채널이 완전히 소멸하는 그땐 모조리 멈춘다는 것이다.”
불현듯 롤백을 위해 멈춰 버렸던 달 던전 ‘재앙의 유성’이 떠올랐다.
이루리가 말하길 던전이 그 꼴이 된 이유는 던전이 제 기능을 할 수 없기 때문이랬지.
‘기둥이 빠진 세계는 결국 무너지는 거야.’
황제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슬슬 끝을 봐야겠구나. 보다시피 나의 승리를 기다리는 백성들이 있으니.”
“……하지만 황제. 이 세계를 직접 멸망시키면 없던 방법이라도 생긴 답니까?”
“적어도 목숨은 부지하겠지.”
“무슨…….”
황제는 다시 점멸하더니 강서준의 앞에 나타났다. 여태까지 했던 그 어떤 공격도 전부 장난이라는 듯한 무시무시한 검이 다가오고 있었다.
마치 태산이 무너지는 듯한 압력.
“단련된 검사의 검은 태산을 가른다고 하지.”
[‘멜빈 알론’이 스킬 ‘태산 가르기(S)’를 발동합니다.]무려 S급 필살기.
기묘하리만치 느릿하게 움직이는 황제의 공격이었지만 피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저 힘은 이 주변을 모조리 범위 안에 넣고 있었다.
“케이여. 예나 지금이나 나를 방해하는 건 마찬가지겠지. 부디 이 세계를 위해 완전히 소멸하거라.”
“……개소리를.”
강서준도 전력을 다해 그 검에 맞부딪쳤다.
쾅! 콰아앙! 콰앙!
엄청난 폭음과 압력!
한 세계를 대표했던 두 최강자의 전투는, 결국 던전의 형태를 가까스로 유지하던 공간 자체를 붕괴시키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균열이 일었고.
터무니없지만 그 과정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무언가가 있었다.
본디 이곳은 아이크가 백신으로부터 ‘킬 스위치’를 숨기기 위해 제작해 둔 던전.
“키…… 킬 스위치다!”
“저걸 차지해야만 해!”
전투를 관망하기에 여념이 없던 광신도나 사태를 둘러보던 플레이어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각자 추구하는 방향은 달라도 같은 목적으로 킬 스위치를 바라봤다.
“빼앗기면 안 돼!”
하지만 그때.
아무도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황제도,
강서준도,
심지어 관리자인 아이크조차 짐작 못 한 상황.
우연인지…… 혹은 필연인지.
[NPC ‘호크 알론’이 ‘킬 스위치’를 손에 쥐었습니다.] [‘알 수 없는 흐름’에 의해 ‘킬 스위치’와 NPC ‘호크 알론’이 융합되었습니다.]……최악이 현실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