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14
◈ 14화
폐쇄된 상가에 숨겨진 화원.
[E급 던전 ‘죽음의 화원’을 발견했습니다.]강서준은 자신의 허리까지 오는 크기의 작은 문을 바라보며, 자신의 생각이 맞았음을 확신했다.
‘여기야. 이곳이 바로 반주역에서 고롱이가 반응했던 이유야.’
반주역의 사람들.
그들은 병을 갖고 있었다.
손끝이 거뭇하게 변하고 얼굴에 홍조를 띠면서 열과 함께 끙끙 앓다 쓰러지는 증상들.
전부 이 던전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었다.
‘던전병.’
드림 사이드에는 다양한 던전이 존재했다.
무너진 학교처럼 언데드가 출몰하는 지역부터, 고블린, 오크 등이 등장하는 평범한 던전.
특유의 장르를 지닌 ‘테마 던전’이라는 것도 있었다.
그중 ‘죽음의 화원’은 특이하게도 움직일 수 없는 몬스터인 ‘식물형 몬스터’가 등장하는 던전이었다.
‘알고 보면 가장 까다로운 곳이지.’
죽음의 화원에서의 던전 브레이크는 몬스터를 밖으로 배출하지 않는다. 애초에 식물만 가득해서 움직일 수 없는 것이다.
대신 놈들은 ‘포자 바이러스’라는 걸 배출하는데.
‘그게 던전병을 유발해.’
말하자면 반주역의 사람들은 포자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던전병에 걸린 것이다.
‘그러니 고롱이가 반응할 수밖에 없지.’
포자 바이러스는 던전에서 파생된 산물이자, 인간의 몸에 기생해서 기어코 ‘몬스터’로 변이시키는 치명적인 기생충이었다.
‘드림 사이드에서도 비슷한 사건은 있었어.’
언제였더라. S급 던전 ‘죽음의 화원’을 공략하는 퀘스트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섬으로 갔었는데.
‘그곳의 주민들은 모두 몬스터로 변해 있었지.’
강서준이 던전병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된 연유도 해당 퀘스트를 수행하던 중, 마을의 의사가 변이 전에 적어 둔 일지를 발견한 덕이었다.
중요한 정보였었다.
이후 퀘스트를 공략하는 내내 두고두고 써먹었고, 죽음의 화원이란 던전을 수차례 겪어 봤으니.
그는 누구보다 빠르게 진상을 파악할 수 있었다.
‘반주역의 생존자들은 NPC들과 같은 상황에 빠진 거야.’
포자 바이러스는 플레이어에게 큰 영향을 주진 못했다. 선택의 미로를 겪으면서 ‘플레이어’는 던전에 대한 기본적인 저항력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플레이어가 아닌 사람은 여타 다른 NPC들처럼 저항력이 0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물론 던전의 등급이 올라가면 플레이어도 감염이 이뤄지겠지만.’
아직 그 정도는 아니었다.
E급 정도의 던전이라면 플레이어의 현재 수준이라도 쉽게 감염시킬 수 없을 테니까.
‘문제라면 다들 모르는 눈치라는 건데.’
보아하니 플레이어 중 반주역에 생긴 이변을 알아차린 사람은 몇 없었다. 혹시 오대수나 최하나는 알고 있을까. 못해도 최하나는 눈치를 챘을지도 몰랐다.
그녀도 ‘죽음의 화원’은 숱하게 깨 봤을 테니까.
“형사님, 곧 해가 집니다. 우리에겐 던전을 공략할 여유는 없어요.”
“맞는 말입니다. 밖으로 스켈레톤이 돌아다니는 와중에 던전 공략이라니요! 밤이 되면 우리가 사냥감이 될 겁니다.”
해서 그들은 던전 공략에 있어서 회의적일 수밖에 없었다.
곧 다가오는 밤.
낮이라는 환경 덕분에 약화됐던 스켈레톤이 다시 버프를 받아 한층 강해지는 시간이었다.
제아무리 그들이라도 지금보다 강해진 스켈레톤을 상대하는 건 다소 무리가 있었다.
‘심지어 몬스터는 밤엔 원래 더 강해져.’
언데드는 밤 버프를 두 개 중첩받을 것이다. 즉, 현 시점이 두 개의 너프가 중복된 상태였으니, 반전되어 스켈레톤은 본연의 실력을 발휘하리라.
E급의 던전 몬스터급으로.
하지만 오대수는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당장 이대로 돌아가는 것도 곤란하기 때문이었다.
“붉은색 문입니다. 던전 브레이크 직전이라고요. 이대로 놔두고 간다면 제2의 스켈레톤이 튀어나올 겁니다.”
E급 던전인 죽음의 화원이 던전 브레이크의 징조를 가진 게 문제였다.
무너진 학교처럼 당장 공략해야만 뒤탈이 없는 법. 자칫 잘못하면 E급의 몬스터가 쏟아지고, 던전의 등급도 D급으로 올라간다는 우려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한숨을 쉬었다.
“하…… 무너진 학교를 공략했으니 힘든 건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느닷없이 미발견 던전이 나타나다니.”
“도대체 어떻게 여태 발견되지 않았지? 이 근처는 전부 수색한 줄 알았는데.”
“이렇게 작은 입구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사람들의 시선은 화원 내부에 있는 작은 문으로 집중됐다. 일반 성인이라면 허리를 겨우 굽혀야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던전.
여태 등장했던 모든 던전의 문이 대궐처럼 컸던 걸 생각하면 ‘죽음의 화원’은 확실히 비정상적이었다.
“정말 어쩌죠? 던전을 공략하기엔 시간이 없고. 이대로 돌아가기엔 껄끄럽습니다. 형사님……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오대수는 신중한 얼굴로 그들을 마주 보면서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 답은.
‘역시…….’
강서준이 예상한 대로였다.
***
보랏빛으로 물든 하늘.
구름을 찌를 듯 높이 솟은 초록색 줄기.
독성 물질을 가득 함유한 식물로 둘러싸인 이곳은 E급 던전 ‘죽음의 화원’이라 불렸다.
오대수는 자신과 보조를 맞추는 세 사람을 둘러봤다.
‘최고의 라인업이야. 이것 말고는 좋은 수는 없었어.’
오대수가 결정한 방법은 바로 소규모 공략이었다.
최정예 인원을 선출해서 던전을 공략하되, 나머지 인원은 전원 바로 캠프로 복귀하는 것이다.
다시 생각해도 훌륭한 결정이었다.
‘공략은 네 명으로도 충분하니까.’
아니, 사실 두 명으로도 가능한 얘기였다.
최하나와 강서준.
두 사람이면 E급의 던전이고 뭐고, 어떻게든 공략할 사람들이었다. D급 던전이 된 무너진 학교마저 단둘이서 공략하지 않았던가.
어쩌면 던전 공략은 기정사실이었다.
그때 옆을 걷던 네 번째 멤버, 장기용이 짜증 섞인 목소리를 냈다.
“왜 사칭범 따위를 멤버에 넣은 거죠?”
그는 도통 마음에 안 드는 게 있는지 퉁명스럽게 말했다.
“형사님, 전 정말 이해가 안 됩니다.”
“네?”
“이번 임무는 위험해요. 강서준처럼 저렙의 플레이어가 참여하기엔 너무 위험부담이 큽니다. E급 던전이잖아요. 고작 레벨이 40도 못 넘긴 플레이어를 최소 레벨 40의 던전에 데려오다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형사님. 자격이 있는 사람을 데려와야 해요.”
걱정해 주는 척하지만 말투는 대놓고 강서준을 까내리고 있었다. 이에 오대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아꼈다.
‘깍두기가 누군지 짐작조차 못하고 있군.’
다시 말하지만 이 던전은 강서준과 최하나, 단둘이서 충분히 공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오대수와 장기용이 공략조에 참여한 이유는 이 던전의 입장 조건이 최소 네 명이기 때문이었다.
‘장기용을 뽑은 이유는 옷 때문이고.’
그의 옷은 섭종 보상으로 깔끔한 외견만큼이나 남들의 옷보다는 조금 방어력이 튼튼한 편이었다. 레벨도 준수한 편이니 E급 던전에 들어가도 객사할 것 같진 않으니.
그래서 장기용을 뽑았다.
한데 그는 자신이 최하나와 동격이라도 되는 줄 으스대고 있었다.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다.
‘쯧…….’
가볍게 혀를 찬 그가 강서준에게 시선을 뒀다. 장기용과는 반대로 고작 누더기 옷을 입고 있었지만 보기만 해도 신뢰가 갔다.
그가 누군가.
오대수는 반짝이는 눈으로 강서준을 바라봤다.
그때 강서준은 무심코 식물 근처로 다가가려는 장기용에게 손을 뻗으면서 경고를 주고 있었다.
“나라면 접근하지 않을걸.”
“뭐?”
“위험할 거야.”
하지만 장기용은 대놓고 강서준의 말을 무시했다. 식물 근처로 다가가더니 노란색의 열매를 손에 쥐었다.
그가 말했다.
“꼬질아, 이건 던전 사과라는 거야. MP를 채워 주는 훌륭한 아이템이지. 넌 그런 것도 모르냐?”
혹시 장기용도 죽음의 화원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걸까. 그도 나름 ‘경험자’였으니 알고 있어도 이상한 건 아니었다.
문제는 옆에서 권총을 장전하는 소리가 들렸다는 건데.
“싱싱할수록 MP를 더 많이…….”
키아앗!
타앙!!
사과를 한 입 베어 물려던 장기용의 옆으로 마탄이 스치듯 날아갔다. 총알은 나무의 한 부위를 관통하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허억.”
장기용은 어느덧 자신의 주변을 뒤덮은 나뭇가지를 확인했다. 전부 뾰족한 가시가 돋아난 상태였다. 조금만 늦었으면 빼도 박도 못 했을 것이다.
“가, 감사합니다.”
최하나는 장기용의 감사 인사를 가뿐히 무시했다. 그러고는 강서준에게 다가가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눴다.
이를 보면서 장기용의 얼굴은 썩어 버린 토마토처럼 새빨갛게 익어 갔다.
오대수는 미간을 짚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잘못 데려왔나.’
차라리 겁은 많아도 사고는 안 칠 ‘공지원’을 데리고 오는 게 나았다. 영업사원 출신이라 그런지 눈치가 기가 막히게 빠른 편이었으니까.
하지만 후회는 아무리 해도 늦었다.
오대수는 어깨를 으쓱이며 강서준과 최하나의 대화에 합류했다.
들어 보니 두 사람은 ‘해독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대수는 화들짝 놀라면서 물었다.
“강서준 씨도 알고 계셨습니까? 언제부터요?”
“반주역에 들어서자마자요. 바로 보이던데요.”
“……역시 케이 님은 모르는 게 없군요.”
오대수는 미간을 좁히며 강서준을 바라봤다. 역시라는 말이 당연히 어울릴 정도로 그의 뒤편으로 후광이 돋아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오대수는 나름 확신하는 게 있었다.
‘레벨이 37일 리가 없지.’
강서준은 D급의 보스 몬스터를 혼자 묶어 둘 정도로 대단한 전투력을 갖고 있었다. D급의 보스 몬스터라면 최소 120에 근접하는 수준이니 강서준도 얼추 그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가히 전 랭킹 1위의 위용다웠다.
한편 오대수는 강서준이 왜 레벨을 숨기는지를 추측할 수 있었다.
‘워낙 흉흉한 세상이니까.’
그렇다면 왜 ‘케이’라는 닉네임을 밝혔는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강서준이 하는 일이었다. 본래 케이의 행보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로 가득했다.
그가 모르는 모종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오대수는 그렇게 이해하기로 했다.
어차피 일반인의 잣대로 천외천을 납득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보스방입니다.”
오대수는 강서준의 말에 상념을 완전히 접어 버렸다. 뭐가 됐든, 당장 중요한 일은 가능한 빨리 죽음의 화원을 공략하는 일이었다.
“어마어마하네요.”
죽음의 화원의 보스방은 온실처럼 꾸며져 있었다. 모자이크 된 통창 안에는 보라색의 거대한 뭔가가 흐릿하게 보였다.
바로 알았다.
‘죽음의 화원의 주인인 보스 몬스터 플랜트 킹!’
품종은 해바라기.
해를 바라보듯 누군가의 죽음만을 바라본다며 고인물 사이에선 ‘데스 바라기’라고도 불리는 존재.
게임에서도 본 적이 없었고, 실물로도 처음인 오대수는 나지막이 침을 삼켜야 했다.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레벨은 70 언저리로 예상되지만 실상 놈의 전투력은 80은 가뿐히 넘을 것이다.
이름에 ‘왕’이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왕은 다른 보스 몬스터보다 더 강해.’
오대수는 일행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플랜트 킹을 잡으면 ‘꽃망울’을 구할 수 있어요. 치료제의 재료죠.”
“치료제요?”
“네. 반주역의 환자들을 고칠 수 있을 겁니다.”
구태여 장기용에게 내용을 설명해 줄 필요는 없었다. 여기까지 오는 내내 그들이 한 토론의 내용만 해도 얼추 상황을 알아차릴 수 있을 테니까.
“꽃망울을 빻아서 물에 우려내면 던전병을 해독하는 치료제가 만들어진다고 해요. 그것이 반주역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오대수는 강서준과 최하나를 향해 간절히 부탁하는 어조로 말했다. 한데 대답은 전혀 다른 쪽에서 들려왔다.
“네, 저만 믿으십시오.”
장기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