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140
◈ 140화
강서준은 말없이 아래의 물건을 내려다봤다. 설마 이걸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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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검류를 보관할 수 있다.
-등급 : S
* 특정 아이템을 보관할 시 한시적으로 장비의 능력을 상승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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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기서 언급하는 ‘특정 아이템’이란 바로 ‘재앙의 유성검’을 말하는 것이다.
즉 이건 ‘재앙의 유성검’의 세트 아이템.
‘그것도 재앙의 유성검을 일시적이나마 신화 장비로 둔갑시켜 주는 개사기템…….’
물론 그래 봐야 레벨 300대 장비였고, 향후 얻게 되는 아이템들은 이 두 개를 합친 것보다 훨씬 좋다.
‘하지만 무려 레벨 300대 아이템 주제에 500레벨까지 쓰게 만든 장본인인데.’
강서준은 군침을 꿀꺽 삼키면서 재앙의 허리벨트를 받아 들었다. 억만금을 주어서라도 구하고 싶은 물건이라면 이것일 것이다.
“덤으로 이것도 받아 가게.”
“……스킬북입니까?”
“내 검술이 이대로 사장되는 건 또 원치 않으니까.”
[스킬북, ‘태산 가르기(S)’를 습득했습니다.] [직업 ‘도서관 사서’를 확인했습니다.] [바로 습득하시겠습니까?]강서준은 헛헛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전에 황제가 보여 줬던 무시무시한 검술이 머릿속에서 아른거렸다.
한편 황제는 미안하다는 듯 강서준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 염치 불고하고 백성들을 부탁하네.”
“……네?”
“들어서 알겠지만 이번 백업엔 남은 백성들이 포함되지 않은가. 자네만 믿고 있겠네.”
강서준은 어색하게 웃고 있는 아이크를 바라봤다. 아직 그에게 자세한 사정은 듣질 못했지만 얼추 어찌 됐는지는 알 만했다.
그러니까 백업에 포함될 인원이 추가된다는 거겠지.
이 또한 일종의 뇌물이다.
‘하나나 열이나…… 그보다 보상을 너무 잘 챙겨 주니 슬슬 불안해지네. 설마 백업이 위험한 건 아니겠지?’
잠시 고민해 봤지만 그럴 리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아이크의 퀘스트 보상엔 적어도 안전을 보장하고 있었으니까.
뿐만 아니라 슬슬 아이크나 황제의 목적도 알 법했다.
저들에게 ‘백업’을 통해 115세계를 침략한다는 욕심은 없었다. 그저 멸망한 세계를 탈출하고 싶은, 피난민의 마음일 것이다.
“그나저나 언제 출발할 예정인가?”
“글쎄요. 저도 막 일어난 터라.”
이에 아이크가 말했다.
“가능하다면 바로 떠날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어찌하시겠습니까?”
강서준은 그를 바라보는 플레이어들의 시선을 느꼈다. 당장이라도 지구로 돌아가고 싶은 그 심정이 절실히 와닿는다.
하기야 꿈에서나 그리던 일이었을 것이다.
강서준은 쓰게 웃었다.
“그럼 부탁드리죠. 바로 떠나겠습니다.”
휴식은 충분했다.
다시 움직일 시간이다.
***
햇살이 좋은 일요일.
“고롱복음 1장 1절을 낭독하겠습니다. 튜토리얼에 헬 난이도가 있음메…….”
“케멘.”
“케이 님이 강림하시옵고 던전은 무너졌느니라.”
“케멘…….”
수십 명의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며 단 한 사람의 이름을 연호했다. 한 목소리가 되어 한 이름만을 외치는 광적인 풍경.
그 앞으로 누군가가 멋들어진 정장 차림으로 연단에 섰다.
“간증합니다. 케이 님은 학창 시절의 부족한 제가 저지른 잘못을 용서하여 주셨고, 은혜를 베풀어 목숨을 구해 주셨습니다.”
“케멘!”
흡사 광신도의 집회 현장.
“저 장기용은 케이 님의 동창이자, 신실한 신도입니다. 또한 케이 님의 은총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받아 왔으며…….”
“오오!”
“케이 님이 반드시 돌아올 거라고 믿습니다. 여러분도 믿습니까?”
“케멘!”
한편 그 집회에 참여한 채로 얼굴은 되는대로 구기고 있는 한 청년이 있었다.
앳된 얼굴의 청년.
그는 머리까지 모자를 눌러쓴 채로 계속 이어지는 집회를 가만히 응시했다.
‘머저리들 같네…… 난 뭐 하자고 여기에 왔을까.’
솔직히 남자는 이 집회엔 하등 관심이 없었다. 정말로 이들처럼 믿음 따위를 가진 것도 아니고.
‘지푸라기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온 거긴 하지만…… 흐음.’
변명하듯 속으로 중얼거린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두 손 꼭 잡고 두 눈을 감았다.
이 게임을 시작한 이후로 단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던 것들이 흔들리는 요즘.
그는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서준이 형.’
모두가 죽은 줄만 아는 케이.
성대한 장례식도 치러졌고, 그를 기리는 동상도 세워졌을 만큼 케이의 죽음은 공론화되었다.
그럼에도 절대 흔들리지 않는 광신도들을 보면서 잠시 의심 가득했던 마음도 안정되길 바랐다.
해서, 앳된 청년…… 아니, 지상수는 집회의 기도 시간에 맞물려 속으로 빌어 봤다.
‘신이 있다면 부디 서준이 형이 돌아올 수 있게 해 주세요. 슬슬 도깨비들이 반항하고 있어요. 아크도 조금 버겁고요. 사업이 커진 만큼 감당할 게 한두 개가 아닙니다. 부디 제 돈줄…… 아니, 케이 형이 돌아오게만 해 주세요.’
그리고 그 뜻이 닿았을까.
돌연 지상수의 핸드폰에 날카로운 알림이 울렸다.
띵!
그 소리가 어찌나 컸는지 기도를 하는 사람들의 째진 눈초리가 살벌하게 지상수에게 향했다.
하지만 지상수는 그딴 시선 따위는 신경조차 쓰질 않았다. 오히려 핸드폰부터 꺼내어 알람 내역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도 그렇다.
‘이 알람 소리는……!’
그가 정해둔 특별한 알람.
무심코 핸드폰을 내려다보던 지상수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떠…… 떴다아아아아!”
작은 액정엔 GPS 신호가 또렷하게 나타났다. 오직 ‘케이’에게만 반응하는 그 신호가 드디어 반응한 것이다.
이 말은 즉.
‘서준이 형이 돌아온 거야!’
케멘이라고 외치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지상수는 일단 강서준에게 전화부터 걸어 보기로 했다.
그 뒤에 기뻐해도 늦진 않으리라.
한데.
-고객이 전화를 받지 않아 ‘삐’ 소리 후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연결된 후에는…….
늘 들어 본 부재중 회신.
지상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떨리는 심정을 진정시켰다. 잘못 본 게 아니라면 강서준은 돌아온 게 맞고, GPS엔 그 위치가 나타날 것이다.
그래. 지금쯤 서준이 형은…….
“어…… 잠깐 여긴?”
***
지구로의 복귀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간결하고 빨랐다.
관리자 아이크가 포탈을 열고 목적지를 0115채널로 수정하는 것으로 모든 준비는 끝.
강서준은 일렁이는 포탈을 확인하고 뒤편에서 그를 마중 나온 황제와 아이크를 바라봤다.
아이크가 당부하듯 말했다.
“여러분의 능력치를 조금 조정했어요. 이대로 서버를 넘어간다면 버그가 될 테니까.”
해서 플레이어들의 스텟은 조금씩 너프된 상태였다. 얼추 확인해 보면 평균 레벨 190 언저리를 머물고 있었다.
“케이. 당신은 너프 폭이 꽤 클 겁니다. 하지만 절대 손해 보는 일은 없도록 하죠.”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크의 손에 스텟이 조정되는 걸 확인했다. 레벨은 저들과 마찬가지로 190레벨로 고정되고 있었다.
물론 그간 튜토리얼에서 쌓은 스텟과 얻어 낸 보너스 스텟, 모든 것들이 종합되어 대략 강서준의 실제 수준은 레벨 272 정도였다.
드림 사이드 1의 케이보다는 못하더라도, 서울에서의 강서준보다는 월등히 강해진 것이다.
‘근데 벌써 지구의 평균 레벨이 190까지 올라간 건가.’
약간 놀라웠다.
시간의 흐름이 다를 거란 예상은 했지만 어쩌면 그의 생각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지났을지도 모르겠다.
과연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 버렸을까.
‘……어쩌겠어.’
어쩔 수 없는 일에 매달려 봤자 소용없는 법이다. 강서준은 한숨과 함께 미련을 털어 냈다.
그리고 아이크를 향해 말했다.
“일 처리가 빠르네요.”
“밸런스 패치는 관리자의 기본 소양이니까요.”
이어서 아이크는 작은 USB 하나를 건넸다.
“백업 데이터는 전부 이곳에 담겨져 있습니다. 잃어버리지 않게 조심하십시오.”
“알겠습니다. 한데 어디에 업로드를 하면…….”
“그건 차후 자연스레 알게 될 겁니다.”
[‘아이크의 작은 USB’를 ‘도깨비 왕의 감투’에 보관했습니다.]아이크과 시선을 마주하던 강서준은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이건 알아선 안 될 정보인 모양이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알아낸 정보가 아니니, 그것만으로도 시스템의 제약을 받게 된다는 걸지도.’
정해진 때가 아니면 말하는 것만으로도 필터링이 걸리는 세계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언젠간 알게 되겠지.’
아이크는 세계의 주요 인물이 사망하자마자 시스템으로부터 킬 스위치 먼저 숨긴 철두철미한 인물이다.
그의 말마따나 백업할 곳이 어딘지는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다.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사실 그것 말고도 신경 써야 할 문제는 산더미가 아니던가.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조심히 가게나.”
한편 아이크와 황제는 드림 사이드 1의 세계에 남기로 했다. 관리자였던 아이크가 지구로 넘어갈 수 없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
백신의 권능을 가진 황제 또한 같은 처지였다.
둘은 서버가 정지되는 것과 함께 사라질 운명일 것이다.
“그대의 전장에 늘 행운이 깃들길.”
“……고맙습니다.”
이렇게 황제와 따스하게 이별을 맞이할 줄은 몰랐는데…….
‘당신들에게도 행운이 깃들길.’
어쨌든 그렇게 두 사람을 일별한 강서준은 머뭇거리지 않고 포탈을 넘기로 했다.
그를 따라 끝까지 겨우 생존한 32명의 플레이어들은 귀환 길에 오를 수 있었다.
츠츠츳…….
[칭호, ‘세계를 넘은 자’를 발동합니다.] [세계를 넘을 때의 충격을 100% 상쇄합니다.]그리고 메시지가 나타났다.
[당신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 주는 드림 사이드!] [환영합니다. 이곳은 ‘지구 에어리어’입니다.] [플레이어, ‘강서준’이 로그인했습니다.]…….
몸이 붕 뜨는 느낌과 함께 순식간에 현실 감각이 밀려왔다.
금세 눈을 뜬 강서준은 코끝을 저미는 날카로운 추위에 먼저 몸을 떨어야만 했다.
‘……이건 눈?’
주변을 둘러보니 온통 세상은 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다른 플레이어들도 극변한 날씨에 적응하질 못하고 추위에 바들바들 떨었다.
“우, 우리가 어디로 이동된 거죠?”
“글쎄요. 정확한 목적지는 알려 주진 않았으니…….”
사방이 눈발이 휘날리고 뿌옇기만 한 풍경이라, 도통 위치를 산정할 수 없었다.
그래도 강서준은 만족했다.
‘지구야. 다시 지구로 돌아온 거야.’
강서준이 드림 사이드 1으로 넘어갔던 곳이 ‘달’이었던 걸 떠올려 보자. 그나마 ‘달’로 돌아가지 않은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 아닌가.
“일단 옷부터 챙겨 입죠.”
“네.”
그나마 다행일 건 ‘드림 사이드 1’에서 취득한 아이템들은 대개 별다른 조치 없이 지구로 가져왔다는 거다.
‘섭종 보상’과 같은 취급이었다.
적당한 봉인이 이뤄져, 드림 사이드 1에서 가져온 두꺼운 외투도 충분히 착용할 수 있었다.
강서준은 일단 핸드폰을 꺼내어 봤다. 지구로 돌아왔으니 통신이 연결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권외 지역입니다.
아쉽지만 이곳은 핸드폰이 터지진 않았다. 강서준은 가볍게 혀를 차며 고개를 들었다.
[스킬, ‘류안(S)’을 발동합니다.]‘주변을 뒤덮은 마력이 너무 두터워. 그래서 통신이 연결되질 않는 건가…….’
마치 블랙 그라운드에 선 기분이다.
강서준은 주변을 뒤덮은 눈덩이에 잔뜩 담긴 마력까지 확인했다. 일반적인 자연 현상은 아니라는 거겠지.
문득 나한석이 말했다.
“여기 혹시 남극은 아니겠죠.”
“설마요.”
“극지방이면 납득이 됩니다. 핸드폰도 안 터지는 걸 보면 한국이 아닐지도…….”
그 말에 강서준은 쓰게 웃으면서 플레이어들을 둘러봤다. 어째서 나한석이 ‘남극’을 언급했는지도 이해가 갔기 때문이다.
‘믿고 싶지 않겠지.’
이들의 대부분은 지구가 드림 사이드가 되는 것과 동시에, 드림 사이드 1으로 난입된 케이스였다.
지구가 이 꼴이 난 게 믿기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이곳이 남극이라고 생각하는 게 편하겠지.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후우우웅…….
세찬 바람이 불어오면서 옆에 있던 눈으로 뒤덮인 언덕이 살짝 벗겨졌으니까.
눈발이 흩날리면서 그 아래에 깔려 있는 무언가를 보여 줬다.
그곳엔 다섯 글자가 적혀 있었다.
-천안아산역.
여긴 남극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