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141
◈ 141화
남극 같던 땅에서 도시의 흔적을 발견하기까진 긴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설마, 여긴.”
일단 행군을 지속하던 일행은 눈 언덕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그나마 눈이 덜 쌓인 곳에는 도시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허…….”
절로 탄식이 나왔다.
그도 그럴 게, 여태껏 그가 밟아 온 눈 아래의 풍경이 눈에 선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설마 도시가 눈에 파묻힌 거야?’
터무니없지만 남극으로 착각할 만큼 지평선이 보였던 이유는, 빌딩이나 산 정상까지 눈으로 뒤덮였기 때문이다.
막말로 그가 밟고 지나온 언덕은 사실 ‘눈에 뒤덮인 도시’였던 것이다.
“여긴…… 천안이네요.”
“알아보시겠습니까?”
“네. 근처의 군부대에 볼일이 있어 몇 번 와 봤어요.”
나한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서준은 일단 절벽 아래로 내려가 보기로 했다.
슬슬 날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 밤을 지새울 곳을 찾아 두는 게 좋았다.
눈뿐인 설원 위에서 야영을 할 수는 없으니까.
나한석은 절벽 아래, 빙판길이 되어 버린 4차선 도로 위에 서서 말했다.
“이쪽으로 가면 큰 쇼핑센터가 있을 거예요. 어쩌면 하루 정도는 충분히 보낼 수 있을 겁니다.”
다행히 언덕을 따라 내려간 도시는 얼어붙긴 해도 아직 외관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었다.
강서준은 그 이유를 쉽게 추측했다.
‘이쯤부터 던전의 영향이 줄어든 건가.’
현 세계에서 한 도시를 눈으로 파묻을 정도의 재난은 오직 ‘던전’으로부터 파생된 것뿐이다.
못해도 B급 던전.
모르긴 몰라도 강서준이 종전까지 밟고 있던 땅은 B급 던전이 발생한 여파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간 몬스터를 전혀 만나질 못한 걸 보면 역시 이곳에 만들어진 던전은…… 그거겠지?’
강서준은 침음을 삼키며 얼어붙은 도시를 가로질렀다. 도시 곳곳에는 기이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의심은 확신이 됐다.
“반항할 틈도 없었을까요. 전부 한순간에 당했네요.”
얼어붙은 인간들이었다.
좀 더 주위를 살펴 가까운 상가 내부도 살펴봤지만, 그곳에도 얼어붙은 인간들만 가득했다.
종종 몬스터마저 얼어붙은 게 보였다.
강서준은 인간을 잡아먹으려던 자세 그대로 얼어붙은 오우거 한 마리를 발견했다.
“얼어붙을 동안 본인이 어는 줄도 몰랐던 모양이네요.”
미간을 구긴 강서준은 더욱 걸음을 재촉했다. 그의 예상이 맞는다면, 아마 이곳은 너무나도 위험한 곳일 테니까.
한편 뒤따라 걷던 김시후가 나지막이 신음을 흘렸다.
“서울도…… 이렇겠죠?”
오픈 초기에 드림 사이드 1로 난입했을 아이였다.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빤하다.
‘사는 곳이 도봉동 근처라고 했지.’
강서준은 말없이 김시후의 어깨를 두드려 줬다. 그리고 섣부른 위로는 해 줄 생각은 없었다.
“익숙해져야 해. 이게 현실이니까.”
“네, 네…….”
그가 기억하기로는 서울에서 이런 방식으로 도시가 통으로 얼어붙은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끔찍한 것만 따져도 서울은 만만치 않았다.
인구수가 다르니까.
아무래도 사람이 많은 만큼 그만한 숫자의 던전이 생성된다. 해서 기하급수적으로 던전이 많았던 서울은, 그 피해가 가장 컸다.
도봉동이라고 안전하다는 보장은 없겠지.
‘일상이랄 건 모조리 파괴됐어. 그게 현재 이 세계의 현주소고…….’
이미 아포칼립스로 접어든 세계.
몬스터가 나돌아 다니는 게 흔한 풍경이었다.
하물며 그간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서울에도 B급 던전이 더 나타나 난장판이 됐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도봉동은 서울의 외곽이니, 중심보다는 던전이 적겠지만…….’
어디까지나 가능성이다.
강서준은 헛된 희망을 품게 만들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절망 속에서 한 줄기 희망을 갖는 게, 더욱 생존율을 높여 줄 터.
물론 말했듯 한 줄기 희망은 있다.
“그래도 살아만 있다면 아크로 이동했을 거야. 그곳이라면 플레이어가 아니더라도 안전할 수 있어.”
한때는 3구역을 버리느냐 마느냐의 기로로 놓였었지만, 리자드맨의 우물을 공략하고 달 던전까지 공략했을 아크였다.
단단하게 뭉쳤겠지.
특히 달을 공략하기 위해서 플레이어와 일반 시민들이 담합하여 고생했던 나날이 있었다.
이전처럼 플레이어가 아니라고 배척당하던 분위기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아크엔 강한 플레이어도 많아.”
똑똑한 링링이야 말할 것도 없다. 최하나부터 지상수, 김강렬, 김훈…… 베테랑 플레이어가 즐비했다.
강서준이 잠시 자리를 비웠다고 무너질 아크가 아니다.
‘하물며 나도석은…….’
그와 똑같이 헬 난이도를 공략한 유일무이한 남자. 운동 하나에 미쳐, 몬스터도 때려잡는 그라면 걱정할 일은 한결 줄었다.
강서준은 스스로 긍정하며 긴장을 덜어 냈다.
그래.
천안처럼 무너지진 않았을 것이다.
“적합자…… 저거 혹시.”
그때 이루리가 강서준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그녀가 가리킨 방향에서 마력이 심상치 않은 흐름을 보이고 있었다.
[스킬, ‘류안(S)’을 발동합니다.]강서준은 대번에 소리쳤다.
올 것이 왔다.
“……모두 피해요! 눈 폭풍입니다!”
빌딩 사이에서 세찬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그 속에 담긴 속성은 뼛속까지 쉽게 얼려 버릴 시린 냉기.
[C급 재난 ‘눈 폭풍’이 몰아칩니다.]정면으로 휘몰아치는 눈 폭풍은 점점 강도가 더 심해졌다. 얼어붙은 도시 위로 폭설이 내리고 있었다.
“몸을 숨길 곳을 찾아야 해요!”
“건물로 들어갈까요?”
“안쪽이라고 무사하진 않아요.”
당장 눈 폭풍을 피해도, 그 냉기까지 막아 내기엔 요원한 일.
앞서 봐 왔던 얼어붙은 도시의 정경이 이를 증명했다.
상가에 몸을 숨긴 이들은 그대로 얼어붙질 않았던가. 적어도 건물 안이라고 무조건 안전지대가 될 수는 없었다.
“일단…… 뛰어요!”
시시각각 다가오는 눈 폭풍이 그들의 뒤를 쫓았다. 안 그래도 얼어붙은 도시는 눈으로 뒤덮이고 점차 피할 공간도 줄어들었다.
크콰카카칵!
결국 도시가 이 모양이 된 데에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C급 재난 ‘눈 폭풍’.
최대 200레벨의 플레이어에게도 적당한 위협을 줄 기술이다.
“강서준 씨…… 저쪽에 사람이!”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나한석의 말마따나 눈 폭풍을 대비해서 빗장을 걸어 잠그는 일련의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천안 한쪽의 거대 쇼핑센터.
그곳에서 사람들은 분주하게 쇠처럼 단단한 문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한창 달려오고 있는 강서준 일행을 봤음에도 그들의 움직임엔 머뭇거림도 없었다.
[스킬, ‘마력 집중(E)’을 발동합니다.]다리에 마력을 집중시켜 폭발적인 가속력을 만들어 냈다. 그는 함께 달리던 일행을 향해 말했다.
“전속력으로 쫓아와요. 문은 내가 어떻게든 열어 볼 테니까.”
금세 거리를 좁힌 강서준은 그를 향해 날아오는 화살들을 확인했다.
안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 명의 사람들이 활시위를 겨누고 무자비하게 쏘아 대고 있었다.
[스킬, ‘초상비(F)’를 발동합니다.]휘익! 휘이익!
류안으로 궤도를 파악하고 다가오기도 전에 초상비로 피해 냈다.
달리는 속도는 줄지 않았다.
문을 밀어 닫던 누군가의 앞에 도달한 건 그때.
“누, 누구……?”
두말할 것도 없이 강서준은 문을 닫던 사람들을 가뿐히 바닥에 넘어트릴 수 있었다.
닫히던 문이 잠시 멈추고.
일제히 그를 향해 살기가 쏘아졌다.
“일단 진정들 하시죠. 잠시만…… 잠시만 눈 폭풍 좀 피할게요.”
경계를 하는 이들.
그리고 한 발짝 뒤늦게 일행들은 강서준이 겨우 막아 낸 문턱을 넘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눈앞에서 무기를 쥔 이들이 각자 날붙이를 꺼내어 이쪽을 겨눴다.
그리고 그쯤.
“으아앗!”
이쪽으로 달려오던 김시후가 무언가에 붙잡히더니 공중으로 스윽 떠올랐다.
그를 잡은 건 어떠한 손.
또렷한 형체는 보이질 않고, 눈들이 뭉쳐 마치 ‘몬스터’와 같은 형상을 보였다.
먼저 쇼핑센터를 차지하고 있던 사람들이 대번에 외쳤다.
“서, 설인……?”
“당장, 당장 문을 닫아야 해!”
다급하게 달려들려던 사람들이었지만, 나한석을 비롯한 플레이어들이 무기를 꺼내어 견제를 하니 섣불리 접근할 수는 없었다.
적어도 이들은 레벨만 190으로 맞춰진 최강의 전사들.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강서준 씨! 이대로면 시후가!”
“여길 부탁할게요!”
가볍게 혀를 찬 강서준은 다시 문턱을 넘어, 눈 폭풍이 휘몰아치는 장소로 달려갔다.
김시후를 붙잡은 설인은 포효하며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저놈은 실체가 아니야. 물리 공격은 통하지 않아.’
일련의 정보로 파악한 설인은 처치하기 어려운 몬스터는 아니었다. 안 그래도 새로운 스킬을 한 번 써 봐야지, 했는데 이참에 활용해 보면 좋을 것이다.
원래 연습은 실전에서 하는 거니까.
[스킬, ‘분신(S)’을 발동합니다.]달려가는 중에 강서준의 몸이 두 개로 나뉘었다. 옷차림까지 똑같은 둘의 강서준은 동시에 공중으로 뛰었다.
기합과 함께 오른쪽에 있던 분신은 주먹에서 불꽃을 화르륵 태워 올렸다.
[‘분신’이 조합 스킬, ‘파이어 익스플로전(F)’을 발동합니다.]원했던 대로 스킬을 고스란히 발동한 분신은 허공에 있는 설인을 그대로 강력하게 두드려 팼다.
불꽃이 가미된 주먹에서 생겨난 거대한 폭발!
설인의 위세가 살짝 줄었고, 그 틈을 노린 강서준이 김시후를 놈의 손아귀에서 빼낼 수 있었다.
“케, 케이 님……?”
아직 얼떨떨한 안색의 김시후를 꽉 끌어안고, 다시 쇼핑센터로 향했다. 아직 문은 닫히지 않았다.
뒤쪽의 설인도 정신을 차리고, 다시 포효를 내지르며 쫓으려 했지만.
“네 상대는 나야.”
파이어 익스플로전을 터뜨린 분신이 다시 두 주먹에 불꽃을 휘감아, 정면으로 설인에게 대항했다.
잇따른 폭발!
분신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마치 본인의 몸을 불사르듯 더욱 격렬하게 전투를 이었다.
강서준이 재차 쇼핑센터로 진입하는 그 순간까지도 분신의 몸에 붙은 불꽃은 꺼지질 않았다.
“……크윽.”
그렇게 쇼핑센터의 문이 닫히는 순간. 설인을 감당해 내던 분신은 결국 한 줌의 재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우어어어어!
분한 듯한 설인의 외침을 뒤로하고, 문이 닫힌 쇼핑센터 내부는 고요한 적막이 감돌기 시작했다.
***
쿠웅!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있었다.
[‘분신’이 사망했습니다.] [‘분신’의 대미지가 누적됩니다.]콰지직!
분신을 해제한 것과 동시에 설인을 상대할 때에 다쳤던 모든 충격이 고스란히 본체에 전달된 것.
강서준은 아찔한 정신을 겨우 붙들었다. 온몸이 불타는 감각이 느껴지고 있었다.
‘체력이 닳았군…… 이거 조심해서 써야겠는데.’
분신이라기에 죽어도 괜찮을 줄 알았다. 하지만 분신이 소멸하는 것과 동시에, 분신의 기억과 통증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특징이 있었다.
킬 스위치에 의해 완전히 지워졌던 바이러스들과는 경험이 달랐다.
‘위험한 스킬이야.’
그렇게 호흡을 정돈하는 와중이었다.
적막이 감도는 실내.
약 10M의 거리를 두고 쇼핑센터 내의 사람들은 무기를 이쪽으로 겨누고 있었다.
문득 강서준은 깨달았다.
‘여기만 얼지 않았군.’
문을 닫은 것만으로도 안쪽에 스며드는 냉기를 막을 수 있는 걸까.
‘아니, 그보다 여긴 뜨겁기까지 해.’
류안을 발동해 보니 유난히 이곳엔 바깥과 상반되는 열기가 가득해 있었다. 도시가 통째로 얼어도 여기만 멀쩡한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강서준은 일단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다들 진정하시죠. 우린 싸우려고 온 게 아닙니다.”
“……그걸 어떻게 믿지?”
강서준은 일행을 돌아보며 무기부터 내리도록 했다. 이쪽에서 전투 의사가 없다는 걸 우선 밝히는 게 좋았다.
‘물론 저들이 위협조차 안 되니 할 수 있는 짓이지만.’
말하자면 강서준의 일행은 최소 레벨이 190이라는 전무후무한 고렙 파티였다.
한눈에 봐도 그 실력을 구분할 수 있는 쇼핑센터의 사람들보다는 압도적으로 강했다.
‘뭣보다 여긴 컴퍼니도 아닌 거 같고.’
순간적으로 영안을 발동시킨 강서준은 이들의 영혼이 ‘선령’이라는 것도 파악해 뒀다.
적어도 악행은 안 할 자들.
“잠시 눈 폭풍이 지나갈 동안만 머물게 해 주세요.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겠습니다.”
무기를 겨누고 화살부터 쏜 건 아무래도 괘씸하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었다.
외부인은 이쪽이니까.
상대편 중 누군가가 말했다.
“우리가 판단할 문제가 아닙니다. 이곳은 오직 클라크 님의 명을 따르니까.”
그리고 한쪽에서 ‘클라크’가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