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144
◈ 144화
지구로의 복귀, 1일 차.
예상대로 도처에 깔린 문제는 많았고, 그중 강서준은 아무래도 가장 골치 아픈 문제를 직면할 수 있었다.
“솔직히 우리만으로 B급 던전을 공략한다는 건 무리예요. 제아무리 정령만 얻고 빠져나올 속셈이라고 해도 말이죠.”
강서준의 레벨이 이전보다는 많이 올라갔다고는 하나, B급 던전을 자유롭게 활보할 정도는 아니다.
또한 낙원의 플레이어도 전력은 고작 레벨 190대.
기껏해야 C급 던전이 한계다.
‘천안의 플레이어는 말할 것도 없어.’
이들은 몬스터 사냥으로 생존해 온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저 추위라는 재난을 견뎌 온 것이다.
정령이 생성해 낸 ‘설인’을 쓰러트린 적은 여태 손에 꼽고, 그들이 레벨 업을 할 기회도 대인전에 불과했다.
그들의 수준은 꽤 낮았다.
‘추위 내성만 대단히 높아. 속 빈 강정이로군.’
해서 강서준은 플레이어들을 이끌고 천안의 외곽 지역까지 나온 상태였다.
듣기로는 경기권에 가까워질수록 마력폰의 신호는 강해지고, 외곽에선 서울과 연락도 가능하다고 들었으니까.
‘아크와 연락만 할 수 있다면.’
그의 말을 따라 이곳으로 내려와 줄 강력한 플레이어들이 줄지어 나설 것이다.
못해도 최하나…… 나도석 정도 되는 플레이어들이 오면 B급 던전에서 정령을 구하는 건 일도 아니다.
‘다들 얼마나 강해졌을까.’
또한 강서준이 드림 사이드 1에서 보낸 시간 동안, 그들의 수준이 얼마나 올라갔는지는 모르는 일.
진혁수에게 듣기론 현시점이 약 8월 정도였으니, 거의 반년 만의 복귀인 셈이다.
그 정도 시간이면 과연 레벨을 몇이나 올렸을지는 짐작도 안 된다.
‘지금 내 레벨은 190.’
스텟을 전부 더해 봐야 얼추 272에 근접하는 그였다.
드림 사이드 1에서 겪은 시간에 비해서는 대단한 폭업이었지만, 지구에서의 흐른 시간으로 따진다면 큰 손해나 다름없었다.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지. 렙업만이 살길이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던 중 그는 점점 얼음이 녹아 흥건한 외곽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고속도로 한복판에 있는 휴게소였다.
“강서준 씨. 신호가 잡혀요.”
“네.”
머뭇거리지 않고 강서준은 연락처 중 가장 먼저 최하나에게 전화를 걸어 봤다.
-고객님이 전화를 받질 않아 음성 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삐 소리 이후…….
무슨 일인지 연락은 닿질 않았다. 강서준은 가볍게 혀를 차면서 다음 연락처를 찾아봤다.
이번엔 바로 받았다.
-이제야 연락이 되네. 근데 왜 아직 천안에 있어?
“……뭐야. 나 천안에 있는지는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긴. 지도에 뜨잖아.
오랜만의 전화였지만 링링은 별로 놀랍지도 않다는 듯 평온한 목소리로 응대하고 있었다.
그녀가 말하길, 이미 지상수에게 들어서 그의 생존과 위치는 전부 파악해 둔 상태란다.
강서준은 쓰게 웃었다.
“상수는 어때?”
-흐음.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하다 몇 개 말아먹고, 한두 개쯤은 대박을 냈지.
“…….”
-그나저나 왜 아직 천안이냐고. 서울에 안 올라와?
다시 생각하지만 떨어졌던 시간이 무색할 만큼 특별할 게 없는 반응이다.
하기야 그녀는 링링이다.
저 정도 반응이 어쩌면 그녀에겐 최대한의 환대일지도 모르겠다.
“일단 바로 돌아가긴 어렵게 됐어.”
강서준은 잡념을 털어 내고 당장 그가 처한 상황부터 링링에게 전하기로 했다.
“그래서 지원 팀이 필요한데.”
-B급 정령의 던전이라…… 넌 정말 늘 터무니없는 일에 휘말리는구나.
“뭐?”
-쯧. 구출 임무를 보냈더니 버그 공간에 갇혀 한 달을 썩질 않나. 달로 보냈더니 5개월을 넘도록 잠수를 타고 말이야.
링링의 푸념에 강서준은 입맛이 더욱 쓰게 변하는 걸 느꼈다. 그의 팔자가 더러운 건 N무 인생을 살아왔던 과거가 증명했다.
‘게다가 아직 말 못 한 내용도 있지.’
모르긴 몰라도 드림 사이드 1에 다녀왔다는 말을 해 주면, 제아무리 이성으로 똘똘 뭉친 그녀라고 해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긴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지금은 급한 불부터 꺼야 하니까.’
강서준은 슬슬 수상쩍은 기류를 보이는 천안의 구름을 확인했다.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그래서 지원 팀을 보내 줄 거야 말 거야? 자세한 설명은 어렵지만 이거 사실 달 추락보다 중요하다?”
틀린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때보다 이곳의 일이 더 위협적이다.
아직 추측이었지만 정말 그의 예상대로 ‘진백호’가 이 세계의 주요 인물이라면.
‘세계의 멸망까지 열흘도 안 남았다는 거니까.’
잠시 전화기에서 멀어져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눈 링링은, 곧 강서준에게 긍정적인 답변을 보내왔다.
-지원 팀을 보낼게. 이참에 그곳에 고립된 사람들을 구조할 거야. 이 정도면 되겠지?
“그래 주면 나야 고맙지.”
-어차피 슬슬 영역을 확장할 때도 됐어. 이제 지방 도시들도 하나씩 되찾아야지.
강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링링의 말에 공감했다.
무너진 일상은 되돌릴 수 없다.
하지만 다시 살아갈 터전은 되찾아야 한다.
링링은 한마디 말을 덧붙였다.
-근데 아직 클라크는 못 만났어?
“응? 최하나 씨?”
-응. 네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김훈이랑 천안으로 내려갔는데.
“……아직 못 만났어.”
발신음은 이어지지만 전화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혹시 전화를 안 받는 게 아니라…… 못 받는 거였나.
‘이미 천안에 들어온 거라면?’
당연히 전화는 안 된다.
-근데 케이.
“응?”
-네가 알아야 할 게 있어.
그녀답지 않게 잠시 머뭇거리던 링링은 약간의 침묵 뒤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클라크 말이야. 상태가 좀 안 좋아.
“……어디 아파?”
-아픈 건 아닌데. 흐음…….
이후로도 링링의 우려 섞인 목소리가 한참이나 이어졌다.
***
타아앙!
한 발의 총성이 울리고 누군가의 미간엔 구멍이 뚫렸다.
꽉 막힌 지하에 감도는 비릿한 피 냄새. 번쩍이는 불꽃과 외마디 비명도 내지르지 못한 채 픽픽 쓰러진 사람들만이 남은 곳이었다.
타아아앙!
어둠을 틈타 쏘아진 총알은 무정하게 사람들의 심장을 관통했다.
이미 지하에 남은 이들의 반절은 싸늘한 주검이 되어 널브러진 상태.
누군가 빌 듯이 말했다.
“사, 살려 주…….”
타앙!
하지만 간곡한 부탁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여지없이 방아쇠는 당겨졌다.
“대, 대체 우리가 너한테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런 만행을!”
타아앙!
절규하듯 외치던 남자도 말을 잇질 못했다. 그렇게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목숨을 잃었다.
벌써 수차례 반복됐다.
전투는 너무나도 일방적이었다.
그때 생존자 중 한 명이 부들부들 떨면서 물었다.
“대체 원하는 게 뭐야!”
“…….”
“원하는 게 있으면 뭔지 말을 하라고! 대체 우리한테 이러는 이유가 뭐냐고!”
그 말에 잠시 움직임을 멈췄던 침입자는 씨익 웃으면서 총구를 겨눴다. 발사된 총알이 또 다른 사람의 생을 끊는 건 금방이었다.
그녀가 말했다.
“얼마 전 서울의 플레이어를 죽였지?”
“그, 그건…….”
“그게 이유야.”
타아아앙!
몇 번이나 반복된 무자비한 학살의 끝엔 피로 물든 시체만이 남았다.
매캐한 연기를 뿜어내는 권총을 털면서 식힌 그녀는 나지막이 길게 한숨을 뱉어 냈다.
공간이 일렁이면서 옆으로 한 사내가 나타난 건 그때였다.
“최하나 씨. 먼저 가시면 어떡해요?”
“당신이 늦은 거죠.”
“……화장실 다녀온다고 했잖아요.”
“그야 당신 사정이고.”
김훈은 낮게 한숨을 내뱉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단 한 명의 생존자도 보이질 않는 참혹한 풍경이었다.
“여기 뭡니까?”
“……악당들 소굴.”
미간을 찌푸린 김훈은 시체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반항조차 못 하고 죽은 사람이 태반이었다.
“최하나 씨가 이유도 없이 이런 학살을 벌였을 리는 없겠죠. 그래요. 이번엔 또 무슨 이유죠?”
“으음…… 글쎄.”
곰곰이 고민하던 그녀가 말했다.
“짜증 나서?”
“네?”
“그냥 죽였어요. 같잖은 것들이 나대는 게 꼴 보기 싫어서.”
가만히 최하나를 바라보던 김훈은 알게 모르게 돋아나는 정체 모를 소름을 겨우 외면했다.
머릿속으로 오만 가지 말이 떠올랐지만 결국 김훈이 그녀에게 해 줄 말은 하나였다.
“……됐습니다. 그보다 강서준 씨를 찾았어요.”
“응?”
“지상수의 말대로 강서준 씨는 정말 무사히 살아 돌아온 것 같아요. 수소문을 해 보니 정체 모를 사람들이 쇼핑센터로 향했다더군요.”
최하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쇼핑센터?”
“네. 천안역에서 약 20분 정도 걸어가면 나오는데요…….”
“정말 쇼핑센터 맞아요?”
김훈은 최하나의 입꼬리가 실실 올라가는 걸 볼 수 있었다.
모골이 송연해졌다.
그간 함께해 온 세월로 판단하건대, 저 웃음은 확실히 불길한 징조가 맞았다.
최하나는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김훈 씨, 내가 재밌는 얘기를 들었어요.”
“재밌는 얘기요?”
“네. 이곳 천안에 절 사칭하는 사람이 있다더라고요.”
그렇게 말하는 최하나의 눈빛엔 서늘한 살기가 감돌았다.
“마침 쇼핑센터에 있다던데.”
“공교롭군요.”
“네. 흥미롭죠?”
그때 최하나는 빛살같이 움직이더니 권총을 한쪽 시체에 겨누었다. 그곳엔 알게 모르게 죽은 척을 하고 있던 사내가 있었다.
살살 고개를 가로젓는 남자.
“제, 제발 살려 줘…….”
최하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널 살려야 하는 이유 말해 봐.”
“그건…….”
“만약 반대 상황이었으면 넌 날 살렸어?”
총구는 정확하게 남자의 미간에 닿았다. 그의 눈동자가 공포에 젖어 들어갔지만 총구는 흔들림조차 없었다.
최하나가 싸늘하게 말했다.
“그게 네가 죽어야 하는 이유야.”
이에 남자는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 그 손엔 단검이 쥐어져 있었다.
“……미친년이!”
타아앙!
얼굴에 뜨거운 피가 튀었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무미건조한 눈으로 죽어 버린 남자를 내려다보던 최하나는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만히 상황을 주시하던 김훈은 입술을 잘근 깨물더니 말했다.
“그냥 넘어가려 했는데요. 더는 못 참겠어요. 최하나 씨. 너무 손속이 잔인한 거 아닙니까?”
“뭘요?”
“만나는 사람 족족 죽이면 어떡해요. 이 사람들도 그래요. 꼭 죽여야만 했습니까?”
쌍심지를 켠 김훈의 말에 최하나는 미소를 머금을 뿐이다. 그리고 죽어 버린 남자의 머리를 발로 툭툭 건들면서 말했다.
“꼭 죽여야만 할 필요는 없죠.”
“한데 왜……?”
최하나는 자신의 소매에 묻은 피를 슬쩍 혀로 핥았다. 마치 피를 즐기기라도 하듯 그녀는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살릴 이유도 없고요.”
이에 김훈은 뭐라 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사실 어떤 답이 돌아올지는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던 김훈은 권총을 갈무리하는 최하나를 향해 조심스레 물었다.
“쇼핑센터의 클라크는 어쩔 셈이죠?”
“응? 내 사칭범요?”
쇼핑센터엔 강서준이 있을 것이다.
정확한 정보는 아니었지만 그곳에 정말 강서준이 있다면…… 아마 최하나는 다른 행보를 보일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최하나의 상태가 이상해진 건 ‘재앙의 유성’을 공략한 이후부터였으니까.
‘강서준 씨의 앞이라면…….’
하지만 최하나는 계단에 쌓인 시체를 아무런 감정도 없이 지르밟고 올라갔다.
별 감흥도 없는 말투였다.
“글쎄요. 일단 미간에 총알부터 박고 시작하려고 했는데.”
“…….”
“그냥 팔다리를 자르고 시작할까요?”
다시금 소름을 느끼는 김훈은 뒤늦게 최하나의 뒤를 쫓아 지하상가를 벗어났다.
피로 물든 지하상가엔 사나운 바람만 일면서 죽은 시체 사이로 냉기가 스며들 뿐이었다.
그리고 한참 말이 없던 김훈은 주먹을 꽉 쥐고 다시 최하나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대론 안 될 것 같았다.
강서준을 마주하면 뭔가가 바뀔지도 모르지만.
아무래도 그녀의 싸늘한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저 위험하단 생각밖에 안 들었다.
‘일단 최하나 씨에게 가짜 클라크에 대해서 납득을 시켜야…….’
하지만 그때.
콰아아앙!
쇼핑센터 방향에서 커다란 폭발이 먼저 일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