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15
◈ 15화
보스방.
온실로 들어선 일행은 머리맡으로 드리운 거대한 보라색 꽃을 올려다봤다.
보스 몬스터, 플랜트 킹.
이름에 괜히 ‘왕’이 들어간 게 아닌 듯, 크기부터 남다른 놈이 살벌한 살기를 뿜어냈다.
냄새 한번 고약하네.
어찌 꽃에서 하수구 냄새가 나는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일행은 입장과 동시에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츄아아악!
토악질을 하듯 뱉어 낸 무언가.
채찍처럼 휘둘러지는 초록색 줄기!
그들이 선 자리는 독성 액체로 녹아내렸고, 고작 식물의 줄기는 폭탄이라도 터뜨린 듯 땅을 움푹 파냈다.
이놈은 깜빡이도 안 켜고 공격부터 날리네.
죽음의 화원은 대개 선공 몬스터가 없어서 편했는데, 보스는 확실히 다르긴 달랐다.
혹시 지능도 있는 건 아니겠지?
“다들 괜찮습니까!”
오대수의 물음에 최하나가 한 답변은 공격이었다. 총성이 울리면서 플랜트 킹의 꽃잎 하나를 명중시켰다.
타앙!
키이이잇!
분노하는 플랜트 킹의 공격이 재차 다가왔지만 최하나는 눈썹 하나 꿈틀거리지 않고 모두 피해 냈다.
다음은 장기용이었다.
“꼬질아, 비켜! 방해되잖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휘두르면서 달려갔다. 겁도 없는 그 행동에 강서준은 잠시 벙 찐 얼굴을 했다.
플랜트 킹에 대해서 뭔가 알고 저러는 걸까.
미간을 좁혀 그 뒷모습을 응시하던 강서준은 한숨과 함께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뒷덜미를 뒤로 잡아끌었다.
“크윽! 뭐, 뭐야!”
바닥에 엎어져서 고개를 든 장기용의 눈앞으로 작은 꽃들이 성난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땅에 숨어 있던 소형 플랜트들이 상어 이빨처럼 날카로운 가시를 금방이라도 찌를 기세로 노려보는 것이다.
강서준이 말했다.
“플랜트 킹의 근처는 이런 플랜트들이 가득한 게 상식이야. 대비하지 못했으면 섣불리 접근하지 않는 게 좋아.”
“……아, 알고 있었어.”
어련하시겠나.
강서준은 눈을 금빛으로 빛내며 전장을 둘러봤다.
장기용에게 말했듯, 플랜트 킹의 근처로 다가가려면 무수한 플랜트 밭을 지나가는 건 필수였다.
그리고 플랜트는 피라냐 떼처럼 가까이 다가오는 모든 걸 갉아먹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오대수가 물었다.
“최하나 님에게 모든 걸 맡기는 수밖에 없겠네요.”
“아뇨, 그래선 늦습니다. 먼저 D급으로 진화할 거예요.”
“네? 그러면 어떻게…….”
그때 최하나가 마탄으로 나무줄기를 튕겨 내면서 말했다. 그는 강서준에게 은근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강서준 씨의 포션이 또 있으면 혼자서도 잡을 수 있는데. 어때요? 또 꺼내고 싶지 않나요?”
현재 플랜트 킹 공략의 가장 큰 문제점은 놈의 에너지 바가 최하나의 공격으로 닳고는 있어도 소모량이 크지 않다는 데에 있다.
하지만 ‘번 블러드’를 통해 신체를 강화하고, 마탄의 성능을 올린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혼자서도 충분히 잡을 수 있으리라.
최하나는 슬쩍 말을 걸었다.
“혹시 더 있어요?”
“네. 근데 안 줄 겁니다.”
잠깐 설레는 표정을 지었던 최하나가 시무룩한 얼굴로 물었다.
“뭐예요, 날 못 믿어요?”
“아뇨. 그게 아니라…….”
강서준은 투박한 장검을 꺼내며 몸을 풀었다. 그 모습에 장기용이 고개를 갸웃했지만 가뿐히 무시했다.
“오늘 제가 누구 때문에 렙업을 못 했거든요.”
“네?”
“이것까지 드리기엔 좀 아까워요.”
그러더니 강서준은 훌쩍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 속도가 너무 빨랐을까.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장기용이 깜짝 놀라 손을 뻗었지만, 이미 강서준은 플랜트 밭으로 진입한 상태!
“미, 미친놈이?”
하지만 장기용은 곧 입을 다물었다.
스걱!
키아앗!
스거어억!
키앗!
수려한 검무라도 보여 주듯 플랜트를 물 흐르듯 베어 나가는 강서준. 그 속도는 어찌나 빠른지 장기용이 몇 번이나 눈으로 놓친 것들이 있었다.
강서준은 플랜트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뭐, 뭐야. 저 새끼……?”
경악스러운 장면은 그대로 끝나지 않았다.
강서준은 플랜트의 씨라도 말리듯 무자비한 학살 뒤로 빠르게 플랜트 킹에게 접근했다.
휘둘러지는 줄기!
사방에서 몰아치는 공격들까지.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어지러워지는 풍경에 식은땀이 흘렀다. 만약 저곳에 자신이 있었으면 피할 수 있었을까?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불가능.
결론은 빨리 나왔다.
장기용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레벨이 37이라면서요…… 어떻게 저럴 수가 있죠?”
“케이 님이잖아요.”
오대수가 헛헛하게 웃었다. 그 웃음 속엔 약간 허탈한 감정도 담긴 건 어쩔 수 없으리라.
“더 말해 뭐 하겠어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꼬질이가 케이 님이라니.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럼 저 상황은 어떻게 설명하죠?”
장기용이 입을 꾹 다물었다.
오대수는 그저 강서준의 활약을 눈여겨보며 말했다.
“둘 중 하나일 겁니다.”
스거걱!
“사실은 레벨이 무진장 높거나.”
콰아아아앙!
플랜트 킹의 줄기를 가볍게 밟아 뛰어오른 강서준은 다가오는 줄기를 걷어찼다. 또한 이를 추진력 삼아 만개한 꽃의 중앙으로 날아갔다.
그의 투박한 장검이 꽂히면서 플랜트 킹은 기괴한 울음을 내며 괴로워했다.
“터무니없는 스킬을 갖고 있는 거겠죠.”
[보스 몬스터 ‘플랜트 킹 카카시(E)’를 처치하였습니다.] [죽음의 화원(E)은 공략되었습니다.] [보상을 습득했습니다.]+
1. 플랜트 킹의 꽃망울
2. 카카시의 가시 건틀렛
+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던전을 공략하고 돌아가는 길.
어느덧 해가 저물어 어두컴컴한 도로를 걷는 네 사람은 왜인지 대화를 하질 않았다.
각자 생각이 많았던 것이다.
강서준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생각보다 수확이 괜찮아.’
+
플랜트 킹의 가시와 몸통을 엮어 만든 건틀렛. 단단하지만 불에 취약하다.
필요 레벨 : 80
공격 : 120
등급 : A
전용 스킬 : [가시]
+
평소에는 일반적인 건틀렛처럼 사용하고 유사시엔 손등에 난 장치로 ‘가시’를 단검처럼 쓸 수 있는 스킬.
사용하기에 따라 활용도는 높았다.
특히 ‘천무지체’로 무기 사용에 제한이 없는 그에겐 더더욱 유용했다.
안 그래도 ‘투박한 장검’으로만 싸우는 건 불편했는데.
쓸 만한 장비가 생겼다.
‘이 무기가 있었다면 플랜트 킹도 훨씬 쉽게 사냥했겠지.’
보상은 그뿐이 아니었다.
플랜트 학살에 이은 플랜트 킹의 사냥.
그로 인해 레벨이 도합 3이 올랐으며, 현재 그는 40에 다다른 상태였다.
엄청난 속도였다.
‘선택의 미로를 벗어난 지 하루 만에 레벨을 10이나 올렸어.’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고작 32의 레벨로 D급 던전을 공략했고, 이번엔 E급 던전 보스를 혼자 쓰러트렸다.
상대적으로 경험치가 많이 주어질 수밖에 없었다.
본래 있을 수 없는 일을 해내는 것인 만큼 강서준에게 주어지는 경험치의 양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만큼 내가 30레벨에 오랫동안 고여 있던 거겠지.’
무려 90일이다.
선택의 미로 보상으로 스텟 한계치를 전부 꽉꽉 채운 것부터, 그는 무수한 렙업 포인트와 보너스 포인트를 쌓아 왔다.
더불어 그가 90일간 쌓아 온 스킬 숙련도는 비교를 불허하는 수준.
‘이 정도면 머지않아 D급 던전을 도전해도 되겠는데.’
여기에 아직 꺼내지 않은 스킬과 적당한 무기까지 갖춰진다면 아마 파죽지세로 레벨 업을 할 것이다.
다른 플레이어와 벌어졌던 격차도 금방 메우겠지.
‘랭커들의 평균 레벨이 벌써 100을 넘겼댔지.’
장기용이 흘리듯 한 말을 생각해 보면 강서준은 꽤 많이 늦은 편이었다. 랭커라면 아마 100레벨이더라도 실제 전투력은 그 수준을 훨씬 능가할 텐데.
최하나도 78레벨이지만 순간적으로 보이는 전투력은 100을 가뿐히 넘길 수 있었으니.
나머지 열 명은 또 어떻겠는가.
‘게다가 최하나는 12위. 천외천 중 가장 약하다고 알려졌었으니까.’
아무렴 최하나가 본래의 장기인 ‘저격총’을 들지 않은 상태라고 해도 현재의 그녀를 기준으로 다른 랭커는 훨씬 강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렇다면 다소 경각심이 든다.
한편 강서준은 한쪽을 걷는 장기용을 보았다.
그는 어딘가 혼이 빠져나간 얼굴이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혼자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럴 리가 없어. 거짓말일 거야.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럴 리가 없다고.”
장기용의 상태가 몹시 수상하게 느껴졌지만 당장 그에게 뭐라 물어볼 틈은 생기지 않았다.
대뜸 최하나가 권총을 장전한 것이다.
최하나가 말했다.
“전투 흔적이에요.”
그녀의 말마따나 주변이 난잡한 게 심상치 않았다.
먼저 핏자국.
부서진 자동차 위로 누군가가 널브러져 있었다.
복귀했던 생존자 그룹의 일원.
오대수가 다가가 목덜미에 손을 가져다 댔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미 죽었어요.”
일행은 더욱 빠르게 걸음을 옮겨 반주역으로 향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안 그래도 어둡던 곳이 빛 한 점 없이 고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도 없습니까?”
공허하게 울리는 목소리.
형편없는 곳이지만,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던 유일한 생존자 캠프는 쥐 죽은 듯 고요하기만 했다.
누군가가 있었다는 흔적만 남았다.
강서준은 두 눈을 번쩍였다.
‘이곳에도 전투 흔적이 있어.’
한데 그 흔적이 다소 기묘했다.
사람들이 안쪽에서 바깥으로 도망가려는 것과, 바깥에서 안쪽으로 도망치는 게 겹쳐서 우왕좌왕한 것이다.
난전이라도 벌였을까.
강서준은 한 가지 추측할 수 있었다.
‘안쪽에서도 적이 나온 거야.’
강서준은 오대수와 시선을 교차하며 본격적으로 플랫폼을 수색했다. 그리고 한 가지 결론도 내릴 수 있었는데.
“던전병이에요.”
“네?”
“던전병이 악화된 게 분명해요.”
장기용이 눈만 멀뚱멀뚱 뜨면서 주변을 수색하다, 쓰러진 한 구의 시체를 미처 못 보고 자빠지고 말았다.
장기용은 눈동자에 핏발이 선 시체를 마주해야 했다.
“으아아악!”
던전병의 악화.
스켈레톤의 침입 흔적도 없었고, 다른 몬스터의 흔적을 찾기도 어려웠으니 가장 유력한 건 그쪽이었다.
하지만 급작스럽게 던전병이 악화될 리는 없었다.
죽음의 화원이 공략됐으니, 오히려 병세가 줄어야 정상인데.
이렇게 급전개가 된다고?
최하나도 같은 의문을 품었다.
“원인인 던전이 공략됐는데 어떻게 추가로 포자 바이러스가 유입됐을까요.”
유입 자체가 안 됐어야 했다.
그래야 정상이었다.
“으으윽…….”
그때 어디선가 신음이 들려왔다.
일행은 일제히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곳엔 무너진 돌덩이에 깔린 어떤 청년이 있었다.
오대수가 어깨를 흔들었다.
“흐윽…….”
“저기요. 정신이 좀 들어요?”
“으윽, 여, 여긴?”
강서준은 포션을 꺼냈다가 나타나는 메시지에 미간을 구겼다.
[포션 사용이 불가능한 상대입니다.] [‘소생의 포션’이 필요합니다.]시스템의 사형 선고.
강서준은 남자의 하체를 내려다봤다.
이미 모든 신경이 끊어지고, 피마저 그쪽으로 통하지 못하고 있었다.
가지고 있는 상급 포션으로도 회복시킬 수 없는 치명상!
소생의 포션이 아니라면 살아날 방도는 없었다.
그나마 플레이어라 여태 버틴 것이다.
실낱같지만 HP가 남았으니. 강서준은 포션을 다시 인벤토리에 넣었다.
대신 초록색 포션을 꺼냈다.
“좀 마셔요. 편해질 겁니다.”
마비 포션이 그의 몸으로 들어가니 이내 효과를 발휘했다. 남자의 몸은 통나무처럼 굳어 갔지만 더는 고통 때문에 아파하진 않았다.
“괜찮아요? 정신이 좀 들어요?”
“……형사님?”
오대수는 쓸쓸한 얼굴로 물었다.
“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오대수의 질문에 남자는 흐릿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 겨우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