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151
◈ 151화
길드.
말하자면 같은 목적에 뜻을 두고 모여 만든 일종의 이익집단.
게임에서 길드는 꽤 필수적인 요소였고, 협업이 중요한 드림 사이드에선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서울은 상황이 달라. 구태여 길드를 만들 필요는 없었을 텐데.’
따지고 보면 아크 자체가 커다란 길드가 아닌가.
대한민국 정부가 무너지고, 그 자리를 대신해서 서울을 유지하는 커다란 단체.
국회의원 박명석과 천외천 링링이 꽤 효율적으로 운영해 왔다.
‘그럼에도 다른 길드가 만들어졌다는 건…… 아크의 운영 방식이 그들의 마음에 안 들었다는 거겠지.’
아크는 주로 생존과 수호를 목적으로 운영된다. 개인의 이익보다는 공익을 우선하는 집단이라는 것이다.
‘즉 저들은 개인의 이익을 위해 새로 길드를 만든 자들.’
물론 나쁜 건 아니다.
제아무리 공익을 우선하는 아크라고 해도 빈부격차는 여실히 존재했고, 피해자는 늘 있었으니까.
3구역 사건도 그랬다.
아크는 인류를 보전하기 위해서 소수의 희생은 과감하게 배제할 준비가 되어 있는 집단이다.
그 소수가 길드를 만든다면, 아무래도 할 말은 없을 것이다.
‘그래. 길드 자체가 나쁜 게 아니야. 오히려 각 분야별로 전문가들이 뭉친다는 점에선 좋아.’
검사 길드가 만들어지면 그들끼리 검술을 연구하고, 마법사들은 종종 새로운 마법을 창조할 수 있다.
이처럼 길드의 이점은 명확했고, 어쩌면 그 소속감 때문이라도 사람들의 결집력은 더 강해지기 마련이다.
“근데 이건 아니지.”
강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천안에 파견된 세 길드를 쭉 둘러봤다.
“건방지게 나대지 마시오. 내 검은 피아를 구분하지 않소.”
“……가소로운 소리를 하는군.”
검과 방패를 들이밀며 사납게 으르렁대는 꼴. 마법사 한 명은 지팡이를 휘저으며 마력을 예열시키기도 했다.
오합지졸도 이런 오합지졸은 없겠지.
길드의 이점을 살리는 게 아니라, 그저 길드로 인해 분란만 조장하고 있었다.
“……정말 머저리가 따로 없군요.”
그 말에 김훈은 쓰게 웃으면서 옆에 섰다. 그는 이 상황이 꽤 익숙한지 어깨를 으쓱이며 강서준에게 저들을 한 명씩 소개해 줬다.
“한복을 입은 사람은 ‘아리수 길드’의 김영훈 씨입니다. 검술과 궁술에 능통한 길드죠.”
“…….”
“그 옆에 선 탱커분은 ‘수호 길드’의 박동수 씨. 철혈방패라는 강한 방어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김훈은 마법사를 가리켰다.
“마법사 길드인 ‘진리의 추구자’는 사실 링링 님의 추종자로 알려졌습니다. 정작 링링 님은 저들을 혐오하지만.”
마법사의 이름은 ‘고민준’이라 했다.
“저 세 길드가 현 아크에서 가장 규모가 큰 길드고, 저들이 바로 그 길드의 장입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크에서 가장 큰 세력을 갖춘 세 길드의 장이 보이는 꼴이 딱 저거란다.
다른 길드의 상태는 안 봐도 빤하다.
이 정도면…….
“링링이 바쁠 만하네.”
강서준은 혀를 차면서도 일단 저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머저리 같은 이들이라 해도 개개인의 실력은 나쁘지 않았으니까.
아니, 솔직히 기대 이상이다.
5개월의 시간은 플레이어들을 강하게 만들기엔 충분했을까. 어쩌면 드림 사이드 1 때보다 더 큰 성장 폭을 보이는 게 현재의 플레이어들이다.
최하나부터 수준이 달랐다.
그녀가 벌써 300레벨에 근접한다는 것부터 확실히 대단했다.
그들은 이미 강했다.
‘드림 사이드 1에서의 1년은 나조차도 겨우 200레벨 중후반에 도달할 시기니까.’
어쩌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B급 던전 공략은 수월할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 정도는 말이다.
‘그나저나 대체 언제까지 싸우려는 거지. 슬슬 귀찮아지는데…….’
어느덧 저들의 시야엔 강서준조차 보이질 않는 걸까. 삼파전은 끝날 기미가 없었다.
괜히 머리만 지끈거렸다.
이걸 어쩌나…….
한편 저들의 신경전을 끊은 건 의외로 뒤늦게 쇼핑센터로 복귀한 일련의 무리였다.
“……몬스터?”
“어찌 몬스터가 여기까지!”
그래도 날고 기는 플레이어라는 건가. 빠르게 무기를 들고 자세를 갖춘 세 길드원들.
뭐라 설명해 줄 틈도 없이 아리수 길드의 김영훈은 빠르게 검을 뽑아 들었다.
그들이 적대하는 방향엔 어깨에 쌓인 눈을 털어 내는 오가닉과 로켓이 있었다.
“흐음?”
쿠우웅!
냅다 달려들어 휘두른 검이었지만 공교롭게도 오가닉이 빼어 든 창에 의해 궤도가 틀어졌다.
뒤이어 반사적인 움직임으로 창을 그 목에 찔렀고, 정확하게 그 앞에 다다랐을 즈음이었다.
“그만.”
강서준의 한마디에 창은 허공에서 멈췄고, 김영훈의 살갗을 살짝 파고들어 핏물이 배어났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강서준은 낮게 한숨을 내뱉으며 긴장감이 감도는 사람들 사이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어느덧 오가닉은 창을 내리고 강서준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당신들이 어떤 목적으로 이곳으로 왔든 중요하지 않아요. 다만 하나만은 확실히 해 두죠.”
강서준은 좌중을 향해 말했다.
“공략을 방해하진 마세요.”
드림 사이드 1에서도 이렇게 대립하는 길드가 없었을까.
아니.
어쩌면 그땐 지금보다 더 많은 집단이 있었고, 그만한 갈등도 산재했었는지도 모른다.
현실이 아니고 게임이었으니까.
해서 과거의 케이는 여타 다른 길드에 의해 숱하게 배척됐던 기억이 많았다.
그때 강서준은 선택했었다.
“그러니 덤빌 거면 지금 덤벼요. 던전에서 뒤통수를 치는 인간은 절대 용서하지 않으니까.”
정면 돌파.
일부러 마력을 흩뿌리며 살벌하게 말하니 각 길드장들은 긴장한 얼굴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도발에 넘어올까.
잠시 그들을 둘러봤지만 고요한 적막만이 그 사이를 메울 뿐이다. 섣불리 움직이는 녀석은 없었다.
‘눈이 옹이구멍은 아니구나.’
그제야 링링이 저들을 두고 귀찮겠지만 유용할 거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하기야 이 정도 안목도 없이 어찌 드림 사이드에서 살아남았겠는가.
“그럼 이쪽은 됐고.”
강서준은 천안의 풍경보다 더 얼어붙은 분위기를 가볍게 일별했다. 한쪽에서 나한석이 멋쩍게 웃고 있었다.
“조사는 어떻게 됐습니까?”
“생각보다 상황은 심각하더군요.”
나한석은 스마트폰을 꺼내어 그가 밖에서 촬영한 영상을 보여 줬다. 그곳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고롱이.
「“저 너머에 던전이 있다고요?”」
작은 날개를 팔락거리던 고롱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쪽을 가리켰다. 스마트폰도 그쪽을 비추니 새하얗게 안개가 낀 공간이 있었다.
정확하겐 수시로 눈 폭풍이 휘몰아치는 현장이다.
「“접근……할 수는 있을까요.”」
「“해 봐야죠.”」
오가닉은 강서준의 영혼 부대에 명령을 내렸다. 몇 안 되는 리자드맨이 쭈뼛거리다 눈 폭풍 속으로 걸음을 옮긴 건 그때.
「키이이익…….」
다섯 걸음이었다.
리자드맨은 고작 다섯 걸음을 걷고 온몸이 얼어붙었다. 영혼력이 모조리 소모한 리자드맨은 불어온 바람과 함께 흩날려 소멸하고 있었다.
「“다음은…….”」
이후로도 오가닉은 리자드맨들을 선별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눈 폭풍 속에 집어넣었다.
최대 열 걸음이 한계였다.
스마트폰의 영상을 일시 정지한 나한석은 두 손가락으로 액정을 벌려 영상 한쪽을 확대해서 보여 줬다.
눈 폭풍 속, 뭔가가 일렁였다.
강서준은 뭔지 바로 알아차렸다.
“……정령이군요.”
레벨로 치면 얼추 200에 근접할 녀석이었다. 수치로만 따져선 그다지 밀릴 것도 없는 놈들.
하지만 그것도 사정거리에 있어야 할 말이다.
“너무 오랜 시간 방치된 게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그렇군요. 눈 폭풍이 너무 두꺼워요.”
던전 브레이크로 던전을 빠져나온 정령들이 할 만한 짓이 뭐가 있을까.
그저 주변 환경을 그들이 살기 편한 곳으로 바꿀 뿐이다.
얼음의 정령이 그들의 생존 환경에 적합하도록 천안을 통으로 얼려 버린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고 그런 일을 주도적으로 시행하려면 던전은 시시각각 눈 폭풍에 휩싸이는 것이다.
“결국 이 눈 폭풍을 어찌하질 못한다면 우린 던전에 진입조차 못 할 겁니다.”
나한석의 말마따나 던전에 들어가기 전에 저 ‘눈 폭풍’을 치워 내는 게 우선이었다.
하지만 눈 폭풍을 지우려면 그 속에 숨어 있는 정령을 직접 타격해야 한다는 건데…….
“이제 와서 눈 폭풍을 단번에 밀어낼 만한 화력을 뿜어낼 수는 없고…….”
문득 강서준은 진리의 추구자라는 마법사를 둘러봤다. 은연중에 흘러나오는 마력량만으로 추측해 보자면 낮지 않은 레벨이었다.
‘그럼에도 역부족이겠지.’
레벨도 문제거니와, 정령 마법 자체가 일반적인 마법보다 그 효율이 강한 게 더 큰 문제였다.
정령들은 오직 본인의 속성에 관련된 마법을 다루는 대신, 그 내실이 탄탄하기로 유명했으니까.
같은 마법도 정령이 쓰는 게 더 질이 좋다.
“방법이라…… 더 좋은 방법.”
고민을 이어 나가던 강서준은 문득 최하나와 시선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녀는 씨익 웃으면서 ‘마탄의 라이플’을 흔들고 있었다.
“……최하나 씨. 가능하겠어요?”
“스킬은 있었어요. 활용할 무기가 아쉬웠을 뿐.”
“그렇다면?”
“네. 정령은 저한테 맡겨요.”
***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강서준은 그 길로 던전으로 향하기로 했다. 출발 직전에 브리핑은 가볍게 했으니 작전에 대한 공유는 이미 마친 상태.
기왕이면 새로 도착한 길드 인원과 합을 맞춰 봐도 좋겠지만, 과감하게 그쪽은 생략했다.
‘시간이 썩 여유롭진 않아.’
던전 공략에 있어서 최하나의 위치가 대단히 중요하여 그간 무리해서라도 시간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 이상의 낭비는 없어야 한다.
진백호 사망까지의 카운트다운.
그가 주요 인물이라는 게 ‘밝혀진’ 그 순간부터, 이 세계의 멸망은 예고된 것과 다름없다.
강서준은 쇼핑센터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설마 위기 감지가 발동할 줄이야.’
쉽게 떠오르지도 않던 이 감각은 돌연 길드와 합을 맞추고 나중에 출발할까 고민하는 순간, 떠올랐다.
더 시간을 끌어선 안 된다고.
그래선 위험할 거란 경고가 나타난 것이다.
‘결국 진백호를 제때 살려 내질 못한다면 위기 감지가 발동할 만한 위협이 있을 거라는 얘기잖아.’
또한 왜 이제야 위기 감지가 발동했는지도 추측할 수 있었다.
‘그때가 가까워졌기 때문이겠지.’
위기 감지는 따지고 보면 그에게 닥칠 위기를 미리 알려 준다는 점에서 ‘미래예지’와 닮았다.
등급이 A급이라 그 위기를 알아차리는 시기가 다를 뿐이다.
“솔직히 믿기지 않는군요. 던전을 공략하질 않으면 지구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니…….”
“안 믿어도 어쩔 수 없어요. 그게 진실이니까.”
“안 믿는단 얘기가 아닙니다.”
말꼬리를 흐리던 김훈은 한숨을 내뱉더니 강서준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아직 설명해 주지 않으신 것들이 많죠? 전 그게 궁금한 겁니다.”
“차후 모두 알려 드릴 겁니다. 상황을 이해시키고 진행하기엔 너무 촉박해요. 미안합니다.”
드림 사이드 1에서의 일이라거나, 주요 인물, 관리자…… 그런 얘기를 한 번에 털어놓을 수는 없다.
말을 하는 것과, 그걸 받아들이는 데엔 그만한 시간이 또 필요하니까.
제아무리 현실이 게임이 됐다고 해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얘기들은 꽤 많았으니까.
해서 강서준은 이번 일에 집중하기 위해 오직 던전의 위험성에 대해서만 알려 준 것이다.
“왕이시여. 목적지입니다.”
오가닉의 말과 함께 상념을 접은 강서준은 정면에 드리운 두꺼운 눈 폭풍을 확인했다.
점점 온도가 내려가고 아플 정도로 시리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정령의 힘은 이전보다 강해져 있었다.
[스킬, ‘류안(S)’을 발동합니다.]그가 선 곳에서 약 1KM의 거리.
강서준은 그곳에서 이곳을 맹렬하게 노려보는 ‘상급 정령’을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