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16
◈ 16화
“……모든 일은 갑자기 벌어졌어요.”
남자의 이름은 김정우라고 했다. 초점이 안 맞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던 김정우는 구겨진 미간만큼이나 굴곡진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처음엔 비명이었죠. 스…… 스켈레톤이 난입한 줄 알았어요. 커다란 괴물이 계단에 나타났고. 우린 연습한 대로 대비했습니다. 바, 바깥을 견제…… 했는데.”
문제는 공격이 뒤에서도 있었다는 것이었다.
배를 뚫고 나온 손.
어깨를 깨무는 이빨.
참혹하게 죽어 가던 동료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김정우의 눈에 아스라이 스쳐 갔다.
이미 김정우는 강서준 일행을 보고 있질 않았다.
허공을 응시하며 말을 더듬었다.
그는 과거를 바라보고 있었다.
“허, 헌수였어요. 헌수가 다리를 물었어요. 조영이는 쓰러졌고…… 민혁인 도망치고 또. 또…… 또 나는. 나는.”
“정우 씨? 정신 차리세요. 정우 씨!”
“나는…… 그래, 조영이를 데리고 도망쳤어요. 그때 조영이가 제 어깨를 물었어요. 으으으…… 으아!! 안 돼…… 안 돼애애애!!”
김정우의 기억조각은 날붙이로 조각낸 것처럼 띄엄띄엄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그의 하반신은 죽은 지 오래였고, 빈사 상태의 그는 심장이 멈추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만약 여기서 HP포션을 먹인다면 HP의 최대량을 좀 늘려서 버틸 수야 있겠지만.
‘그저 통증만 늘리고 끝날 거야.’
다시 말하지만 ‘소생의 포션’이 없는 한 김정우를 되살릴 방법은 없었다. 당장 강서준이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마비 포션’으로 통증을 억눌러 주는 것뿐인 것이다.
이럴 때 ‘힐러’라도 근처에 있었으면 상황은 바뀌었겠지.
하지만 당연히 반주역엔 힐러가 없었다.
‘애초에 힐러가 있었다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나빠지진 않았을 터.’
진즉에 던전병은 막았을 것이다.
힐러의 능력이라면 ‘포자 바이러스’를 해독할 수도 있었을 테니까. 또한 ‘죽음의 화원’도 손쉽게 찾아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 부질없는 생각이군.’
이미 일어난 일은 되돌릴 수 없다. 이곳은 여분의 목숨이나 세이브 포인트가 남아 있는 게임도 아니니까.
허공을 휘젓던 김정우의 목소리는 점차 작아졌다.
“다들…… 갔어요. 도망을…… 조영이는…… 사람들을 쫓았……. 괴물, 괴물로 변했…….”
강서준은 김정우가 남발하는 단어 중 중요한 몇 가지를 콕콕 집어내려고 노력했다. 그중 가장 기억해야 할 건 아무래도 사람들이 동료를 공격했다는 것이었다.
‘역시 던전병 2기 증상이야.’
하지만 그건 다시 생각해도 이상했다.
변이가 너무 빠르지 않은가.
‘감염자들은 던전병의 초기 증상에 불과한 환자들이었어. 고작 끙끙 앓다 쓰러지고, 손톱이 변색된 수준이었는데…….’
그런 그들이 좀비처럼 변해 무차별 공격을 가하는 던전병 2기의 증상을 보였다.
또한 김정우가 말하길, ‘괴물’이 되었다고 한다. 강서준은 그 단어를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던전병 3기 증상이야.’
던전병이 3기로 진행되면 감염자는 원래 형태를 잃고 괴물처럼 변한다.
정리하자면 반주역은 반나절도 안 되어 던전병의 증세가 두 단계나 뛰는 수준으로 악화됐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모든 게 자연적으론 불가능하다는 건데.’
원인이던 죽음의 화원은 공략됐다.
포자 바이러스가 더 멀리 퍼지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상태가 터무니없는 속도로 극변하게 된 걸까.
‘누군가가 개입했군.’
그런 결론이 나왔다.
“엄마? 앞이 안 보여요. 엄마…….”
“김정우 씨?”
“……엄마? 엄마야?”
김정우는 허공을 휘젓다 일행 중 유일한 여자인 최하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계속되는 ‘엄마’라는 단어를 입으로 꺼냈다.
섬망 증상.
이미 의식을 잃었는지 풀린 동공이 실낱처럼 남은 그의 삶을 보여 주고 있었다.
최하나는 대뜸 김정우의 손을 맞잡았다.
“그래, 정우야.”
“엄마…… 진짜 엄마지?”
“응, 엄마야.”
최하나의 목소리는 따뜻했다.
김정우는 환각에 빠진 것처럼 해맑은 얼굴을 지었다. 입으로 피가 주룩 흘러내렸지만 눈은 웃고 있었다.
아프진 않을 것이다.
마비 포션의 효능으로 통증도 전부 시스템에 의해 삭제된 상태일 테니까.
“엄마, 미안해. 내가…… 내가 많이 사랑…… 하는.”
“그래, 엄마도 사랑해.”
“엄마. 졸려…… 엄마아.”
김정우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엄마를 찾았다. 그의 서글픈 응석에 최하나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나지막이 노래를 불러줬다.
그녀의 가장 유명한 발라드곡인 ‘선잠’이란 곡이었다.
싸늘하게 식은 김정우의 얼굴에 따스한 음색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다신 눈을 뜨지 않기를. 달콤한 꿈에 빠져 들기를.”
최하나는 김정우의 힘 빠진 손을 살포시 내려놨다. 오대수는 참담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미 죽었어요.”
하지만 김정우는 마치 달콤한 꿈에 빠진 사람처럼 평온했다.
***
일행은 반주역 플랫폼의 깊숙이 난 통로를 따라 이동했다. 어두컴컴한 중간에 문이 하나 있었는데.
이곳이 바로 반주역의 생존자들이 대피한 통로였다.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주변으로 핏덩이나, 수많은 시체가 널브러진 걸로 보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끔찍한 광경이 나타났다.
시체를 파먹는 사람들이 있던 것이다.
타아아앙!
최하나의 권총이 불꽃을 내뿜으며 가까이 시체를 뜯어 먹던 한 사람의 미간을 적중시켰다. 혈안이 된 채로 시체를 파먹던 놈은 픽 하고 쓰러졌다.
그녀는 변명하듯 말했다.
“이미 변이된 사람은 고칠 수 없어요.”
“알아요.”
강서준은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서 점차 나타나는 사람들의 행렬을 보았다. 참사를 피하지 못한 채 ‘던전병’에 감염되어야만 했던 사람들이었다.
이번엔 강서준이 먼저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의 투박한 장검은 빠르게 움직였다.
스거거걱!
가능한 아픔을 느낄 틈이 없게.
그의 냉정한 검무가 끝날 즈음엔 이미 여러 명의 사람들은 머리를 잃고 바닥에 쓰러진 뒤였다.
몸을 바들바들 떨다가 이내 고요해졌다.
“갑시다.”
그들은 조용히 계단을 벗어났다.
***
도착한 곳은 오랫동안 쓰이질 않았는지 벽면에 먼지가 층을 이룬, 이름 모를 플랫폼이었다.
“여긴 유령역이에요. 본래 10호선 창설 계획으로 만들어졌는데 흐지부지되면서 역 자체도 존재가 희미해진 곳이죠.”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서울의 전철역 중에 쓰이지 않는 ‘유령역’이 존재한다는 소문은 인터넷에도 유명했던 것이다.
최하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알아요. 제 뮤직비디오도 유령역을 무대로 찍었었으니까.”
“……하나 님의 촬영지도 이곳이었나요?”
“아뇨. 저는 신설동역이었어요. 그리고 강서준 씨, 가능하면 제 이름에 ‘님’을 붙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요.”
“네? 이름에 왜…… 아!”
강서준은 최하나의 말을 연상하다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남의 이름이 재밌어요?”
“미안해요, 하나님이 너무.”
“강서준 씨!”
“알겠어요. 그만할게요. 하나 씨.”
약간 농담을 하니 울적했던 기분이 조금 희석되는 것 같았다. 혹시 일부러 농담을 한 걸까. 강서준은 의외의 눈으로 최하나를 보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생각해 보면 그녀에 대해서 아는 게 딱히 없었다.
‘클라크. 마탄의 사수…….’
하지만 그건 고작 게임에서의 모습.
캐릭터 이외의 모습인 ‘인간 최하나’는 아는 게 거의 없었다. 유명 연예인인 것도 사실 그녀의 또 다른 캐릭터가 아닌가.
해서 강서준은 최하나를 눈여겨봤다.
‘강한 사람.’
최하나는 김정우의 손을 꼬옥 잡아 주며 그의 마지막을 지켜 줬다. 또한 가망이 없는 사람들의 경우엔 망설임 없이 죽음을 선사했다.
그녀는 내적으로도 강한 사람이었다.
그때 최하나는 앙다문 입술을 꽉 깨물더니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엔 분노가 섞여 있었다.
“확실한 건 어떤 놈이 개입했다는 거겠죠.”
오대수가 대답했다.
“무너진 학교에서 우리를 공격했던 일당과 같은 놈들일까요?”
“가능성은 높아요.”
“젠장. 세상은 이 꼴인데…… 서로 힘을 합치진 못할망정.”
강서준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인간의 생존 욕구는 누구보다 이기적이니까요.”
“네?”
“그냥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유령역 플랫폼을 둘러보다 보니 생존자들의 흔적을 얼추 발견할 수 있었다. 김정우의 말처럼 그들은 터널을 따라 도망간 모양이었다.
어지럽게 찍힌 발자국은 전혀 방향을 알 수 없었다.
“어느 쪽으로 갔을까요?”
“영등포역으로 갔을 겁니다. 저희는 늘 유사시에 그쪽으로 대피하도록 준비했거든요.”
오대수는 손전등으로 철길을 비추었다. 조명이 닿는 범위 외에는 시커먼 곳이었는데, 확실히 이쪽으로도 사람들이 이동한 흔적이 있었다.
키이이잇…….
그리고 손전등이 비춘 방향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붉은 뭔가가 일렁인 건 금방이었다.
강서준은 망설이지 않고 정면으로 뛰었다.
채애앵!
검과 맞부딪친 뭔가가 공중을 몇 바퀴 돌더니 착지했다.
일행은 순식간에 전투태세에 돌입했고, 오대수는 나지막이 신음을 토했다.
“……조영이.”
“설마 김정우 씨가 언급했던?”
“네. 그 조영이입니다.”
김정우가 구하려 했지만 이미 던전병의 여파로 변이됐던 유조영.
그녀는 김정우를 빈사 상태로 내몰고 도망치는 생존자를 쫓아 이 아래까지 내려온 듯했다.
최하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확실히 3기는 진행됐네요.”
“……네.”
고개를 푹 아래로 떨군 유조영의 등으로 손이 나와 있었다. 도합 네 개나 되는 손은 마치 거미처럼 보였다.
사람의 형상은 아니었다.
실제로 유조영은 이젠 몬스터로 분류될 것이다. 그녀를 죽이면 경험치와 아이템을 떨어트릴 거고.
“……끔찍하군요.”
“던전병은 원래 그런 겁니다. 바이러스 감염으로 몬스터를 증식시키는 병.”
해서 죽음의 화원은 발견 즉시 다른 일은 막론하고 즉시 공략해야 하는 가장 치명적인 던전이었다.
저것 때문에 대륙인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으니까.
‘이젠 지구의 운명이야.’
강서준은 투박한 장검을 꽉 쥔 채로 정면을 노려봤다. 가능한 일격에 목숨을 빼앗을 생각이었다.
‘곧 편하게 해 줄게요.’
강서준이 먼저 앞으로 뛰었다.
순식간에 접근해서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유조영은 마치 관절이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몸을 꺾더니 강서준의 사각을 노렸다.
유조영이 가진 네 개의 손이 동시에 움직였다.
스거거걱!
물론 강서준은 눈을 빛내며 공격을 차단했다. 돋아난 네 개의 팔을 모조리 잘라 내는 기염을 토했다.
그때 유조영의 입이 벌어지면서 그곳에서도 손이 나왔다. 강서준은 몸을 비틀어 공격을 피하면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저도 돕겠습니다!”
“아뇨. 물러나요! 어설픈 공격은 안 통하니까!”
오대수의 호기로운 외침에 건넨 간단한 답이었다. 그가 충격을 받은 얼굴을 했지만 전혀 신경 쓰진 않았다.
사실일 뿐이다.
던전병 2기의 환자라면 모를까.
3기 이상의 환자는 아직 오대수가 상대하기 힘든 몬스터였다. 얼추 레벨은 80에 근접한다고 봐야 하니까.
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눈에서 피눈물을 쏟아 내는 유조영.
강서준은 호흡을 정돈했다.
‘다음 한 방에 끝내자.’
이 사람은 태생이 몬스터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딸이었고, 누나였고, 동생이었으며, 또 연인이었을 사람.
그런 그녀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죽음뿐이라는 게 조금 참담한 기분이 들었지만.
강서준은 빛살같이 달려들며 머리를 비웠다.
그의 움직임은 어찌나 빠른지 유조영의 눈동자가 느릿하게 따라올 정도였다.
꺄아─
스거어억!!
그녀가 반응할 즈음엔 이미 그 목이 날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투박한 장검은 부들부들 떨리다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