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166
◈ 166화
위천은 ‘견주(犬主)’라 불렸다.
진 제국의 유능한 암살 집단.
드림 사이드 1에서부터 그 연혁이 이어진 레드 플레이어 길드 ‘들개’의 수장이었다.
위천은 자신을 내려다보는 황제 칭트리칸에게 물었다.
“케이를 암살하라고요?”
“걱정 마라. 확인한 바로는 아직 과거 수준의 무력은 되찾질 못했다더군.”
“……그렇습니까.”
한편 진 제국의 황제 칭트리칸은 드림 사이드 1을 플레이해 본 적조차 없는 인물이었다.
그저 수십 개의 기업 중 최상단에 있는 재계에서 알아주는 재벌 회장이었다.
위천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욕심 많은 늙은이…… 결국 사고를 치는군.’
위천은 현 세계의 평화가 일시적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적응한 플레이어가 늘어날수록 세상은 더더욱 걷잡을 수 없는 풍랑에 휘말리기 마련이니까.
드림 사이드 1이 그랬다.
‘세상은 다음 단계의 아포칼립스로 넘어갈 거야. 게임으로 치면 일종의 확장팩 업데이트라고 할까…….’
해서 위천은 현 상태에서 케이가 죽어선 안 된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케이는 미래를 생각한다면 반드시 지켜 내야 할 자니까.’
그의 전투 실력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었다. 케이가 필요한 이유는 그가 이전 게임에서 보여 준 ‘창의적인 공략법’에 있다.
이른바 ‘뇌지컬’이다.
케이는 그래서 중요한 인물이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하지만 위천은 거리낌 없이 칭트리칸의 명을 따르기로 했다. 무릇 길들여진 들개들은 그들의 주인이 물라고 하면 물 뿐이다.
‘세상이 멸망되든 나는 알 바 없고.’
애초에 그에게 삶이란 큰 의미가 없다.
‘무엇보다 황제의 말마따나 현재의 케이가 과거보다 약하다면…… 죽일 수 있는 기회는 지금뿐이겠지.’
그는 많은 랭커를 죽여 왔다.
그 잘났다고 소문난 천외천 중 한 명도 죽여 봤으니, 케이라고 별반 다를 게 없으리라.
그래.
그렇게 의뢰를 수락하고 바로 케이를 죽이기 위해 함정을 팠다.
드림 사이드 1에서 녀석에게 당했던 것과는 반대로, 녀석을 반드시 죽이고 말겠다는 일념 하나로 해낸 일이었다.
분명 그랬었는데.
‘대체 이게…….’
위천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장면에 기함을 토했다.
“으아악!”
“사, 살려 줘!”
“끄아아악!”
사방에서 들려오는 비명. 그리고 빠르게 움직이는 작은 단검까지 확인했다.
일부러 놈이 숨지 못하도록 광활한 땅으로 유인하여, 집단으로 공격한다는 계획이 무색한 풍경이었다.
“……이기어검술이라고?”
검사가 300레벨이 되어 2차 전직을 하면 얻을 수 있다는 상위 스킬.
그걸 놈이 갖고 있는 것이다.
‘……그래. 상대는 케이다.’
어쩌면 저 정도 상위 스킬을 갖고 있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섭종 보상으로 가져왔을 수도 있으니까.
‘그것까진 이해한다고.’
그럼에도 눈앞으로 펼쳐진 상황은 아무리 생각해도 도통 납득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분명 레벨은 200 초반인데…….”
그가 야심차게 녀석을 유인했던 이유가 뭐겠는가. 어찌 이 작전의 성공을 확신했겠는가.
황제의 말이 아니더라도 그는 상대의 레벨을 보는 스킬이 있기 때문이었다.
들개의 철칙 하나.
‘죽일 수 없는 상대는 절대 물지 않는다.’
해서 일단 상대의 수준을 알아보기 위해 호텔 방을 기습했고, 몰래 숨어 지켜봤다.
‘녀석의 레벨이 낮은 건 틀림없는 사실.’
하지만 케이의 단검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들개들의 비명은 늘어났다.
전부 치명상이었다.
고작 직선으로 던져지고 다시 돌아오는 과정을 반복할 뿐인데도, 케이의 움직임도 귀신같이 날렵하여 들개들은 속수무책이었다.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제아무리 스텟이 높다 해도 이건 규격을 너무 벗어나잖아?’
역시 천외천…… 랭킹 1위는 다르다는 걸까. 숨을 섞어 짜증을 뱉어 낸 위천은 어쩔 수 없이 품에 숨겨 뒀던 한 장의 종이를 꺼내기로 했다.
이미 수락한 의뢰.
죽어서라도 성공시키는 게 들개의 두 번째 철칙이었다.
그는 작전을 성공시킬 것이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위천은 손을 앞으로 뻗으며 말했다.
“물어라. 광견들이여!”
그의 손끝에서 피어난 검붉은 마력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들개들에게 닿았다.
또한 그의 눈에도 검붉은 마력이 깃드는 순간이었다.
***
“끄아악!”
“……죽어어어!”
비명이 터지고 사방으로 혈무가 난무하는 공간.
빈 공터였던 개활지는 어느덧 피로 강을 이루고 시체가 산처럼 쌓이고 있었다.
강서준은 그 사이를 가로지르며 묵묵히 죽음을 조율하는 마에스트로처럼 손끝을 섬세하게 조종했다.
[스킬, ‘이기어검술(E)’을 발동합니다.]장력과 인력을 봉인된 펜으로 추가해서 겨우 조건을 맞춘 스킬.
이기어검술.
아이템을 매개로 한 덕인지 용케 E급으로 완성된 이 스킬은 당장 강서준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어 줬다.
잡아먹는 마력량이 상당하여 오랜 시간 쓸 수는 없겠지만…….
‘직접 베질 않아도 재앙의 유성검을 다룬다는 데에 메리트가 있지.’
특히 이 스킬은 재앙의 유성검과의 궁합이 굉장했다.
피를 흡수하여 강화하는 검과 염동력처럼 검을 날리고 다시 제 손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능력.
길이가 짧은 단검의 단점을 모조리 지워 주는 효과가 있었다.
[스킬, ‘집중(S)’을 발동합니다.]강서준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단검을 회수했다. 배부른 듯 검을 떨어 대는 재앙의 유성검.
초상비와 이기어검술을 동시에 사용하느라 상당히 어지럽고 마력의 소모도 컸지만.
블러드 석션으로 빨아들인 내용이 더 많았다.
이득이었다.
“끄아아악!”
강서준은 마치 장송곡을 연주하기라도 하듯 사방을 누비며 녀석들의 숫자를 차곡차곡 줄여 나갔다.
주변을 감도는 기묘한 흐름을 느끼게 된 건 아마도 그때.
강서준은 흐름의 근원지를 쫓다가 익숙한 색깔의 마력을 볼 수 있었다.
검붉은색의 마력.
‘마기라…….’
강서준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배짱으로 덤비나 했더니만 마족을 백으로 둔 거였군.”
강서준의 눈초리가 더욱 싸늘해졌다.
마족과 관련된 자들에겐 더더욱 손속에 사정을 둘 필요가 없었다.
괜히 악령들이 아닌 것이다.
강서준은 달려드는 인간들을 재앙의 유성검을 더욱 꽉 쥐면서 맞이했다.
“크허엉!”
“크르르르……!”
방어를 도외시하는 공격 일변도의 무식한 행동들.
일견 미친 것처럼 보였지만 유기적인 움직임은 일전에 광명동굴에서 마주했던 천라지망보다 위협적이었다.
녀석들은 엎드린 채로 마치 개처럼 네 발로 섰고, 이빨을 딱딱거리며 침을 흘렸다.
‘저 꼴은…… 흐음.’
강서준은 눈을 빛내며 검을 휘둘러 나갔다. 이젠 인간을 벤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한편 녀석들을 조종하던 한 인간이 검붉은 마기를 뿜어내며, 강서준을 향해 달려든 건 그때였다.
반쯤은 눈이 돌아가 있었다.
“네가 진짜 마족은 아닐 테고.”
마족은 본래 300레벨은 넘겨야 볼 수 있는 A급 던전의 몬스터.
시기상 아직 나타날 수 없다.
하지만 마족이라면 B급 던전 아래에서도 충분히 그 영향력을 떨칠 수 있었다.
아직 던전 브레이크가 벌어지지 않았는데도 제멋대로 진백호의 몸에 머물게 된 ‘아쿠아’처럼.
“……역시 계약자인가.”
계약.
A급 던전의 마족들이 B급 던전의 마물, 그리고 플레이어에게 개입했던 방법이었다.
‘악마 계약을 한 거야.’
녀석들은 이를 활용하여 간접적으로나마 세계에 개입했고, 이를 통해 세력을 넓히기 위해 별별 사건들을 일으켰다.
정규 업데이트 이후에 벌어지는 마족과의 전쟁은 사실상 이 계약자들과 벌이게 되는 것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1과는 다르겠지. 이번엔 이미 지구에 현신한 놈들도 있을 테니까.’
아마 로테월드의 피에로와 같은 놈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피에로가 저렙의 강서준에게 당했듯, 그 녀석들도 섭종 보상처럼 무언가 힘의 제약이 생겼겠지만.
“이제야 정리가 되네.”
강서준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도깨비의 권능을 발휘했다.
그의 손에 죽어 나간 근처의 인간들. 그 영혼들이 속수무책으로 강서준의 휘하에 사로잡혀 고스란히 ‘도깨비 갑주’의 일부가 됐다.
약간 두껍게 만든 갑주를 믿고, 강서준은 다른 이들의 공격을 모조리 무시하기로 했다.
‘조종하는 놈이 눈에 빤한데, 조무래기들과 놀 필요는 없어.’
류안으로 보건대, 계약자 녀석의 몸에서 흘러나온 마기가 다른 사람들의 뇌에 닿는 방식이었다.
미친개처럼 만드는 건 녀석의 권능.
강서준은 계약자의 머리 위로 검붉은 마기가 마치 개의 형상처럼 자라난 걸 확인했다.
역시 그놈이다.
“……견성.”
견성(犬星).
켈베로스의 주인이라 불리는 놈.
짧은 질문에 놈의 입에서 억울한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정말 터무니없구나.”
“뭐야. 한국말 잘하네?”
“견성 님의 힘을 사용해도 먹히질 않다니.”
강서준은 재앙의 유성검에 도깨비불을 화려하게 불태웠다. 바로 마기가 잘려 나갔다.
역시 도깨비는 마족과 궁합이 잘 맞는다. 강서준은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근데 이번에도 날 친 게 ‘진 제국’이라니. 너넨 진짜 질리지도 않는구나.”
“……그건 또 어떻게 알았지?”
“영혼들이 중국 말을 하는데 뭐…….”
지금도 사방에서 영혼의 속삭임을 들어 보자면 하나같이 중국말을 하고 있었다.
강서준은 싸늘하게 웃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내 뒤통수를 노렸단 말이지?’
진 제국.
녀석들은 아무래도 강서준이 살아 있는 꼴을 보기 싫은 모양이다.
“후우…….”
짜증을 한숨에 섞어 재차 내뱉은 강서준은 단검을 역수로 쥐었다.
끝낼 생각으로 마력을 불어 넣자 녀석도 당황하며 더욱 마기를 끌어올렸다.
“……죽더라도 나 혼자 죽진 않을 것이다!”
눈앞의 인간.
그러니까, 마족 ‘견성’과 직계약했을 거로 추정되는 놈이 이내 손톱을 길게 뽑아냈다.
히어로 영화에서 나온 누구처럼 엑스자로 교차한 녀석은 송곳니도 날카롭게 자라났다.
폭풍 같은 기세로 달려들었다.
“죽어라아아아!”
꽤 무시무시한 마기였지만.
‘진짜 마족도 아니고.’
견성이 현신한 것도 아니니 위협은 되질 않는다.
강서준은 일부러 정면으로 부딪쳐 놈의 손톱을 단번에 꺾어 버렸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어지간히도 내가 얕보였나 봐.”
“크윽……!”
“진짜 마족도 아니고, 그것도 고작 견성 따위로 날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싸늘한 미소 뒤엔 날카로운 칼날이 뒤따랐다. 놈의 입가가 쫙 찢어지며 송곳니도 산산조각 났다.
“하긴 내가 얌전하게 지내긴 했지.”
부득이한 5개월의 부재를 차치하더라도, 적들이 강서준을 향해 섣불리 이빨을 드러내는 이유가 뭐겠는가.
‘얕보였으니까.’
그렇다면 왜 얕보였을까.
지금의 그가 드림 사이드 1의 케이보다 약해서? 아닐 것이다. 시기적으로 따진다면 그는 과거보다 훨씬 강해졌다.
시작부터 천무지체를 갖고 S급 스킬 등을 보유했으며, 무기도 섭종 보상으로 알차게 들고 있다.
답은 다른 쪽이다.
‘플레이 방식이 달라서.’
과연 드림 사이드 1에서의 케이라면 같은 문제를 겪었을 때 어떻게 해결했을까.
진 제국의 기습을 받은 케이라면…….
‘절대 그냥 넘어가진 않는다. 영혼까지 재기 불능 수준으로 털어 버리겠지. 로그인 못 하게 세 번을 죽여서라도…….’
한데 강서준의 결정은 달랐다.
이곳으로 들어오는 길에 그를 노렸던 암살자들의 배후가 ‘진 제국’이란 걸 알았어도 참았다.
섣불리 진 제국을 향해 칼을 빼질 않았다.
왜 그랬을까.
‘날 배척하는 건 당연하니까.’
원래 굴러온 돌은 위협받기 마련.
이를 잘 알기 때문에 똑같이 되갚아 줄 생각은 하질 않았다.
따지고 보면 그들은 컴퍼니와 같이 악독한 목적으로 움직이는 집단이 아니며, 그들의 목적도 지구 멸망은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고작 게임이 아니잖아.’
현실의 플레이는 다를 수밖에 없다. 게임처럼 놈들을 싸그리 잡아 죽여선 안 되는 것이다.
또한 뒷일을 고려해야 했다.
‘그들이 무너지면 중국도 무너진다.’
그 일로 죄 없는 사람들이 희생당하는 건 버젓이 예측 가능한 일.
다가올 정규 업데이트를 대비해서라도 중국엔 진 제국이 필요했다.
“근데 두 번은 좀 아니지 않냐.”
이것들이 가만히 있으니 호구로 안다.
한 번 봐줬더니 끝도 없이 기어오르려 한다.
강서준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안내해 줘야겠어.”
“……뭐?”
“너한테 물은 거 아니야.”
강서준은 재앙의 유성검에 힘을 더해 으르렁대던 적의 목을 푸욱 찔러 버렸다.
바들바들 떨던 놈은 피가 빨리면서 점차 그 힘을 잃어 갔다.
그를 노리던 여러 암살자들도, 결국 우두머리가 쓰러지니 힘없이 툭툭 바닥에 누웠다.
곧, 축 늘어진 놈은 죽고 말았다.
“일어나.”
[장비 ‘도깨비 왕의 반지’의 전용 스킬, ‘도깨비의 부름’을 발동합니다.]강서준이 물었다.
“이름이 뭐냐?”
-……위천.
“그래. 위천아. 황제는 지금 어디 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