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167
◈ 167화
위천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의외로 강서준이 묵던 숙소에서 가까운 곳이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걸어서 갈 만한 거리.
강서준은 그곳의 입구로 당당하게 걸어 들어갔다.
안내를 하던 위천이 말했다.
-견성은 현재 자금성에 있습니다. 진 제국의 모처에 몸을 숨기고 있죠.
마족 견성.
그 똥개 녀석은 터무니없지만 중국 측 길드인 ‘진 제국’과 밀접한 관계라고 했다.
놈과 계약을 한 위천이 들개를 운용한 것과 별개로, 놈의 능력을 이은 자들도 더러 있다는 것.
-물론 들개들은 견성과 직계약한 이들로만 구성됐습니다. 마기에 중독된 피를 수혈받아…….
위천은 이후로도 진 제국의 각종 비리에 대해서 미주알고주알 낱낱이 털어놨다.
어찌나 해 먹은 게 많은지.
강서준은 신나서 떠들어 대는 위천의 뒤통수를 몇 번이고 후려쳤다. 진짜 더러운 놈들이다.
‘들개라…….’
위천이 소속된 들개는 이른바 진 제국의 청소부였다.
그들에게 방해가 되는 적을 죽여 청소하는 청부 살인 업체.
황당한 일이지만 이놈들은 게임과 별개로 현실에서도 비슷한 조직을 오래 전부터 운용해 왔다고 한다.
‘세계가 이 꼴이 나기도 전부터 이런 짓들을 거듭해 왔다는 거야.’
영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비리 재단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따로 없었다.
과연 이들의 이기심으로 죽어 나간 사람들은 대체 몇이나 될까.
“웬 놈이냐!”
도착한 빌딩 앞엔 여러 플레이어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오는 길에 잠시 호텔에 들러 ‘통역기’를 가져온 덕일까. 상대가 중국인임에도 소통은 무리가 없었다.
놈의 질문에 강서준은 나지막이 답했다.
“글쎄요. 싹 다 쳐부수러 왔으니…… 깡패가 아닐까요.”
“……뭐?”
“그나저나 황제를 좀 만나고 싶은데요. 선물을 좀 받았거든요. 그거 보답해야 해요.”
빌어먹을 PK 경험치가 산더미였다.
고맙게도 레벨 업을 했으니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할 생각이다.
“빨리요. 저 바쁜 사람입니다.”
“건방진 놈……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사나운 말투로 놈들이 으르렁댔다. 어느덧 주변으로 떡대같이 덩치 큰 플레이어들이 나타나 위협을 가했다.
총부터 활, 칼…… 장도리까지 들고 다가오는 놈도 있었다.
강서준은 짧게 혀를 찼다.
“그냥 넘어가면 안 됩니까? 당신들이 한 트럭으로 몰려와도 나한테 손끝 하나 건드리지 못할 텐데.”
“……죽여 버려!”
본색을 드러낸 경비원들은 무기를 휘두르며 강서준에게 다가왔다.
수 개의 스킬이 폭발하고 지척으로 다가오는 공격들은 참으로 느리게 보이고 있었다.
레벨 차가 났기 때문이다.
[스킬, ‘류안(S)’을 발동합니다.]한 걸음.
내디딘 것과 동시에 찔러 오는 검의 옆면을 쳤다. 총알은 고개를 살짝 비트는 것으로 피했다.
“쏴! 쏘라고……!”
두 걸음.
크게 내디딘 강서준이 다시 나타난 곳은 총구를 견고 있던 진 제국의 플레이어 앞.
강서준의 우악한 손길이 놈의 얼굴을 쥔 채로 바닥에 내리꽂았다.
“끄아아악!”
순식간에 그를 놓친 플레이어들이 한발 늦게 뒤를 쫓았지만, 그보다 빨리 이동하는 강서준을 막을 도리는 없었다.
쿠우우웅!
거칠게 문을 부수고 들어오니 꽤 당황한 눈초리로 이쪽을 살피는 사람들이 보였다.
빌딩 내부로 사이렌이 울린 건 그때.
-침입자가 발생했습니다! 침입자가 발생했습니다!
-제국의 용맹한 전사들은 1층 로비로 집결해 주십시오!
-침입자가 발생했습니다! 침입자가……!
방송이 끝난 지 얼마 안 되어 사방에서 플레이어들이 거친 파도처럼 밀려 내려왔다.
입구를 지키던 놈들보단 더욱 고강한 힘을 가진 놈들이었다.
아마도 진 제국의 상위 플레이어들.
“저놈 뭐야?”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숱한 살기가 송곳처럼 쏟아졌다.
강서준은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감히 이곳이 어딘지 모르고 왔겠습니까.”
숫자가 숫자였으니 강서준은 감투에서 백귀들을 소환하기로 했다.
호텔에서 전투를 끝마치고 여태 감투 속에 숨어 기다리던 ‘라이칸’은 히드라의 마검을 적들에게 겨누며 말했다.
“왕이시여…… 명을 내리시옵소서.”
“길을 열어.”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푸른 불길이 검신에 휘감기더니 이내 눈앞으로 도깨비불로 이루어진 선이 생겨났다.
진 제국의 플레이어들이 속수무책으로 뒤로 물러났다.
강서준은 뒤이어 오가닉도 소환했다.
“쓸어 버려.”
“알겠습니다.”
거두절미하고 라이칸과 합류한 오가닉이 폭풍을 일으키며 매섭게 창을 찔렀다.
도깨비불과 폭풍이 휘감기자 적들 사이로 하나의 길이 생겨나고 있었다.
강서준은 가만히 그쪽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위천. 황제는 몇 층에 있지?”
-꼭대기 층인 47층입니다.
고개를 주억거린 그가 미련 없이 백귀들이 만들어 낸 길을 활보했다.
플레이어들이 접근하고자 했지만 결코 백귀들을 따돌릴 수 없었다.
어느덧 라이칸의 주변으로는 이깨비부터 삼깨비들이 나타나 적들을 공격하고.
오가닉은 남아 있던 리자드맨의 영혼을 다루며 그와 보조를 맞추고 있었으니까.
강서준은 금세 엘리베이터에 도착하더니 패널을 확인하고 말했다.
“46층까지밖에 없잖아.”
-47층은 카드가 필요합니다.
카드야 걱정할 게 없었다.
위천은 촉망받는 비밀 조직의 장이었고, 당연히 황제의 측근이었다. 47층으로 올라가는 카드 정도는 소지하고 있었다.
강서준은 바로 꼭대기 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이곳입니다.
부드럽게 열린 문 너머로는 칠흑 같은 어둠이 기다리고 있었다.
막상 도착하니 놀란 건 방음이었다.
요란스럽게 전투가 펼쳐지는 1층의 소음 따위는 이곳으로 전혀 전해지지도 않았다.
강서준은 한쪽에서 의자에 앉은 채 담배를 피우고 있는 한 남자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가 말했다.
“결국 실패했나.”
마치 그가 올 거라고 예상이라도 한 걸까. 태도가 너무 뻔뻔해서 강서준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황제 칭트리칸.
위천에게 들은 대로 확실히 난놈은 난놈이다.
막무가내로 쳐들어온 상대를 보고도 크게 당황하질 않는 눈치였다.
한눈에 봐도 고렙은 아니지만 그 기백은 확실히 일반인이라 보긴 어려운 것이다.
‘속에 능구렁이라도 양식하나.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하기 어려워.’
칭트리칸은 길게 연기를 뿜으며 말했다.
“자네도 한 대 피우겠나?”
“……담배는 싫어해서.”
“고맙군. 내주기엔 아까웠는데.”
칭트리칸이 자세를 바로 하더니 말했다.
“원하는 걸 말하게.”
“……흐음.”
“보자마자 날 죽이질 않는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닌가.”
강서준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칭트리칸과 시선을 마주했다.
솔직히 위천에게 칭트리칸에 대해서 설명을 들었을 때는 꽤 악랄한 놈일 줄은 알았다.
그리고 직접 마주하니 깨닫는다.
‘똑똑하게 악랄한 놈이야.’
강서준은 그런 자는 싫지 않았다.
같은 인간으로는 최악이겠지만, 같은 적을 둔 동료로는 꽤 쓸모가 있을 테니까.
칭트리칸은 눈을 빛내며 말했다.
“돈을 원한다면 주지. 10억 골드를 주겠네.”
“……양심은 없네.”
“좀 더 강한 힘을 원하는가? 그럼 특별히 보유 중인 S급 장비도…….”
“됐어.”
강서준은 거두절미하고 말했다.
“딱히 원하는 건 없어. 그냥 알려 주고 싶은 게 있어서 온 거니까.”
“……뭐?”
“당신이 누굴 건드렸는지 말이야.”
강서준은 재앙의 유성검을 쥐고 부지불식간에 칭트리칸의 반경에 접근했다.
반응하기도 전에 단검은 목을 겨눴다.
“요즘 내 인식이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됐더라고. 개나 소나 다 덤벼들고 있으니까.”
“개나 소나…….”
“응. 그래서 그냥 놔두긴 안 되겠어.”
강서준은 진중한 얼굴을 했다.
“플레이어가 너무 많이 다치잖아. 나로 인해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 좋지 않아.”
“…….”
“이번에도 그래. 나 하나 죽이겠다고 달려들어서 대체 몇 명이나 골로 보낸 거냐?”
물론 마족과 계약한 들개들은 죽어 마땅한 자들이다. 그들은 훗날 견성의 힘으로 인류를 갉아먹는 암덩어리가 될 테니까.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후에 벌어질 수 있는 일은 조금 다르다.
그저 강서준을 견제하려는 자들까지 모두 죽인다면 어떻게 될까.
악령은 아니지만, 길드의 목적에 의해 적이 될 수밖에 없는 자들을 상대로 싸운다면…….
‘죽게 놔두기엔 아까운 자들이야. 결국 그들도 제 나라에선 영웅이니까.’
한국 하나만을 봤을 때는 다른 국가의 플레이어들 따위야 어찌 되든 상관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류 전체로 본다면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이 게임은 결국 인류가 하나로 뭉치질 못하면 클리어할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으니까.
스스로 난이도를 헬(Hell)로 조정할 필요는 없었다.
칭트리칸이 말했다.
“오만하군.”
하지만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이니까.
강서준은 싸늘한 시선을 내리깔면서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앞으로는 이런 같잖은 일은 없었으면 하거든.”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진 말아. 네가 판 무덤이잖아?”
슬슬 백귀들이 전투를 끝냈다고 신호를 보내왔다. 그새 1층의 플레이어들을 제압한 걸 보면 확실히 이들도 상당히 강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강서준은 칭트리칸에게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볼래?”
작은 폰 안으로 흘러나오는 영상.
건물로 진입하는 순간부터 진 제국의 플레이어를 상대로 전투를 벌이는 강서준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반대로 한 사람에게 철저하게 털리는 진 제국의 플레이어들이 있었다.
영상의 감독은 이루리였다.
-잘 나왔네.
-적합자가 의외로 캠빨이 받더라고. 여태 그 얼굴로 스트리머 같은 건 왜 안 한 거야?
-안 한 게 아니야. 못 한 거지.
한창 게임이 인기가 있을 적엔 그는 얼굴이 세상에 알려져선 안 될 이유가 있었다.
나중에 사태가 진정됐을 때는 이미 게임은 망겜의 기로에 접어든 상태였고.
-어쨌든 수고했어.
영상의 말미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장면이었다.
곧 이루리가 옆에 나타나더니 강서준이 칭트리칸의 목을 겨누고 있는 장면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칭트리칸. 이건 마지막 경고야. 한 번 더 나한테 도전한다면 그땐 모두 끝이야.”
그러자 칭트리칸이 고요하게 살기를 뿜어내면서 말했다.
“이딴 짓을 하고도 네놈이 멀쩡할 거라고 생각하느냐?”
“응. 난 멀쩡할 거야.”
그때 강서준은 빠르게 방 안 어둠을 향해 재앙의 유성검을 날렸다. 허공을 가르고 도착한 장소엔 누군가가 목덜미를 부여잡고 있었다.
“이런 같잖은 꼼수는 안 통하니까.”
그곳을 응시하던 칭트리칸이 말했다.
“이게 끝이라고 생각 마라.”
“……흔한 악당 대사네.”
강서준은 돌연 이매망량을 발동시켰다. 도깨비의 가면이 얼굴로 덧씌워지니 새삼스럽지만 이미 그는 한 마리의 도깨비가 되어 있었다.
목소리도 일부러 영혼을 사용해서 여러 개로 나눴다.
일종의 연출이었다.
“잘 들어. 난 받은 것에 대해선 반드시 갚아야 직성이 풀려.”
강서준의 시선이 카메라로 향했다. 아마도 이 영상을 보고 있을 누군가에게 해 줄 말이 있었다.
“그러니 죽고 싶으면 알아서 판단해. 너희들이 누굴 건드리는지.”
마지막으로 카메라는 창가를 비추었다. 그곳에서 여태 추위에 떨며 기다리던 고롱이가 대번에 크기를 키우더니 한쪽 창을 부수고 포효했다.
강서준은 부서진 창을 넘어 고롱이의 등에 올라타며 말했다.
“그리고 황제야. 창고에 있는 건 합의금이라 치고 가져간다.”
“……뭐?”
“많이도 숨겨 놨더라? 쓸모 있는 게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무슨 소리를……?”
문득 칭트리칸은 한쪽 구석에서 서 있던 위천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제야 강서준이 말한 창고가 무언지 깨달았을까.
“아, 안 돼…… 거긴!”
처음으로 당황한 얼굴을 보이는 황제였지만, 이미 강서준은 빌딩을 벗어나 멀리 날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