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173
◈ 173화
「다음은 너다.」
강서준은 경기장에 홀로 선 데칼을 보며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두려워서 그런 게 아니었다.
말하자면 이건 일종의 호승심.
‘강해…….’
현 랭킹 1위라 불리는 데칼은 확실히 강했다. 협곡의 광전사와 직계약한 아리아를 상대로 보여 준 압도적인 무력.
어지간한 레벨 차이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장면이었다.
‘아니, 레벨뿐만이 아니야.’
상대의 전력을 가늠하기 위해 탐색전부터 벌이는 그다. 상대의 레벨이 낮다고 얕잡아 보진 않는다는 것이다.
‘결코 방심하질 않는다는 거고.’
그만큼 신중한 플레이어는 으레 강하기 마련이다. 언제 어느 때든 전력을 다할 준비를 해 놨을 테니까.
어지간한 꼼수도 통하지 않는다.
실제로 종전의 전투에서도 데칼은 전력을 내보이지 않았다.
여러모로 골치 아픈 상대였다.
‘이길 수 있을까?’
잠깐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털어 냈다.
의미 없는 고민이다.
어차피 싸워야 하는 적을 상대로 승리를 점치는 건 불필요한 일.
‘할 수 있냐, 없냐는 중요한 게 아니야. 해내느냐, 마느냐일 뿐이지.’
강서준은 각오를 되새기며 재앙의 유성검을 매만졌다. 최근에 피를 배부르게 먹어서 그런지 꽤나 얌전하게 굴고 있었다.
-여러분, 다음 경기를 속행하겠습니다. 이대로 돌아가시진 않겠죠? 메인이벤트가 이제 막 시작할 참인데 말이죠!
그리고 당장 녀석을 고민할 여유는 없다. 그전에 넘어야 할 산이 꽤 높았으니까.
막말로 이 사람도 승부를 점치기 힘들긴 매한가지다.
-오늘의 두 번째 메인 스테이지! 현재를 따라잡기 위해 과거에서 돌아왔다! 전 랭킹 1위…… 케이이이이!
우레와 같은 함성을 뒤로하고 무대 위로 오른 강서준은, 건너편에서 천천히 다가오는 한 남자를 마주할 수 있었다.
게임과 다를 게 없는 남자였다.
‘링링의 말 그대로네.’
-이에 맞서는 건…… 전 랭킹 2위! 진 제국을 구원하기 위해 내가 왔다! 완전무결한 플레이어…… 리트리하아아!
전투는 초읽기로 들어서고 있었다.
***
천외천 랭킹 2위, 리트리하.
별칭은 ‘완전무결한 플레이어’.
누가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는 몰라도 그의 플레이 방식을 떠올려 보면 너무 딱 맞아떨어지는 별칭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군더더기 없이 강하니까.’
리트리하는 던전 공략이면 던전 공략, PVP면 PVP, 요리면 요리…….
게임 속의 콘텐츠라면 무엇 하나 빠질 것 없이 곧잘 해내는 플레이어였다.
강서준이 두각을 드러내기 전엔 명실상부 랭킹 1위에 군림하던 기존의 최강자!
그리고 현실의 ‘그’를 보고 있노라니, 그 평가가 절하되는 건 단 하나도 없다고 장담할 수 있었다.
데칼도 문제지만 역시 리트리하도 그렇다.
‘강해.’
가만히 서 있는데도 느껴지는 굳건한 기세는 부술 수 없는 철벽이었다. 잠깐씩 내비치는 맹수의 눈빛은 금방이라도 목덜미를 물어뜯을 것만 같은 날카로움이 느껴졌다.
완전무결한 플레이어.
강서준은 긴장감을 밀어내며 리트리하를 마주 봤다. 그도 평정심을 유지하며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군요.”
“……네.”
사실 리트리하와의 사이는 악연도, 그렇다고 좋은 인연도 아니었다.
서로에 대한 유감은 없지만 친하게 지내진 못한 케이스.
리트리하는 강서준을 슥 보더니 솔직하게 말했다.
“여전히 괴물같이 강하군요.”
“그쪽도 마찬가지인데요, 뭘.”
강서준은 리트리하가 쥐고 있는 커다란 방패를 눈여겨봤다.
레벨 400대 장비.
아마 S급 던전 ‘천계’의 장비인 ‘대천사의 대방패’일 것이다.
섭종 보상이라 그 능력치가 전부 발휘되진 못하겠지만, 지금쯤 그 봉인도 꽤 헐거워졌을 것이다.
무엇보다 봉인됐더라도 대단한 무기였다.
애초에 내구도부터 남다르지 않은가.
강서준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물었다.
“어쩌다 진 제국 소속이 된 겁니까? 러시아 쪽 사람으로 들었는데요.”
말하면서도 서로의 시선이 날카롭게 교차했다.
마주 본 채로 어떠한 모션도 취하진 않았지만, 이미 전투는 시작한 지 오래였다.
그가 입은 장비.
작은 움직임.
호흡.
그 모든 것이 정보였고, 게임 속에서 마주 보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깨닫고 있었다.
“당신과 싸울 기회를 준다기에.”
“…….”
“그것 말고는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리트리하는 방패의 한쪽에 장착되어 있던 창을 쭉 뽑아 들더니 앞으로 겨누었다.
“전 당신을 이기기 위해 왔습니다.”
그러더니 그의 어깨 너머로 날개 두 장이 활짝 펴졌다.
천사장의 날개.
섭종 보상인 ‘대천사의 대방패’가 가진 스킬이었다. 그 날개의 개수가 두 장인 걸 보면 확실히 봉인된 듯했다.
모든 게 해제된 상태라면 대략 여덟 개의 날개가 활짝 펴졌을 것이다.
‘그 순간 지옥문이 열렸겠고.’
천사의 스킬이면서 아이러니하지만 ‘지옥문’이란 표현이 어울린다.
적어도 리트리하가 그 스킬을 사용할 수 없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리트리하는 거두절미하고 강서준을 향해 달려들었다.
쿠구구구!
물론 안심할 단계는 아니었다.
‘빨라……!’
순식간에 짓쳐드는 속도를 보고 있노라면 정말 제대로 봉인이 된 게 맞나 의문이 들 정도니까.
콰아앙!
강서준은 이를 악물고 옆으로 뛰었고, 그가 선 자리로 묵직한 방패 차지 스킬이 발동했다.
마치 공간이 깨지듯 충격이 생겨나고 뒤편의 관중의 결계까지 그 충격이 닿았다.
분명 나도석과 경기를 펼쳤던 예선 경기장보다 수배는 커진 무대였건만.
‘스치면 최소 사망이겠군.’
덤프트럭이 있는 힘껏 액셀을 밟아 그를 향해 내달리는 느낌이다.
더욱 무시무시한 건 그 덤프트럭 옆으로 기회를 노리고 창이 찔러 들어온다는 것.
그 찌르기엔 단 일점을 향해 쏘아지는 무시무시한 파괴력이 담겨 있었다.
쿠우우웅!
여기까지의 공격을 보면 참으로 단순할 것이다.
날개를 펼쳐 속도를 더하고, 방패로 밀어내면서 틈을 노려 창을 찌른다.
리트리하다운 참으로 정직한 공격이다.
‘하지만 피하는 것조차 버겁구나.’
왜 그가 ‘완전무결’이라 불렸겠는가.
언뜻 허점투성이인 것처럼 보여도 실상 그는 무너지지 않는 성벽과도 같다.
대천사의 대방패만이 아니라, 그가 입은 갑옷은 ‘1등급 천사의 최상급 갑옷’이었다.
어지간한 물리 공격도 면역이다.
콰앙! 콰아아앙! 콰앙!
게다가 속도는 어찌나 빠른지!
묵직한 방어력이 속도를 만나 더더욱 강력한 공격력으로 환산되고 있었다.
눈으로 보고도 피하기 어려운 속도는 그 허점 자체를 봉쇄해 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것이다.
날개를 펼쳐서 자유자재로 공중을 선회하고 방패를 치고 찌르는 공격.
말 그대로 완전무결하다.
[스킬, ‘류안(S)’을 발동합니다.]물론 흐름을 읽는 강서준은 직선 공격에 있어 그나마 자유로웠다.
어느 쪽으로 날아올지 알았고.
어느 쪽을 찌를지 미리 파악했다.
‘닿질 않는다면 그 어떤 공격도 소용이 없으니까.’
사실 이전에 리트리하가 강서준을 이기지 못한 이유는 ‘직선적인 공격법’이 한몫했다.
탱커보다 단단한 방어력과 웬만한 검사 저리 가라 하는 공격을 갖고도, 맞히질 못하면 무용지물이니까.
“근데 괜찮으시겠습니까?”
“……?”
“슬슬 도깨비가 되질 않으면 위험하실 텐데요.”
[스킬, ‘위기 감지(A)’을 발동합니다.] [장비, ‘도깨비 왕의 감투’의 전용 스킬, ‘이매망량’을 발동합니다.]부지불식간에 떠오른 메시지와 본능적으로 발동한 스킬이었다.
그 순간.
시야에서 리트리하가 사라지더니 눈 깜짝할 새에 강서준의 정면에 나타났다.
그대로 커다란 방패를 들이밀었다.
‘……공간 이동?’
빠른 돌진에 이은 공간 이동!
‘이건 피할 수 없어!’
콰아앙!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충격이 가까스로 엑스자로 교차한 팔에 부딪쳤다. 그대로 멀리 관중석을 향해 날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면 장외 판정이었다.
[장비, ‘용아병의 날개’를 발동합니다.] [10분간 자유롭게 비행할 수 있습니다.]날개를 활짝 펼치면서 겨우 공중에 멈춰 섰지만, 잠시도 숨을 돌릴 여유는 없었다.
리트리하의 등에도 날개가 달렸다.
그의 공격은 이제 막 시작한 참이었다.
“전 예전과 다릅니다.”
안다.
그게 단순히 손가락이 절단됐던 게 회복된 정도에 국한된 게 아니라는 것쯤은.
“많은 경험치를 쌓아 왔어요.”
강서준에게 패배한 리트리하는 드림 사이드 1에서도 거의 폐관 수련을 하듯 던전 공략에만 집중했었다.
듣기론 특별한 스킬을 연마한다던데.
‘그게 공간 이동이었나.’
조금이라도 ‘이매망량’의 발동이 늦었으면 위험할 뻔했다.
강서준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재앙의 유성검을 꽉 쥐었다. ‘초재생’은 그의 몸을 회복시키고, 그간 모아 뒀던 ‘피’는 ‘블러드 석션’의 재료가 됐다.
하지만 섣불리 다가가진 않았다. 말로 표현은 못하겠지만 아직 리트리하에겐 비장의 수가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공간 이동은 예상 외였지만 그거로는 부족해.’
뭔가가 더 있다.
강서준은 그런 확신을 가지면서 또다시 공간 이동을 감행하며 접근하는 리트리하를 응시했다.
같은 수에 다시 당할 생각은 없다.
[스킬, ‘파이어볼(F)’을 발동합니다.]불꽃이 하늘에 수를 놓았다.
접근하는 것과 동시에 폭발하도록 주변을 덮으니, 리트리하가 쉽게 접근할 공간은 없었다.
다시 모습을 드러낸 리트리하의 반경엔 파이어볼이 있었고, 일시에 폭발하면서 그 위치를 알려 줬다.
“……말했듯 전 예전과 달라요.”
폭연이 사라지고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낸 리트리하는 하늘에서 태양을 등지고 있었다.
던전에 떠오른 인위적인 태양.
그 따사로운 햇살 아래로 그림자를 만들어 내며 두 팔 높이 위로 치켜든 양손엔.
‘대검?’
방패나 창이 아닌 ‘대검’이 있었다.
콰아아아앙!
재앙의 유성검을 맞부딪치니 거대한 불똥이 터졌다. 묵직한 충격이 하늘에서 퍼지니 자르르 공기가 떨어 댔다.
버틸 수 없어 바닥에 추락한 강서준은 크레이터를 만들고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 위로 리트리하가 다시 떨어져 내렸다.
쿠우우웅!
“케이, 전 당신을 이길 겁니다.”
대검술.
한눈에 봐도 유려한 빛깔을 가진 저 무기는 아마 ‘용의 어금니’로 만들어진 용살 장비.
무려 500레벨짜리 장비가 강서준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리트리하의 현재 레벨이 300은 넘겼다던가.’
모르긴 몰라도 그만한 봉인은 해제됐을 것이다.
안 그래도 높은 스텟에, 상급 장비의 시너지는 단순히 내리찍기를 막아 냈을 뿐인데도 근육을 찢어 댔으니까.
그리고.
“……!”
한순간 위에서 내리찍던 리트리하가 모습을 감췄다. 류안이 그 마력의 흐름을 쫓으니 그가 나타날 곳은 측면 아래였다.
자세를 낮춘 리트리하가 대검을 위로 베어 올릴 준비를 했다.
끝을 예감하는 눈빛이다.
“좋은 승부였습니다.”
그의 대검이 날카롭게 강서준의 허리를 향해 쏘아 올라왔다.
하지만 강서준은 말했다.
“리트리하.”
목소리가 들려온 곳은 리트리하의 뒤였다. 녀석의 공격은 애꿎은 허공을 갈랐다.
“여전히 당신은 날 이길 수 없어요.”
스거억!
빠르게 휘둘러진 공격은 리트리하의 갑옷의 틈을 찔렀다. 피가 쭈욱 뽑히면서 단검은 게걸스럽게도 먹어 댔다.
후우웅!
그 순간 몸을 돌리며 대검이 휘둘러져 왔지만, 다시 허공만을 베었다.
그리고 리트리하는 약간 황당하단 눈빛으로 강서준을 바라봐야 했다.
“……두 명?”
두 명의 인물.
말하자면 분신으로 나뉜 강서준은 어깨를 으쓱이며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미간을 구기던 리트리하가 다시 입을 연 건 그때였다.
“정말 당신은 종잡을 수 없군요…….”
분신의 개수는 늘어났다.
하나에서 둘.
둘에서 넷.
도합 일곱의 분신이 리트리하를 가운데에 두고 제각기 다양한 무기를 꺼내 쥐었다.
대검, 장검, 활, 지팡이…….
오늘을 위해 준비해 둔 각양각색의 장비를 두루 갖춘 분신과, 강서준은 똑같은 음성으로 말했다.
“다시 시작해 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