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175
◈ 175화
-본선 두 번째 경기는…… 케이의 승리입니다! 랭킹 2위의 리트리하를 터무니없는 전략으로 무찌르는군요!
사회자의 방송이 울리면서 잠시 적막에 빠져들었던 경기장은 다시 조금씩 떠들썩해지기 시작했다.
다소 허무한 결과.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데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장외 판정으로 실격당한 리트리하의 패배가 뒤집어지는 일은 없었다.
의외는 리트리하도 순순히 인정했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아는 그라면 그럴 법하지만.’
사실 리트리하가 진 제국의 선수로 올림픽에 나섰다는 게 더 이상한 것이었다.
그는 그런 성격은 아니었으니까.
‘무엇보다 천사의 장비를 쓰고 있잖아. 악행(惡行)에 가담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지상수가 사용하는 ‘천사의 귀걸이’가 거짓된 거래를 원치 않는 것처럼.
리트리하가 사용하는 ‘대천사의 대방패’를 든 자는 악행에 가담할 수 없어야 정상이었다.
만약 진 제국이 벌였던 악행들에 조금이라도 그가 가담했다면, 그는 날개를 펼쳐 보기도 전에 저주부터 감당해 내야 한다.
-잠시 정비 시간을 가지고…… 본선 경기를 이어 나가겠습니다!
그렇게 경기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서준의 대기실로 손님이 찾아왔다.
리트리하.
경기가 끝나자마자 무대를 벗어났던 그는 피가 묻은 장비를 그대로 걸친 채 이곳까지 찾아온 것이다.
다행히 적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당했어요. 역시 케이 님다워요.”
“……무슨 일이죠?”
“사과할 겸, 전할 말도 있어서요.”
리트리하는 대뜸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요. 부담이 될 줄은 알았지만, 당신과 싸워 보고 싶어 진 제국과 당신의 싸움에 관여했어요. 그 점 사과드립니다.”
“네, 뭐…….”
예상대로 그는 완전한 진 제국의 사람은 아닌 것이다.
그저 싸움을 위해 이름을 빌렸을 뿐.
‘나도석도 아니고…… 쯧.’
어찌 됐든 그가 진 제국과 한 편이 아니라는 사실은 큰 안도가 됐다.
또한 게임 속에서 보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 또한 상당히 긍정적으로 비춰졌다.
‘리트리하는 인류의 방패가 될 거야.’
강서준의 특기가 던전 공략이었다면, 리트리하의 특기는 수많은 몬스터를 막아 내는 수성전.
그가 쥔 ‘대천사의 대방패’도 본래 아군이 많을수록 그 능력치가 배가되는 무기였다.
애초에 PVP에 어울리는 무기가 아니다.
“……다음번엔 안 질 겁니다. 오늘 제 부족함을 깨달았으니 더욱 정진해서 돌아오죠.”
한편 제 할 말을 끝낸 듯하던 리트리하는 계속 머뭇거리고 있었다. 아직 하지 못한 말이 남아 있는 건가.
“……더 하실 말이라도?”
“아, 그게요.”
리트리하는 주변을 살피더니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이후로 본선 경기는 속전속결로 이어졌다.
리트리하와 강서준의 대결이 사람들의 기대에 못 미쳤을까.
약간은 흥이 식은 가운데…….
대략 7시.
메인이벤트에 가까운 대장전이 펼쳐질 예정이었다.
현 랭킹 1위 데칼 대 전 랭킹 1위 케이의 대결.
준결승전이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드디어 오늘의 대미를 장식할 마지막 경기가 바로 이 자리에서 펼쳐집니다!
결승보다 더 결승 같은 준결승전.
강서준은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뒤로하고 경기장의 중앙에 섰다.
여전히 껄렁한 얼굴로 삐딱한 자세를 한 데칼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깜깜한 밤하늘 아래로 인위적인 조명만이 무대를 비춘다.
먼저 입을 연 건 데칼이었다.
“재밌는 경기였어. 룰을 이용해서 상대의 패배를 유도하다니. 꽤 괜찮은 전략이야.”
리트리하와의 경기를 본 건가.
그의 칭찬에 강서준은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결국 그 공략은 편법에 불과하니까.
두 번은 통하지 않을 방식이다.
게다가 여러모로 직선적인 공격에 익숙해진 리트리하였기에 가능한 공략이었다.
데칼에겐 써먹지도 못한다.
‘써먹을 생각도 없지만.’
-곧 경기가 시작될 예정이오니, 자리를…….
여전히 미소를 짓던 데칼은 사회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서준의 지척에 다다랐다.
녀석이 말했다.
“하지만 나한텐 안 통해.”
당황하는 사회자의 음성이 뒤늦게 쫓아왔고, 그보다 빨리 데칼의 공격이 다가왔다.
우우웅!
깜빡이도 켜질 않고 휘둘러진 일격은 일전에 강서준이 나도석에게 사용했던 태산 가르기.
날카로운 장검이 허공을 가르며 강서준의 몸까지 절단할 기세로 다가왔다.
채앵!
재앙의 유성검으로 바로 맞부딪칠 수 있었다.
“성격이 급하시네.”
“……재밌는 걸 보면 영 참질 못하는 편이라.”
“그 정도면 병입니다.”
짧게 문답을 교차한 데칼은 언제 그랬냐는 듯 뒤로 훌쩍 물러났다.
갑작스런 이변에 말이 끊겼던 사회자는 관중들의 눈치를 보더니 말했다.
-시, 시작합니다!
한편 강서준은 저릿저릿한 손목을 확인하며 데칼을 응시했다.
종전의 일격.
단 한 번 부딪친 것만으로도 상대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저게 전력이 아니라면…….
‘이놈도 300은 거뜬히 넘겠군.’
강서준은 류안을 발동시키며 빠르게 전신으로 마력을 휘감았다.
몇 번 파이어볼을 던져 봤지만 예상대로 전혀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을 뿐이었다.
‘아예 막지도 않는군.’
리트리하는 대검으로 방어라도 했지만, 데칼은 온몸으로 그냥 파이어볼을 견뎌 냈다.
신체 내구성이 마법으로 불태우지 못할 정도로 단단하단 증거!
‘일단 더 부딪쳐 보는 수밖에 없나.’
상대의 역량을 얼추 파악한 뒤였다. 이젠 힘을 꺼내기에 망설일 때가 아니었다.
[장비 ‘도깨비 왕의 감투’의 전용 스킬, ‘이매망량’을 발동합니다.]빠르게 도깨비 갑주를 걸친 강서준이 미끄러지듯이 달려 데칼에게 접근했다. 그는 재밌는 장난감이라도 발견한 표정으로 강서준을 향해 장검을 뽑아 들었다.
채애애앵!
묵직한 충격이 느껴졌지만, 아직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사실 아직 단검엔 리트리하의 피가 남아 있었으니까.
“재밌네.”
공간 이동으로 빠르게 놈의 뒤를 점했지만, 그대로 선회하더니 장검으로 강서준의 공격을 막아 냈다.
“그럼 나도 보답을 해야겠지.”
순간적으로 눈앞에 나타난 건 일련의 불덩어리.
강서준은 고개를 젖히며 다가온 파이어볼을 피해 몸을 움츠러트렸다.
모르긴 몰라도 이 녀석…….
‘내 스킬을 따라 하고 있어.’
‘태산 가르기’에 이어 ‘파이어볼’이라. 어쩌면 이 녀석은 다른 이의 스킬을 따라 하는 능력이라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미간을 구기며 거리를 벌린 강서준은 돌연 바닥을 차고 접근한 데칼의 검을 다시 맞부딪쳤다.
종전의 움직임으로 확신한다.
‘초상비.’
강서준은 미간을 팍 구기며 놈의 검격을 막아 냈다. 부딪칠 때마다 손목이 아스라질 것만 같은 충격이 이어졌다.
[스킬, ‘마력 집중(D)’을 발동합니다.]콰아아앙!
이를 악물고 휘두른 공격에 도깨비불이 타오르고, 데칼은 이를 막아 내며 훌쩍 뒤로 물러났다.
아직 서로 아무런 타격조차 입힐 수 없었다.
“이러면 조금 실망인데요.”
데칼은 혀를 차면서 장검을 공중에 띄웠다. 강서준이 겨우 익혀 낸 ‘이기어검술’이 그의 손에 의해 펼쳐지고 있었다.
그때 강서준은 거두절미하고 물었다.
“당신…… 플레이어죠?”
“응?”
“다시 묻죠. 당신은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닌 거죠?”
가벼운 질문 하나에 놈의 낯빛이 확 변했다. 여전히 미소가 가득한 입꼬리였지만 눈가엔 살기가 번들거렸다.
“……알고 있었나?”
“적어도 지구인이 아니라는 것쯤은.”
“대체 어떻게…… 흐음.”
강서준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놈의 얼굴을 주시했다. 이놈이 ‘지구인’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은 건 의외로 간단한 사실 덕분이었다.
‘출신 정보가 불분명하댔지.’
링링도, 지상수도, 이곳에 있는 수많은 플레이어들 중 그 누구도 데칼의 출신 정보를 알지 못한다.
생김새로 보아 아시아인일 것으로만 추정했지, 도통 국적조차 밝혀진 게 없는 것이다.
‘그게 가당키나 할까.’
제아무리 뒤를 깔끔하게 처리하는 사람이라 해도 정보는 남기 마련이다.
지구가 알론 제국도 아니고.
정보가 넘쳐나는 세계에서 저 남자의 정보가 아무것도 없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둘 중 하나였어.’
정말로 그 정보가 깔끔하게 지워졌거나, 여태껏 은밀하게 감춰졌을 경우.
그리고 두 번째는.
‘정말 정보가 없는 경우.’
강서준은 두 번째에 주목했다.
여태 아무런 정보도 없이 두각을 드러내질 못하던 존재가, 느닷없이 이곳에서만 그 존재감이 도드라지는 이유는 하나였으니까.
“무엇보다 제보를 받았거든요.”
“제보?”
“진 제국의 송명이라는 자. 그 뱀 같은 자의 정체를 알아 버렸거든요.”
리트리하는 경기가 끝나자마자 강서준에게 한 가지 사실에 대해서 알려 줬다.
포탈 던전 내에 있는 수상한 세력.
대뜸 리트리하에게 정신 공격을 펼친 ‘송명’에 대한 이야기였다.
‘리트리하는 어지간한 정신 공격이 통하질 않는다.’
단순히 레벨이 높기 때문이 아니다.
대천사의 대방패.
그건 기본적으로 어떤 사특한 정신 공격에도 명경지수를 유지하도록 돕는 패시브 스킬을 갖고 있었으니까.
되레 그 공격을 감행한 자에겐 천벌을 내릴 수도 있었다.
그것도 ‘같은 방식으로’.
‘기억을 읽으려 하다 기억을 읽혔으니, 당한 사람도 어지간히 할 말은 없겠어.’
결국 리트리하를 얕본 게 잘못이었다.
강서준은 짐짓 모르는 척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게다가 시기적으로 그럴 법하잖아요. 이번 정규 업데이트의 주된 콘텐츠는 마족이 아닐 테니까.”
드림 사이드 1에서 정규 업데이트의 메인 콘텐츠인 ‘마족’은 진즉에 나타났다.
과연 이미 등장한 존재를 정규 업데이트의 대상으로 올려놓을까?
마족이 더욱 강해져서 돌아왔습니다!
이런 식의 패치가 드림 사이드의 정규 업데이트로 과연 용납받을 수 있을까?
‘그래. 고작 C급 던전이 B급으로 탈바꿈한다고 세계가 극변한다고 말하긴 어려울 거야.’
정규 업데이트는 그런 게 아니다.
더욱 차별점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드림 사이드 1과 2의 차이점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쉽게 다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과거엔 없지만 있고, 현재엔 있지만 없는 것.
마족, 그리고 플레이어.
‘순서가 뒤바뀐 거야.’
강서준은 데칼을 응시했다.
“이번엔 당신들이 이 세계로 넘어오는 것. 그게 패치 내역이겠죠. 안 그래요?”
확고한 말에 데칼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 역시 못 당하겠군. 가히 케이를 조심하라는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뭐요? 누굴 조심해?”
“뭐 됐어. 볼 재미는 다 봤으니.”
데칼이 손가락을 튕기자 눈앞에서 마력이 요란하게 뭉쳐 댔다.
폭발 징조.
강서준은 재빠르게 그 자리를 피하며 재앙의 유성검을 던졌다. 파이어볼도 생성하며 데칼의 양쪽으로 단검과 마법을 동시에 접근시켰다.
하지만.
콰아아앙!
데칼의 주변으로 반투명한 막이 동그랗게 생겨나더니, 그 공격을 전부 막아 낸 것이다.
녀석은 강서준을 보며 말했다.
“그래도 랭킹 1위라고 PVP는 끝까지 해 보고 싶었는데, 정말 아쉬워.”
“……마치 어딘가로 떠날 사람처럼 말하는군요.”
“그럼 어쩔 수 없잖아. 생각보다 네 눈치가 너무 빨랐으니까.”
그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벅벅 긁더니 허공을 응시했다.
“알았어. 알았다고. 돌아가면 되잖아? 그게 약속인 거 누가 몰라?”
누구랑 얘기하는 걸까.
강서준은 류안으로 그 주변에 나타난 특정한 마력 흐름에 집중했다.
이를 감지했는지 해당 마력은 금세 안개처럼 희미해졌다.
“……너 진짜 보통 인물은 아니구나.”
“당신은 사람도 아니고요.”
“뭔 말을 못 해.”
데칼은 짧게 혀를 차더니 입을 열었다.
“그래도 내 정체를 일찌감치 알아낸 보답으로 선물 정도는 줘도 되겠지.”
“……보답.”
종전에 보답이랍시고 공격을 가했던 게 떠올랐다. 그리고 불안한 추측은 그 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게이트로 접근한 사람들이 있더라. 꽤 유명 인사겠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죠?”
“얼른 그 사람에게 가는 게 좋을걸.”
약간 이죽이는 듯한 말투를 유지하던 그는 문득 한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도 모르게 따라서 그쪽을 바라본 강서준은 기묘한 흐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체 언제부터 저런 흐름이…….
“어쩌면 이미 늦었는지도 모르지만.”
쿠콰카카카캉!
한순간, 눈이 멀어 버릴 정도로 번쩍이는 빛줄기와 함께. 던전 한쪽에서 거대한 굉음과 폭발이 일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