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179
◈ 179화
핏빛으로 이루어진 기둥은 정확히 강서준을 중심으로 대략 100M 간격으로 박혀 들어간다.
그곳에서 생성된 원형의 돔은 하늘까지 뒤덮고, 그 안으로 핏빛 달이 덩그러니 떠오른다.
[이곳은 ‘핏빛 도깨비의 달’이 떠오른 영역입니다.] [영역 내의 존재에게서 피를 강탈합니다.] [해당 효과는 5분간 지속됩니다.] [영역 선포자 : 강서준]강서준은 나지막이 생각했다.
‘핏빛 도깨비의 달.’
재앙의 유성검의 봉인을 풀어내야 사용할 수 있는 진정한 성능.
바로 300레벨대의 S급 무기의 전용 스킬인 ‘영역 선포’였다.
‘진 제국에게 고마워해야겠군.’
모두 PK 경력이 대단했던 플레이어들을 처단한 결과였다. 유난히 경험치도 많이 주는 그놈들을 잡은 덕분에, 300레벨대의 스텟을 손에 쥘 수 있었으니까.
물론 가능한 마지막 카드 정도는 계속 숨겨 두고 싶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기회가 있는데도 놓칠 순 없으니까.’
강서준은 우선 이기어검술로 재앙의 유성검을 회수하기로 했다.
움켜쥔 단검으로부터 소름 끼치는 귀곡성이 울고 있었다.
‘과연 어떤 특성이려나.’
영역 선포는 가진 무기와 사용자의 특성에 따라서 전부 다르게 나타난다.
재앙의 유성검이 가진 흡혈 기능과 강서준의 도깨비 칭호가 맞물려, 핏빛 도깨비의 달이 나타난 것처럼.
‘그 효과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과거에 그러했듯 영역 선포에서 ‘재앙의 유성검’이 보여 줄 효율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시스템 메시지에도 써 있다.
영역 내의 존재에게서 피를 강탈한다지 않은가.
‘원거리 흡혈.’
그리고 흡혈 대상은 영역이 선포된 구역의 모든 존재였다. 물론 그 대상을 구분해서 특정할 수도 있었다.
‘인간을 제외한 몬스터에 한정한다.’
그러자 강서준의 주변으로 핏빛 안개가 휘감기며 영역 내의 몬스터들을 흡혈하기 시작했다.
그림자 형태의 ‘쉐도우’라 해도 그 본질엔 살과 피로 이루어진 형태가 있는 법.
놈들의 스킬이 그림자로 동화될 뿐이다. 놈들이 진짜 그림자인 건 아니었다.
크아아악!
강서준을 기점으로 원형 100M 내에 있던 모든 몬스터가 괴로운 듯 포효하고 있었다.
일시에 흡수한 흡혈은 다시 재앙의 유성검을 강화했고, 그건 또 한번 강한 효율을 나타냈다.
[‘핏빛 도깨비의 달’이 징조를 보입니다.] [‘핏빛 도깨비의 달’의 영역이 확장됩니다.]강서준은 서서히 영역을 넓히는 기둥을 일별하고, 다시 쉐도우 드래곤에게 집중했다.
놈도 흡혈 대상이라 꾸준히 피가 깎이는 와중이었다.
키이이익!
놈이 발악하듯 송곳니를 앞세워 강서준을 공격했지만, 강서준의 몸에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었다.
‘제한 시간은 고작 5분.’
영역 선포 스킬은 사기적인 만큼 그 활용 시간은 하루 5분으로 제한된다.
즉 5분 동안 얼마나 많은 피를 흡수해서, 얼마나 대단한 대미지를 입히는지가 공략의 향방을 결정한다.
스거어어억!
일단 용의 날갯죽지를 쭉 갈라서 잘라 냈다. 지속된 흡혈로 날카롭게 날이 선 재앙의 유성검은 단 일격에 놈의 날개를 꺾을 수 있었다.
역시 진짜 용은 아닌 거다. 이리 쉽게 두부 자르듯 잘려 나가는 걸 보면…….
“전원 공격!”
리트리하도 크게 외치며 곤두박질친 쉐도우 드래곤의 머리맡에 다다랐다. 큰 방패로 놈의 머리통을 후려치자 놈은 경직에 빠졌다.
최하나의 저격이 쉐도우 드래곤의 왼쪽 눈을 가격한 건 그때.
츠츠츳……!
알게 모르게 쉐도우 드래곤의 인근에서 생성되던 마력이 흩어졌다. 방금 최하나는 쉐도우 드래곤의 마법을 무력화시킨 것이다.
“공격! 공격! 출혈 상태로 만들어!”
“흐아아압!”
이어진 플레이어들의 공격은 용의 살갗을 살벌하게도 갈랐다. 상처가 늘어날수록 그곳에서 생성된 핏방울들은 오직 강서준에게 흡수되길 반복했다.
말하질 않아도 천외천은 강서준이 시도한 ‘영역 선포’의 효과를 잘 알고 있었다.
재앙의 유성검.
레벨 300대부터 500대까지 긴 시간을 활용한 장비답게, 모두에게도 익숙한 상황이었다.
“강서준 씨!”
“이제 곧…… 한 방 정도는 됩니다!”
날개는 꺾였지만 금세 경직 상태에서 풀려난 쉐도우 드래곤은 가히 보스 몬스터의 위용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림자로 덧씌워진 마법이 근처에서 여러 개가 생성되고, 그림자 위로 철갑이 외피처럼 만들어지며 공격을 막아 냈다.
플레이어들이 물러나고 놈의 브레스가 일시에 쏘아지기도 했다.
[‘핏빛 도깨비의 달’이 일정 수위를 넘어섰습니다.] [‘유성’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강서준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공중으로 높이 뛰어오른 건 그때였다.
아래쪽에서 성난 울음을 토해 내는 쉐도우 드래곤이 허공을 부유하는 강서준을 발견했다.
놈의 입가에서 브레스가 넘실거렸다.
어지간히도 화난 모양이다.
[장비 ‘재앙의 유성검’의 전용 스킬, ‘유성’을 발동합니다.]오직 영역 선포를 통해 흡혈한 피로 사용할 수 있는 스킬.
재앙의 유성검의 근원과도 같은 힘.
강서준은 여태 뭉친 피를 모조리 재앙의 유성검에 집중시켰다.
아마 단 일격을 날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일격이면 충분하다.
크롸라라락!
성난 쉐도우 드래곤의 포효와 함께 허공으로 쏘아진 브레스!
그곳을 향해 강서준은 거침없이 재앙의 유성검을 던져 버렸다.
쿠아아아아……!
그리고 재앙의 유성검은 진짜 유성처럼 점점 크게 불어나는 핏빛의 구체가 되었다.
핏빛으로 물든 유성!
그건 브레스 따위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빠르게 브레스를 갈라 버리며 놈의 입가로 임박하고 있었다.
……콰아아아앙!
말하자면 ‘재앙의 유성’이었다.
***
한편 데칼이 막 게이트를 넘어 돌아왔을 시점이었다.
긴 숨을 토해 내며 발아래에 열린 게이트를 내려다보던 데칼.
그는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돌아왔군.”
방독면을 쓰고 몸엔 각종 보호구를 치장한 남자. 소싯적엔 ‘철혈군주’라 불리며 세계를 정복하려던 패왕인 ‘올 리카온’이었다.
“영감이 여긴 무슨 일로…….”
“아직도 그 말버릇을 못 고쳤느냐.”
“응. 평생 안 고칠 거야.”
“쯧, 그 어미에 그 아들이라고. 천한 핏줄을 어쩔 수 없구나.”
혐오와 경멸, 갖은 핍박이 담긴 시선이었지만 데칼은 개의치 않았다.
눈앞의 패왕.
‘올 리카온’과 ‘데칼 리카온’은 이런 상황이 익숙했기 때문이다.
시녀의 배에서 태어난 사생아의 삶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
“그곳은 어떻더냐.”
“따분하고 지루하더군.”
“경계할 정도는 아니었나…….”
한편 황제는 데칼의 무뢰한 같은 말투를 불쾌하다고 말하면서도, 그걸 빌미로 문제 삼진 않았다.
아무렴 그럴 것이다.
데칼은 리카온 제국에서 수백 년 만에 태어난 불세출의 천재라 불리는 존재였다.
리카온 왕국이 행성 전쟁에서 승리하게 만든 ‘구국영웅’이자, 한 번 본 것은 그대로 따라 하는 ‘복사’의 능력을 가진 괴물이니까.
황제가 물었다.
“분명 그곳엔 ‘케이’라는 강자가 있다고 들었다. 한 세계를 멸망시킨 자라지. 붙어 봤느냐?”
“물론. 근데 기대했던 것보다는…….”
그때였다.
스걱!
어디선가 날카로운 기운이 감돌더니 부지불식간에 데칼의 오른팔이 싹둑 잘려 나갔다.
터무니없는 상황에서 데칼의 반응은 늦었고, 잘려 나간 팔뚝은 아래로 떨어지더니 그대로 소멸했다.
정확하게는 다차원 게이트에 먹혔다.
“……더 대단해. 이거 미친놈인가.”
데칼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오른팔을 내려다보며 되레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웃었다.
과연 차원을 넘어서까지 참격을 날린다는 게 가당키나 할까.
그전에 진짜 게이트도 아니고, ‘귀환서’를 활용한 임시 게이트가 열린 틈을 노려 공격하다니.
황제는 혀를 차면서 말했다.
“방심했구나.”
“글쎄…… 과연 어떨까.”
데칼은 어렴풋이 ‘케이’란 존재를 떠올려 봤다. 확실히 개중 강한 사람이었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건 사실이었다.
행성 전쟁을 펼치며 수많은 행성을 오갔던 데칼이 보기엔, 케이만 한 강자는 널리고 널렸으니까.
데칼은 잘려 나간 팔을 보며 말했다.
“영감, 그거 알아?”
“무얼 말이냐.”
“10년에 걸친 행성 전쟁에서도 난 작은 상처조차 입은 적이 없어.”
“그랬지.”
“근데 지금 내 팔이 이 모양이야.”
전혀 예상치 못한 공격이라고 해도 결과는 같았다. 만약 방향만 달랐으면 목이 잘렸으리라.
“어떻게 생각해?”
황제는 침음을 삼켰고, 데칼은 여전히 입꼬리를 내리지 않았다.
과연 ‘대리자’가 말한 그대로다.
데칼의 눈에 광기가 감돌고 있었다.
“역시 내 스승다워.”
그리고 데칼의 말을 들은 황제는 나지막이 침음을 삼켰다.
종전의 피습도 놀라운 일이지만, 데칼이 ‘스승’이라 언급한 건 더더욱 놀라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놈이 진정 적으로 인정했다니.’
데칼은 청출어람(靑出於藍)이란 단어를 좋아했다.
복사의 능력으로 그보다 잘난 존재의 기술을 빼앗고, 그 기술로 상대와 싸우길 즐기는 투사.
데칼은 그렇게 스승을 죽여 온 횟수가 98번에 다다른다.
물론 이번엔 ‘케이’란 존재를 직접 마주하기 전에, 우스갯소리로 그런 말을 일삼은 줄 알았는데.
직접 보고도 저런 소리가 나오고 있다. 황제의 등허리로 식은땀이 주룩 흘러내렸다.
데칼은 황급히 다가오는 황실 의료진에게 오른팔을 맡기며 말했다.
“게이트는 언제 다시 열린댔지?”
“대리자께서는 한 달이라고 하셨다.”
“한 달이라고…… 흐음.”
데칼은 아래에 닫혀 버린 게이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한 달을 어떻게 기다리지?”
***
“……아마 한 달일 거야.”
“네?”
“나 대위는 어떻게 생각해?”
“무얼 말입니까?”
링링은 턱을 괸 채로 그의 앞에서 보고서를 들고 있는 나한석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는 아무래도 세계의 편린을 엿본 자.
드림 사이드 1의 세계에 다녀온 나한석은 당장 링링에게 있어 중요한 인물 중 하나였다.
링링은 나한석을 향해 물었다.
“이 세계엔 수많은 채널이 있고, 그에 따른 서버가 존재하겠지.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0116, 0117, 0118…… 수많은 채널이 있겠지?”
“제 추측도 그렇습니다. 그만큼 관리자가 있을 거고요.”
“하지만 정식으로 운영되는 채널은 단 하나야. 바로 지금 0115 채널인 지구 에어리어처럼 말이지.”
링링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그래서 아마 한 달이 남았을 거야.”
“……네?”
“0116 채널의 플레이어들이 이 세계로 난입하는 날 말이야. 그게 한 달 후일 거야.”
링링은 책상에 늘어놓은 수많은 자료를 내려다봤다. 1년간 모은 드림 사이드에 대한 자료부터, 나한석이 가져온 1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
이를 모두 종합한 결과 단 하나의 공통점은 있었다.
“다양한 세계가 있어도 정식으로 운영되는 채널은 단 하나의 시스템에 의해 관리돼.”
드림 사이드 1에서 플레이어들이 베타테스트를 겪은 이후, 정식으로 오픈하기까지 얼마나 걸렸을까.
드림 사이드 2가 섭종 이후로 정식 오픈까지 얼마나 걸렸던가.
‘한 달.’
해서 링링은 정식 업데이트를 비롯하여 0116 채널의 플레이어들의 난입을 정확하게 한 달 후로 추측했다.
“물론 확신하는 건 아니야. 어디까지나 추측이지. 늘 대비를 해야 해.”
그녀는 지나친 확신 때문에 한 차례 아크를 몰락할 위기에 처하게 만들었다.
달의 추락 시기에 대한 추측.
예상외의 변수는 그녀의 추측을 빗나가게 했고, 자칫 모든 사람들을 몰살시킬 뻔한 것이다.
케이가 희생해 주질 않았더라면 과연.
“그나저나 나도석은 안 만나도 돼?”
“무소식이 희소식이죠.”
“메마른 형제애네.”
“뭐, 걱정하는 게 손해 아니겠습니까.”
“하기야…….”
나한석은 어깨를 으쓱이더니 말했다.
“그보다 링링 님이 지시하신 아이에 대한 조사의 보고서입니다.”
나한석이 내민 보고서에는 연구실에 고이 잠든 아이에 대한 정보가 담겨있었다.
강서준이 진 제국의 창고에서 발견한 ? 덩어리의 정보를 가진 의문의 아이.
“그는 주요 인물일지도 모릅니다.”
“가능성은 있겠어. 한 세계를 지탱하는 주요 인물이 고작 한 명일 리는 없으니까.”
“네. 하지만 강서준 님의 말대로라면 진백호는 다른 플레이어처럼 정보창이 보이질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알아. 그러니 가능성이지.”
나한석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말했다.
“다른 하나도 가능성입니다만.”
“뭔데?”
“어쩌면…… 0116 채널의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