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184
◈ 184화
절벽을 올라 보이는 언덕까지 무작정 달려갔다.
하늘에 드리운 무지갯빛 커튼 아래로 흰 눈이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졸린 눈을 비비던 김훈은 약감 심통이 난 듯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이렇게 오밤중에 움직일 거라면 미리 알려 주시지 그랬어요.”
“미안해요. 하지만 저도 오로라가 언제 나타날지는 정말 몰랐어요.”
차원 서고로의 길을 안내하는 무지갯빛 오로라.
이건 정말 랜덤의 확률로 등장한다.
「하늘과 맞닿은 땅. 때가 되면 무지개 커튼이 열리고 서고로 오르는 길이 나타나리라.」
이게 드림 사이드 1에서 봤던 차원 서고로의 가는 길을 안내하는 문구였다.
이걸 풀이하기 위해서 강서준은 드림 사이드 1에서 가장 높은 산인 칼하르드산맥을 오르질 않았던가.
정상에서 주야장천 하늘만 올려다봤던 그때가 떠오른다.
“제가 아는 건 하루에 한 번은 반드시 오로라가 나타난다는 것 정도였어요.”
강서준은 하늘의 오로라가 조금씩 작아진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하루에 한 번뿐인 기회.
이 타이밍을 놓친다면, 이 근방에서 하루를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달려요. 일단 차원 서고부터 들어가고 마저 얘기하죠!”
“……알겠습니다!”
아쉽지만 여기서부터는 김훈의 공간 이동도, 켈의 바람 마법도 사용할 수 없었다.
오로라가 열린 그때.
주변의 마력은 요동치고 이 근방은 스킬을 사용할 수 없는 특수 지역으로 변하기 마련이니까.
[‘무지개 커튼 다리’에 입장했습니다.] [!] [마력이 불안정한 공간입니다. ‘일부 스킬’에 한하여 제한이 생겼습니다.]여기서 ‘일부 스킬’이란 마력을 외부로 표출하거나, 공간 이동처럼 섬세한 마력 조절을 필요로 하는 기술을 말한다.
사용할 수야 있겠지만, 대기 중에 들끓는 마력 때문에 제대로 발현되지 않는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신체 부위에 그저 마력을 집중시킬 뿐인 ‘마력 집중’이나 ‘초상비’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거겠지.
“다들 전력으로 달려요!”
발끝으로 집중시킨 마력으로 힘껏 거리를 널뛰다 보니 금세 커튼 아래의 입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일렁이는 빛의 문.
지구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의 정상에서만 진입할 수 있는 ‘차원 서고의 문’이었다.
“강서준 씨!”
하지만 아직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쿠우웅!
차원 서고의 앞에서 서서히 바닥이 일어나고, 그곳에서부터 생성된 한 몬스터가 있었으니까.
‘스톤 골렘!’
차원 서고의 문지기라 불리는 자.
“강행 돌파해야 해요!”
강서준이야 ‘도서관 사서’의 직업을 갖고 있어, 스톤 골렘의 표적이 되진 않는다.
하나 다른 사람은 어떨까.
차원 서고의 진입 자격은 오직 ‘도서관 사서’에게 해당된다. 스톤 골렘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일행의 진입을 막고자 할 것이다.
그게 시스템이 내린 명령이다.
‘스톤 골렘은 강해.’
레벨 300에 달하는 괴물.
아마 오로라가 닫히기 전에 저놈을 쓰러트린다는 건 작금의 그들에겐 불가능한 얘기였다.
‘그래. 쓰러트린다면 말이지.’
그가 이조차 모르고 여기까지 일행을 데려왔을까. 강서준은 빠르게 스톤 골렘을 지나치며 뒤를 점했다.
‘스톤 골렘은 일종의 시험이야. 도서관 사서가 아닌 자는 그 시험을 통과해야 겨우 진입 자격이 생겨나는 거지.’
그리고 최하나를 향해 외쳤다.
“지금입니다!”
그녀의 라이플이 불꽃을 뿜어내면서 정확하게 스톤 골렘의 눈두덩이를 저격했다.
아쉽지만 이마에 부딪친 마탄.
대기 중의 마력도 상당히 흔들리고 있어 이래저래 저격하기 힘든 상황에서도 저 정도의 명중률이다.
역시 저격에 있어선 그녀를 따라갈 사람은 없다.
후우웅!
한편 스톤 골렘의 시선이 최하나에게 꽂힌 사이, 그는 놈의 뒤에 높이 뛰어오르고 있었다.
목적은 하나였다.
콰지지직!
정확하게 골렘의 뒷덜미에 뾰루지처럼 자라난 광석을 겨냥했다. 놈은 부르르 떨더니 의문 가득한 낯빛으로 강서준을 돌아봤다.
하지만 공격하진 않는다.
그는 ‘도서관 사서’였으니까.
곧 ‘차원 서고의 주인’이 될 자니까.
“다들…… 이젠 괜찮을 겁니다.”
그리고 일행은 스톤 골렘의 눈치를 보면서 슬금슬금 이쪽으로 다가왔다.
어느덧 그들은 하나같이 ‘강서준’에게 업힌 상태였다.
[스킬, ‘분신(S)’을 발동 중입니다.]스톤 골렘은 아래를 내려다보며 ‘여럿의 강서준’을 확인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이질적인 기운이 섞인 건 알면서도 섣불리 공격할 수 없는 것이다.
‘레이더를 파괴했으니까.’
일종의 꼼수였다.
종전의 강서준이 한 공격은 스톤 골렘의 목에 달린 ‘특정 마력에 대한 감지 기능’을 망가뜨린 것이다.
얼추 구분은 가능해도 세밀한 분류가 어렵도록 만들었다.
즉 놈은 ‘강서준의 분신’에 업힌 일행까지, 전부 ‘강서준’이라 인식하는 것이다.
강서준은 눈앞에 일렁이는 빛의 문을 바라봤다.
츠츠츠츳!
어쨌든 스톤 골렘만 지나면 차원 서고로 들어갈 수 있다. 굳이 놈을 쓰러트리지 않아도 된다.
“그럼 들어가죠.”
뒤를 돌아본 강서준은 스톤 골렘의 목에 난 상처가 저절로 복구된 걸 확인하며, 바로 차원 서고로 발을 들였다.
***
“흐읍…….”
그렇게 진입한 순간, 숨이 턱 막히는 줄 알았다.
“……여긴.”
살갗을 파고들던 정상의 칼바람도.
어지럽게 울리던 세상의 소음도.
그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곳.
“너무 조용하군요.”
차원 서고는 말 그대로 고요함에 질식당할 것만 같은 장소였다.
지독하게도 조용하기만 하여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강서준은 미간을 좁히며 일단 스마트폰을 꺼내어 주변을 밝혔다.
빛이 닿는 곳엔 먼지가 가득 쌓인 오래된 도서관의 풍경이 드러났다.
“그래도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네요.”
“그럼 이곳이 바로…….”
“네. 잠시만요.”
강서준은 게임 속 풍경을 상기하며 한쪽 벽면으로 다가갔다.
기억이 맞다면 이곳에 버튼이 있을 것이다.
“오오…… 마력등인가요?”
마력으로 구동하는 판타지 세계관 특유의 전등. 은은하게 밝혀진 도서관은 다소 깨끗한 풍경은 아니었다.
강서준은 그걸 내려다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이건 예상 못 한 일인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그대로예요.”
“네?”
최하나의 반문에도 강서준은 대답할 수 없었다. 다시 생각해 봐도 황당했기 때문이다.
이곳이 제아무리 ‘차원 서고’란 이름을 가졌다고 해도…….
게임 속에서 오직 강서준만이 누렸던 공간이라 할지라도.
‘내가 사용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강서준은 차원 서고의 한쪽에 놓인 상자도 확인해 봤다. 종종 그가 아이템 상자로 활용하던 물건이다.
“……아이템도 그대로 있네.”
다만 안에 있는 건 포션이나 음식 같은 소비용 물건이었다. 차원 서고에서 오랫동안 버티기 위해 비축해 둔 것들이다.
최하나도 내용물을 확인하며 탄식했다.
“이거 설마…….”
“전부 제가 채워 둔 아이템들입니다.”
그중 강서준은 ‘정령의 만찬’이란 음식을 찾을 수 있었다.
공교롭지만 이건 현재의 진백호에게 너무나도 필요하던 음식이었다.
거두절미하고 강서준은 이를 진백호에게 건넸다.
“이건……?”
“받아 둬요. 좋은 겁니다.”
정령의 만찬은 정령을 다스리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구할 수 있다면 구해 주고 싶었던 목록 중 하나.
강서준은 아이템 목록을 쭉 둘러보더니 말했다.
“부족할 것 없이 식량을 챙겨 오긴 했지만 더 걱정할 것도 없었네요. 마침 수련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도 있으니 다들 이것 좀 가져가요.”
참고로 차원 서고 내부에 있는 모든 아이템의 권한은 오직 관련 직업인 ‘도서관 사서’에 의해 움직인다.
즉 아이템 상자를 열고 닫는 건 오직 강서준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문득 강서준은 고개를 들어 한쪽 계단을 올려다봤다. 오래된 나무로 만든 계단이었다.
‘1층의 아이템이 고스란히 남았다면.’
계단 너머의 풍경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2층은 분명 ‘차원 서고의 주인’에게만 주어지는 공간.
도서관 사서가 전직을 통해 ‘차원 서고의 주인’이 되어야만, 활용할 수 있는 특수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곳엔.
‘내 아이템이 남아 있을지도.’
버리기엔 아깝고, 팔기엔 아쉬우며, 쓰기엔 모자란 놈들.
하지만 당장 강서준에게 있어 손안에 들어온다면 너무나도 잘 쓸 자신이 있는 것들이었다.
“의욕이 더 생기네.”
강서준은 주먹을 불끈 쥐고 차원 서고의 한쪽에 있는 진열장으로 다가갔다.
“여러분들이 할 일은 어떻게든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수집하는 겁니다.”
오래된 책 냄새와 함께 즐비하게 늘어선 책들은 각양각색의 분야가 뒤섞여 있다.
게임에선 구태여 관심조차 주질 않았던 서적들. 하지만 이제 보니 보물 창고가 따로 없다.
드림 사이드 1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것만 봐도 더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여긴 서버가 종료되더라도 유지되는 별개의 공간.’
말하자면 ‘백도어’와 비슷하다.
괜히 도서관 사서가 헬 난이도 퀘스트에서만 얻을 수 있는 히든 직업은 아니라는 거겠지.
그렇다면 가능성은 충분하다.
찾을 수만 있다면 이곳엔 드림 사이드의 모든 정보들이 수록되어 있을 것이다.
“어떤 정보라도 좋습니다. 다가올 미래를 대비할 정보를 찾아내야 해요.”
정규 업데이트에 대한 정보. 나아가 0116 채널에 대한 정보.
어쩌면 관리자…… 이 세계를 운영하는 시스템에 대한 정보도 기록됐는지 모른다.
‘이곳에 없다면 아마 상층에.’
강서준은 계단을 재차 응시했다가 최하나와 눈을 마주치고 말았다. 그녀는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반드시 해낼게요.”
“……네.”
“그러니 서준 씨도 힘내요.”
고개를 끄덕인 강서준은 쥐고 있는 책을 내려다봤다.
다른 일행들이 이곳에서 여러 도서를 뒤적여 세계를 알아볼 동안, 그만이 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사실 그게 가장 시급한 일이었다.
‘전직, 그리고 스킬 강화.’
이른바 ‘성장’이다.
‘봉인된 책’과 ‘봉인된 펜’을 지닌 ‘도서관 사서’는 전직에 대한 모든 조건을 충족시킨 셈이니까.
강서준은 이곳에서 한 달 이내에 전직은 물론, F급에 고정된 스킬들을 강화시킬 생각이었다.
‘그전에 우선…….’
그가 봉인된 책에 등록한 스킬 중 하나를 골라, 그 내용을 완전히 익혀야만 한다.
그게 무슨 말이냐면.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일행에게 인사를 마친 강서준은 천천히 책을 펼쳤다. 빛과 함께 시야가 멀어지면서 의식이 그 속으로 침잠되고 있었다.
[전직 퀘스트가 발동했습니다.] [당신은 최소 1개 이상의 스킬북을 ‘독파’해야 합니다.] [당신은 스킬, ‘태산 가르기’를 선택했습니다.]그것이 도서관 사서의 유일한 성장법이자, ‘차원 서고의 주인’이 되는 첫 번째 조건이었다.
***
철그덕, 철그덕…….
강서준은 호흡을 정돈하며 천천히 눈을 떴다.
몇 번이나 세상을 건너뛴 경험 덕일까. 새삼스럽게도 갑자기 변화한 시야 정도는 금세 적응할 수 있었다.
그는 눈이 부신 하늘을 잠시 올려다봤다가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음을 확인했다.
일단 상황부터 파악해 보자.
‘냄새 한번 고약하군.’
코끝을 저미는 건 꽤 강렬한 쇠 냄새와 누군가의 땀 냄새였다. 강서준은 자신의 몸에 걸쳐진 게 묵직한 갑주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흐음…… 기사가 된 건가?’
스킬북 ‘태산 가르기’를 독파하려면 아무래도 기사가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이 스킬도 결국은 ‘검술’이니까.
“애송이들이 삐약삐약 대는구나!”
그때 노성이 터지면서 주변을 휘어잡는 마력이 느껴졌다.
한편 강서준은 그 흐름을 눈으로 볼 수 없었다. 그저 몸으로 느낀다는 것에 약간 신기할 뿐이다.
아무래도 그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으니까.
‘테마 던전과 같아.’
해서 호흡을 가다듬으며 일단 현재의 그가 ‘누군지’ 확인하고자, 상태창을 열려고 했다.
기왕이면 달 던전에서 겪었던 ‘대장장이 씬’보다 잘난 녀석이길 바라면서.
하지만.
“다들 예를 갖추도록!”
커다란 울림과 함께 전면에 나서는 한 사내를 볼 수 있었다.
꽤나 낯익은 얼굴이었다.
그래. 이 스킬이라면 과연 나올 법도 하다.
‘멜빈 황제.’
그는 스킬북 ‘태산 가르기’의 저자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