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189
◈ 189화
이건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여긴 스킬북의 세계니까.’
멜빈 황제로부터 비롯된 스킬인 ‘태산 가르기’라면 어떤 세계로 연결되고, 그곳의 배우들도 추측할 수 있다.
막말로 ‘황제’가 살아 있는 과거라면, 그의 아들인 ‘호크 알론’을 재회해도 이상하지 않다.
‘물론 여기서 재회할 줄은 몰랐지만.’
강서준은 일격에 듀라한을 양단한 호크 알론을 올려다봤다. 그는 어둠 속에서도 스스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괜찮나?”
착각이 아닐 것이다.
그가 걸친 갑옷은 무언가 특수한 힘을 내고 있어, 수시로 번쩍이며 주변의 어둠을 밀어냈으니까.
그게 무언지는 바로 깨달았다.
이 던전에서 유효한 효과를 내는 아이템은 ‘그것’뿐이다.
‘청명석.’
선임기사 에일의 가문에서 생산하는 ‘청명석’을 가루로 빻아, 갑옷을 제련할 때 첨가한 것이다.
저리 둘러싸면 블랙아웃이나 데스아웃 따위에 휩쓸릴 확률은 0에 수렴한다.
호크 알론은 강서준을 향해 말했다.
“어떻게 너 같은 신임기사가 이곳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편 호크 알론의 뒤편에서 스멀스멀 재차 두 동강 난 몸을 합쳐 가는 듀라한을 볼 수 있었다.
양단되더라도 죽지 않은 것이다.
상황이 어찌 됐든 듀라한의 낌새를 눈치챈 호크 알론에게 큰 목소리로 외쳤다.
“검…… 저놈은 검이 본체입니다!”
쇄애애액!
호크 알론은 일부러 지그재그로 달려 듀라한에게 접근했다. 큰 울림을 가진 발디딤은 녀석의 시각을 어지럽혔다.
‘아니, 그게 전부가 아니야.’
호크 알론이 딛고 간 바닥마다 마력이 흩뿌려져 몇 번이나 진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꽤나 탁월한 기술이었다.
저런 방식으로 마력을 운용하면 듀라한을 속이는 건 어린아이에게 장난감을 빼앗듯 쉽다.
괜히 이 세계의 주요 인물이 아닌 건가. 호크 알론은 듀라한에게 접근하여 다시 선명한 검격을 박아 넣었다.
일격에 양단되는 몸통!
이번엔 강서준의 말이 신경 쓰였는지 듀라한의 검까지 단번에 잘라 내는 기염을 토했다.
파사삭…….
그렇게 가루가 되어 흩날리는 듀라한의 사체를 내려다보던 호크 알론은 고개를 돌려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일단 자리를 피하도록 하지.”
“……네.”
쿵! 쿵!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이곳의 소음을 깨닫고 또 다른 듀라한이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
[싱크홀에 빠졌습니다!] [‘2층’ 아래로 떨어졌습니다.]다행히 가까운 싱크홀을 통해서 아래로 대피할 수 있었다.
현재 그들의 위치는 지하 11층.
아래쪽으로 내려오자마자 능숙하게 주변을 정찰하며, 적의 동태부터 살핀 호크 알론은 겨우 안도하며 이쪽으로 돌아왔다.
‘여긴 화약 냄새가 진동을 하는군. 어떤 놈이 몬스터인지 훤히 알겠어.’
지하 11층의 몬스터는 이동속도가 느린 편인 ‘대포 고블린’일 것이다.
아마 놈의 사정거리에만 들어서질 않는다면 공략 난이도가 어렵지 않았다.
“……왕국의 첫 임무로 이곳 탐사를 맡았다고?”
“정확히는 하수처리장이었죠.”
“터무니없군. A급 던전에 햇병아리들을 보내다니…… 제국에 무슨 일이 있는 건가.”
혀를 찬 호크 알론은 일단 선임기사인 에일의 어깨를 두드려 줬다. 그간 두려움에 떨던 에일의 긴장감이 눈 녹듯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고생했다. 에일 경.”
“아, 아닙니다! 호크 단장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동문서답이었지만 호크 알론은 크게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는 되레 옆에서 어색하게 웃고 있던 강서준에게 관심을 표했다.
“그보다 자네는…….”
“신임기사 루디 돌포스라 합니다.”
“……신임기사라.”
강서준을 바라보는 호크 알론의 시선은 예사롭지 않았다. 파고들 것만 같은 눈초리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의심하는 건 아니네만……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는 없어. 루디. 자네는 어떻게 듀라한의 본체를 알아본 거지?”
의심하는 건 아니라면서?
자칫 잘못 대답하면 그대로 칼로 목을 베어 버릴 듯한 기세에 강서준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행여나 에일이 던전에 대해 너무 잘 아는 걸 문제로 삼을까 싶어, 미리 준비해 둔 답은 있었다.
“제게 S급의 간파 스킬이 있습니다.”
“흐음?”
“적의 본체 정도는 볼 수 있습니다.”
사실이었다.
S급 간파 스킬은 관찰력이 극대화된 스킬 중 하나였다. 상대방이 보여 주는 스킬의 효과까지 알아내는 특성이 있으니 듀라한의 본체 정도는 찾아낼 수 있었다.
물론 이번 경우엔 그저 알고 있는 정보를 조합해서 필요에 따라 꺼내어 써먹었을 뿐이지만.
호크 알론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단 말이지…….”
한편으로는 호크 알론에 대한 경계심이 약간 올라갔다.
역시 에일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그는 강서준처럼 숱한 던전을 공략해 온 현직 베테랑 기사였고, 어지간한 단서는 쉽게 놓치질 않는다.
종전에 봤던 검술은 또 어떤가.
당장 강서준의 눈으로도 그 레벨을 추측할 수 없는 수준 높은 검술이었다.
‘게다가 아까 그 기술은 분명…….’
듀라한을 양단하고 검까지 베어 내는 그 기술은 묘하게 낯익었다. 강서준은 헛웃음을 지으며 그 명칭을 떠올릴 수 있었다.
‘……역시 태산 가르기겠지.’
황제가 고안했다고 알려진 궁극의 스킬은 그의 아들인 호크 알론에게도 전승된 모양이다.
그것도 아주 강력한 위력이었다.
“……알겠다.”
일단 호크 알론이 살기를 거둬들인 덕분에, 약간 거칠어지던 호흡이 안정됐다는 걸 알았다.
새삼스럽지만 황당한 일이다.
‘이렇게 강한 인간이 왜 그따위로 죽은 거지? 이해가 안 되는데…….’
그만큼 케이의 능력이 상식을 파괴하는 수준이라는 뜻이었지만, 강서준은 저도 모르게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나저나 이 양반은 대체 어쩌다 혼자서 지하 수로를 헤매고 있었을까.’
의문을 눈치채기라도 했는지 호크 알론은 알아서 그 이유를 설명해 줬다.
“난 알페온 시계탑에 생성된 검은 연기를 확인하려 이곳으로 왔다. 지하로 내려오니 이쪽으로 연결되어 있더군.”
이어진 말에 강서준은 바로 납득할 수 있었다. 알페온의 지하 수로의 입구는 하나가 아니었으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던전’ 자체가 몬스터인 ‘알페온의 지하 수로’는 알페온 전역에 입구를 갖고 있다.
블랙아웃에 삼켜지는 곳이 어디든, 이곳 ‘알페온의 지하 수로’로 연결된다.
그래서 ‘알페온의 저주’라 불린다.
“기사단원들은 모두 검은 연기에 삼켜져 돌아오지 않더군. 꽤 곤란하던 참이었어.”
호크 알론은 에일을 보더니 묻는다.
“역시 자네는 홀 남작의 자제인가?”
“저희 아버지를 아십니까?”
“청명석의 대부인 그를 어찌 모르겠는가. 자네의 목에 있는 것도 ‘청명석’으로 만들었겠지?”
“물론입니다.”
그는 은은하게 빛나는 에일의 목걸이를 손으로 만져 봤다. 겉보기엔 예술품처럼 이쁘게 장식된 장신구나 다름없었다.
“역시 청명석이 중요하겠어.”
한데 호크 알론의 다음 시선은 강서준에게 향했다. 뭐든 청명석과 관련된 걸 내놓아야 할 것만 같은 눈빛.
당연히 청명석 따위를 들고 있지 않는 강서준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전 간파 스킬로 통과했습니다.”
“또?”
“검은 연기에 삼켜졌으나 출구가 보이더군요.”
강서준은 기왕 이리된 김에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아직 미미한 의심을 품은 호크 알론을 향해 재차 입을 열었다.
“해서 전 이 던전의 출구가 아직 보입니다.”
“……그게 사실인가?”
“네. 정확하게 이 아래로 4층만 더 내려가면 출구가 있어요.”
“올라가는 게 아니라 내려가야 한다라…….”
잠시 조마조마한 시간이 흘렀지만 의외로 호크 알론은 강서준의 말을 믿기로 했다.
아무래도 듀라한의 실체를 본 게 도움이 된 듯했다.
“좋아. 더 내려가 보도록 하지.”
이후로 강서준은 두 개의 층을 더 내려가면서, 호크 알론이 가진 무력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레벨을 떠나서 그 검술이 참 대단했다.
[스킬, ‘간파(S)’를 발동합니다.] [스킬, ‘?’을 발견했습니다.] [스킬, ‘?’를 21% 이해했습니다.]막말로 그가 휘두르는 태산 가르기의 위력은 경이로울 정도였다.
‘과연 무엇이 내 스킬과 다른 걸까.’
그 이후로 강서준은 눈을 빛내며 호크 알론의 이모저모를 계속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그게 뭐든 배우는 게 이득이었다.
특히 강서준이 주목한 건, 호크 알론이 마력을 운용하는 방식이었다.
[스킬, ‘?’를 27% 이해했습니다.]듀라한을 상대할 때 마력을 바닥에 튕겨 진동하던 기술도, 바로 이걸 응용한 기술인 듯했다.
‘검을 진동시켜 마력을 증폭시키는구나. 그 덕에 같은 태산 가르기라 해도 더욱 강력한 위력을 내는 거야.’
사실 제국검술을 밤잠을 잊으며 연습해 보아 어느 정도 눈치챈 게 있었다.
태산 가르기는 ‘제국검술’에서 비롯됐고, 그보다 상위 등급의 검술을 기반으로 한다는 걸.
즉 ‘태산 가르기’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관련된 검술을 온전히 익혀야만 한다.
아마 그게 종전부터 시스템 메시지로 나타나는 ‘?’의 정체일 것이다.
“루디! 놈의 본체는?”
“……활입니다!”
13층을 떠돌던 한 마리의 그리핀이 활을 꽉 쥐어 당기고 있었다. 화살촉에 묻은 건 ‘데스아웃’을 유발하는 독.
아마 저건 청명석으로 된 아이템으로도 이겨 내지 못한다.
체내에 흡수된 데스아웃은 아이템으로도 회복시킬 수 없으니까.
하지만.
“흐아아압!”
기합을 내지른 호크 알론이 다가오는 화살을 모조리 쳐 냈다. 놀라운 건 그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더욱 힘이 강해진다는 것이다.
‘……대단하군.’
검에 실린 마력은 폭발할 듯하면서도 제대로 갈무리됐다. 이내 호크 알론의 검술은 그리핀이 쥐고 있는 활을 향해 포효하기 시작했다.
호크 알론의 검이 진동하고 있었다.
마치 맹수의 울음처럼.
그 뒤로도 강서준은 마치 물 먹은 스펀지처럼 호크 알론의 검술을 머릿속에 하나씩 쌓아 갔다.
스킬 ‘간파’의 효능으로 움직임을 이해했고, 그 저의도 파악했으며, 나아가 응용법까지 되새겨 봤다.
모든 것들이 그의 힘이 되고 있었다.
‘……운이 좋군.’
강서준은 눈을 빛내며 더욱 호크 알론의 움직임을 좇았다.
태산 가르기는 이미 소멸해 버린 황제의 마지막 유물과도 같은 기술. 다시는 찾을 수 없는 섭종된 세계의 흔적이다.
하지만 이렇듯 전직 퀘스트를 통해 스킬북을 독파할 수 있는 경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잘만 해낸다면…….
‘기반이 되는 검술도 얻을 수 있겠어.’
그리고 고작 형태만 따라 하던 태산 가르기가 본격적으로 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면 어찌 될까.
상상만 해도 짜릿했다.
전투 스킬이 부족한 강서준에게 있어선 마른하늘에 단비 같은 일이었다.
“이제 마지막 층이군.”
겨우 찾아낸 싱크홀을 따라 14층으로 내려선 일행.
좀 더 느긋하게 호크 알론의 검술을 지켜보고 싶었던 강서준의 아쉬운 마음이 닿았을까.
그들은 14층을 헤매고 또 헤맸지만 이번엔 싱크홀이나 수직갱도를 발견할 수 없었다.
호크 알론이 물었다.
“어떻게 된 거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강서준이라고 이 던전에 대해서 완전히 파악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각 층마다 존재하는 몬스터나 그 특징, 층간 보스의 정보를 알고 있을 뿐이었다.
‘알페온의 지하 수로는 매일 그 구조가 바뀌니까. 외울 필요가 없었지.’
싱크홀이나 수직갱도, 출구는 매일 바뀌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이번엔 보스를 공략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결국 그들이 멈춰 선 곳은 누가 봐도 강한 몬스터의 기운이 넘실거리는 어느 방문 앞이었다.
이곳은 계단방.
정확히 말하자면 층간보스가 거주하는, 던전 내의 가장 ‘핵심 장기’들이 존재하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