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192
◈ 192화
강서준은 눈을 몇 번 깜빡였다.
목적이 있어서 한 건 아니다.
숨을 쉬듯 당연하게 눈을 깜빡이며 주변을 둘러봤다. 긴 잠에 빠졌던 것처럼 온몸에 무기력감이 감돌고 있었다.
“정신이 드느냐?”
점차 몸의 감각이 생생하게 살아나고, 양팔이 자유롭지 못하단 사실을 깨달았다.
호크 알론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상태는 괜찮아 보이는군.”
“…….”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 볼까.”
선명해진 시야로 생소한 것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단 여긴 ‘A급 던전 지하 수로’의 풍경이 아니었다.
목제 책상, 허름한 침대…… 다소 어둡긴 해도 던전이라 보기엔 너무 평화로웠다.
이곳이 어딘지는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호크 알론의 비밀 침소’에 진입했습니다.]그리고 새삼스럽게 그를 내려다보는 한 사람의 강렬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군.’
호크 알론.
드림 사이드 1의 주요 인물이자, 알론 제국의 황태자라 불리는 자.
그는 대뜸 강서준의 목에 검을 가져다 대며 입을 열었다. 차가운 금속이 느껴지자 더욱 감각이 빠르게 정신을 차렸다.
“나도 너에게 이러는 건 썩 유쾌하진 않아. 그러니 똑바로 답해야 할 것이야.”
“……저한테 이러시는 이유가 뭐죠?”
“너에게 질문은 허락하지 않았어.”
그때 호크 알론의 검이 무자비하게 강서준의 어깨를 푸욱 파고들었다. 차가웠던 감각이 금세 뜨겁게 변하고 통증이 밀려왔다.
“크윽…….”
물론 길진 않았다.
어깨를 찔렀던 검이 뽑혀 나가자 피분수가 일었지만, 금세 어깨는 회복해 버렸기 때문이다.
[스킬, ‘초재생(F)’을 발동합니다.]자잘한 상처쯤이야 무시할 수 있는 트롤 같은 회복력. 일전에 봉인을 모조리 해제시킨 덕에, 강서준은 본신의 스킬을 모두 사용할 수 있었다.
호크 알론은 다시 강서준의 목을 겨눴다.
“신임기사 루디 돌포스. 키몬 영지의 구석에 있는 산골에서 나고 자랐으며, 평민치고는 뛰어난 잠재력을 인정받아 제국의 기사단으로 입단했다. 맞느냐?”
“……그렇습니다.”
호크 알론의 눈썹이 순간 꿈틀거렸고, 동시에 강서준은 빠르게 상태창을 확인한 뒤 입을 열었다.
“정확하게는 키몬 영지가 아니라, 마일스 영지입니다. 남쪽의 따뜻한 항구요.”
하지만 호크 알론은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풀지 않고 있었다.
강서준은 입술을 잘근 깨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제가 왜 이렇게 묶여 있는지 이유라도 알고 싶습니다.”
그가 큰 죄를 지었던가.
지하 수로에서 호크 알론을 만난 일은 우연이었고, 이후로 크게 의심을 살 만한 행동을 하진 않았다.
조금 찝찝한 게 있다면 던전에 대해서 너무 잘 아는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는 건데.
그 또한 ‘간파’로 잘 넘어가질 않았던가. 호크 알론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정말 몰라서 묻는 것이냐?”
“……저는.”
“우선 넌 보고되지 않은 스킬을 보유하고 있다. 모든 것이 투명해야 할 제국의 기사에겐 그것만으로도 의심의 대상이 될 수 있지.”
미간을 좁히며 호크 알론을 올려다본 강서준은 여러 스킬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중 가장 티가 나는 스킬이 있다.
‘초재생 때문인가.’
하기야 루디 돌포스가 잠재력이 뛰어난 검사였지만, 상처를 스스로 회복하는 스킬은 가지질 못했다.
‘근데 포션 치료를 하기도 전에 저절로 회복해 버리고 만 거겠지.’
초재생은 의식적으로 회복을 더디게 만들 수 없었다. 그의 스킬 등급도 F급밖에 안 되어 조절할 수도 없다.
“또한 이상하리만치 침착하더군. 지금도 그래. 조금도 당황하질 않아. 고도의 훈련을 받은 게 아니고서야…….”
이건 ‘천무지체’의 성능이다.
전투에 최적화하려면 당연히 늘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수련이 깊으면 평정심이야 유지할 수야 있겠지. 하지만 네놈도 곧 진실을 말하게 될 거야.”
호크 알론이 눈에 쌍심지를 켜자,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가 있었다.
[상태 이상 ‘자백’을 유발하는 특수 독 ‘슈테른의 꽃잎’에 중독되었습니다.] [장비 ‘진실의 성물 : 이루리’를 확인했습니다.] [상태 이상이 무효화됩니다.]슈테른의 꽃잎은 ‘환상’을 보여 주어, 복용자의 정신을 뒤흔들어 버리는 일종의 자백제.
하지만 어지간한 환상 공격엔 면역이 있는 그였다. 강서준의 눈앞은 잠시 흐려졌다가 다시 원상복구됐다.
그나저나 종전에 찔러 넣은 검에 ‘독’이라도 묻혀 놨었던 모양이다.
슈테른의 꽃잎이라…….
‘생각보다 치밀한데…… 이렇게 치밀할 줄 알면서 예전엔 왜 그리 쉽게 죽은 거야?’
속으로 혀를 찬 강서준은 잠시 몽롱한 척 눈에 힘을 풀었다. 독이 먹히질 않았다는 걸 호크 알론에게 알릴 필요는 없었다.
“답해라. 네놈의 이름은?”
“루디…… 돌포스입니다.”
“소속은?”
“제국기사단의 하수처리장 탐사 B조로 들어갔고, 아직 정식으로 발령된 기사단은 없습니다.”
“이곳에 들어온 목적은?”
“제국을 수호하기 위함입니다.”
자백제까지 사용한 뒤에 물어본 질문이었기 때문일까. 호크 알론은 미간을 구기면서도 더는 말을 잇진 못했다.
의심은 있어도 확실한 증거가 없으니, 무어라 더 물을 수조차 없을 것이다.
결국 호크 알론은 본론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네놈…… 아버지와 무슨 관계지?”
아버지?
그제야 강서준은 호크 알론이 그를 묶어 둔 저의나, 이토록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14층의 미러 이미지를 상대할 때, 그는 부득이하게 황제의 스킬인 ‘태산 가르기’를 사용했더랬다.
‘위급한 상황이라 해도 역시 감추는 게 좋았으려나…….’
과거를 후회한들 현재를 바꿀 수는 없다. 강서준은 여전히 사나운 눈초리를 한 호크 알론을 올려다봤다.
그가 서늘한 눈초리로 입을 열었다.
“대체 어떻게 비전검술을 알고 있는 거지?”
“…….”
“정말 아버지의 사생아인 것이냐?”
무어라 답해 줄까.
여러 답변이 떠올랐지만, 사실 그가 할 수 있는 답안은 정해져 있었다.
느닷없이 멜빈 알론의 사생아라고 말할 수는 없었으니까.
“간파로 보았…….”
“거짓말이다.”
윽박을 지른 호크 알론은 더욱 맹렬하게 살기를 끌어올렸다. 묵직한 살기가 어깨를 짓눌러 강서준의 숨통을 꽉 묶어 놨다.
“고작 스킬 하나로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의 이치를 담은 ‘천지해’를 따라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네?”
[스킬, ‘천지해(L)’에 대한 정보를 습득했습니다.]부득이하게 나타난 메시지에 당황하는 사이, 호크 알론은 아예 단정 지으며 말하기 시작했다.
“황자의 신분을 숨겨가며, 제국의 기사단에 숨어든 목적이 뭐지? 무슨 속셈으로 이곳으로 온 것이냐.”
“……!”
“쯧. 도통 제대로 된 답을 하질 않는군. 하기야 아버지에게 직접 검술을 사사했다면 슈테른의 꽃잎도 통하지 않겠지.”
자문자답하던 호크 알론은 강서준을 향해 사나운 시선을 거두질 않고, 다시 입을 열었다.
“네놈이 아버지의 사생아든 뭐든, 사실 크게 중요하진 않다. 멸망을 앞둔 세계에서 그딴 건 아무래도 좋으니까.”
“…….”
“하나 끝까지 진실을 말하지 않는 점은 괘씸하다. 네놈같이 비밀이 많은 자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아.”
이젠 완전히 그를 ‘사생아’라 믿는 눈치였다.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이젠 자진모리장단으로 뮤지컬까지 할 기세다.
슬슬 저 녀석의 단점이 뭔지 알 수 있었다.
‘지레짐작하는 건 유전인가.’
멜빈 황제가 관리자를 믿질 못하고, 지레짐작으로 케이를 죽이고자 했던 일.
그 탓에 세계는 멸망했다.
호크 알론은 감옥을 나서며 말했다.
“곧 돌아올 것이다. 그땐 진실을 말했으면 좋겠군.”
그리고 한참을 지나도록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
한쪽 창으로 어스름한 달빛이 새어 들어올 즈음일 것이다.
침대에 구속되어 잠시 방치되었던 강서준은 나지막이 느껴진 인기척에 눈을 떴다.
‘참 빨리도 오는군.’
금방 돌아올 것처럼 굴었던 주제에 새벽이 되어서야 돌아오다니.
하지만 고개를 들어 확인한 남자는 호크 알론이 아니었다.
“……엥?”
또한 NPC조차 아니었다.
미간을 좁혀 얼굴까지 전부 확인한 강서준은 고개를 갸웃했다.
대체 어떻게 여기에 그가 있는 걸까.
“켈?”
분명 진백호에게 정령술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던 랭킹 11위의 켈.
차원 서고에 있어야 할 그였다.
“NPC 주제에 날 바로 알아보는 걸 보니 역시 당신도 이쪽 사람인 모양이군.”
“……네?”
켈은 가볍게 혀를 차면서 쭉 훑었다. 분석이라도 하듯 아래에서 위를 살핀 그가 말했다.
“꽤 젊고.”
“…….”
“생각보다 더 멍청해 보이고.”
느닷없이 나타나 하는 말이 그것이었다. 강서준은 고개를 갸웃하며 켈을 쭉 살펴봤다.
그러고 보면 뭔가 이상했다.
분위기도 그렇고, 말투도 미묘하게 얄미운 것이 아예 다른 사람 같았다.
‘옷차림도 달라.’
걸치고 있는 외투는 에베레스트를 등반하기엔 너무 얇았고, 얼핏 보이는 장비들의 수준도 생각보다 너무 높았다.
380제 귀걸이에, 370제 갑옷…….
하나같이 현재의 켈이 입을 수조차 없는 수준의 장비. 애초에 그는 섭종 보상으로 신발과 정령석, 장갑을 들고 왔다고 하질 않았던가.
켈은 시선에 경멸을 담으며 말했다.
“모자라거나 멍청하거나…… 둘 중 하나만 해 줄래요?”
“……갑자기 무슨 소리입니까.”
“전 당신처럼 모자라고 멍청한 사람이 싫습니다. 뭘 하려거든 잘 해내기라도 할 것이지. 이게 뭡니까?”
묘하게 어긋난 대화였다.
또한 강서준은 눈앞의 켈이 그가 알던 켈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말하자면 이자는…….
‘드림 사이드 1의 켈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저 복장은 ‘켈’이 주로 입던 정령 장비들이었다.
즉 눈앞의 켈은 1에서 그저 게임을 즐길 뿐이던 ‘켈’로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론상 가능하다.
‘여긴 과거의 드림 사이드니까.’
정확하게 말하자면, 스킬북으로 인해 재구성된 세계. 어쨌든 플레이어를 만나도 이상하진 않다.
하지만 의문이 남는다.
‘켈이 왜 여기에 있지?’
차원 서고에서 진백호에게 정령술을 가르치고 있을 켈이 아니더라도 이상한 일이다.
‘플레이어 켈’이 대관절 호크 알론의 비밀 침소로 어떻게 찾아온 걸까.
이곳에 퀘스트라도 있는 걸까.
흐름상 유추할 수 있는 건, ‘루디 돌포스’가 ‘켈’과 아는 사이일지도 모른다는 것 정도였다.
‘아니야. 켈은 루디 돌포스를 처음 보는 눈치야.’
강서준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하지만 상황에 대한 이해 보다 켈의 말이 더 빨랐다.
“곧 황제로부터 퀘스트가 발주될 겁니다. 아마 호크 알론은 지하 수로로 파견을 나가겠죠.”
“……퀘스트라고요.”
“이참에 당신도 도와야겠습니다.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몰라도 호크 알론의 호의를 산 건 유용한 일이니.”
이게 호의라면, 호크 알론은 사이코패스가 분명하다.
어쨌든 그의 말에 담긴 저의를 파악하고자 켈을 올려다봤지만, 그 속내는 결코 드러나지 않았다.
“물론 호크 알론이 강하다는 건 압니다. 보통 인물이 아니죠. 그러니 철저하게 준비했습니다. 이번엔 그냥 넘어가지 못해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늘어놓는 켈은 곧, 용무가 끝났는지 몸을 돌렸다.
강서준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잠깐…… 이해가 안 됩니다.”
“어려워요? 나름 쉽게 말한다고 한 건데.”
“대체 왜 이런 짓을 벌이는 거죠?”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다.
켈이 이 자리에 돌연 나타난 것부터, 느닷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것까지.
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확실한 건 이 모든 상황은 과거에서도 비슷하게 벌어졌다는 거야.’
켈은 미간을 찌푸리며 나지막이 말했다.
“이분 머리도 다쳤나.”
머리를 긁적이던 켈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강서준의 어깨를 꾹 누르며 말했다.
“닥치고 내 말 들어요.”
“…….”
“적당히 나대다 알아서 뒈지라고. 이번 일만 잘해 내면 다음 생에는 잘 챙겨 줄 테니까.”
다음 생……?
“그러면 알아들은 걸로 하고…….”
“그게.”
“쓰읍!”
켈은 진심으로 살기를 쏘아 내며 강서준을 노려봤다. 그때 바깥쪽에서 또 다른 인기척이 느껴졌다.
묵직한 발걸음.
아마 ‘호크 알론’의 인기척일 것이다.
켈은 바깥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강서준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됐습니다. 어차피 당신은 보험 중 하나니까. 만에 하나라도 이번 작전은 실패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더니 인벤토리에서 뭔가를 꺼내어 얼굴에 썼다. 터무니없지만 그건 강서준의 눈에도 상당히 익숙한 물건이었다.
하얀 가면.
울고 있는지 웃고 있는지 모를 표정.
그는 창가로 다가가 ‘바람의 정령’을 소환해, 두둥실 떠오르며 말했다.
“그러면 잔업 수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