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194
◈ 194화
이튿날 새벽.
강서준은 알페온의 시계탑으로 은밀하게 접근하는 한 기사단의 뒤를 쫓고 있었다.
시각은 대략 새벽 2시.
작전의 개시까지 30분 정도 남은 시점이었다.
호크 알론은 급조한 병영을 쭉 살펴보더니 강서준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플레이어를 끌어들였다지?”
에일이 그새 일러바친 걸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건 크게 책망하는 낌새가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다.
“플레이어는 계획에 없던 일이야. 무슨 생각으로 그들을 끌어들인 거지?”
호크 알론의 물음에 강서준은 어깨를 으쓱이며 뻔뻔하게 답했다.
“아무렴 상관없던 게 아니었습니까?”
모르긴 몰라도 호크 알론이 마음만 먹었다면, 강서준이 퀘스트를 뿌리기 전에 막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호크 알론은 플레이어 영역으로 향하는 강서준을 막지도, 그렇다고 무어라 훈수를 두지도 않았다.
그저 내버려뒀다. 왜 그랬을까.
예상대로 호크 알론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했다.
“그래. 일개 플레이어가 간섭한들 상황이 바뀌진 않지. 슬슬 밝혀지던 시점이었으니 순서의 문제였고.”
실제로 지하 수로에 대한 정보는 몇몇의 플레이어에게 이미 간파된 상태였다.
해서 강서준이 구태여 나서질 않았더라도 머지않아 플레이어들은 귀신같이 지하 수로를 찾아냈을 것이다.
과거에도 그러했으니까.
그 시기가 조금 더 빨라졌을 뿐이다.
“하지만 의도가 궁금해.”
“흐음…….”
“굳이 나서서 퀘스트를 발주한 건 너의 독단이다. 또한 퀘스트의 내용 중 거짓된 정보를 흘린 것도 너의 계획이지. ……대체 무슨 생각이지?”
그의 질문에 강서준은 일단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가기로 했다.
“거짓된 정보를 흘린 적은 없습니다.”
“……그래. 네놈이 플레이어들에게 알린 입구는 하수처리장에도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니야. 하나 그곳의 입구는 오직 1층으로 연결되어 있어.”
현재 NPC들이 집단으로 모여든 장소는 알페온의 시계탑이었다.
그리고 이곳을 통해야만 이전에 공략해 뒀던 15층의 안전지대로 진입할 수 있었다.
즉 플레이어들에게 알린 하수처리장은 제대로 된 입구가 아니었다.
강서준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렇기에 그들을 하수처리장으로 안내한 것입니다.”
“……이유는?”
“그들은 미끼니까요.”
강서준은 눈을 빛내며 호크 알론의 시선을 마주했다. 그는 눈빛으로 강서준에게 답을 재촉했다.
“제가 알아낸 바로는 지하 수로는 어떤 곳이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겁니다.”
“……확실히 14층의 층간 보스는 그러했지.”
“네. 그러니 1층으로 진입하는 플레이어의 집단은 던전의 시선을 빼앗을 수도 있다는 거죠.”
많은 플레이어가 1층으로 진입해 줄수록 던전은 NPC들에게 가할 관심을 흘려줄 것이다.
그만큼 던전의 난이도는 낮아질 것이며, 이게 그가 노리는 꼼수였다.
호크 알론은 잠시 말이 없다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런 사실을 어찌 알았는지는 물어도 대답해 주진 않겠지.”
“……간파로 알았습니다.”
“그놈의 간파, 만능 스킬이구나.”
강서준은 쓰게 웃으며 호크 알론의 시선을 일별했다. 사생아라고 오해를 해도 무작정 그를 나쁘게만 보진 않는 듯했다.
“루디. 난 아직 너를 인정하진 못한다. 하나 너의 능력은 가히 황제의 핏줄이라 할 법했지.”
“너무 띄워 주시는 군요.”
“기대하마. 숨겨 둔 황자의 실력을.”
물론 무엇이든 증명하질 못한다면 당장이라도 죽일 기세로 노려보는 저 시선만 뺀다면 말이다.
***
A급 던전 ‘알페온의 지하 수로’의 15층.
진입과 동시에 밀려온 건 안전지대로 부르기 힘들 정도로 역한 냄새였다.
똥통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는 장소.
‘실제로 하수구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던전이니까.’
바닥에 흐르는 건 누군가의 오물이고, 벽면에 굳은 건 오래되어 썩어 버린 것들이다.
이곳은 그저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을 뿐, 생활을 윤택하게 만들어 줄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
“익숙해져야 할 것이다. 이곳이 앞으로 우리들의 유일한 휴식처가 될 터이니.”
호크 알론은 코가 마비된 사람처럼 당당하게 가방에서 음식을 꺼내어 먹었다.
냄새만 맡아도 식욕이 확 떨어지는 장소였지만, 황태자가 앞서서 행동하니 다른 기사들도 별수 없이 각자의 음식을 꺼내어 질겅질겅 씹어 삼켜야 했다.
어쨌든 전투가 코앞이다. 직전에 먹어야 관련된 효과라도 적용되는 법이다.
강서준도 대충 음식을 씹어 삼키며 15층의 한쪽을 바라봤다.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마력이 흘러나오는 어두운 계단이 있었다.
‘진짜 던전은 여기부터겠지.’
단순하게 생각했을 때 30층에 달하는 지하 수로는 15층에 도달하면, 반은 도착했다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얘기.
아마 여태까지의 난이도를 생각해서 16층을 도전한다면, 누구든 크게 낭패를 보게 될 것이다.
‘방심하면 안 돼. 여긴 A급 던전이야.’
그리고 이 던전은 16층부터 터무니없을 정도로 그 난이도가 격상된다.
1층에서 15층까지 하루면 도달할 수 있겠지만, 16층에서 17층으로 넘어가려면 일주일은 걸리는 것이다.
플레이어의 역량에 따라 그 기간이 달라지겠지만, 작금의 NPC들이라면 일주일도 최소로 잡은 시간이었다.
‘괜찮아. 아직 여유는 있어. 이참에 호크 알론의 검술을 잔뜩 봐 두면 되겠지.’
황실 기사단에 입단해서 언제 만날지 모르는 황제와의 만남을 기약하는 것보다 낫다.
실전은 더욱 큰 교육이 되니까.
또한 이곳에서 일주일 안에 검술을 완전히 이해한다면, 구태여 이 던전을 공략할 필요도 없다.
전직 퀘스트의 제1조건은 스킬북을 독파하는 것뿐이니까.
말하자면 강서준이 ‘태산 가르기’에 관련된 이해도가 완전해진다면, 지긋지긋한 이곳도 안녕이다.
“그럼 바로 진입한다.”
모든 준비를 마친 그들은 어두운 계단을 밟아, 16층으로 내려섰다.
의외로 뻥 뚫린 광장이 먼저 보였고, 한가운데엔 거대한 돔을 확인할 수 있었다.
층간 보스의 방이었다.
“이건 예상하지 못했는데…….”
호크 알론의 말을 뒤로하고 돔 내부를 둘러봤다. 큰 의자에 앉아 있는 건 한 마리의 미노타우르스.
16층을 관장하는 층간 보스였다.
놈은 석상처럼 굳어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폼을 잡고 앉아 있었다.
“문은 열리지 않는 건가?”
“……이쪽에 뭔가 있습니다!”
층간 보스의 방 앞으로는 원탁이 하나 있었고, 동그랗게 16개의 구멍도 있었다.
호크 알론은 바로 알아차렸다.
“뭔가를 넣어야 하는 거군.”
주변을 둘러보니 원탁을 기점으로 동그랗게 벽마다 16개의 터널이 자리하고 있었다.
강서준은 쓰게 웃었다.
‘16층의 테마는 미로야.’
개미굴처럼 곳곳으로 어지럽게 펼쳐진 통로에서, 층간 보스의 방문을 열 열쇠를 찾는 것.
도합 16개의 열쇠를 찾는 게 16층을 돌파하는 방법이다.
그렇게 문을 열어, 층간 보스인 ‘미노타우르스’를 쓰러트려야만 17층으로 내려갈 수 있다.
이곳부터는 수직갱도나 싱크홀조차 존재하질 않으니, 오직 층간 보스를 처치해야만 한다.
한편 호크 알론이 말했다.
“루디. 너의 계획이 통했나 보군.”
“…….”
“확실히 몬스터가 보이질 않아.”
그의 말마따나 16층을 쭉 둘러본 강서준은 슬쩍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단 한 마리도 없다고?’
제아무리 플레이어를 끌어들여 관심을 그쪽에 몰았다 하더라도 이건 말이 되질 않는다.
‘기척조차 느껴지질 않아.’
묘한 위화감이 일었다.
뭔가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는 느낌과 털이 쭈뼛 서는 기분이 동시에 들었다.
‘일단 류안으로 확인해 보자.’
백문이 불여일견.
강서준이 눈을 금빛으로 물들이며 빠르게 주변을 살펴볼 때였다.
16층에 흐르는 모종의 마력이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어? 어어?”
정확하게 15층에 있던 기사들이 모조리 16층에 발을 디뎠을 무렵.
발밑으로 모종의 마법진이 생성됐다. 호크 알론이 다급하게 검을 뽑아 들며 외쳤다.
“모두 자세를 갖춰라! 흩어지지 마!”
하지만 그 명령이 무색하게 기사들은 빛과 함께 순식간에 사라졌다.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그리고 강서준은 상황을 빠르게 이해할 수 있었다. 비교적 최근에 당해 본 일이었으니까.
[A급 던전 ‘알페온의 지하 수로 16층’의 특수 스킬, ‘왜곡’을 발동합니다.] [임의의 장소로 이동됩니다.]‘맙소사…….’
어쩌면 예상했어야 하는 일이다.
지하 수로의 1층은 시작부터 ‘블랙아웃’으로 플레이어들을 곳곳에 흩어 놨으니까.
하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간단한 이유였다.
‘전엔 없던 일이니까.’
과거의 그가 16층에 들어왔을 땐 이런 함정은 발동했던가. 아니…… 그땐 이딴 귀찮은 함정 따위는 없었다.
‘……있었지만 없어진 함정인 거야.’
강서준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생각해 보면 이곳의 첫 방문자는 플레이어가 아니라, NPC였다.
자고로 함정은 첫 방문자에게 쥐여 주는 선물이나 다름없었고.
츠츠츳!
강서준은 호크 알론의 몸에서도 걷잡을 수 없는 빛이 터져 나오는 걸 볼 수 있었다.
어딘가로 이동된다는 징조!
일단 이를 악물고 달려 호크 알론에게 접근했다.
모르긴 몰라도 그를 붙잡아야 한다.
그래야 함께 이동될 테니까.
“루……!”
하지만 이쪽을 바라보며 소리치던 호크 알론은 한 끗 차이로 눈앞에서 사라졌다.
츠츠츠츳!
동시에 강서준의 몸에도 빛이 터지면서 몸이 붕 뜨는 감각이 일었다. 그도 16층의 어딘가로 이동되고 있었다.
[‘침묵의 밤굴’에 진입했습니다.]눈을 다시 떴을 때는 주변엔 빛이 한 점도 없는 어둠투성이의 공간에 홀로 버려져 있었다.
“하필…….”
한숨을 참으며 주변을 둘러봤지만,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당연한 얘기다. 침묵의 밤굴은 소리마저 어둠에 삼켜지는 미로였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블랙아웃’처럼 그 어떤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 불가해한 공간은 아니라는 점이다.
“대신 이곳엔 몬스터도 있겠지.”
타다다닥!
그나마 류안과 영안을 사용할 수 있는 그였기에, 어둠속에서도 정확하게 윤곽을 볼 수 있었다.
그를 향해 달려오는 한 몬스터.
‘사일런스 스콜피언’은 독이 가득 묻은 꼬리를 콱 찔러 대며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돌겠군.’
문제는 사일런스 스콜피언의 방어력은 강철보다 단단하기로 유명하다는 점이다.
안 그래도 레벨이 부족한 루디의 검은 씨알도 박히지 않는다.
‘어둠 속이라 틈을 노리기도 어려워.’
일단 강서준은 초상비로 사일런스 스콜피언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창졸간에 파이어볼도 던져 봤지만 역시나 30센티미터 밖으로 넘어가니 어둠은 불꽃에 삼켜졌다.
‘상황이 너무 안 좋아.’
차라리 공격력은 과할 정도로 강할지언정 방어력이 모자란 놈이 나을 것이다.
그런 놈이라면 강서준도 공략할 기회가 있을 테니까.
이놈처럼 방어력이 과할 정도로 높아지면, 그는 공략할 기회조차 없다.
“……우선 여길 빠져나가야 해.”
불행 중 다행은 이 던전의 공략법은 모조리 강서준의 머릿속에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비록 예기치 못한 함정이라도.
알고 있는 정보에 한하여 그는 어떻게든 활로를 찾아낼 수 있었다.
‘침묵의 밤굴을 통과하는 법은 오직 하나야. 그저 속도…….’
어둠에 질식하지 말고 빠르게 거리를 주파하는 것. 이곳은 같은 공간에 머문 시간이 길어질수록 출구가 멀어지는 특징이 있다.
쑤우우욱! 콰앙!
근접한 사일런스 스콜피언의 독침을 겨우 피해 낸 강서준은 빠르게 발을 굴렸다.
만약 그에게 힘이 있었다면 이딴 놈을 신경 쓸 것도 없이, 단숨에 부수고 앞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몬스터를 죽이는 행위는 던전을 빠르게 빠져나가는 것보다, 가산점이 들어가니까.
그게 어둠에 먹히질 않았다는 가장 큰 증거였으니까.
‘아쉽지만 지금의 난 도망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그때였다.
우우웅!
분명 어둠 속인데도 뭔가가 눈에 밟혔다. 침묵에 사로잡혔어야 할 공간에도 그 소리는 선명했다.
뭘까.
의문을 확인할 겨를도 없이 강서준은 다가오는 검격을 피해 몸을 비틀었다.
정확하게 허공을 양단한 검은 그를 노리고 쫓아오던 사일런스 스콜피언을 일격에 두 동강 냈다.
가히 파격을 넘어서는 공격력!
한편 강서준은 종전의 일격을 상기하며 기함을 토할 수밖에 없었다.
‘……태산 가르기.’
분명 그 스킬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