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197
◈ 197화
강서준은 거칠게 차오른 숨을 억지로 내뱉으며 다가오는 공격을 피했다.
상황을 이해하는 것보다 빠르게 몸을 움직이는 게 중요했다.
‘빌어먹을……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퀘스트를 실패한 건가?’
뭐가 됐든 이를 악물고 힘껏 뛰어 미노타우로스로부터 거리를 벌리고자 했다.
하지만 놈은 집요했다.
우어어어!
목표에 꽂힌 황소처럼 오직 강서준만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공격을 이어 왔다.
잠깐의 여유도 없었다.
“자네! 지금 뭘 하는 겐가?”
뒤늦게 나타난 황제가 미노타우르스의 도끼를 후려치며 물었다. 왜 돌아가질 않냐는 시선에 괜히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나도 모릅니다! 뭔가 꼬여도 단단히 꼬였어요!”
“뭐?”
“일단 저놈부터 쓰러트리죠!”
그나마 황제가 본격적으로 검술을 발휘하기 시작하니, 사태는 금세 역전시킬 수 있었다.
황제는 고작 16층의 미노타우르스 따위가 막아 낼 수 있을 리가 없는 수준.
사실 호크 알론도 이놈에게 고전할 이유가 없었다. 그토록 손쉽게 무너져선 안 되는 일이었다.
“뭐든 일단 방법을 알아내게. 그대가 더는 이곳에 있을 이유는 없으니!”
“……네?”
“빨리!”
강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단 로그 기록부터 확인했다. 왜 그가 이곳을 벗어나질 못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그곳에 적혀 있을 것이다.
[!]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하여 전직 퀘스트가 클리어되질 않았습니다.]다시 봐도 황당한 일이다.
본래라면 클리어됐어야 하는 퀘스트.
근데 알 수 없는 이유라고?
그리고 강서준은 이런 문구가 나타날 때가 보통 어느 때인지 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버그?’
하지만 전직 퀘스트에서 느닷없이 버그가 일어날 줄이야.
무슨 이런 망겜이 다 있단 말인가.
머리가 복잡해지고 화도 났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유 없는 버그는 없다.’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만들어진다.
로테월드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롤백이 결정된 게 아니었던 것처럼, 뭔가가 버그를 만들어 냈을 것이다.
‘설마 아이크의 개입이 문제가 된 걸까?’
잠시 고민했지만 바로 부정했다.
그는 킬 스위치마저 빼돌린 양반이다. 아이크가 시스템에게 걸릴 정도로 일을 대충 마무리했을 리는 없었다.
‘만약 스킬북 안쪽에서 벌어진 문제가 아니라면?’
거기까지 생각한 강서준은 그가 차원 서고에 함께 들어온 한 사람을 떠올릴 수 있었다.
진백호의 개인교사로 붙여 둔 남자.
현시점에서 가장 정체가 모호한 인물인 ‘켈’이 차원 서고에 있질 않은가.
‘젠장…….’
그때 눈앞으로 새로운 메시지가 나열됐다.
시스템의 자정작용.
버그가 발생했다면 이를 고치기 위한 일환으로 시스템은 어떤 행동이든 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번엔 롤백이 아니었다.
[시스템에 의해, ‘전직 퀘스트’의 내용이 수정되었습니다.] [16층의 ‘미노타우르스’를 제거하십시오.]“……뭐?”
절로 미간이 찌푸려지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대단히 나쁜 조건은 또 아니었다.
‘황제가 있다면 어렵지 않아.’
당장 미노타우르스를 홀로 요리하고 있는 황제의 위용만 봐도 그랬다.
이대로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어도 황제가 그를 이 스킬북 속에서 빼 줄 것이 분명했다.
이런 버스는 유익한 법.
잘하면 미노타우르스를 공략했다는 이유로 공짜 경험치도 받아먹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계획대로 흘러간다면 말이다.
“방해하지 마시죠.”
“네놈은……?”
“당신이 어떻게 여기에 있는지는 몰라도 적당히 나대고 빠지세요. 멜빈 황제.”
돌연 바람이 폭발하면서 황제가 멀찍이 물러났다. 그리고 익숙한 가면을 쓴 남자가 눈앞에 나타났다.
컴퍼니의 가면.
아니, 그는 분명 ‘켈’이었다.
“당신은 어디까지나 방관자여야 합니다. 이런 데에 직접 나서선 안 된단 말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순리를 받아들이시죠.”
켈은 무자비한 바람 마법을 부리며 황제를 미노타우르스로부터 밀어내기 시작했다.
잔뜩 쭈그려 공격받던 미노타우르스도 황제가 사라지자마자, 다시 아성을 드러내며 포효했다.
놈의 시선이 이쪽을 향한 건 그때.
‘……돌겠군.’
머릿속에 각가지 생각이 날뛰는 사이, 미노타우르스가 그를 향해 돌진을 감행했다.
강서준은 일단 류안부터 발동시켰다. 예기치 못한 일들이 연달아 벌어졌지만 그가 할 일은 하나였다.
‘미노타우르스를 공략해야 해.’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건, 황제의 공격으로 녀석의 체력이 꽤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강서준은 미노타우르스의 공략법을 되새기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놈의 공격은 단순해. 도끼를 두 번 찍고 세 번째는 높이 뛰어서…….’
미노타우르스는 예상을 빗겨 나가질 않았다. 초상비와 류안까지 활용하니 별 탈 없이 녀석의 공격을 모조리 회피할 수도 있었다.
스쳐도 치명상인 공격들은…….
‘스치지도 않으면 돼!’
강서준은 다시금 태산 가르기의 묘리를 상기하며 검을 빠르게 휘둘렀다.
세 번째의 도끼질 뒤에 생기는 잠깐의 스턴.
그때가 미노타우르스를 공격하기에 최적의 타이밍이었다.
스거어억!
핏물이 터지면서 미노타우르스가 괴로워하는 게 보였다. 호크 알론부터 황제, 그리고 강서준의 공격까지 착실하게 대미지가 누적된 여파였다.
하지만 문제는 이 다음이었다.
우어어어!
미노타우르스의 몸이 붉게 달아오르면서 마력이 폭증한 것이다.
가장 우려했던 순간이 현실이 되고 있었다.
‘2페이즈!’
미노타우르스는 A급 던전의 층간 보스였다. 그것도 본격적으로 A급 던전의 위용을 드러내는 16층의 몬스터.
녀석은 체력이 50% 아래로 떨어지면 2페이즈로, 즉 새로운 패턴으로 움직인다.
또한 30% 아래로 떨어지면 3페이즈로, 마지막 10% 아래로 내려갈 경우 4페이즈까지 변한다.
각 페이즈마다 공격력은 강화되고 더욱 강해지는 게 미노타우르스의 귀찮은 특징.
그 모든 걸 뚫어야 진정한 미노타우르스의 공략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페이즈마다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지는 전부 기억하지만…….’
이를 악물고 뒤로 물러난 강서준은 2페이즈로 접어든 미노타우르스를 노려봤다.
‘……역시 너무 불리해.’
슬쩍 황제를 살펴봤지만 여전히 켈에게서 빠져나오진 못했다. 켈의 정체는 알 수 없어도 녀석의 랭킹은 빤한 일이다. 황제라도 고전을 면치 못한다.
강서준은 짧게 혀를 찼다.
“결국 널 쓰러트려야겠는데…….”
과연 쓰러트릴 수 있을까? 고작 300레벨 초반의 NPC인 ‘루디 돌포스’의 스텟으로?
제아무리 공략을 안다 해도 레벨의 한계는 명확한 법인데…….
‘할 수밖에 없잖아.’
강서준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새빨갛게 도포된 미노타우르스를 향해 검을 겨눴다.
***
한편 최하나는 곤혹을 치르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머리를 굴려 봤지만 여전히 상황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의 돌발 행동은 말 그대로 갑자기 시작됐으니까.
우우웅!
책장을 벽으로 삼아 겨우 몸을 숨기던 그녀는 공기의 떨림을 눈치챘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분명 이곳으로 무수한 무형의 ‘바람 칼날’이 날아오고 있었다.
사악! 사아아악!
빠르게 그 자리를 벗어난 최하나는 이를 악물고 저격총을 꺼내어 들었다.
“켈! 나도 더는 가만히 있지 않아요!”
“…….”
“슬슬 이유라도 알려 주시죠?”
여전히 그녀의 질문엔 돌아오는 대답은 재차 벼려진 바람 칼날이었다.
대화의 여지조차 없다는 걸까.
최하나는 미간을 구기며 몸을 날렸고, 결국 방아쇠를 당기는 수밖에 없었다.
타아앙!
허공을 가른 총알!
아쉽게도 차원 서고의 어느 곳을 둘러봐도 켈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눈으로는 찾지 못해.’
켈은 바람의 정령왕을 다루는 랭커였다. 그의 능력이라면 지상수보다 더 완벽하게 몸을 숨기는 게 가능하다.
‘공기의 정보를 바꾼 거야.’
바람의 정령은 공기 자체에 간섭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단순히 폭풍을 일으키는 것에 끝나는 게 아니라, 공기의 정보를 변질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아마 ‘시각 정보’를 변환한 거겠지.
‘눈으로 볼 순 없곘지만 분명 이곳 어딘가에 있어.’
다행히 그녀는 눈으로 보질 않아도 찾아낼 방법이 있었다. 김훈이 빠르게 켈의 위치를 알려 준 건 그때였다.
“위!”
공기의 정보를 교란시킨들 공간지각 능력을 피할 수는 없으니까.
최하나는 바로 몸을 돌려 허공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위치를 발각당한 걸 인지했는지 켈도 순순히 모습을 드러냈다.
문제는 그의 손에 붙잡힌 소년이다.
“진백호…….”
간간히 호흡을 하는 걸로 보아 아직 죽진 않았다. 그저 기절시켜 놨는지 미동도 없이 켈의 손아귀에 매달려 있을 뿐이다.
최하나가 물었다.
“대체 왜 이러시는 거죠?”
“……말한들 이해하시겠습니까?”
“그야 들어 봐야 알죠!”
최하나의 질문에 켈은 쓰게 웃을 뿐이다. 한쪽에서 김훈이 은근히 마력을 끌어올리자 켈은 진백호의 목에 칼을 대면서 말했다.
“움직이지 마시죠.”
“흐읍…….”
가지고 있는 힘이 정령왕이란 걸 빼면 약자에 불과한 게 진백호다. 그의 목에서 피가 주룩 흘러내리고 있었다.
최하나는 여전히 총구를 겨눈 채 말했다.
“무슨 생각인지는 몰라도 당신, 크게 실수하는 겁니다.”
“……실수야 저쪽의 제가 하겠죠.”
“네?”
“뭐, 됐습니다. 말한들 당신이 알아들을 리는 없으니까요.”
최하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그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며칠을 함께해서 익숙한 낯짝이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낯설게만 느껴졌다.
말한들 알 수 없을 거라고?
사실 최하나는 켈이 돌발 행동을 보이는 이유를 어림짐작하고 있었다.
‘개발일지엔 켈이 적혀 있었으니까.’
잠시 지진이 진정됐을 때에 우연히 발견한 한 권의 책. 그곳엔 관리자의 기록이 적혀 있었다.
-특수 NPC에 대해서.
그 항목엔 또렷하게 ‘켈’이란 이름도 있었다.
동명이인일 수도 있지만…….
플레이어인 척하는 NPC라 적힌 내용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저러는 걸 보면 확실해지네.’
결국 같은 사람이다.
특수 ‘NPC’ 켈.
그들은 꽤 오래전부터 명맥을 이어 왔다. 관리자는 그를 두고 ‘전생인(前生人)’이라 했다.
하지만.
‘내가 정체를 눈치챘다는 걸 그가 알아차렸을 리는 없어. 개발일지는 나만 읽었으니까.’
그러니 문제는 다른 쪽에 있다.
‘강서준 씨와 연관된 거겠지.’
차원 서고의 갑작스런 충격과 지진, 그리고 허공에서 순간적이지만 강서준의 모습이 영상으로 나타난 이후에야 벌어진 일이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뭐가 됐든…… 진백호부터 살려야 해.’
최하나는 미간을 구기며 켈에게 겨눴던 총구를 아래로 내렸다.
강서준에게 듣기론, 진백호의 목숨 하나에 세계의 명운이 달려 있다. 우선순위는 늘 그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진정해요. 진정하고…… 대화로 먼저 오해를 푸는 게 어때요?”
일단 회유책.
놈의 손에 인질이 있는 한 섣부른 태도는 괜한 문제만 일으키기 쉽다.
실력도 엇비슷한 수준이라면 더더욱.
우선 상대의 방심을 유도해야 한다.
켈은 이죽이면서 답했다.
“최하나 씨. 속일 사람을 속이세요.”
“……쳇.”
최하나는 짧게 혀를 차면서 방아쇠를 당겼다. 총구는 바닥을 향했지만 목표는 당연히 켈이었다.
공간 이동탄.
마탄의 라이플은 그녀가 원하는 위치로 마탄을 공간 이동 시킬 수 있으니, 사실 겨눈다는 행위는 대단한 의미는 없다.
그저 집중을 잘하기 위함이지.
지금처럼 가까운 위치라면 구태여 조준점을 명확하게 하질 않아도 맞힐 자신이 있었다.
타아앙!
하지만 상대도 역시 랭커였다.
최하나의 마탄은 그의 정수리에 생성된 공기 벽에 막혀, 더 파고 들어갈 수 없었다.
켈의 눈이 점차 붉어졌다.
“강서준 씨는 쉽게 돌아오지 못할 겁니다.”
“……네?”
“제가 그렇게 만들었거든요.”
무슨 소리인지는 몰라도 최하나는 결국 번 블러드를 극성으로 발동시키기로 했다.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켈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모두 여기서 죽어 주시죠. 번거롭게 하지 마시고.”
“……당신이야말로 각오해야 할 걸요.”
“잊었습니까? 당신은 12위고, 전 11위였습니다.”
최하나는 마탄을 예열시키며 말했다.
“여긴 드림 사이드 2야. X밥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