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203
◈ 203화
예기치 못한 천재지변.
사람들은 이를 ‘재난’이라 한다.
‘지진이나 홍수, 태풍 같은 것들…….’
하지만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은 과연 ‘재난’이라 할 수 있을까.
아리수 길드의 김영훈은 다소 난감한 얼굴로 불길이 치솟는 서울의 풍경을 둘러봤다.
솔직히 그는 현 상황을 다른 단어로 표현하고 싶었다.
‘테러.’
분명 그는 다가올 정규 업데이트를 대비해서 단합 차원으로 회식 자리를 가지고 있었다.
적잖이 술이 오갔고 다들 기분 좋은 취기에 알코올을 즐기던 중이었다.
근데 이게 다 무슨 일이란 말인가.
김영훈은 입술을 꽉 깨물며 흐트러지는 정신을 깨우며 말했다.
“정신이 있는 자는 모두 내 주변으로 모이시오!”
검을 뽑아 ‘변이한 사람’의 손톱을 튕겨 냈다. 그를 중심으로 애써 마력으로 취기를 밀어낸 길드원들이 하나둘 뭉칠 수 있었다.
김영훈은 차분하게 말했다.
“모두 괜찮소?”
“……네!”
“일단 길을 열어야 하오. 이곳에 뭉쳐 있으면 죽는 건 금방이오!”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변이는 사방에서 우후죽순 벌어지는 것이다. 벌써 그의 동료들도 감염되어 이지를 잃고, 괴물처럼 변하여 웃음만 터뜨리고 있었다.
“정신 바짝 차리시오!”
“흐아아앗!”
김영훈의 일갈과 함께 아리수 길드는 빠르게 길을 열어 나갔다.
그래도 그들은 잘 버티고 있었다.
생각보다 변이한 인간들의 수준이 높진 않았기 때문이다.
아리수 길드원들은 특이점도 알아낼 수 있었다.
“변이는 대개 200레벨 이하의 플레이어들에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특징은 아크에서도 최상위 길드로 분류되는 아리수 길드에겐 유리하게 적용됐다. 아무래도 저렙의 플레이어가 현저히 적었던 것이다.
김영훈은 칼을 앞으로 겨누며 말했다.
“1열 앞으로!”
하물며 이 정도 위기쯤이야.
근 1년간 몬스터를 베면서 전투만을 일삼는 프로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새삼스럽지만 동료가 적이 된들 당황할 일도 아니고, 회식 자리가 전장이 된들 어색하지도 않다.
아포칼립스는 이미 일상이었다.
“안전가옥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아니오! 대피소로 이동하시오!”
김영훈의 시선엔 힘없이 바닥에 널브러진 누군가의 사체가 보였다.
‘1년을 살아남았거늘…….’
이름 모를 누군가는 그 고생스러운 1년의 생존기를 이토록 허무하게 끝을 내고 있었다.
김영훈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여기서부터는 팀을 나누겠소. 2군에 해당하는 플레이어는 안전가옥을 지키고, 나머지 1군은 나를 따라 전장으로 나서겠소.”
불타오르는 김영훈의 의지만큼이나 아리수 길드원들도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그들의 생각은 같았다.
“다시는 서울을 빼앗기지 않겠소.”
1년 전의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그들은 목숨을 내놓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한편 비슷한 시기에 다른 공간에서는 ‘수호 길드’의 마스터인 ‘박동수’가 제 몸보다 커다란 방패로 무너진 콘크리트를 받치고 있었다.
“얼른 나가! 나도 오래 못 버텨!”
우연히 장비를 수리하기 위해 대장간에 들르다 폭발 사고에 휘말렸더랬다.
단번에 폭삭 무너지는 건물이었지만 여태 쌓아 온 수련이 헛되지 않았는지 겨우 살아남은 참이었다.
박동수는 이를 악물고 거의 기어가듯 건물 잔해를 지나가는 시민들을 확인했다.
불행 중 다행인 건 그가 선 곳이 입구에서 멀지 않다는 점이다.
그렇게 사람들이 다 빠져나갔을 때쯤.
“다 나갔군. 이제 나만 나가면 되겠어.”
그는 방패를 조금씩 비스듬히 기울여 무게의 하중을 덜어냈다.
이대로 천천히 움직인다면 별문제 없이 건물을 빠져나가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꺄아아아아악!”
문제는 종전에 무사히 기어서 건물을 빠져나간 사람들한테서 비명이 들렸다는 것이다.
박동수는 이를 악물었다.
“흐아아아압!”
그의 전신에서 핏줄이 올곧게 섰다. 조금씩 부푼 팔뚝은 기적같이 건물더미를 점차 들어 올리고 있었다.
‘젠장…… 몸이 찢어질 것만 같군.’
세포마다 비명을 지르는 기분이었지만, 박동수는 기어코 붕괴되는 건물을 밀어내고 밖으로 빠져나갔다.
수호 길드는 지키기 위해 태동했다.
그곳의 마스터인 박동수는 다시는 눈앞에서 허무하게 사람을 잃지 않겠다고 다짐했더랬다.
그는 바로 가까이에서 사람들을 위협하는 ‘괴물’을 발견했다.
“……뭐야?”
거두절미하고 기다란 손톱을 늘어뜨린 채로 달려들던 누군가의 뒷덜미를 잡아 그대로 패대기쳤다.
“크헉……!”
그리고 박동수는 울컥 피를 토해 냈다. 종전에 건물을 빠져나오느라 무리한 탓이었다.
“……젠장.”
나지막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려니 날아갔던 괴물이 이쪽을 향해 달려드는 게 보였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박동수의 옆에 도달한 사람이 있었다.
“……야, 이 미친 새끼야! 난 왜 빼놓고 나가고 지랄이냐!”
“알아서 잘 빠져나왔네.”
“너 이 씨…… 두고 보자!”
짜증을 내면서도 고민준은 박동수의 옆에 서며 지팡이를 앞으로 겨눴다.
바닥에서 족쇄가 하나 생성되더니 괴물의 다리를 붙들어 넘어뜨리는 데에 성공했다.
박동수는 쓰러진 괴물의 머리를 방패로 내리찍으며 물었다.
“네가 보기엔 어떠냐? 그리드일까?”
“……아니. 그리드가 이렇게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이 변하진 않아.”
그리드의 변이 조건은 ‘포자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과 그보다 강한 ‘욕망’을 품어야 한다.
발단은 포자 바이러스겠지만, 녀석들의 변이는 그 욕망에 따라 천차만별 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괴물들은 하나같이 손톱을 길게 늘어뜨리고, 기괴하게 웃으며 공격을 퍼부을 뿐이다.
정답은 간단했다.
막말로 저들의 머리맡에 뿌옇게 나타난 검붉은 연기가 있었으니까.
“마기에 중독된 거로군.”
“내 생각도 그래.”
극비리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아크는 이미 마족들의 침식이 이뤄지는 도시였다.
결국 녀석들이 이빨을 드러낸 거겠지. 고민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하…… 근데 왜 하필 지금이냐고.”
그의 지팡이가 움직이자 눈앞의 변이 인간이 다시 족쇄에 묶여 바닥에 널브러졌다.
긴 시간을 속박할 수는 없겠지만 효능은 확실했다.
박동수가 답했다.
“정규 업데이트가 조금 더 빨리 진행되려나 보지. 드림 사이드 1처럼 될 거라는 건 어차피 추측이었잖아.”
“알아. 알지만…….”
“됐어. 정규 업데이트고 뭐고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박동수는 더욱 힘을 주어 아예 변이 인간을 밀어 버렸다. 건물조차 들어 올리던 그 힘에 의해 변이 인간은 멀리 튕겨 나갈 수밖에 없었다.
박동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중요한 건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는 거야.”
쿠우우우웅!
그 말에 화답이라도 하듯 가까운 건물이 크게 폭발했다.
4층짜리 건물이 폭삭 주저앉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엔 변이 인간의 두 배쯤은 커다란 크기의 괴물이 우렁차게 포효하고 있었다.
“저 새끼들 진화도 하네.”
“……아니야. 저건 그냥 악마잖아.”
고민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중급 악마. 아마 레벨은 250쯤 될걸.”
“……B급 던전 몬스터라고?”
“그래.”
“설마 B급 던전이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켰다고 말하는 건 아니지?”
박동수는 침음을 삼키며 뒤편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일반인들을 살폈다.
앳된 얼굴의 아이 둘과 중년으로 보이는 여자 한 명.
무너지는 건물에서 겨우 구해 낸 사람들이었다.
고민준이 한숨을 뱉으며 말했다.
“던전 브레이크로 나온 건 아닐 거야. 이 게임이 그따구로 밸런스를 말아먹진 않았으니까.”
“……충분히 말아먹은 것 같은데.”
박동수는 포효하는 중급 악마를 보며 몸을 떨었다. 솔직히 감당하기 힘든 괴물이었다.
‘아까 무리만 하지 않았어도 해볼 만하겠지만…….’
과거를 되새겨 본들 바뀌는 건 없었다. 결국 저놈을 고민준과 단둘이서 쓰러트리는 수밖에 없었다.
‘설령 무리라 할지라도.’
박동수는 떨리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오늘따라 그의 굳건한 방패가 천근만근 무겁게만 느껴지고 있었다.
그때 고민준이 중얼거렸다.
“……소환수야.”
“뭐?”
“저거 소환수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던전 브레이크는 말이 안 되니까!”
그제야 박동수도 상황을 깨닫고 주변으로 탐지 스킬을 발동해 봤다. 하지만 스킬에 걸리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만약 고민준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상황은 더욱 최악이 되는 것이다.
‘내 수준으로 간파할 수 없다는 거니까.’
박동수는 한숨을 길게 내뱉고 말했다.
“너 공간 이동 할 수 있냐?”
“그런 고위 마법을 내가 어떻게 해?”
“김훈은 되게 잘하던데.”
“그건 마법이 아니잖아.”
김훈처럼 ‘공간 이동’이란 스킬을 갖고 있지 않는 한, 마법사가 공간 이동을 하려면 그만한 술식을 익히고 있어야 한다.
그것도 대단위 마력을 필요로 하며 어지간한 마법사는 단거리 공간 이동조차 어려워했다.
고민준은 변명하듯 말했다.
“자칫 잘못하면 공간 틈에 낀단 말야.”
“……결국 안 된다는 거군.”
어느덧 그들은 완전히 구석으로 몰린 상태였다. 더는 뒤로 물러날 공간도 보이질 않았다.
뒤편에서 숨을 죽인 채 입을 막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소리를 안 낸다면 공격하질 않는다고 생각하는 걸까.
고민준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세 명까지는 가능해.”
“……할 수 있다고?”
“장거리는 아니야. 근거리. 내 시야에 들어오는 정도라면 무리해서 한 번은 사용할 수 있어.”
박동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하네. 이제 가.”
“뭐?”
“나머진 내가 맡을 테니…… 가라고!”
박동수는 그 말을 끝으로 근접한 변이 인간을 힘껏 날려 버렸다.
동시에 그로부터 엄청난 마력의 흡입이 생겨났다.
우어어어어어!
마치 곰이 포효하듯 울리는 소리는 용케 인근의 변이 인간과 중급 악마의 시선을 잡아끌고 있었다.
박동수의 장기인 광역 어그로였다.
“……가!”
그즈음 박동수의 앞에 도착한 중급 악마가 주먹을 휘둘러댔다. 날카로운 꼬리가 박동수를 찔러 왔지만 육중한 몸에 안 맞게 곧잘 피해 냈다.
이를 바라보던 고민준은 입술을 꽉 깨물며 뒤편의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모두 내 손을 잡아요!”
겁에 질린 사람들을 붙들고 그는 가까운 건물의 옥상을 올려다봤다.
그래도 옥상엔 사람은 적을 터.
당장 중급 악마와 변이 인간을 피할 수만 있다면 다음을 기약할 수도 있을 것이다.
종전처럼 건물이 무너지지만 않으면 어지간한 지상보다는 낫다.
“갑니다!”
터질 것 같은 두통과 함께 마력이 쭉 빠져나갔다. 그가 눈을 감았다 떴을 때에 이미 주변의 풍경은 바뀌어 있었다.
“헉…… 허억.”
호흡을 거칠게 내뱉자 코에서 피가 주룩 흘러내렸다. 정신이 아찔해졌고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요.”
그는 사람들의 주변으로 마법으로 빚어낸 울타리도 만들어두어, 최소한의 방비를 해 두고 옥상 난간에 섰다.
아래쪽에서 여전히 중급 악마를 상대로 힘겹게 전투를 벌이는 박동수가 보였다.
가히 리트리하에 버금간다는 아크의 방패. 수호 길드의 박동수다운 방어력이었다.
“기다려라. 내가 곧…….”
거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됐어. 빠져.”
나지막이 들려온 낭랑한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동시에 거대한 마력이 움직이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고민준은 바로 알 수 있었다.
한쪽 허공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천진난만한 얼굴의 소녀의 정체를.
그녀를 발견한 고민준은 저도 모르게 긴장이 풀려 난간에 주저앉고 말았다.
“링링 님…….”
공간을 가르고 나타난 링링은 인벤토리에서 기다란 고목나무 스태프를 꺼내어 아래를 겨눴다.
마치 저격이라도 하는 모양새.
그녀의 스태프 앞으로 마법진이 수십 개가 중첩되고 있었다. 수많은 매직 미사일이 그녀의 주변으로 넘실거렸다.
터무니없지만 그녀는 현재 ‘공간 이동’으로 나타나서, 허공을 부유하는 ‘플라이’에 이어 ‘다중 매직 미사일’을 펼치고 있었다.
고민준은 눈이 멀어 버릴 것처럼 빛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침음을 삼켰다.
‘매직 미사일만 해도 마력 응집, 회전, 유도, 격발…… 수많은 과정이 있는데.’
링링은 그 모든 마법을 단번에 다루는 것이다.
그녀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가라.”
쿠콰카카카카캉!
비처럼 쏟아진 매직 미사일은 인근의 모든 변이 인간과 중급 악마에게만 유효한 타격을 주었다.
고민준은 그 현장을 보며 탄식했다.
‘전격 속성까지?’
대체 한 번에 몇 개의 마법을 다룰 수 있단 말인가.
고민준이 재차 감탄하는 사이 매직 미사일에 적중당한 중급 악마가 이쪽을 올려다봤다.
불쾌하다는 듯 포효하는 녀석.
링링은 싸늘하게 말했다.
“시끄럽게.”
순식간에 조형된 번쩍이는 전격의 창이 중급 악마의 머리를 관통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