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205
◈ 205화
손끝은 바느질을 하듯 섬세하게 조율하고, 마력은 해일처럼 노도와 같은 기세로 운용한다.
“체인 라이트닝.”
링링은 나지막이 마법명을 읊으며 집중력을 높였다.
본래 이 정도 마법은 입 밖으로 꺼내질 않아도 사용할 수 있겠지만, 지금처럼 특수한 경우엔 어쩔 수 없었다.
‘표적 분류, 범위 설정, 강도 조절…… 속도 고정.’
링링의 머릿속엔 수많은 수학기호와 함께 다양한 술식들이 동시에 발현되고 있었다.
실제로 그녀의 주변으로는 수십 개의 마법진이 마치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며 완성되어 있었다.
더블 캐스팅, 트리플 캐스팅…… 그런 규격은 가뿐히 뛰어넘은 지 오래였다.
링링은 마지막까지 마법을 조율한 뒤 나지막이 한마디를 읊었다.
“시동.”
마치 수 개의 부품이 맞물려 움직이는 기계처럼, 거대한 마법은 단 한 사람의 손에서 발현됐다.
효과는 대단했다.
콰직! 콰지지직!
그녀의 손에서 시작된 번개가 도심 위를 질주했다. 순식간에 표적으로 설정된 퍼펫을 향해 짐승처럼 달려든 것이다.
감전된 퍼펫은 온몸이 마비돼서 더는 움직일 수 없었다.
그때였다.
쿠아아아악!
무너진 건물 틈에서 슬쩍 고개를 내민 중급 악마가 보였다.
무너진 건물 틈으로 슬쩍 고개를 내민 중급 악마.
놈의 꼬리엔 시체가 마치 꼬치처럼 꿰여 있었다.
악마들의 전리품.
링링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스태프를 휘둘렀다. 곧 그 자리로 늑대처럼 체인 라이트닝이 달려들었다.
콰지지지직!
대단히 신경질적인 소음을 내며 중급 악마를 관통한 체인 라이트닝!
고작 감전시킬 뿐인 퍼펫과는 다르게 녀석의 신체는 완전히 새카맣게 타 버렸다.
하지만 중급 악마의 수준이 여타 다른 놈들보다 조금은 더 높았던 걸까.
체인 라이트닝을 맞고도 살아남아 고개를 바짝 들고 포효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렇다고 녀석이 살아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아이스 스피어.”
이미 술식은 완성됐고, 중급 악마의 다리로 적중된 아이스 스피어는 그 일대를 통으로 얼려 버렸으니까.
중급 악마는 하반신이 얼어 당황한 얼굴을 했고, 그 위로 금세 순간 이동한 링링이 스태프를 겨누었다.
“라이트닝 스피어.”
놈의 머리부터 심장, 복부…… 곳곳에 번개로 이루어진 창이 꽂혀 들어갔다. 살이 지져지는 냄새와 함께 놈의 몸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하반신은 얼은 주제에 상반신은 불에 타는 기괴한 형상.
링링은 빠르게 스태프를 휘둘러 ‘윈드 커터’를 발동해 냈다.
“후우…….”
그렇게 녀석의 머리를 잘라낸 링링은 한숨을 내뱉으며 잠시 허공에 주저앉았다.
중급 악마는 고작 250 전후에 불과하는 몬스터였지만, 갈수록 버겁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렴 한 지역 범위로 마법을 흩뿌리면서 놈을 상대로 한 전투를 잇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었다.
제아무리 천재라 해도 말이다.
“……으으, 죽겠네.”
또한 그녀는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그녀라고 마력이 무한대로 샘솟는 건 아니니까.
무전이 들려온 건 그때였다.
-링링, 좀 어때요?
본부에서 일단 대기 중인 ‘성녀 모르핀’의 무전이었다. 그녀의 우려 섞인 목소리에 링링은 짧게 답했다.
“그럭저럭.”
-언제든 힘들면 돌아와요. 바로 회복시켜 줄 테니까.
“난 됐어. 쓸데없이 힘 낭비 마.”
-하지만…….
“성녀. 너의 역할을 잊지 마.”
잠시 조용해졌던 모르핀은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알겠어요. 대신 무리하지 마요. 당신이 쓰러지면 여긴 정말 끝이니까.
링링이 쓰러지면 아크, 그러니까 서울이 무너진다는 말은 거짓 하나 더하지 않은 사실이었다.
서울의 1급 대피소를 지키는 마법진. 그리고 곳곳에 배치된 방어 마법은 모두 링링의 손에서 탄생한 마법들이었으니까.
마력이야 여태껏 모아온 마력석으로 대체한다 해도, 시시각각 변화하는 내용들은 그녀의 원격 조정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했다.
링링은 슬쩍 코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잠시 포션으로 목을 축였다.
“그나저나 상황은 어때?”
모르핀은 잠시 말이 없다가 곧 무전에 응답했다.
-남산타워에 마련된 1차 대피소는 아리수 길드원의 협조로 순조롭게 대응 중입니다. 로테타워는 수호 길드와 진리의 추구자들이 뭉쳤어요.
오랜 준비를 해 온 덕인지 서울의 대피 상황은 꽤 순조로웠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다.
1년 전의 참상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링링을 비롯한 아크의 수뇌부는 오늘을 대비해 왔으니까.
전처럼 무기력하게 당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다만 2차 대피소는 꽤 위험해요.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은 거의 무너지기 직전이고요.
물론 뜻대로 이뤄지지만은 않는다.
그들이 대비했듯, 상대도 그만큼 준비해서 덤벼 왔다.
링링은 한숨을 밀어냈다.
“예상했던 문제야. 대처할 수 있어.”
-네. 그렇겠죠. 하지만…….
“알아. 점점 숫자가 많아지고 있지?”
링링은 종전에 쓰러트린 중급 악마를 내려다봤다.
고작 250레벨에 불과한 놈.
아크의 플레이어들이 뭉쳐서 싸운다면 어떻게든 감당해 내고 쓰러트릴 수도 있는 수준이었다.
문제는 소환되는 악마의 숫자가 점차 늘어난다는 것과, 그 수준도 더욱 올라간다는 점이다.
링링은 이 흐름을 알고 있었다.
“머지않아 상급 악마도 소환될 거야.”
악마와의 싸움은 처음이 가장 중요하다. 놈들은 언데드와 마찬가지로 전장에서 더욱 크게 빛을 발하는 특징이 있다.
-네. 이미 소환됐을지도 몰라요. 그만한 조건은 충분히 갖춰졌으니까요.
링링은 슬슬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정신적인 피로나 육체적인 피로도 상당히 쌓였지만 잠시라도 쉬어 갈 여유는 없었다.
그녀가 쉬는 동안에도 누군가는 생사를 오가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하루만 버티면 돼.”
-네. 알고 있어요. 이미 모든 준비도 끝내 놨다고요.
링링은 다시 허공을 주파하며 곳곳에 흩어져 있는 퍼펫과 악마를 살펴봤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실정이었다.
문득 그녀가 말했다.
“아, 그리고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은 더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네?
“거긴 이제 괜찮을 테니까.”
***
쿵! 쿠우우웅!
여기저기 반파된 자동차 사이에서 나한석은 겨우 숨을 돌리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한쪽에 몸을 숨긴 시민과, 그 옆에서 숨을 몰아쉬는 백승수와 플레이어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곳으로 점차 포위망을 좁혀 오는 악마들이 보였다.
“끄윽…… 징그러운 놈들.”
나한석은 허리춤에 느껴지는 통증에 미간을 구기며 놈들을 살폈다. 하급 악마는 둘째로 치더라도 중급 악마는 정말 괴물같이 강했다.
탕! 타타탕!
견제하듯 사격을 가했지만 악마들은 교활하게도 전면으로 퍼펫을 내세웠다.
이런 상황에서도 퍼펫까지 구할 생각은 없었지만, 결국 악마들에게 대미지를 주지 못한다는 게 문제였다.
“대위님. 이제 어쩌죠?”
“……어떻게든 여길 벗어나야죠.”
“그다음은요?”
이미 2차 대피소의 문은 닫혔다. 이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그곳이 열릴 일은 없다.
그럼 다른 대피소를 찾아야 할까.
나한석은 몇 차례 견제 사격을 가하고 다시 가까운 자동차를 엄폐물 삼아 몸을 숨기며 말했다.
“대피소에 가기도 전에 우린 죽을 거예요. 우린 다른 곳으로 갑니다.”
“네?”
“……한강. 그곳에 C급 던전이 있어요.”
C급 던전.
이미 공략된 던전이라서 던전 브레이크는 벌어지지 않겠지만, 그 안은 여전히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위험한 곳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악마를 비롯한 퍼펫들이 진입하지 않는 곳이기도 했다.
백승수는 불안함에 떨고 있는 시민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민간인도 있어요. 위험할 겁니다.”
“……어딜 가더라도 이곳보다는 안전하겠죠.”
그래도 다행인 건 해당 던전의 몬스터의 종류를 안다는 것이다.
리자드맨…….
물론 녀석들도 물량 공세로 밀고 들어오면 답도 없겠지만, 현재의 나한석과 백승수라면 어떻게든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한석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무엇보다 아까 그놈에게 걸리면 우린 모두 죽은 목숨입니다.”
백승수의 눈에 절로 공포가 깃들었다.
그만큼 종전에 마주쳤던 몬스터의 수준은 가히 괴물 같았다.
레벨 차로 느껴지는 순수한 공포.
드림 사이드 1에서 황제 멜빈 알론이나 호크 알론을 마주했을 때만큼은 아니더라도…….
본질적인 공포는 쉽게 이겨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놈 분명 상급 악마입니다.”
그리고 상급 악마는 당장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백승수도 결국 백기를 들어야 했다.
“……결정됐으면 빨리 움직이죠.”
“네. 다들 나를 따라와요!”
나한석을 필두로 길을 나선 사람들은 하급 악마와 퍼펫을 처치하며 조금씩 나아갈 수 있었다.
그나마 월드컵 경기장에서 벗어나니 몬스터들의 숫자는 조금은 줄어든 상태였다.
“빨리! 빨리!”
발길을 재촉하는 가운데 사람들은 주차장을 벗어나 공원의 입구까지 다다랐다.
이곳은 평화의 공원.
옆으로 큰 연못이 보였고 정면으로 조금만 더 달려간다면 한강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쿠우우우웅!
큰 소음과 함께 바닥이 크게 흔들리고 말았다. 균형을 잃은 시민들은 바닥에 이리저리 널브러졌다.
나한석은 미간을 한껏 구기며 지진의 원흉을 확인했다.
먼지 구덩이 속에서 불길한 붉은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젠장…… 벌써.”
놈이 쫓아온 것이다.
“모두 엎드려!”
나한석이 크게 외치며 바로 바닥에 엎드렸고, 그 위로 빠르게 무언가가 스치듯 지나갔다.
콰지이익!
그리고 머리 위로 뭔가 뜨거운 것이 흩뿌려졌다. 확인해 보니 비처럼 쏟아지는 건 누군가의 피였다.
미처 피하지 못한 사람들이 ‘상급 악마’의 꼬리에 몸이 터져 버린 것이다.
잠시 귀가 멍해서 소리가 멀게 들려왔다.
“……위님!”
“나…… 대위님!”
“나한서어어어억!”
숱하게 불러 대는 목소리에 겨우 정신이 들었다. 나한석은 피로 인해 핏빛으로 변한 시야를 둘러보며 큰 목소리로 외쳤다.
“산개애애애애!”
이미 상급 악마를 마주한 그들에겐 대응할 방법이란 없다. 뭉쳐있으면 더 빨리 죽을 뿐.
산개해서 그나마 생존 확률을 높이는 게 최선이었다.
“달려! 달리라……!”
말하던 와중에 눈앞으로 중급 악마가 나타났다. 녀석들의 꼬리가 누군가의 복부를 꿰뚫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덧 그들의 주변엔 수많은 퍼펫과 하급 악마들이 킷킷거리며 웃고 있었다.
나지막이 절규가 들려온 건 순간였다.
“끝이야. 다 끝이라고…….”
그리고 그 울먹이는 소리가 상급 악마의 심기를 건드렸을까. 놈이 킥킥거리며 그 인간의 앞에 섰다.
“킷킷키이잇킷킷!”
인간은 무력하다.
드림 사이드 2가 오픈한 지 1년이 지나고, 플레이어의 숫자가 늘어나더라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나 보다.
그 노력을 한들 무슨 소용일까.
현실을 보라.
‘레벨이 낮으면 죽는다. 스텟이 부족해도 죽는다. 우린 그래서 죽는 거야.’
제아무리 열심히 살아왔다 해도 당장 눈앞에 불가항력의 괴물이 나타난다면 죽는 것이다.
그게 아포칼립스 세계였고…….
그게 RPG 게임의 당연한 룰이었다.
“……알게 뭐야.”
하지만 나한석은 공포에 짓눌리던 어깨를 활짝 폈다. 총구를 앞으로 당기며 상급 악마를 겨누었다.
레벨도, 스텟도, 모든 게 부족해서 전혀 씨알도 안 박힐 공격일 것이다.
그럼에도 포기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죽는 건 무섭지 않아.’
아포칼립스 세계에서 죽음은 친숙한 단어였다. 오늘 당장 몬스터에 찢겨 죽어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심지어 그는 한 번 죽어 봤다.
‘진짜 무서운 건 죽는 그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거야.’
문득 드림 사이드 1에서 마주했던 호크 알론이 떠올랐다.
항거할 수 없는 격의 차이…….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새 발의 피가 아닌가.
적어도 움직인다.
싸울 수 있다.
‘그거면 충분해.’
나한석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상급 악마가 그의 의지를 읽고 이쪽으로 꼬리를 휘두르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
죽는 그 순간엔 살아온 나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더니만…….
하필 떠오르는 게 그의 동생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얼굴이라도 봐 둘 걸 그랬나.’
자조적으로 웃으며 죽더라도 방아쇠를 당기려던 나한석은,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건 앞으로 영원히 들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목소리였다.
“그러게. 운동 좀 하라 그랬잖아.”
“……나도석?”
“운동 부족은 만원의 극악이라고.”
쿠우우우웅!
묵직한 충격을 뒤로하고 나한석은 그의 곁에 선 큼직한 몸집의 ‘동생’을 볼 수 있었다.
나한석은 쓰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만악의 근원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