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209
◈ 209화
강서준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검에 실린 예기를 더욱 날카롭게 뽑아냈다.
“끝도 없이 나오는구나.”
서울병원을 나선 이후로 벌써 몇 번째 전투인지 모르겠다.
백방으로 백귀들이 활약하고 영혼 부대가 서울 전역으로 퍼졌다고 해도 강서준은 쉴 틈이 없었다.
“다음은 명동…… 흐음.”
2차 대피소로 마련된 명동 인근으로 수많은 악마들이 집결했다는 정보였다.
상급 악마가 세 마리는 있다나.
강서준은 짧게 혀를 차며 악마들이 득실거리는 명동을 내려다봤다.
“많기는 더럽게 많네.”
나지막이 중얼거리던 강서준은 거침없이 놈들 사이로 뛰어내렸다.
그나마 가까이에 있던 상급 악마의 머리를 받침 삼아 아래로 떨어지자, 수많은 악마들이 그를 향해 기이한 웃음으로 화답해 왔다.
강서준은 짧게 명했다.
“쓸어버려.”
우오오오!
기다렸다는 듯 영혼들이 포효하며 뭉쳐 있던 하급 악마들의 머리를 깨부쉈다. 이미 강서준의 수하로 돌아선 악마들의 영혼은 동료였던 이들을 죽이길 서슴지 않았다.
특히 오가닉의 활약은 대단했다.
한층 종족값이 상승한 라이칸을 의식한 걸까. 다소 무리를 하면서까지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오가닉의 창은 악마들의 꼬리를 베고, 팔을 베었으며, 이윽고 머리까지 빠르게 도륙해 냈다.
기회가 되면 리자드맨의 우물이라도 한 번 다녀와야겠다.
그러면 오가닉도 더 강해지겠지.
스거어어억!
강서준은 쓰게 웃으며 겁도 없이 달려들던 상급 악마를 가뿐히 양단해 냈다.
본래라면 쓰러트리기 버거울지도 모르지만, 놈들의 본질을 생각해 보면 어려운 일도 아니다.
‘소환수는 소환사의 연결만 끊으면 약해지니까.’
어찌 보면 ‘류안’으로 마력의 흐름을 읽어 내는 강서준은 소환사들에게 있어 그야말로 천적이나 다름없었다.
“왕이시여…… 임무를 완수했나이다.”
상암 월드컵 경기장 인원들을 1차 대피소로 완전히 대피시켰다는 소식이었다.
그즈음 명동의 2차 대피소의 주변을 장악하던 악마를 모조리 소탕하던 강서준도 마무리하듯 대피소의 문을 열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안쪽에서 옹기종기 모여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중 ‘김강렬’ 대위처럼 오랜 인연도 발견할 수 있었다.
‘인사는 나중에.’
재회의 기쁨을 나누기엔 서울의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강서준은 거두절미하고 말했다.
“다들 나와요. 1차 대피소까지 보호해 드리죠.”
“네?”
“오가닉. 뒤를 부탁한다.”
김강렬 대위를 위시로 오가닉의 뒤를 따라 쭈뼛쭈뼛 밖으로 빠져나오는 대피소의 사람들.
강서준은 거기까지 확인하고 초상비로 그 자리를 떠났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그렇게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려니 문득, 링링의 투정 어린 무전이 들려왔다.
-넌 종종 일을 어렵게 만드는 경향이 있어. 아침까지만 버티면 될 일을 스스로 복잡하게 만들다니…….
연락이 닿자마자 공간이동으로 나타난 그녀에게 건네받은 새로운 마력폰과 최신형 블루투스 이어폰.
그 덕에 서울 곳곳의 정보를 빨리 알고 더욱 순조롭게 서울을 탈환할 수 있었다.
강서준은 잠시 멈춰 서더니 말했다.
“……좀 더 가치가 있는 쪽을 선택한 거야.”
-때로는 희생도 필요한 걸 왜 몰라. 전략적으로 보면 성공 확률은 내일 오전이 더 높았다고.
강서준은 쓰게 웃으며 링링의 말에 긍정했다.
그녀의 말도 일리가 있었으니까.
행여나 있을 마족의 침공을 대비했을 그녀였다. 비록 시기가 예상보다 빨라 조금 버벅이긴 했어도, 그녀의 계획대로만 흘러갔다면 마족을 비롯하여 모든 계약자들을 서울에서 일망타진(一網打盡)했을 것이다.
결국 강서준의 재촉으로 인해 계획은 어그러졌고, 방마진은 벌써 힘을 잃고 사라져 가고 있다.
하지만.
“왜 그래야 하지?”
-그게 더 쉬운 길이잖아.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건 전략적으로도…….
“……그놈의 전략.”
강서준은 가볍게 혀를 찼다.
“뭔가를 포기해야 답을 구할 수 있다니. 그건 궤변일 뿐이야.”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 소수의 희생으로 적을 소탕한다.
이런 전략은 그와 어울리지 않는다.
말 그대로 N포 인생을 살아가야만 떠올릴 법한 작전이 아닌가.
그는 그렇게 살지 못한 사람이다.
강서준은 어깨를 으쓱이며 나지막이 말했다.
“걱정 마. 어려워도 해내면 그만이야. 결국 실패하지 않으면 되는 일이라고.”
-그러면 다행이지만…….
“그보다 상황은 어때?”
강서준은 서울의 상공을 올려다봤다. 거대한 알이 웅장하게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아니, 전보다 더 커졌을 것이다.
저 알은 사람들의 절망, 우울, 불행…… 각종 어두운 감정을 머금고 자라나고 있으니까.
특히 악마들이 인간의 피를 빨아들일 때마다 그 안에 가득했던 수많은 감정들이 놈의 성장을 더욱 빠르게 하고 있었다.
링링은 어림짐작하더니 말했다.
-아마 못해도 12시간 이내에 부화할 거야.
“마족의 부화까지 12시간이라…….”
계약자 녀석들이 뭘 믿고 정규 업데이트도 전에 일을 벌이나 했더니만…… 이런 발칙한 계획이 숨어 있던 것이다.
‘하긴 이 방법을 통하면 정규 업데이트 이전에도 마족의 전력을 끌어낼 수 있으니까.’
여태 마족의 활동 시기를 정규 업데이트 이후로 추측했던 이유는, 게임의 밸런스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B급 던전이 최대로 등장한 현시점에서, 필드로 B급 몬스터가 나돌아 다니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하물며 A급 던전의 몬스터인 ‘마족’들이 필드에서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놈들도 ‘섭종 보상’과 마찬가지로 그 힘이 모두 봉인되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플레이어를 이용하면 게임의 밸런스를 망가트릴 수 있어.’
이른바 합법적인 치트다.
플레이어는 각자의 플레이 방식에 따라서 상식을 파괴해도 게임의 밸런스가 무너지진 않는 법.
즉 플레이어에 의해 소환된 개체라면 악마들과 마찬가지로, 정규 업데이트 이전에도 마족 본연의 능력을 끄집어 낼 수 있다.
그에 따른 조건이 있고, 치러야 할 대가는 어마어마하겠지만…… 미친놈들에게 그딴 건 중요하지 않겠지.
‘근데 굳이 무리를 하면서까지 이러는 이유는 도통 모르겠단 말이지.’
강서준은 괜히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렸다.
“거기다 악마는 뭐 이리 많아?”
새삼스럽지만 강서준의 시야에 상급 악마가 또 나타나고 있었다. 벌써 열 마리는 넘게 죽인 것 같은데 어디서 이렇게 계속 나오는 걸까.
바퀴벌레도 아니고…….
-이곳이 가장 위협이 된다는 거겠지.
“다른 도시들도 공격을 받는다면서.”
-가장 많은 습격을 받은 도시가 상급 악마 열 마리가 전부야. 서울처럼 대대적인 공격을 받는 도시는 또 없을걸?
강서준은 미간을 구긴 채 한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사실 서울이 가장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곳이긴 했다.
‘링링’이라는 희대의 천재 마법사가 ‘성녀’와 함께 정규 업데이트를 대비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는 건 첫째요.
아크엔 천외천만 여럿이다.
게임 강국답게 높은 수준의 플레이어가 많은 한국이었으니, 더더욱 견제를 받는 걸지도 모른다.
-왕이시여. 강북 일대를 토벌했습니다.
-왕이시여. 한강을 따라 이동하는 생존자 그룹을 발견했나이다.
-왕이시여…….
라이칸에게 감명이라도 받는 건지, 혹은 오가닉도 그런 말투를 고수해서 그런지 몰라도.
수많은 영혼들이 강서준에게 비슷한 말투로 시시각각 전투 현황을 보고했다.
승전보 일색인 건 좋았다.
“……일단 로테타워에서 만나자. 슬슬 싸움의 끝을 봐야지.”
강서준은 서울의 상공을 날아다니며 포효하던 상급 악마의 머리를 단번에 바닥에 떨어뜨린 뒤 로테타워로 기수를 돌렸다.
***
로테타워로 넘어가는 건 금방이었다.
“매번 널 타고 다니긴 아까운데…… 어디 비행용으로 몬스터 하나 영입해야 하나.”
흑룡이 된 고롱이를 타고 서울의 상공을 가로지른 덕이었다.
예전이었다면 다른 몬스터가 걱정되어 섣불리 시도할 수조차 없던 짓.
하지만 더는 서울에서 강서준을 위협할 몬스터는 없었다. 그전에 성장한 고롱이를 상대로 덤빌 만한 몬스터는 없다는 게 더욱 맞는 말이었다.
“왔냐.”
“응. 다들 모였어?”
“안쪽에.”
로테타워의 옥상에서 지팡이를 휘두르며 방마진을 조율하던 링링은 강서준을 안쪽으로 안내했다.
그곳엔 서울의 핵심 멤버들이 둥글게 앉아 있었다.
부상을 회복한 나도석도 있었다.
“날 구해 줬다고 들었다. 고맙다.”
“뭘요.”
“그나저나 못 본 새 더한 괴물이 되었군.”
나도석은 자조적으로 웃으며 한쪽 스크린을 바라봤다. 강서준이 서울 전역을 오가면서 상급 악마를 토벌하는 장면이 가득 담겨 있었다.
“고블린 목이라도 비트는 것처럼 쉬워 보이네.”
“요령만 알면 진짜 쉬워요.”
“쉽다고……?”
한편 회의실 안에는 오랜만인 반가운 얼굴들도 있었다.
뒤늦게 강서준의 뒤를 따라 들어오는 오가닉을 향해 한 여자가 환한 미소로 달려가 안겼다.
“오빠!”
“……카린.”
“돌아오셔서 천만다행이에요.”
B급의 예지 능력을 가진 NPC 카린. 호른 부족의 무녀인 그녀는 일전에 서울로 떨어지는 ‘달’을 예지한 전적이 있었다.
그 업적이 상당했을까.
오늘날에 이르러, 아크의 중역을 담당하고 있었다.
“네가 있었으면 이런 일을 미리 봐줬으면 좋았을 텐데…….”
“봤어요. 날짜만 몰랐을 뿐이죠.”
“호오?”
“그래서 저 알 속에 어떤 마족이 있는지도 다 안다고요.”
아무래도 시간이 흐른 만큼 그녀의 예지 스킬이 한층 강화된 듯했다. 수수께끼처럼 단서를 주던 과거와는 다르게 좀 더 명확한 이미지를 보는 것이다.
아마 이번 작전에 카린의 역할은 지대했을 터.
‘하기야 언제 당하는지는 몰라도, 어떻게 당하는지만 알아도 대처하는 수준이 달라지니까.’
링링에게 들은 간략한 정보로도 현재 아크의 전략이 얼마나 체계적으로 짜여졌는지 알 수 있었다.
방마진의 존재도 결국 그 일환이라 볼 수 있었다.
한편 성녀 모르핀, 그러니까 마일리는 자연스레 사람들의 앞에 섰다.
“자, 자! 다들 모였으니 회의를 시작하죠.”
이번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성녀. 그녀는 약간 지친 얼굴로 바깥을 가리켰다.
“다들 알다시피 저 알은 ‘마족’의 부화를 초래해요. 아마 완전히 부화하면 A급 몬스터 ‘알리’가 나타날 겁니다.”
몽마의 주인인 알리.
역시 서울을 침공한 마족은 일전에 최하나를 사이코패스로 만들었던 그 작자였다.
“하지만 아직 기회는 있어요. 위태롭긴 하지만 방마진의 기운을 한데 모으면 저 알을 꿰뚫을 수 있어요. 대신…….”
마일리는 잠시 입을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
“3시간. 그동안 대피소를 지키던 마력은 전부 사라져요.”
본래 이런 리스크는 없었다고 봐야 한다. 새벽까지 마력을 모았다면 대피소도 지키면서 마족의 알에 구멍도 충분히 낼 수 있었다.
모두 선택의 결과였다.
마일리는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3시간만 버텨 줘요. 그러면 반드시 알에 구멍을 내고 말 테니까.”
링링이 입을 연 건 그때였다.
“물론 방마진으로 알을 뚫는다 해도 그 안에서 부화 중인 마족을 죽이진 못해. 3시간을 내리 싸우고 또 놈을 죽이기 위해 저곳으로 올라가야 할 거야.”
꽤 난이도가 높은 작전이었다.
안 그래도 하루 종일 싸우느라 지친 그들에게, 더더욱 목숨을 내던지며 싸우란 말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하지만 불만은 없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1년 전처럼 아무것도 못하던 그때보다는 백만 배는 나았다.
또한 그들은 강서준의 선택에 의해 벌어진 현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만큼 구한 사람도 많았으니까.
링링은 강서준을 향해 말했다.
“아마 보스전은 케이. 네 역할이 클 거야.”
그럴 것이다.
그 상대가 ‘알리’라면…… 숫자는 무의미할 테니까.
“시간이 없으니 브리핑은 길게 못 해. 나머지는 각 대피소로 이동하면서 할 거니까. 다들 그렇게 알고…….”
링링은 한껏 말을 하다 갑자기 멈추었다. 그녀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더니 창가로 달려갔다.
터무니없지만 알이 서서히 깨지고 있었다.
“어떻게 벌써……?”
부화의 시기가 생각보다 너무 빨랐다. 하지만 링링은 되레 입가에 미소를 드리우며 말했다.
“작전 변경이야. 당장 알리를 처죽이러 가 줘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