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21
◈ 21화
이윽고 도착한 영등포역은 인기척조차 없는 유령역이었다. 어둡고 컴컴한 그곳은 공기만 텁텁하게 느껴졌다.
혹시 아무도 없는 걸까?
오대수가 먼저 플랫폼에 오르면서 말했다.
“저희는 비상시엔 유령역 노선을 통해서 영등포역으로 이동하기로 준비해 왔어요. 사실 반주역도 우리가 그곳에서 살던 게 아니라, 잠시 머무는 편이었죠.”
그래서 반주역의 캠프가 허술했던 모양이었다.
오대수는 익숙한 듯 유령역을 거닐었다. 그 뒤를 따라가니 뭔가를 천막으로 덮어 둔 곳이 나왔다.
준비를 해 뒀다더니. 천막을 들춰 안을 보니 여러 개의 가방이 주르륵 나열되어 있었다.
꽤나 많았다.
“혹시 몰라 비축해 둔 물자입니다. 지난번에 왔을 때 숨겨 놨었죠.”
강서준은 오대수가 굳이 영등포역까지 와서 반주역의 물건을 숨겨 둔 이유를 추측할 수 있었다.
‘플레이어는 인벤토리가 있겠지만 일반인은 아니니까.’
따지고 보면 일반인은 게임상 NPC와 닮았다. 그리고 인벤토리는 오직 플레이어의 전유물.
NPC라면 상인조차 인벤토리를 쓸 수 없듯 일반인들은 개인 소지품을 쉽고 편안하게 보관하는 방법이 없었다.
직접 들고 다니는 수밖에.
그러니 이렇듯 미리 물건들을 다른 구역으로 옮겨서 보관해 두면 편했다.
지금처럼 그리드가 떼거지로 몰려오거나 던전 브레이크로 인해 몬스터의 습격을 받을 때.
기존에 가진 물건을 전부 챙겨서 움직일 수 없을 테니까.
미리미리 대비하질 않으면 물자도 잃고, 나아가 사람도 잃게 되는 것이다.
하물며 플레이어의 인벤토리 용량도 무한은 아니었다. 용량을 늘려 주는 아이템이 없는 한, 그 많은 사람이 먹고 잘 물건을 비축해 두진 못했겠지.
생각보다 오대수가 꼼꼼한 데가 있다는 방증이었다.
오대수는 정돈되지 않은 흔적을 보면서 슬쩍 웃었다.
“……다행히 벌써 누군가가 다녀간 모양입니다.”
활짝 열린 가방엔 뜯어진 과자 봉투부터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옷가지가 보였다. 열린 가방의 개수는 대략 50개 중 20개 정도는 되는 듯했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왜 반주역의 사람들은 플레이어가 되지 않은 거죠?”
플레이어가 되었다면 전부 인벤토리가 활성화되었을 터. 그렇다면 이 정도까지 많은 물자를 숨겨 둘 필요는 없었다.
어쩌면 반주역의 생존자들도 그토록 무력하게 ‘던전병’에 걸리는 일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플레이어는 기초 면역이란 게 있으니까.
‘노인이나 아픈 사람은 플레이어가 될 수 없었겠지만…….’
마찬가지로 너무 어리거나 신체적인 능력이 부족한 사람도 플레이어의 자질이 없었다.
그들이 설령 플레이어가 된다고 해도 선택의 미로를 통과하질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니까.
해서 ‘이지 난이도’조차 통과하지 못할 사람은 제외해야 할 것이다. 알면서도 사지로 몰아넣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도 이상해.’
그럼에도 반주역은 이상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플레이어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도 젊은 층에 속하는 이들의 태반이 플레이어가 되질 못한 상태였으니까.
일전의 김정우나 유조영도 그랬다.
20대로 보이는 그들은 어째서 플레이어가 되지 못했을까. 건강상 어떤 문제가 있던 것 같진 않았는데.
그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인터넷이 끊겼거든요.”
“……최하나 씨는 연락을 하는 것 같던데요.”
인터넷이 끊긴 것쯤은 그도 핸드폰으로 확인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통신망이 완전히 고장 났다면 최하나가 핸드폰으로 누군가와 통신을 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강서준이 물었다.
“아닙니까?”
“아뇨. 맞아요. 제 핸드폰은 통신이 돼요. 하지만 가능한 건 제 핸드폰뿐이에요.”
이유는 간단했다.
“최하나 님의 핸드폰은 업그레이드가 된 상태거든요. 또한 통신기를 갖고 계시니 연락이 되는 겁니다.”
“업그레이드? 통신기?”
최하나는 자신의 손목에 감겨진 시계를 보내 줬다. 스마트워치였는데, 바로 그것이 그녀의 핸드폰이 통신이 되도록 돕는 물건이었다.
“이 단말기를 가진 사람에 한해서 통신이 가능해요. 하지만 레벨 제한이 있어서 플레이어가 아니면 쓸 수도 없죠.”
즉 일반인은 이걸 손목에 찬다고 해도 인터넷은커녕 문자조차 할 수 없는 게 현실이었다.
“일반인이 플레이어가 되는 방법은 단 하나입니다. 바로 ‘아크’로 들어가는 것이죠.”
“……아크요?”
“네. 저도 몇 번 가 보진 않았지만 그곳이야말로 서울에 남은 유일한 플레이어의 거점입니다.”
아크(Ark).
직역하자면 노아의 방주.
대홍수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방주는 인류를 보전하고, 지구의 생명체를 지켜 냈다는 설화가 있었다.
서울의 마지막 거점에 썩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그리고 아크라는 명칭은 강서준에게 있어서 낯선 이름은 아니었다. 드림 사이드에서 비슷한 기능을 하는 단체가 하나 있었으니까.
‘설마 컴퍼니에 이어…… 그들도 넘어온 건가.’
최하나가 덧붙여 말했다.
“아크는 여전히 인터넷이 됩니다. 그곳이라면 일반인도 플레이어가 될 수 있어요. 또한 제 단말기를 새로 업데이트 하고 핸드폰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어요. 그래서 사실 우리도 그쪽으로 이동하는 중이었죠.”
왜 그들이 아크로 넘어가지 못하고 반주역에 남았는지는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던전병.
전염 위험이 있는 병자들을 줄줄이 달고 방주로 들어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아마 치료를 끝내고 건너갈 계획이었겠지만…… 보란 듯이 허물어진 것이다.
“생존자들도 아크로 갔을지도 모르겠네요.”
오대수는 손전등의 밝기를 최대한으로 밝혔다. 유령역의 곳곳을 비춰 봤지만 플랫폼의 끝자락까진 확인할 수 없었다.
여전히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도 빨리 이동합시다. 멀리 가진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그때였다.
강서준은 주머니가 요란하게 진동한다는 걸 깨달았다. 고롱이가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은 것이다.
강서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잠깐만요.”
“네?”
[‘고롱이’가 가까이 ‘간식’의 냄새를 맡았습니다.]고롱이의 레이더를 따라서 주변을 살피길 잠시. 강서준은 멀리 어둠 속에서 일렁이는 뭔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곳에 누군가 있어요.”
“네?”
***
빠르게 사라진 인영.
흔적을 쫓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이 향한 곳은 외딴 통로였고 고롱이의 레이더가 있는 한 방향을 정확하게 짚을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놓친다는 게 더 신기할 따름.
문제는 저들이 도망가고 있다는 것이다.
“왜 도망을 가는 거죠?”
“글쎄요. 우리를 그리드라고 여기는 걸지도 모르죠.”
“설마요. 그 조용한 곳에서 떠드는 건 우리뿐이었는걸요. 사람이라는 걸 못 알아볼 리가 없잖아요.”
강서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오대수에게 미안한 일이었지만 지금 그가 쫓는 사람이 ‘반주역의 생존자’가 아닐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들이 도망치는 걸 둘째로 치더라도 자꾸 뒤를 돌아보거나, 종종 일부러 천천히 도망가는 걸 보면 그 목적을 쉬이 파악할 수 있었으니까.
‘우릴 유인하고 있어.’
반주역의 생존자가 이곳의 지리를 이토록 잘 알까. 그보다 그들이 이런 곳에서 굳이 유인을 할 이유부터 없다.
일부러 거리를 두고 쫓아오도록 유도하는 사람은 반주역의 생존자보다는 영등포역의 생존자에 훨씬 가까운 것이다.
‘그렇다면 비축품을 가져간 사람들도 설마…….’
하지만 그것도 의문이었다.
왜 비축품 중에 일부만 챙겨갔을까. 단순히 도둑질을 할 거라면 가방을 전부 가져갔으면 될 일인데.
그리고 추측의 결론은 달려가던 이가 걸음을 멈춘 곳에서 알 수 있었다.
‘여긴…… 대합실인가?’
역마다 존재하는 여행자들의 쉼터 같은 곳이었다. 멈춰 서자마자 공기가 확 바뀌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디선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쇄애액!
팟!
강서준은 눈을 금빛으로 물들이며 화살을 잡아냈다. 장기용의 미간 앞에서 멈춘 화살 꼬리가 부르르 떨어 댔다.
이를 본 장기용이 깜짝 놀라 주저앉고 말았다.
“허어억…….”
언제부터였을까. 대합실 내부로 스모그 같은 뿌연 연기가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마치 연막탄이라도 뿌려 놓은 것만 같았다.
어디선가 또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파아앗!
이번엔 오대수를 노리고 날아온 화살이었다. 그리고 강서준이 미간을 구기며 화살을 잡는 사이 또 한 발이 날아왔다.
표적은 최하나였다.
타앙!
“……강서준 씨.”
“네. 아무래도 적대적인 것 같네요.”
두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부딪쳤다. 한마디 말을 더 섞지 않아도 다음에 취할 행동이 서로의 머릿속에 그려지고 있었다.
동시에 왼쪽으로 최하나가, 오른쪽으로 강서준이 달려 나갔다.
화살이 날아온 방향.
안개가 시야를 가렸어도 적이 어느 쪽에 있는지 찾아내지 못할 만큼 그들은 허접한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강서준은 순식간에 적을 파악하고 접근할 수 있었다.
쇄애애액!
쇄애액!
그의 접근이 두려웠을까? 갑자기 화살이 난사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밀 조준으로도 그를 맞히는 게 쉽지 않은 상황에서 아무렇게나 쏘아 대는 화살을 맞아 줄 리 만무.
강서준은 주먹을 말아 쥐고 화살이 쏘아진 방향에 다다랐다.
보이는 건 한 마리의 코볼트였다.
크기도 작았고 레벨도 그다지 높아 보이지도 않았는데, 놈은 겁에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강서준과의 레벨 차이를 실감한 걸까.
‘근처에서 던전 브레이크라도 벌어진 건가?’
하지만 코볼트를 내려다보면서 강서준은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붉게 물든 몬스터의 눈.
그 입에서 나는 지독한 악취.
모든 정황이 맞아떨어졌지만 정작 그의 행동에 머뭇거림이 생겨나고 있었다. 강서준은 이유를 깨달았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놈 이름이…….’
두 눈을 금빛으로 물들인 그는 코볼트를 살펴보다 모골이 송연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최하나 님! 쏘면 안 됩니다!”
타아앙!
너무 늦은 걸까?
가볍게 코볼트의 뒤통수를 가격해 기절시킨 강서준은 최하나가 향했을 방향으로 달려갔다.
그곳엔 총알에 의해 한쪽 어깨가 관통당한 코볼트가 괴로움에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다행히 죽이진 않은 모양이었다.
최하나는 의문 가득한 눈으로 강서준을 올려다봤다.
“느낌이 싸해서 빗맞히긴 했는데요. 무슨 일이죠? 왜 쏘면 안 되는 거예요?”
강서준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코볼트를 향해 다급하게 HP포션을 들이부었다. 하급 포션이어서 효과는 떨어졌지만 코볼트의 생명을 붙일 수는 있었다.
나머지는 몬스터 특유의 회복력을 기대어 봐야겠지.
강서준의 기이한 행동에 미간을 구기던 최하나는 고개를 갸웃했고, 가까이 다가온 오대수도 머리를 긁적였다.
“……강서준 님. 대체 무슨?”
그때 장기용이 한 발짝 다가오더니 말했다.
“강서준 님의 일이라면 이유가 있을 겁니다. 전 믿어요.”
“…….”
“진짜요.”
가만히 장기용을 올려다보던 강서준은 어깨를 으쓱했다. 언제부터인가 조금 소름이 끼치는 표정을 짓는 장기용이었다. 대체 무슨 수작일까.
하지만 강서준은 장기용을 일별하며 코볼트를 내려다봤다. 징그러운 얼굴로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울고 있었다.
강서준은 말했다.
“이놈 몬스터가 아닙니다.”
“……네?”
“사람입니다.”
점차 회복되는 코볼트의 눈망울은 여전히 피처럼 붉은색이었다. 또한 날카로운 울음은 몬스터가 내지르는 것과 똑같았다.
그리고 그때.
대합실을 가득 채웠던 안개가 옅어지면서 한쪽으로 조금은 덩치가 커다란 코볼트가 나타났다.
안경?
코볼트 주제에 안경을 쓴 놈부터 우르르 대략 20마리쯤 되는 코볼트가 나타났다.
일행이 긴장하며 무기를 쥐었지만 강서준은 거리낌 없이 말했다.
“이놈들도 전부요.”
“네?”
“전부 사람이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