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210
◈ 210화
링링이 지팡이를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지금부터 방마진을 퇴마진으로 전환할 거야.”
서울의 전역에서 솟아오르던 방마진의 기둥이 동시에 각도를 틀어 알을 비춘 건 그때였다.
수 개의 빛기둥은 오직 하늘에서 알만을 포착한 스포트라이트처럼 오직 그곳만을 주목하고 있었다.
“카운트할 거야. 10초 후…… 서울의 모든 전력은 차단돼.”
10, 9, 8…….
카운트다운을 끝으로 서울은 하늘을 향한 빛기둥을 제외하고 모조리 암전됐다.
곳곳에 불길이 치솟는 것만을 제외한다면 어둠으로 뒤덮여, 더욱 악마에게 침공당한 도시라는 느낌이 강렬하게 와닿았다.
“으스스하네요.”
“앞으로 더 으스스해질 거야. 다들 준비해.”
일행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각자의 무기를 점검했다.
최하나는 미리 포션을 마셔 두며 번 블러드를 대비했고, 나도석도 스트레칭으로 굳은 몸을 풀었다.
김훈은 언제부턴가 두 손 꼬옥 맞잡고 기도하고 있었고, 그 옆에서 마일리가 은은하게 신성력을 발휘하며 기운을 북돋고 있었다.
“……온다.”
강서준의 말 뒤로 우후죽순 하늘로 수많은 악마들이 솟구쳤다. 하급, 중급, 상급…… 가릴 것 없이 등장한 녀석들은 오직 로테타워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강서준은 쓰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더니.”
녀석들이 이렇게 알아서 나와 줄 거라면 애써 서울을 돌아다니며 놈들을 퇴치하고 다닌 게 억울해질 정도였다.
서울에 있는 모든 악마들이 이곳으로 몰려드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수많은 악마들이 불나방처럼 다가왔다. 이유는 알 만했다.
‘아무래도 불안하겠지.’
12시간이라는 링링의 예상보다 훨씬 빨라진 부화 시기…… 그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문제였다.
적들은 분명 조급해하고 있다.
‘방마진이 부담스러웠던 건지, 그도 아니면 내가 그렇게도 무서웠던 건지…….’
어느 쪽이든 적의 작전을 크게 바꿀 정도로 타격을 입힌 모양이었다. 강서준은 무기를 점검하며 상황을 정리해 봤다.
‘분명 이건 위기야.’
알이 균열을 일으키며 부화의 조짐을 보였고, 조만간 A급 몬스터가 진짜 부화라도 해 버린다면 서울은 전례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당장이라도 찌를 듯이 그를 자극하는 ‘위기 감지’는 절로 경각심을 일깨워 줬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이 상황이 마냥 나쁜 건 아니라는 거다.
‘부화를 서두르기 위해 적들도 그만한 대가를 치렀을 테니까.’
아직 A급 던전도 나타나지 않은 세계에 A급 몬스터를 만들어 낸다는 것부터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한데 그걸 앞당겼다.
그것만으로도 녀석들은 치러야 할 대가는 상당했을 것이다. 고작 한두 명의 목숨값으로는 감당하지 못한다.
‘또한 알이 부화하려면 결국 그 알이 깨져야 해.’
본래 계획대로라면 퇴마진으로 운용하여 3시간은 내리 공격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때는 대피소의 방어 시설은 무력화되고, 악마들의 습격을 직접 버텨 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한데 이미 알에 균열이 생겼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퇴마진을 운용할 시간이 3시간씩이나 걸릴 이유가 없다.
“10분. 그 정도면 될 거야.”
무방비의 3시간이 이제 고작 10분으로 바뀌었다. 그만큼 피해는 최소화된다는 말이었다.
‘위기는 곧 기회다.’
어디선가 들어 본 그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해서 강서준을 비롯한 고렙의 플레이어들은 애써 대피소로 넘어가지 않았다.
그들은 해야 하는 일이 따로 있었다.
강서준은 한창 퇴마진을 조율하는 링링을 흘깃 살피고, 금세 근접한 악마들을 둘러보며 생각했다.
‘그래. 이건 타임어택이야.’
놈들의 부화가 성공하는 게 먼저일지, 아니면 그 전에 부화를 저지하는 게 먼저일지.
서로의 목숨을 건 타임어택은 이제 막 스타트라인을 넘어서고 있었다.
“놈들을 막아요! 링링 님에게 접근하게 둬선 안 됩니다!”
그 말을 끝으로 거대한 소낙비가 떨어지듯 후두두둑 악마들이 강하하기 시작했다.
선제 타격은 최하나의 저격.
한 줄기 핏빛 마탄이 날아가더니 일직선으로 악마들의 날개나 몸통을 꿰뚫고 지나갔다.
기이한 건 핏빛 꼬리를 길게 이은 마탄이 허공을 휘저으며 악마들을 유린한다는 점이다.
그녀가 차원 서고에서 완전히 마스터해 낸 ‘곡탄’의 효능이었다.
[플레이어 ‘최하나’가 ‘곡탄(S)’을 발동합니다.]수십 번이나 꺾으며 일대를 뒤집은 마탄은 근처에 악마가 소멸하기까지 결코 멈추지 않았다.
한 번의 마탄으로 수십의 악마를 찢어발긴 그녀는 나지막이 숨을 토해 냈다.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확실히 사기적인 스킬이지만 여러 번 쓸 정도는 아니었다.
“흐아아압!”
기합을 터뜨리며 껑충 뛰어오른 나도석은 용케 가까운 악마의 머리를 짓밟았다.
그는 날개 한 장 없이 악마들의 몸을 밟아 가며 용케 전투를 이어 나갔다.
가히 전투의 신이 따로 없다.
지난 전투가 경험치가 되었는지 이젠 상급 악마를 두고도 힘들어하는 기색조차 없다.
물론 종종 위험할 때마다 김훈이 그를 공간 이동 시켜 줘서 무리 없이 싸울 수 있는 거겠지만…….
강서준은 마지막으로 링링을 살펴봤다.
“난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
“……금방이야. 보채지 좀 마.”
딱히 보채는 건 아니었지만, 근처에 몰려든 악마를 보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꽤 좀이 쑤신다.
사방에 몰려든 악마들은 막말로 잡아먹기 좋게 모여든 일종의 몰이 사냥감들.
이걸 가만히 보고만 있어야 한다니. 억울하기 그지없다.
“어차피 메인 디시는 네 거잖아. 아무도 안 뺏어먹을 테니…… 됐다. 이제 가 봐.”
강서준은 퇴마진에 의해 완전히 뚫린 알의 한쪽을 살펴봤다. 균열은 구멍이 됐고, 한 사람은 족히 들어갈 수 있는 크기였다.
강서준은 이죽이며 말했다.
“말은 똑바로 해야지. 나 말고는 할 수 없는 일인 거잖아.”
“그거나 그거나.”
“어쨌든 뒤처리는 부탁할게.”
“그래. 넌 마무리나 잘해.”
고개를 주억거린 강서준은 옆에서 기다리던 마일리도 마주했다. 그녀는 지친 얼굴로 강서준을 향해 ‘축복’을 걸어 줬다.
[플레이어 ‘마일리 그레이스’가 스킬 ‘축복(S)’을 걸었습니다.] [악마들에게 치명타를 입힐 확률이 대폭 상승합니다.]“부디 조심히 다녀오세요.”
성녀의 응원을 뒤로하고 강서준은 ‘용아병의 날개’를 가동했다. 공중으로 날아오르니 수많은 악마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꽂혔다.
[스킬, ‘파이어볼(B)’을 발동합니다.]하지만 그가 나열한 불꽃들이 터져 나가자, 악마들은 속수무책으로 멀어져야 했다.
또한 불길에 닿은 놈들은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했다.
성녀의 축복이 다르긴 다르다.
‘역시 이쪽 계열을 상대할 때는 성녀가 필수라니까.’
그녀의 축복은 악마에게 특히 치명타를 입히기 마련이다. 굳이 류안으로 악마의 약점을 노릴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스킬, ‘파이어볼(B)’을 발동합니다.]그가 사용하는 모든 공격은 녀석들에겐 약점이 될 터였고, 당장 뿔뿔이 도망치는 것만 봐도 강서준의 공격이 위협적이라는 뜻이었다.
그는 금세 알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를 돌아봤다.
키이이잇!
화들짝 놀라 뒤따라오는 악마들과, 최하나의 저격과 김훈, 나도석 페어의 전투로 방황하는 수많은 악마들.
곧 링링이 마법으로 가세하니 녀석들도 별수 없이 쓰러져야 했다.
몇몇의 상급 악마들이 아직 도사리고 있어 걱정도 됐지만, 한편으로는 별일 없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여긴 못해도 세 명의 천외천이 있다.
어떻게든 해낼 것이다.
“난 내 일을 해야지.”
다시 정면으로 시선을 돌리니 불쾌한 기운이 감도는 알 내부의 풍경이 보였다.
썩은 악취엔 피비린내가 섞여 있었다. 적어도 이 알을 구성하는 데엔 누군가의 피가 양분이 된 듯했다.
[A급 몬스터 ‘알리의 은밀한 거처’에 입장했습니다.] [사이한 기운이 감돌고 있습니다.]그리고 진입과 동시에 뒤편에 났던 구멍이 덮였다.
안쪽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왔군.”
“너는…….”
“기다리고 있었다.”
가만히 둘러보니 알 내부는 오직 핏물로 가득했다. 마치 호수처럼 차오른 핏물…… 그 위엔 의자 하나만 덩그러니 존재했다.
앉아 있는 건 몽마의 우두머리이자, 마족인 ‘알리’.
강서준은 사납게 말했다.
“……너희들이 여길 뜨질 않는다면 종족의 씨를 말려 버리겠다고 분명 경고했을 텐데.”
놈이 킥킥대며 답했다.
“들었지. 들었어……. 한데 아직도 네놈이 그 케이라고 착각하는구나.”
놈의 몸은 전체적으로 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지금도 서울 전역에서 모아 온 피가 녀석의 봉인을 해제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과연 녀석이 완전히 부화하기까지 얼마나 남은 걸까.
[스킬, ‘위기 감지(A)’를 발동합니다.]‘위기 감지’도 ‘미래 예지’처럼 좀 더 구체적인 정보를 알려 주면 좋으련만.
강서준은 미련을 털어 내며 놈을 응시했다. 여유가 묻어난 그 얼굴을 보면 꽤 많은 봉인이 풀린 뒤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솔직히 ‘류안’을 통해 확인한 놈의 마기는 용솟음치는 화산과도 같았으니.
강서준은 재앙의 유성검을 겨누며 말했다.
“내 말을 무시한 대가는 톡톡히 치르게 될 거야.”
“크큭, 과연…….”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난 알리의 몸에서 끝이 안 보이는 마기가 휘몰아쳤다. 단순히 바깥으로 표출된 것만으로도 태풍이 몰아치듯 장력이 느껴졌다.
놈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이 정도 마기에도 끄떡없다니…… 가히 케이로구나.”
“뭘 새삼스레.”
강서준은 두말할 것도 없이 바닥을 박차고 알리에게 접근했다. 놈의 목전에 다다랐지만 아쉽게 공격은 허공을 그었다.
또한 반경에 접근한 것과 동시에 시야가 반전됐다. 주변은 어느덧 온통 어둠으로 뒤덮여 있었다.
예상했던 상황이었다.
‘역시 이미 녀석의 꿈속에 들어온 거였나.’
사실 알의 구멍이 순식간에 메워진 순간부터 알고 있었다. 이미 꿰뚫린 장소가 그렇게 빨리 회복된다고?
그런 일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고, 그렇기에 이곳이 놈의 ‘꿈’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강서준은 혀를 차며 말했다.
“근데 어쩌라고?”
말했듯 이 모든 건 예견된 상황이었다. 그가 이곳에 혼자 들어온 이유도 녀석이 가진 특수 스킬 때문이니까.
‘몽마의 주인인 알리는 상대를 본인의 꿈속으로 끌고 오는 힘이 있어.’
그리고 정신방벽이 낮은 사람은 놈에게 쉽게 쓰러지기 마련이다.
이는 일반적인 몽마와 그 수준부터 다르다.
고작 몽마에 당했던 최하나라면 아마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싸울 수조차 없을 것이다.
마기에 취약한 나도석은 두말하면 입 아프다.
게다가 알리는 교활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인간의 빈틈을 파고드는 게 특기였고, 이런 상황을 버텨 낼 거란 확신도 없었다.
‘단순히 게임이라면 모를까…… 현실에선 더더욱 감당하기 힘들어.’
하지만 강서준은 자신이 있었다.
그는 ‘천무지체’로 인해 어느 순간에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 설령 적의 환상에 이미 빠졌더라 해도 두렵지 않았다.
‘나에겐 이루리가 있으니까.’
진실의 성물이 함께인데 그 어떤 환상이 두려울까. 거짓뿐인 꿈속 세계는 그에게 무서울 게 하나도 없다.
알리는 기괴한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끝까지 함정에 빠졌다는 걸 자각하지 못하는구나. 역시 케이는 과거의 영광에 불과한 거야.
“자꾸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됐다. 허물이랑 보내는 시간은 슬슬 아깝군. 사라져라.
서서히 주변을 뒤덮은 어둠이 강서준의 망막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꿈속 세계라 그런지 막는다는 것부터 어려웠다.
아니,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그는 어둠보다 더 깊은 어둠 속에 파묻힌 뒤였다.
시각이 마비되고, 후각, 청각, 촉각…… 모든 것들이 정지됐다.
오직 놈의 목소리만 들려왔다.
-네놈을 쓰러트리기 위해 특별히 준비해 뒀다. 이젠 작별이다. 과거의 허물이여…….
헛웃음이 나왔다.
확실히 최하나가 꿈속에서 사용했던 몽마 녀석의 스킬보다 훨씬 강력하다.
놈이 주로 사용하는 이 스킬은 저주에 가까우니까.
아마 정신방벽이 낮은 사람이 쉽게 미칠 것이고, 끝내 자살까지 이를 수 있는 무시무시한 스킬.
‘근데…… 이걸 어쩌나.’
[스킬, ‘블랙아웃’에 적중당했습니다.] [!] [칭호, ‘어둠에 먹히지 않는 자’를 발동합니다.] [‘블랙아웃’에 면역을 가집니다.]이미 맞아 본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