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215
◈ 215화
강서준은 싸늘하게 눈을 떴다.
‘숫자는 여섯, 오우거를 단칼에 죽이질 못한 걸 보면 레벨은 그보다 약간 나은 수준이란 거겠지.’
그렇다고 방심하진 않았다.
보이는 게 전부라고 장담할 수 없었고, 아직 실력을 내보이질 않은 녀석도 있었다.
특히 후미에 선 놈.
한눈에 봐도 저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놈은 다른 이들과 움직임부터 남달랐다.
‘족적이 남질 않는군.’
초상비를 발동한 강서준처럼 특별한 보법을 사용하는 듯했다.
가진 무기도 남들보다 더욱 위력이 강력해 보였고, 흘러나오는 마력의 양도 심상치 않았다.
어지간한 플레이어라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일 것이다.
‘……뭐 그래 봐야 저렙 파티겠지만.’
기껏해야 C급 몬스터인 ‘오우거’보다 살짝 나은 수준의 파티다. 또한 그 무리의 대장인 작자였다.
이미 그보다 아득하게 높은 수준인 강서준과 그 일행에게 있어선 새 발의 피만도 못하다.
“그보다 문제는 몬스터겠죠.”
여러 전투가 길게 이어지면서, 다양한 소음이 사방으로 어그로를 끌어 댄 것이다.
티끌도 모으면 태산이 된다.
오랫동안 던전이 방치됐던 도시에서 소음은 금물이었고, 이처럼 요란한 곳으로는 응당 그만한 몬스터가 몰리기 마련이다.
여태 최하나도 마탄을 쓸 때에 일부러 ‘소음’을 죽여서 사용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스킬, ‘류안(S)’을 발동합니다.]‘……도시 전체가 움직이는 것 같군.’
안 그래도 광안역 인근의 흐름이 심상치 않았는데. 벌써 멀리 여러 몬스터들이 이곳으로 몰려드는 게 보였다.
근방의 몬스터를 절멸시킬 목적이 아니라면 당장이라도 이곳에서 발을 빼는 게 최선일 것이다.
강서준은 빠르게 재앙의 유성검을 빼어 들었다.
“김훈 씨.”
“네. 걱정 마세요.”
당연히 김훈의 역할은 샌드위치처럼 몬스터와 리카온 제국인 사이에 낀 부산 사람을 구하는 일이다.
공간 이동이 가능한 플레이어는 이래서 유용하다.
“나머진 기습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죠. 가능한 한 일격에 전부 쓰러트려야 쪽으로.”
“좋다.”
“상수, 너는 몬스터 어그로를 잠시 담당해 주고.”
“……방향제로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때 옆에서 참다못한 나도석의 몸으로 울긋불긋 근육이 터질 듯 꿈틀거리는 게 보였다.
금방이라도 달려갈 기세.
하기야 나도석치고는 오래 참았다.
더 머뭇거릴 필요는 없겠지.
강서준은 최하나와 지상수까지 둘러본 뒤, 마지막으로 나도석을 향해 말했다.
“시작하죠.”
쇄애애애애액!
기다렸다는 듯 날아간 마탄이 소음을 집어삼키며 무리의 선두에 선 한 남자의 미간을 꿰뚫었다.
부지불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뭐, 뭐야!”
그와 동시에 샌드위치처럼 끼었던 부산 사람의 뒤편으로 김훈이 나타나고, 날 듯이 달려든 강서준과 나도석이 리카온 제국인들 위로 떨어져 내렸다.
“끄어억!”
“커헉!”
[칭호, ‘기습의 선수’를 발동합니다.] [기습에 한하여 공격력이 2% 증가합니다.]거두절미하고 칼침부터 꽂아 넣었더니, 일단 세 놈은 전투불능이 되어 바닥에 쓰러졌다.
죽거나, 혹은 죽기 직전이거나…….
이제 남은 건 ‘셋’이다.
쇄애애액!
공기를 가르고 핏빛 마탄이 시야에 걸려 있던 놈을 또 적중시켰다.
나도석은 벌써 심상을 늘어뜨려 치타처럼 달려들어 한 놈의 머리통을 움켜쥐고 있었다.
강서준도 대장으로 보였던 후미의 남자와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다.
“네, 네놈들은 대체……?”
확실히 대장이라 그런지 움직임은 남달랐다. 반응조차 못하던 이들과 다르게 검부터 빼어 들어 반격을 하려 했으니까.
가진 장비도 꽤 좋아 보였고.
하지만.
스거어억!
비슷한 레벨이라면 모를까.
제아무리 장비가 좋다 한들 압도적인 레벨 차이를 좁힐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강서준은 놈의 검과 함께 그 목까지 두부 자르듯 베어 버렸으니까.
우우우웅!
한편 베어 내는 것과 동시에 불만족스럽다는 듯 검신을 떨어 대는 재앙의 유성검을 확인했다.
그럴 만도 했다.
적을 베는 손맛이 있었고, 그들을 죽였다는 알림과 경험치가 누적됐지만…… 공교롭게도 그 어떤 ‘시체’가 남지도 않았으니까.
녀석들의 시체는 빛으로 산화하더니 어딘가로 금세 사라져 버렸다.
재앙의 유성검의 입장에선, 맛만 보고 뺏긴 기분일 터.
‘애초에 영혼도 보이질 않았어. 이거 확실해지는군.’
리카온 제국인들은 아무래도 ‘여분의 목숨’이 있는 모양이다.
종전에 죽어서 사라지는 효과는 어찌 보면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가 죽었을 때와 똑같은 것이니까.
‘과연 어쩌려나…….’
강서준은 놈들이 사라진 흔적을 살펴보며 침음을 삼켰다. 모르긴 몰라도, 놈들에게 여분의 목숨이 있더라도 바로 접속하진 못할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드림 사이드 1에서도 죽으면 24시간의 부활 대기 시간이 존재했으니까.
‘……어쨌든 영혼을 심문하는 건 무리겠어.’
강서준은 나지막이 혀를 차며 다시 공간 이동으로 돌아온 김훈을 마주했다. 그 옆에 선 남자가 바들바들 떨며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 당신들은…….”
나이는 의외로 어려 보였다. 10대? 교복을 입은 건 아니지만 앳된 얼굴은 지상수와 나이가 비슷한 듯했다.
강서준은 그를 향해 말했다.
“잠시만요.”
키이이이잇!
전투를 끝마칠 즈음엔, 주변으로 이미 엄청난 숫자의 몬스터가 몰려들고 있었다.
다만 놈들은 코앞에 사람들을 두고도 찾질 못하고 있었다.
어찌 그게 가능한 걸까.
지상수가 나지막이 말했다.
“잠시 방향제를 뿌려 놨지만 오래 못 버텨요. 아마 한 번 발각당하면 끝까지 쫓아올 거예요.”
“알았어. 이동하자.”
강서준은 주변을 둘러보며 흐름이 가장 더디게 흐르는 장소를 발견했다.
몬스터가 가장 적은 장소.
멀지 않은 위치에 있는 허름한 건물의 옥상 쪽이 가장 좋아 보였다.
키잇! 키이이잇!
일행은 잠시 방황하는 몬스터들을 둘러보며 일단 자리부터 옮기기로 했다.
***
광안역의 어느 건물 옥상.
어설프게 만들어진 텐트와 녹슨 냄비, 각종 비품들이 놓인 걸로 보아 한동안 누군가가 이곳에 살았던 것 같았다.
강서준은 캠프를 쭈욱 둘러봤다.
‘그조차 꽤 예전 얘기 같군.’
특히 텐트 속에서 옹기종기 모여 썩어 버린 해골을 발견했을 때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뱉어야 했다.
몬스터의 습격을 받은 게 아니었다.
얌전하게 죽은 그들의 사인은 알법했다.
아사(餓死).
‘굶어 죽은 건가…….’
이곳엔 몬스터의 침입 흔적은 없었다. 건물 옥상의 문은 꽉 닫혔고, 조성된 캠프는 꽤 멀쩡한 상태였다.
문제는 이곳에 고립된 사람들도 바깥으로 나갈 수 없었다는 점이겠지.
‘플레이어가 아니고서야 몬스터를 감당할 능력은 없을 거고…… 구조대가 오지 않는 한 이들은 다른 방법이 없었을 거야.’
결국 이 옥상에 고립된 그날. 이들의 운명은 결정됐다.
“일단 치료부터 할게요.”
김훈은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꺼내어 남자의 입에 흘려 넣어 주었다. 다행히 외상은 크질 않아 ‘특수 포션 치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그보다 문제는 ‘영양실조’였다.
옥상에서 아사한 이름 모를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 남자도 꽤 오랫동안 굶은 듯했다.
삐쩍 곯은 얼굴과 야윈 몸만 봐도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부산의 실태가 어떤지도 이해했다.
강서준은 인벤토리에서 간단한 먹을거리를 꺼내어 건네줬다.
차원 서고에서부터 챙겨 온 드림 사이드 1의 음식. 꽤 열량을 챙겨 주기에 굶주린 그에겐 제격일 것이다.
“……이, 이건!”
남자는 강서준이 건넨 음식을 받아 들더니 허겁지겁 음식을 입에 밀어 넣었다.
목에 걸려 켁켁대면서도 멈추지 않고 먹는 모습은 여러모로 착잡한 기분마저 들게 했다.
“천천히 먹어요. 많으니까.”
“네, 네…… 감사합……!”
최하나가 건넨 물까지 벌컥벌컥 마시던 그는 문득 그녀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는 눈을 크게 뜨더니 되물었다.
“최, 최하나?”
새삼스럽지만 최하나는 명실상부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연예인이었고, 부산 출신이라 이곳에선 더더욱 알려져 있을 것이다.
그녀를 모르는 게 간첩…… 아니 ‘리카온 제국인’이겠지.
근데 의외로 남자가 놀란 이유는 다른 데에 있었다.
“그렇다면…… 크, 클라크 님?”
그는 ‘과거의 최하나’를 보는 게 아니었다. ‘현재의 최하나’를 보며 놀라고 있었다.
천외천 랭커인 ‘마탄의 사수’를.
“절 아십니까?”
“네. 소식은…… 소식은 듣고 있었어요. 서울엔 당신 같은 랭커들이 있다고요.”
그는 그제야 일행의 얼굴을 하나씩 둘러보더니 감탄을 터뜨렸다. 김훈부터 나도석까지 바로바로 알아봤다.
“어, 어떻게 당신들이 여기에…….”
그는 약간 생기가 감도는 눈으로 말했다.
“……설마 아크가 부산으로?”
그렇게 말을 잇던 그는 불현듯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 이럴 때가 아닙니다!”
“네?”
“다들 위험해요. 사람들이……!”
횡설수설하며 금방이라도 달려 나갈 기세였던 남자는 금세 휘청거리며 옆으로 쓰러졌다.
가까이에 있던 나도석이 이를 받아 들었고, 김훈이 빠르게 달라붙어 그 상태를 진찰해 봤다.
“치료는 잘됐어요. 몸 상태도 좋고요.”
“그럼 왜……?”
김훈의 말마따나 나도석의 품에 안긴 남자는 곤히 숨을 내뱉고 있었다. 딱히 아픈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포션으로도 완전히 치료할 수 없는 게 있어요. 이를 테면 정신력이죠.”
쉽게 말하자면 지친 거다.
몸 상태가 아무리 좋아도 심적으로 마모된 상태라면, 가만히 버티는 것도 고역인 일이니까.
하물며 굶주린 상태로 애써 버텨 왔다면 평상시보다 정신력의 소모는 훨씬 컸을 것이다.
“오랫동안 쫓기며 살아온 게 아닐까요. 비단 리카온 제국인들이 아니더라도 부산은 위험한 곳이니까요.”
강서준은 곤히 잠든 남자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덜어 냈다. 그리고 지상수를 돌아보며 말했다.
“활력 포션 남는 거 있어?”
“……비싼 건데.”
아까워 죽겠다는 얼굴로 가방에서 활력 포션을 꺼내 든 지상수였지만, 강서준의 채근에 어쩔 수 없었다.
김훈은 깨비물산의 특산품인 활력 포션으로 남자의 몸에 기운을 불어 넣어 줄 수 있었다.
“그나저나 어쩌죠? 가장 중요한 대목에서 정신을 잃은 것 같은데.”
“흐음…….”
강서준은 멀리 해가 뉘엿뉘엿 떨어지는 걸 볼 수 있었다.
석양이 슬슬 도시 아래로 내려가고, 곧 이 근방은 어두워져 새로운 형태로 나아갈 것이 빤했다.
드림 사이드에서 밤은 몬스터들의 시간.
아까 일어난 소란에 의해 한창 강화된 몬스터들이 이 근방을 돌아다니게 될 것이다.
강서준은 쓰게 웃으며 말했다.
“어쩔 수 없죠. 오늘은 여기서 쉬어 가도록 해요.”
그리고 강서준은 텐트의 한쪽에 고이 눕혀 잠든 남자를 내려다봤다. 아무래도 이 남자가 부산에 대한 정보를 가장 많이 알고 있을 터였다.
‘마침 사용할 만한 스킬이 있지.’
잠든 사람에 한하여 쓸 수 있는 그만의 스킬.
아마 가능할 것이다.
이번에 등급도 올려서 그 스킬의 효율도 더 좋아졌을 테니까.
그보다…….
끼아아아아앗!
광안역을 중심으로 모여든 몬스터들이 엄청난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전보다 훨씬 많은 숫자가 모여든 듯한데…….
지상수의 방향제도 완전히 효력을 다한 걸까. 어느덧 이 건물을 둘러싸고 수많은 몬스터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부산의 몬스터들도 굶주렸는지 냄새 하나는 참 기가 막히게 잘 맡는다.
“그래. 이때를 기다렸지.”
강서준은 씨익 웃으며 옥상 난간으로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봤다. 어둠에 파묻힌 부산의 정경. 그리고 으스름한 달빛 아래로 각양각색의 몬스터들이 붉은 눈을 일렁이며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가능한 전투는 최소화하는 게 맞겠지만…… 이미 모여든 건 어쩔 수 없으니까.”
고개를 주억거리며 강서준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누가 뭐라 해도 차려진 밥상은 지나치는 건 예의가 아니다.
“라이칸, 로켓, 오가닉.”
-명을 내려 주십시오.
그때였다.
“뭔가 재밌는 일을 하려나 보군.”
시키지도 않았는 데에 나도석이 오가닉의 옆에 섰다. 어깨를 푸는 걸 보면 아무래도 나서려는 모양인데.
“쉬고 계셔도 되는데요.”
“아니야. 안 그래도 몸이 덜 풀렸어.”
“……그래요. 그럼.”
경험치가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장비 ‘도깨비 왕의 반지’의 전용 스킬, ‘도깨비의 부름’을 발동합니다.]강서준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푸른 불길이 일어나며 각양각색의 몬스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태 그가 사냥했거나, 이곳에서 사냥당한 수많은 몬스터들.
그리고 그 앞으로 백귀들이 선봉장으로 나서며 일대의 군락지의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었다.
몬스터들이 경계의 울음을 토했다.
강서준은 두 눈을 금빛으로 물들이며 말했다.
“전부 쓸어버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