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216
◈ 216화
한창 전투가 펼쳐진 광안역 인근을 일별한 강서준은 바로 잠든 남자 곁으로 돌아왔다.
그가 앞으로 할 일은 단순했다.
‘무의식에 있는 기억을 살펴보면, 부산의 상황을 더욱 자세히 알 수 있을 거야.’
스킬 ‘인 투 더 드림’을 통해 그의 무의식을 탐색해 보는 것.
최하나의 꿈속에서 그녀의 기억을 훔쳐봤듯, 눈앞의 남자의 무의식에 들어가 부산에 관한 기억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정보가 부족한 현시점에서 그게 가장 확실한 정보 수집 방법이었으니까.
[스킬, ‘인 투 더 드림(E)’을 발동합니다.] [주의! ‘드림 키퍼’를 조심하십시오!]그리하여 진입한 남자의 꿈속.
강서준은 미간을 좁히며 주변을 둘러봤다.
“이게 뭐야?”
그곳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너튜브 창 같은데…… 흐음.”
새하얀 공간에 덩그러니 떠 있는 인터넷 창.
분명 최하나의 꿈속으로 들어갔을 때는, 바로 그녀의 기억 중 하나로 편입되지 않았었나?
이번엔 전혀 생뚱맞은 공간에 떨어진 것이다. 대체 이 공간은 뭐지? 단순히 그의 기억이라고 보기엔 너무 공허했다.
가만히 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머릿속에서 이루리가 핀잔을 던졌다.
-꿈이 모두 같을 리는 없잖아.
강서준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알아. 근데 이걸 정말 꿈이라고 볼 수 있을까? 아무것도 없는데.”
아니, 뭔가 있기는 했다.
다시금 시선을 인터넷 창으로 집중시켰다. 그곳에는 너튜브 영상이 여러 개가 나열되어 있었다.
‘맞춤 동영상’이라.
“흐음…….”
눈을 가늘게 떠서 그 내용을 둘러보다 보니, 한쪽 면을 장식한 프로필 영역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고유진. 19세.’
낯익은 사진 아래에 적힌 이름과 나이.
좀 더 설명을 읽어 보자면, 그는 친구 집에서 밤새 게임을 하던 중 ‘던전화’에 휘말린 케이스라고 했다.
프로필 옆에 좌르륵 나열된 ‘맞춤 동영상’은 날짜별로 기록되어 있지만, 그 순서는 들쭉날쭉했다.
강서준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이거 기억이구나.’
아무래도 스킬 등급이 오른 탓인 듯했다.
이전엔 무의식 속에 저장된 어느 한 기억으로만 들어갔지만, E급이 되면서 기억을 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근데 왜 하필 너튜브였을까.”
-말했잖아. 꿈은 제각각이라고.
하기야 이제 19살이 된 청소년에게 너튜브란 상당히 편한 공간일 것이다.
요즘 세대는 글보다 영상이 익숙하니까.
어쩌면 고유진의 나이가 39세였으면, ‘너튜브’가 아니라 ‘블로그’의 형태가 됐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예 서재가 된 사람도 있으려나?’
나이가 많아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다면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었다.
꿈은 결국 ‘무의식의 반영’이고, 무의식은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따라 다르니까.
“뭐 다행히 성공한 것 같네.”
강서준은 능숙하게 인터넷 창을 조작하여 영상을 둘러보기로 했다. 여전히 뒤죽박죽인 순서였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모두 강렬한 기억들뿐이군.’
던전화를 겪어 죽을 뻔했던 학생의 처절한 생존기부터…… 튜토리얼 퀘스트를 처음으로 클리어했을 때.
몬스터에게 고립당하거나, 누군가에게 배신당한 경험도 있었다.
그중 가장 상단에 걸린 영상을 확인한 강서준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놈의 자식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허구한 날 게임이야?”」
「“잠깐…… 머리 식히려고 잠깐만. 응?”」
「“안 돼. 이놈의 인터넷을 끊어 버려야지 원.”」
「“아, 엄마아!”」
흔한 가정집의 풍경이었다.
게임을 하고 싶어 떼를 쓰는 아이와, 공부를 시키고 싶어 하는 어머니의 잔소리.
‘이게 가장 강렬한 기억이라고?’
생사가 오가는 전투의 순간도 아니고, 드림 사이드 2에서 그가 힘겹게 살아왔던 나날도 아닌.
그저 그런 평범한 날.
이 아이에겐 일상이나 다름없던 그 순간이, 가장 사무치게 그립고 보고 싶은, 너무나도 강렬한 기억이었다.
강서준은 쓰게 웃으며 영상을 일별했다.
어쨌든 그가 찾는 영상은 아니었다.
“가장 최근…… 부산의 기억.”
그리고 맞춤 동영상을 새로고침하던 찰나, 기어코 어제 날짜의 영상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
쿠웅! 쿠우웅! 쿠우우웅!
묵직한 떨림이 생겨나며 하늘에서 유성처럼 뭔가가 떨어졌다.
사방에서 비명이 터지고, 피비린내와 지독한 화약 냄새가 진동하는 공간.
강서준은 어느덧 전장의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장비 ‘은둔자의 망토’의 전용 스킬, ‘투명화’를 발동합니다.]일단 지상수에게 미리 빌려 둔 장비부터 챙겨 입었다. 무의식에서의 그는 아무래도 그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 게 좋았으니까.
만약 그가 여기서 무언가를 해 버린다면, 고유진의 정신에 이상이 생길 수도 있었다.
‘최하나가 사이코패스가 됐었던 것처럼.’
한편 빗발치는 총알과 몬스터, 그리고 악마들을 상대로 싸우던, 이 꿈의 주인인 ‘고유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곁엔 꽤 많은 생존자가 있었다.
‘생각보다 많네.’
부산은 아예 건들지도 못한 던전이 도처에 깔린 도시였다. 도전보다는, 생존을 선택한 플레이어들.
안전지대에 숨어 성장을 포기한 그들이었기에, 솔직히 그 전투력도 기대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한데 이게 웬걸.
영상에 드러난 플레이어들의 기량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아크와 비교하자면 확실히 급은 다르겠지만, 여타 다른 도시를 비교 대상으로 올려놓는다면…… 부산은 꼭 밀린다고만 할 수는 없는 수준이었다.
과연 ‘게임강국’이라 불리던 ‘한국’의 플레이어들은 다르다는 걸까.
저런 전투 능력을 가지고 던전 공략을 포기했다는 게 아쉽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아마 한 번의 포기가 두 번의 포기로…… 그렇게 쭉 이어진 거겠지. 할 수 있는데도, 결국 못 하게 된 거야.’
도전을 포기하고 성장을 도외시했다면 사람은 도태되기 마련.
첫 단추를 잘못 꿴 탓에 부산은 스스로 게임의 난이도를 올렸다고 볼 수도 있었다.
쿠구구구궁!
그리고 악마와 필사적인 전투를 벌이던 부산 사람들에게 이변이 생긴 건, 일련의 무리가 전장에 새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였다.
고유진은 자신의 뒤를 쫓은 중급 악마의 두개골을 양단한 한 남자를 볼 수 있었다.
‘리카온 제국인이군.’
제복을 입은 군인들이 구둣발로 다가오고 있었다.
고유진이 벙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다, 당신들은…….”
하지만 남자는 고유진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다시 전장으로 돌아가 악마를 향해 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그리고 고유진은 식은땀을 흘리며 일단 뒤로 물러났다. 꽤나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악마를 토벌하는 ‘리카온 제국인’들로 인해 조금이나마 부산 사람들에게 여유가 생기고 있었다.
“대체 누굴까요?”
“글쎄요. 혹시 아크에서 원조가 온 건 아닐지…….”
“하지만 여기까지 어떻게.”
횡설수설 중얼대는 사람들은 구석으로 몰려, 빠르게 반전되는 상황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들은 참 강했다.
하급 악마나 중급 악마를 상대로 수십 명이 마치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공격을 잇고 있었다.
악마들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오오……!”
결국 한 지역을 뒤덮던 악마들의 무리가 일부 소멸했다. 녀석들도 힘이 부치는지 꽁지 빠지게 도망치는 것이다.
“만세! 악마를 무찔렀다!”
“살았다! 드디어 살았어!”
“와아아아아!”
부산 사람들은 환호하며, 일단 그들의 승리를 축하해 줬다. 정체는 몰라도 악마들을 무찔러 목숨을 구해 준 건 사실이었으니까.
아마 그때까지만 해도 고유진도 환희에 차 있었을 것이다.
그래.
딱 그때까지만.
‘……맙소사.’
리카온 제국인은 환호하는 부산 사람들을 보더니 대뜸 검을 휘둘렀다. 환호하던 부산 사람의 목이 피를 흩뿌리며 날아가고 있었다.
“미개인 주제에 시끄럽구나.”
차디찬 냉골에 던져진 것처럼 순식간에 식어 버린 분위기.
리카온 제국인들은 악마들의 전리품을 수습하기 무섭게 부산 사람들을 둘러싸고 검을 겨누었다.
역시 놈들은 ‘부산 사람’을 구하기 위해 싸운 게 아니다.
‘더 위협적인 적을 먼저 제거했을 뿐.’
이후로 리카온 제국인들은 부산 사람들을 굴비 엮듯, 줄로 꽁꽁 묶어 어딘가로 데려갔다.
부산의 곳곳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는 걸까. 고유진이 끌려간 곳엔 몇몇 개의 생존자 그룹이 똑같은 상태로 묶여 있었다.
초상비로 은밀하게 그 뒤를 밟은 강서준도 녀석들의 건물 내부로 들어서며 나지막이 침음을 삼켰다.
‘……공장?’
언제 이런 것들은 다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기다란 레일에 수많은 사람들이 다닥다닥 달라붙어 있었다.
그들은 뭔가를 계속해서 만들었다.
리카온 제국인들이 곳곳에서 감시를 하는 걸 보면 뭔가 중요한 걸 만드는 것 같았다.
‘…….’
수상하기 짝이 없는 공간이었지만, 아쉽게도 그 내부를 마음껏 돌아다니며 확인할 수는 없었다.
이 또한 최하나와는 다른 점이다.
당시에 그녀의 기억은 강서준의 무의식이 겹쳐지면서, 좀 더 생생하고 커다란 공간으로 확장됐었다.
강서준이 경험했던 공간들이 곁들여졌으니 자연스레 디테일이 올라갔던 것이다.
하지만 여긴 오직 ‘고유진’의 세계.
그가 겪은 것들로 구성되어 있으니, 그 이상의 것들은 제아무리 무의식 속이라고 해도 찾을 수 없다.
아는 것 이상의 정보는 알 수 없는 법이니까.
‘게다가 여기에 오자마자 또 다른 곳으로 끌려갔구나.’
고유진은 운이 좋은 건지, 혹은 나쁜 건지…… 플레이어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아예 다른 쪽으로 배정됐다.
그리고 그곳에선 더더욱 터무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저들은…… 제복이 조금 다르네.’
같은 리카온 제국 소속인 건 맞으나, 악마들을 무찌르며 화려하게 등장했던 이들과 다르게 복장이 좀 수수한 편이었다.
그의 기억이 맞다면, 저들은 바로 광안역까지 고유진을 쫓았던 이들과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훌륭한 전사가 되려면 실전을 겪어야 한다. 자, 너희들의 연습 상대를 구해 왔다. 쫓아라…… 그리고 죽여라! 훈련대로 하면 될 것이다.”
터무니없는 대사가 들리고, 고유진은 수많은 부산의 플레이어들과 함께 우리 속에 갇힌 동물처럼 한곳에 서 있었다.
불현듯 터진 건 커다란 신호탄.
그 뒤로 수많은 공격이 갑작스레 그들을 향해 쏟아졌고, 고유진은 영문도 모른 채 일단 도망쳐야 했다.
“끄아아악!”
“사, 살려……!”
고유진의 뒤편으로 수시로 쏟아져 나온 비명이었다. 종전까지 옆을 달리던 사람의 머리가 하늘을 날았고, 불타오르는 몇몇 개의 사람들도 보였다.
그나마 고유진의 민첩 스텟이 높은 덕일까.
도망치는 무리에서도 선두에 속한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더더욱 박차를 가해 앞으로 달려 나갔다.
“허억! 허억! 허억…… 허억!”
하지만 세상은 썩 녹록치 않았다.
“커흑……!”
간신히 도주하며 골목길로 접어든 시점. 그보다 빨리 도착한 리카온 제국인이 그를 뻥, 걷어찬 것이다.
“안녕?”
경망스럽게 입을 연 리카온 제국인은 손아귀에 쥐고 있던 누군가의 머리끄덩이를 앞으로 내던졌다.
이름 모를 부산의 플레이어.
나이는 고유진보다 2~3살 정도 많은 듯한 얼굴.
리카온 제국인이 말했다.
“내가 착하니 기회를 주마. 한 놈은 살려 줄게.”
그리고 두 사람의 앞으로 두 개의 무기가 내던져졌다. 녹슨 철검 두 개. 고유진과 이름 모를 플레이어의 시선이 동시에 겹치고 있었다.
“산 놈은 1시간은 안 쫓는다?”
명치에서 강한 통증이 있어 미간을 찌푸리던 고유진은, 그 앞에 널브러졌던 남자와 거의 같은 순간에, 앞으로 내달렸다.
무기를 손에 쥔 건 아마 거의 동시.
하지만 운이 좋았던 건 ‘고유진’이었다.
채애애앵!
맞부딪친 철검 중에서도 상대의 철검이 더 녹슬고 내구력이 떨어졌었는지, 부딪친 것과 동시에 부러지고 만 것이다.
고유진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이름 모를 플레이어의 시체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리카온 제국인이 말했다.
“뭐 해. 안 가?”
바들바들 떨면서 녹슨 철검을 꽉 쥔 그는 힘겹게 도망을 이어나갔다. 뒤편에서 리카온 제국인이 사악하게 웃는 걸, 아마 그는 보지 못했을 것이다.
강서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컴퍼니만도 못한 새끼들이로군.’
그때였다.
돌연 사방이 무너질 듯 흔들리며, 마치 유리가 깨지듯이 영상이 뭉개지기 시작했다.
약간 분노했던 강서준은 저도 모르게 변해 버린 상황에서 침착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내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나 있었다.
[‘드림 키퍼’가 당신을 인식했습니다.] [‘드림 키퍼’가 당신을 만나길 청합니다.]잠시 일시 정지된 영상을 둘러보던 강서준은 마지막으로 떠오른 메시지를 확인했다.
[‘드림 키퍼’를 만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