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218
◈ 218화
“일단 마족은 우선순위에서 배제하기로 하죠.”
각자 임무를 마치고 옥상으로 귀환한 일행들을 향해 강서준이 대뜸 꺼낸 말이었다.
그는 천천히 말을 이어 나갔다.
“다행히 부산은 서울과 경우가 조금 달라요. 알의 상태를 봐도 부화까지 시간은 꽤 많이 남은 것 같고요.”
천외천이 상주하는 도시였던 서울은 그만한 준비를 갖춘 상대에게 침략을 받았더랬다.
상급 악마만 몇이던가.
모르긴 몰라도 수많은 계약자를 갈아 넣어 만든 일이었다. 적들이 얼마나 서울을 중요하게 여겼는지 확연히 알 수 있었던 대목이었다.
한데 그에 비해 부산은 조금 달랐다.
이곳은 던전을 공략조차 하질 못하는 플레이어가 즐비한 땅.
놈들도 이곳의 중요도를 서울처럼 높게 생각하진 않았는지, 부산에 소환된 악마의 숫자는 예상보다 훨씬 적은 편이었다.
당장 알이 떨어진 인근의 지역에만 악마들이 서성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생존자 수가 서울에 비해 현격히 적은 편이라서 많이 소환할 필요도 없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게 마족의 부화 속도를 늦추는 제1의 원인이었다.
‘마족은 결국 인간의 피, 그 속에 담긴 절망적인 감정에 의해 부화하니까.’
결국 생존자의 숫자 자체가 적은 부산은 당연히 부화 속도가 그만큼 느려질 수밖에 없다.
김훈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했다.
“그 말대로라면 확실히…… 마족 녀석들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군요.”
“네. 어차피 저 알도 당장 뚫지 못하고요.”
‘방마진’이 아니고서야 저 두꺼운 알의 표면을 벗겨 낼 수 없다. 그가 전력으로 공격을 한다면 또 어떨지 모르겠지만…… 문제는 그다음이다.
저 안엔 ‘마족’이 잠들어 있다.
그놈을 상대하기 전에 힘부터 빼고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알리’처럼 상성에서 우위에 있다고 장담할 수도 없으니까.
“서울과 포탈이 연결되고 링링이 이곳으로 온 뒤에야 생각해 볼 문제란 겁니다. 그때까지만…… 저건 방치해 두도록 하죠.”
그것으로 마족의 일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일행은 한 문제를 치운 사람들치고는 다소 무거운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자, 이제 남은 건 두 개입니다.”
강서준은 광안역 인근을 돌아봤다.
“던전도 마족과 마찬가지로 당장 급한 건 아닙니다. B급 던전이 A급이 되려면 그만한 시간이 필요하니까.”
아마 A급으로의 성장할 녀석들은 정규 업데이트와 함께 지금쯤 던전 브레이크를 앞두고 있을 것이다.
즉 그만한 던전이 부산에 존재했더라면 진즉에 티가 났을 거란 얘기다. A급 던전은 멀리서도 한눈에 보일 정도로 거대한 마력의 흐름을 동반하기 마련이니까.
“결국 우리가 걱정해야 할 건 이미 던전 브레이크로 풀려난 다수의 C급 몬스터들인데…… 이것도 당장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겁니다.”
강서준의 단호한 말에 나도석은 잠시 눈을 껌뻑이며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소리인지 도통 알아듣지 못한 눈치였다.
“몬스터가 많으면…… 위험한 거 아니야? 근데 무시해도 좋다고?”
맞는 말이다.
던전의 개수만큼이나, 몬스터의 숫자만큼이나 플레이어에게 가중되는 부담은 커진다.
어지간해선 둘 다 적은 편이 더 좋았고 안전을 보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얘기. 강서준은 간단하게 답해 줬다.
“더 위험할 수도 있겠죠. 한 몬스터를 신경 쓸 게 아니라 여러 놈들을 동시에 상대하는 일이니까.”
그래서 C급 몬스터가 군락을 이룬 광안역 인근이 특별히 위험한 곳이 아니던가.
고렙의 플레이어가 아니고서야 감히 횡단할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죽음의 땅.
괜히 이 근방에 인기척이 없는 게 아니다.
“하지만 그건 몬스터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응?”
“녀석들이라고 안전한 건 아니라고요.”
아이러니하게도 부산은 B급 던전이 다량으로 생성된 덕에, 그 위력이 반감됐다고 할 수 있었다.
‘천안의 던전이 유난히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 건, 던전이 독점을 했기 때문이니까.’
아주 간단한 논리였다.
던전에서 파생되는 몬스터는 각양각색에 저마다 보유한 능력도 다르다.
이곳만 해도 식인목, 머맨, 오우거…… 대충 나열해도 그 특징이 천차만별이었다.
그리고 진짜 재밌는 건 여기부터다.
‘만약 그들이 서로 상성이라면?’
나무 계열인 식인목은 물속에서 살고 있는 머맨을 이길 수 없다. 또한 오우거는 방대하게 군락을 이룬 식인목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그리고 머맨은 땅의 속성을 가진 오우거에게 유난히 약한 편이다.
‘그렇게 서로를 견제하느라 바쁜데…… 다른 곳에 신경을 쓸 틈이 어디에 있겠어?’
물론 몬스터들에겐 서로를 공격하질 않는다는 불문율이 적용된다.
이는 드림 사이드의 어떤 몬스터라도 피하지 못하는 일종의 시스템이 내린 명령.
하지만 이렇듯 긴 시간을 방치된 몬스터들이라면, 그리고 C급에 해당하는 개체들이라면.
서로를 공격할 수도 있었다.
애초에 플레이어조차 보이질 않으니, 놈들이 싸울 상대는 옆에 있는 다른 종족이 아니겠는가.
‘그 덕에 부산의 플레이어들이 여태 살아남은 걸지도 모르지만.’
한편 최하나는 마탄의 라이플의 총열을 점검하며 말했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네요?”
0116 채널의 사람들.
말하자면 ‘리카온 제국인’들이야말로 현시점에서 가장 부산을 위협하는 존재였다.
강서준은 리오 리카온의 말을 떠올렸다.
‘분명 녀석들은 차원 게이트를 만들 거라고 했어.’
차원 게이트.
대충 이름만 들어도 쉽게 그 용도를 파악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그게 바로 ‘지구’와 ‘리카온 제국’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 거겠지.
그렇다면 그들은 왜 굳이 지구에 와서 처음으로 한 일이 차원 게이트를 만드는 것이었을까.
애초에 그들이 한 번에 로그인을 하질 못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강서준은 그 답을 알고 있었다.
‘지구와 리카온 제국은 시작부터 다르니까.’
리오 리카온에게 듣기론 ‘리카온 제국’은 대단히 강한 문명이었다.
과학과 마법이 고도로 발달했으며, 오랜 ‘행성 전쟁’으로 인하여 수많은 군사 무기가 발달된 세계관.
그로 인해, 지구의 어지간한 플레이어보다 수준이 높은 전사들이 즐비한 세계가 바로 0116 채널의 리카온 제국이었다.
‘문제는 그대로 넘어온다는 거야.’
강서준이 드림 사이드 1을 시작할 때, 아예 1레벨부터 시작했던 것과는 달랐다.
이놈들은 초장부터 고렙이다.
그러니 이 게임의 밸런스 붕괴를 막기 위해서 시스템이 할 수 있는 선택이 무엇이겠는가.
바로 인원에 제한을 두는 것이다.
‘하지만 조건만 갖춘다면 본대를 끌어올 수도 있다고 했지? 플레이어의 손으로 만들어진 여파는 버그가 아니니까.’
리카온 제국의 대리자. 즉 ‘0116 채널의 관리자’가 친히 이딴 꼼수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렇게 하면 굳이 ‘1레벨’부터 시작하지 않아서 좋고, 조금만 노력한다면 놈들의 전력도 이쪽 세계로 투입시킬 수 있으니까.
강서준은 미간을 구기며 말했다.
“어디까지 완성했는지는 몰라도 놈들 뜻대로 놔둘 수는 없어요.”
강서준의 말에 일행들은 십분 공감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최하나의 시선이 옆에서 고운 숨소리를 내며 잠든 고유진에게 향했다.
“훈련소도 가만히 둘 수 없어요. 그곳에 붙잡힌 플레이어들도 적지 않아요.”
김훈은 훈련소에서 벌어지던 풍경을 다시 상기했는지 상당히 질린 안색으로 몸을 떨었다.
강서준도 꿈을 통해 그곳의 현장을 직접 봤기 때문에, 그 표정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김훈은 입술을 잘근 깨물며 말했다.
“분명 천벌을 받을 거예요.”
훈련이란 명목으로 인간 사냥을 했고, 허수아비처럼 묶어 놓고 베어 대는 악마 같은 자들이다.
강서준은 쏟아질 것처럼 하늘에 걸린 별빛을 가만히 올려다보고, 다시 어둠에 잠식당한 부산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무렴 받아야죠. 천벌 정도는.”
작전은 해가 뜨는 7시에 시작한다.
***
끼아아아악……!
멀리 닭 울음 대신 몬스터의 울음이 낮게 퍼지고, 폭삭 주저앉은 부산의 정경으로 햇살이 샅샅이 내려앉았다.
지난밤의 냉기가 조금 가실 무렵.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인 일행은 고유진의 꿈속에서 봤던 공장을 앞에 둘 수 있었다.
정확히 그들이 선 곳은 공장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위치에 세워진 어느 연립 주택.
1년 전에는 이곳을 공장의 기숙사로 사용하지 않았을까 싶은 곳이었다.
“그나저나 정말 혼자서도 괜찮을까요?”
망원경으로 공장을 훔쳐보던 김훈은 근심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아무리 나도석 씨라 해도 그곳의 전력도 만만치 않을 텐데요.”
“우리도 고작 넷입니다만.”
“그건 그렇지만…….”
“괜찮아요. 나도석 씨라면 분명 어떻게든 해낼 겁니다.”
실제로 나도석은 마족의 침공을 받았던 일주일 전과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부를 정도로 크게 성장해 있었다.
아무래도 상급 악마들을 상대로 홀로 싸웠던 전투가 그에게 커다란 깨달음을 준 걸까.
리카온 제국인들을 동시에 상대해서 그가 승리를 거머쥘 거라고 생각할 수는 없어도, 여기서 쉽게 죽진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훈련소를 상대로 펼치는 전투, 그리고 어그로였으니까.
정면 승부를 벌이지 않는 한 나도석이 위험할 일은 없을 것이다.
강서준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잠시 잊으셨나 본데요. 그 사람 ‘헬 난이도’를 깬 인간입니다. 걱정할 만한 인물이 아니라고요.”
“하기야…… 그렇겠죠?”
그 말이 끝난 지 얼마나 됐을까.
멀리 폭발이 일어나면서 부산의 상공으로 뭔가 거대한 형상이 나타나 있었다.
리카온 제국의 훈련소가 있는 방향.
그곳을 보던 강서준은 나지막이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저게 대체 뭡니까?”
떠올라 있는 형상은 아무래도 나도석의 심상인 듯했다. 근데 그 모양이 마치 거울을 보듯 똑같이 생겨 먹었으니 할 말이 약간 없어졌다.
이매망량 ‘케이’의 심상이라…….
최하나도 케이의 심상을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아, 나도석 씨가 그러는데 이제 더는 알량한 자존심으로 힘을 숨기지 않겠답니다.”
“네?”
“그만큼 서준 씨를 인정하고 존경한다는 거 아니겠어요?”
구체적으로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낯간지러워졌다. 강서준은 애써 공장으로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그보다 우리가 문제예요.”
종전의 폭발로 인하여 공장 내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게 달아오른 참이다.
일련의 무리가 빠르게 훈련소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나도석의 어그로는 성공적이었고, 놈들의 군사를 조금이나마 빼돌린 것이다.
강서준이 말했다.
“저들이 빠지더라도 아직 적은 많을 거예요. 여긴 놈들에게 가장 중요한 시설이니까요.”
차원 게이트를 설립하는 장소였으니 최소한의 군대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강서준은 그들의 눈을 피해 움직여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가장 곤란한 건 부산 사람들이 인질로 잡히는 겁니다. 아무래도 그들은 플레이어도 아니니까 특히 조심해야 할 거예요.”
훈련소에 붙잡힌 이들은 플레이어니까 적당한 상황만 주어지면 알아서 제 살길을 찾기 마련이다.
하지만 고유진의 꿈속에서 봤을 때, 공장 내에는 전투에 문외한인 사람들이 꽤 많았다.
대개 플레이어가 아닌 자들.
제아무리 강서준이라 해도 그런 자들을 모두 보호하면서 적들을 쓰러트리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우린 가능한 마주치지 않는 게 최선입니다.”
요점은 공장의 사람들을 리카온 제국인들 몰래 빼돌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강서준은 옆에서 호흡을 가다듬던 김훈과 시선을 마주했다.
“부탁할게요.”
“네.”
고개를 끄덕인 김훈은 미리 봐 둔 공간으로 일행을 데리고 한 번에 공간 이동을 해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부산 사람들’이 붙잡혀 있는 곳이 어딘지 명확하게 봐 뒀다는 걸까.
강서준은 고유진의 무의식 속에서 봤던 낯익은 건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깥의 소란 때문인지 안쪽에서도 꽤 정신 사나운 분위기였다.
공간지각 능력으로 안쪽을 쭉 살펴본 김훈이 말했다.
“네 명. 이 안쪽에 있는 리카온 제국인들은 네 명 정도가 전부인 듯해요.”
지구인들을 얼마나 무시하고 있는 건지, 백여 명에 다다르는 사람들을 고작 네 명이서 담당하고 있다고?
강서준은 쓰게 웃으며 재앙의 유성검을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