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219
◈ 219화
햇빛 한 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실내.
시끄러운 기계음과 텁텁한 먼지 맛이 감도는 그곳엔, 은은하게 피비린내가 감돌고 있어 묘하게 오싹한 감상을 주고 있었다.
‘여긴 생각보다 더…….’
김훈의 공간 이동으로 내부에 진입한 강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중 바닥에 널브러진 누군가.
피골이 상접한 몰골은 차치하더라도 터무니없는 메시지가 그의 시야를 가렸다.
[‘소생의 포션’이 필요합니다.]대관절 사람을 어떻게 대했기에 HP포션으로도 회복시킬 수 없는 수준으로 만든 걸까.
둘러볼수록 상태는 더욱 심각했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줄초상을 치를 뻔했군. 다들 상태가 심각해.’
하기야 이곳은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 공장이었다.
인권이나 노동법 따위는 신경 쓰질 않는 침략자들의 현장. 죽어 나가는 건 붙잡혀온 억울한 부산 사람들이었다.
강서준은 혀를 차며 최하나와 시선을 교차했다. 상황이 어떻든 그가 할 일은 하나였다.
쇄애애액!
거두절미하고 강서준의 손아귀를 벗어난 단검이 빠르게 리카온 제국인의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별안간 부산 사람들을 핍박 중이던 리카온 제국인이 단말마의 비명도 못 지르고 쓰러지는 순간이었다.
그때 최하나의 마탄은 이미 다른 한 사람의 미간을 꿰뚫고 있었다.
“네, 네놈들은 누구……!”
또한 당황하며 무기를 뽑아 들며 이쪽을 경계하던 리카온 제국인에겐 김훈이 다가갔다.
공간이동으로 허공에 나타난 그가 정수리에 검을 찍어 넣으니, 이번에도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마지막으로 남은 건 한 남자.
“끄아아악!”
그도 ‘투명화’로 근접한 지상수의 공격에 의해 쉽게 사망하고 말았다. 지상수는 유난히 불길한 기운을 쏟아 내는 아이템을 겨우 회수했다.
대충 봐도 S급으로 아이템으로 전신을 도배한 그는, 스텟을 템빨로 보충하고 있었다.
약간 걱정했는데, 괜한 짓이었다.
그나저나…….
강서준은 한줄기 빛자락으로 소멸한 리카온 제국인들을 둘러봤다. 그들이 떠난 자리엔 덩그러니 아이템 몇 개가 흩뿌려져 있었다.
‘레드 플레이어냐고.’
소정의 경험치까지 얻은 강서준은 낮게 한숨을 쉬었다. 대놓고 플레이어 대접을 받는 놈들을 상대하는 NPC의 기분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어쨌든 성공했으니 됐지.
강서준은 짧게 혀를 차며 주변을 둘러봤다. 잠시 일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있었다.
싸늘한 침묵이 감돌고 있었다.
일단 그들은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었고, 강서준도 마땅히 그들에게 해 줄 말이 없었다.
사실 그가 나설 필요도 없다.
이런 일을 하기엔 최적의 사람과 함께하고 있었으니까.
최하나는 눌러쓴 모자를 벗었다.
“어? 최, 최하나?”
역시 인기 연예인답게 사람들은 그녀를 바로 알아봤다. 워낙 친숙한 얼굴이다 보니 적잖이 안심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최하나는 잔잔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린 서울에서 왔어요.”
“……!”
“일단 이것부터 보시죠.”
최하나는 스마트폰을 꺼내어 이곳으로 출발하기 직전에 촬영한 고유진을 보여 줬다.
알아본 바, 고유진도 부산에서 나름 이름이 알려졌던 플레이어.
최하나라는 유명인과 지인의 등장은 결국 사람들의 긴장을 풀어내는 데에 큰 역할을 해냈다.
이제야 강서준의 차례가 다가왔다.
“이곳을 탈출하려면 여러분의 협조가 필요해요. 혹시 이곳에 김정수 할아버지 계십니까?”
잠에서 깬 고유진에게 듣기론, 이 공장에서 가장 연륜이 오래됐고 리더인 존재는 김정수였다.
그가 협조를 해 준다면 다른 사람들의 협조도 더욱 수월하게 구할 수 있을 터.
하지만 앞으로 나선 건 지친 얼굴의 한 여자였다.
“저랑 얘기하시죠. 이곳에 플레이어는 저뿐입니다.”
그녀는 ‘송도 생존 캠프’의 ‘힐러’라고 본인을 소개했다. 또한 고유진과 아는 사이라는 듯했다.
“종종 캠프에서 만난 적 있어요. 다친 걸 치료해 준 적도 있죠.”
강서준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손을 내밀었다.
“강서준입니다.”
“네…… 연희연이에요.”
맞잡은 그녀의 손은 메마르기 짝이 없고 뼈가 앙상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구태여 리카온 제국인들에게 붙잡히질 않았다고 해도, 이들은 멀지 않은 미래에 굶어죽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몸 상태는 최악이었지만, 강서준은 전혀 내색하질 않았다.
그리고 김정수 할아버지에 대해서도 굳이 더 물어보지 않았다.
‘플레이어는 연희연 혼자랬으니까. 아마 할아버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게 있고, 물어보지 않아도 대답을 들은 게 있다.
한편 김훈은 연희연에게 다가가더니 말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네?”
거침없이 연희연의 어깨에 손을 올린 김훈은 두 눈을 꾹 감더니, 특수 포션 치료를 감행했다.
순식간에 그녀의 몸을 감도는 건 활력부터 체력, 마력까지 채워 주는 다량의 포션이었다.
이젠 어지간한 의사보다도 치유 능력이 뛰어나진 걸까. 연희연은 금세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그럼 슬슬 탈출에 대해 논의하고 싶습니다.”
금세 회복된 본인의 몸을 신기한 눈으로 둘러보던 그녀는 곧 행동을 멈추고 강서준을 바라봤다.
그녀가 말했다.
“……정말 여기서 탈출할 수 있어요?”
“네.”
“여긴 적진의 중앙인데요. 아무리 당신들이 강하다고 해도 이곳의 경비를 전부…… 게다가 우린 전반적으로 도망칠 체력도 없어요.”
사람이 우울한 공간에 오래 머물게 되면 우울한 생각밖에 안 하게 되는 걸까.
강서준은 이미 심적으로 닳고 마모되어 꽤나 나약해진 연희연을 똑바로 바라봤다.
솔직히 강서준은 그녀의 말을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실제로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들을 데리고 경비를 따돌려 도망친다는 건 상당히 무리가 가는 일이니까.
하지만.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린 공간 이동으로 여길 빠져나갈 테니까요.”
“공간…… 뭐요?”
“백문이 불여일견이죠. 일단 다섯 명씩 선출해 주시죠.”
자신만만한 강서준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연희연은 반신반의한 얼굴로 우선 사람들을 선출했다.
노약자, 부상자, 아이가 우선.
다행히 사람들은 연희연의 선출에 큰 불만을 가지진 않았다. 아무래도 그녀의 직업이 ‘힐러’였고, 이곳에 있던 사람들 중 그녀의 치료를 받지 않은 적이 거의 없다.
또한 이곳에서도 남모르게 마력을 쥐어짜 내어 사람들을 치료했던 게 그녀였다.
그 덕에 큰 이견 없이 선출된 다섯 명은 김훈의 앞에 나란히 설 수 있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한마디를 남기고 눈 깜빡할 새에 사라진 김훈은, 1분도 채 흐르기도 전에 돌아왔다.
“다음 조 오세요.”
“……이게 끝입니까?”
“네?”
“이렇게 쉽게…….”
헛헛하게 웃는 그녀를 보며 강서준도 말없이 혀를 찼다.
정말 쉽다고 생각하는 걸까.
김훈이 사람들을 데리고 공간 이동으로 이곳을 빠져나가는 건, 눈으로 봤을 때 정말 대단한 일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김훈은 능숙해 보였으니까.
하지만 실상을 알면 그들은 그런 소리는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할 것이다.
현재 김훈은 아이템의 도움을 받아 겨우 사람들을 옮기고 있었으니까.
만약 이 아이템이 없었다면 일행은 아마 여기까지 진입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알리의 펜던트.’
김훈의 옷차림 중 목에 걸린 펜던트로 시선이 갔다. 이건 일시적으로 스킬 등급을 한 단계 위로 올려주는 S급 아이템.
몽마 알리를 사냥하고 나온 것이다.
‘여러 제약이 많아 아쉬운 물건이지만, 적재적소에 쓴다면 이보다 유용한 것도 없지.’
이 아이템의 최대 단점은 B급의 스킬을 고작 A급으로 올리는 데에 족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듯, 잘 활용한다면 적들의 뒤통수를 세게 때리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김훈이 빠르게 입을 열었다.
“다음, 바로 오세요!”
공간 이동은 계속됐다. 숱한 공간 이동의 여파였는지 허공이 살짝 일렁이는 느낌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공장 내에 잡혀 있는 사람만 대략 100명이 넘었다.
그들 모두를 이동시키려면 그만한 시간은 필요하다.
문제는 한 다섯 팀을 이동시켰을 즈음에 발생했다. 돌연 공장 내부로 큰 사이렌이 울렸다.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잠시 문밖을 살펴본 강서준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누군가 오고 있어요.”
“네? 그럼…….”
“속도를 내야겠어요. 저들은 제가 막을.”
주저 없이 바깥으로 나가려니 문득 그의 소맷자락을 움켜 쥔 연희연이 있었다.
“……가면 안 돼요.”
“네?”
“혼자서 뭘 어쩌시려고요.”
연희연의 눈엔 공포가 가득했다.
부산에서 그저 살아남기에 급급했던 1년…… 부지불식간에 악마와 리카온 제국인에게 침공당한 현실.
여러 감정이 그녀를 떨게 만들었다. 연희연은 한쪽에 핏덩이만 남은 리카온 제국인이 사망한 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교대 인원이 아니에요. 이곳으로 수십 명의 군인들이 몰려오고 있다고요. 당신들이 아무리 서울의 플레이어라 해도…….”
“설마 저들이 보이는 겁니까?”
“어렴풋이요. 미니맵 스킬 등급이 낮아 자세히는 안 보이지만.”
“호오.”
그리고 강서준은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그녀를 쓱 보다, 다시 김훈을 돌아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뒤를 부탁할게요.”
“네. 다녀오세요.”
“아, 이곳 핵심 부품 챙기는 거 잊지 말고요.”
리오 리카온이 말하길, ‘차원 게이트’를 설립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아이템이 하나 있다고 했으니까.
그것만 지운다면 놈들의 차원 게이트가 만들어질 일은 없다.
강서준은 마지막으로 연희연을 돌아보며 말했다.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네?”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걱정은 부자 걱정, 연예인 걱정, 그리고.”
그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제 걱정이라고요.”
***
쿠우우우우웅!
강서준은 굳게 닫힌 문을 뒤로하고 정면으로 몰려오는 인파를 마주했다.
확실히 연희연의 말마따나 이곳을 지키던 네 명의 어설픈 군인들보다 더 강한 이들이었다.
숫자도 상당히 많았다.
아마 저들이 정예군이란 거겠지.
흘러나오는 마력의 양도 심상치 않았다. 레벨로 치면 부산의 플레이어는 절대 감당하지 못할 만한 수준.
저러니 연희연이 겁을 먹을 만도 하다.
강서준은 달려드는 사람들을 향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원래라면 사람만 빼돌리고, 물건 하나만 훔쳐 도망칠 생각이었는데 말이야.”
사실 전투를 논외로 친 건, 리오 리카온 탓도 있었다.
아직 리오 리카온이 말한 ‘온건파’를 만나지 않은 한, 가능한 놈들에 대한 처분은 나중으로 미루는 게 좋으니까.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훗날 진행될 협상 테이블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면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한다.
하지만 막상 공장에 들어서서 현실을 마주하고 보니 느껴지는 감상 자체가 달랐다.
남의 꿈속에서 몰래 기억을 훔쳐볼 때와는 느낌부터 천지차이였다.
강서준은 서늘한 눈을 했다.
“아무래도 참을 수 없겠더라고.”
그의 분노가 겉으로 표출되면서 주변으로 우후죽순 영혼 부대가 몸을 일으켰다.
지붕부터 시작하여 곳곳에서 생성된 영혼들이 이곳으로 달려들던 리카온 제국인들을 향해 포효하기 시작했다.
강서준은 일단 오가닉에게 말했다.
“오가닉. 그 누구도 이곳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해.”
-명을 받듭니다.
“최하나 씨는 숨어 있는 녀석들 저격을 부탁드리고요.”
“이미 하고 있어요.”
진즉에 방아쇠를 당기던 그녀의 모습과 든든한 오가닉의 얼굴까지 둘러본 강서준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앞으로 나아갔다.
[장비 ‘도깨비 왕의 감투’의 전용 스킬, ‘이매망량’을 발동합니다.]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그의 몸으로 도깨비 갑주가 활성화되면서 전신으로 도깨비불이 타올랐다.
그 뒤로 라이칸을 비롯한 수많은 도깨비와 영혼 부대가 달라붙었다. 리카온 제국인들이 당황하며 뒤로 물러나는 게 보였다.
강서준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마 너넨 당장 죽더라도 진짜 죽는 건 아니겠지. 본래의 세계로 돌아가고…… 시간이 지나면 여기로 다시 돌아올 거야.”
그게 그들의 특권이다.
강서준이 드림 사이드 1에서 세 개의 목숨을 보장받았듯, 저들도 여분의 목숨은 주어져 있을 것이다.
“그러니 또 넘어와 봐.”
강서준의 손을 떠난 재앙의 유성검은 성장한 ‘이기어검술’에 맞물려 자유자재로 적진을 꿰뚫었다.
곳곳으로 흩어진 영혼 부대도 이제 막 전투를 시작한 참이었다.
쿠우우우웅!
“또 죽여 줄 테니까.”
이윽고 바닥에 콱 꽂힌 그의 단검에서부터 원형의 흐름이 생겨났다. 핏빛 기둥이 떨어지며 부산의 한 지역에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핏빛 도깨비의 달.
뭣도 모르고 부산을 상대로 침략을 해온 이계인들에게, 재앙의 유성이 떨어질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