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223
◈ 223화
링링의 포탈을 넘어온 이들은 대개 낯익은 사람들이었다.
아리수 길드, 수호 길드, 진리의 추구자…… 그리고 아크의 경비를 담당하는 PP까지.
특히 강서준이 눈여겨본 사람은 실로 오랜만에 마주한 ‘김강렬 대위’였다.
“자, 잠시만요…… 우욱!”
다만 재회의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김강렬은 헛구역질을 하며 입을 틀어막았다.
1차 지원군 중 대다수는 그렇게 바닥에 오색빛깔 전을 부치고 있었다.
“이해해요. 처음엔 다들 그렇지.”
최상위 랭커라 분류되는 ‘나도석’이나 ‘지상수’조차 멀미로 잠시 휴식을 가져야만 했다.
오죽했으면 차원 이동할 때나 나타나는 메시지를 띄웠던가.
그나마 상태가 괜찮은 건, 이미 차원을 넘어 본 적이 있는 ‘나한석’이나 ‘리오 리카온’ 정도였다.
“후우…… 이제 괜찮습니다.”
김강렬은 핼쑥한 안색으로 다가왔다. 또한 그의 곁엔 더더욱 친근한 얼굴들이 많이 보였다.
로테월드에서 함께 고립됐던 부대원들이나, 리자드맨의 우물에서 함께 싸웠던 전우들.
그리고 드림 사이드 1에서부터 함께했던 ‘김시후’도 있었다.
“김강렬 대위님의 팀에 들어간 줄은 몰랐는데.”
“그렇게 됐어요. 워낙 제가 뛰어나니까.”
불현듯 서울을 탈환하는 과정에서 확인했던 김시후의 고향이던 ‘도봉동’을 떠올렸다.
그곳은 거의 흔적조차 남질 않고 파괴되어 있었다. 과연 김시후는 이 사실을 알까? 아직도 부모님의 안부를 궁금해하던 녀석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다행히 지금 김시후의 얼굴은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알고 있겠지.’
슬픔을 느낄 여유가 없을 뿐이다.
세상은 바쁘고 미쳐 돌아가고 있으니까.
1년을 고생해도 아크는 아직 경기권을 전부 탈환하지 못했다.
거기다 이번엔 정규 업데이트로 이 세계의 난이도는 한층 더 올라가고 말았다.
누군가를 잃은 걸 슬퍼할 시간?
그런 걸 충분히 주면서 플레이할 수 있다면, 이 게임은 더 이상 ‘드림 사이드’라 부를 수 없을 것이다.
드림 사이드는 친절하지 못하다.
결국 김시후도 일에 치여 ‘상실의 고통’쯤은 잊고 지낼 수밖에 없다.
‘그런 세상이니까.’
부모님을 잃거나, 형제, 자매, 친구나 애인을 잃는 건 너무나도 흔해 빠진 사연이 된 세계다.
비록 오픈 초기부터 드림 사이드 1으로 난입된 그였지만, 설마 이런 미래를 상상해 보지 못한 건 아닐 터.
강서준은 멀미를 덜어 내고 의젓한 모습으로 부산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김시후를 바라봤다.
원래라면 공부나 하고 있어야 할 학생이 최전방에 나서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었다.
“강서준 님. 안내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네. 이쪽으로 오세요.”
강서준은 김강렬을 데리고 일단 연희연에게 향했다.
현재 송도 캠프의 리더는 그녀였다.
훈련소에서도 많은 플레이어를 구출해 냈지만, 거의 만장일치로 연희연을 대표로 선출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연희연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았다.
‘얼마 보진 않았지만 확실히 연희연 씨는 사람을 잡아끄는 뭔가가 있으니까.’
그녀는 아직 세공되지 못한 원석이다.
성녀의 자질은 물론, 사람들을 이끄는 리더의 자질마저 보이고 있었다.
강서준은 임시 치료소로 가는 길목에도 벌써 정비된 풍경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연희연이 이곳으로 복귀하자마자, 사람들을 곳곳에 배치하여 필요한 일을 하게 만든 결과였다.
‘적재적소에 필요한 능력을 배분하는 일이야말로 리더의 자질이지. 어지간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해서 강서준은 다른 사람들이 그러했듯, 그녀를 벌써 부산의 대표로 인식하고 있었다.
앞으로 부산에서의 작전을 수행하려면 이쪽 토박이인 그녀의 도움은 필수가 될 것이다.
“안쪽에 연희연 씨가 계실 겁니다. 나머지는 그분과 얘기를 나누시면 돼요.”
“고맙습니다. 그리고 다시 만나…… 정말 다행입니다.”
강서준은 쓰게 웃으며 천막으로 들어서는 김강렬을 일별했다.
부산에서 펼쳐질 작전 회의에 강서준도 함께하면 좋겠지만, 당장 중요한 일이 있어서 나중에 서면으로 듣기로 한 것이다.
무엇보다 굳이 그가 나설 일도 아니었다. 이미 충분히 뛰어난 인재들이 참여하고 있었으니까.
“그럼 우리도 할 일을 하러 갈까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강서준은 여태 옆을 졸졸 따라다니며 눈을 빛내는 리오 리카온을 마주했다. 하지만 기대에 가득 찬 그 눈빛에, 뭐라 위로를 건네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일단…… 보고 마저 얘기를 하죠.”
거두절미하고 강서준은 송도 캠프의 한쪽에 마련해 둔 특수한 천막으로 향했다.
안쪽에선 최하나와 나도석이 기다리고 있었고, 더 안쪽엔 핏기 없이 싸늘한 주검이 된 두 사람이 누워 있었다.
리오 리카온도 당황한 얼굴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칼? 니나……?”
역시 아는 사이였나 보다.
두 사람을 둘러보며 어린 황자는 닭똥 같은 눈물을 몽글몽글 떨어트렸다.
그 애처로운 모습에 미간이 구겨졌다.
“치료한다고 했지만 결국 원인불명의 이유로 사망했습니다. 지키지 못해 미안합니다.”
만약 이들을 캡슐에서 꺼내질 않았다면 아직도 살았을까.
저토록 슬피 우는 걸 보면 괜한 짓을 한 것 같아 미안해진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의문이 떠오른다.
강서준은 아직 애도하는 리오 리카온을 뒤로하고 나한석에게 다가갔다.
“사실 이상한 게 있어요.”
“네?”
“저 사람들…… 보통 죽으면 시체가 사라지거든요.”
나한석은 똑똑한 사람이었다. 강서준이 하는 말의 저의를 바로 알아차리고 되물었다.
“마치 우리가 게임을 하던 때와 같군요.”
“네. 근데 이들은…….”
“……사라지지 않았군요.”
아마 ‘원인불명의 죽음’은 억지로라도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저들은 지구인이 아니니까.
옛날 영화 중에 을 보면, 지구를 침략한 외계인은 고작 ‘미생물’에 의해 사망했다는 설정이 있었다.
즉 갖다 붙이면, 리카온 제국인은 지구에 적응하지 못하여 ‘미생물과 같은 원인불명의 이유’로 죽었다고 볼 수도 있었다.
진짜 문제는 그 이후였다.
‘죽음은 그렇다 쳐. 왜 이들의 시체가 사라지지 않는 거지? 어째서 죽은 뒤의 상태가 달라진 걸까.’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리카온 제국인에게 있어 ‘아킬레스 건’과 같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시체’가 남았다는 건, 저들이 ‘로그아웃’된 게 아니라 진짜 죽었다는 걸 의미하니까.
‘리오 리카온이 저토록 우는 걸 보면 더욱 확실해져. 저들은 진짜 죽은 거야.’
한껏 애도를 표하며 울음을 흘리던 리오 리카온이 겨우 진정하며 다시 입을 연 건 조금 뒤의 일이었다.
“저쪽에서 죽은 겁니다.”
“네?”
“칼과 니나는 제국에서 살해당한 거라고요.”
그 말에 강서준은 망치로 머리를 두드려 맞은 듯한 충격을 느낄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간단한 문제였다.
‘캐릭터가 아니라 플레이어가 사망한 경우.’
드림 사이드 1에서 캐릭터의 죽음은 진짜 죽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를 플레이하는 플레이어의 죽음은 캐릭터의 영원한 죽음과도 같다.
로그인 자체가 안 되니까.
리오 리카온은 눈물을 슥 닦고는 이젠 눈에 분노를 담아 말했다.
“다만 납득하진 못하겠어요. 감히 어떤 놈이 칼과 니나를 살해한 건지…….”
“이 두 사람은 조금 특별한 위치에 있었습니까?”
“일반적이진 않아요. 황실 친위 기사단 소속이니.”
칼 이보와 니나 브리츠는 5황자의 친위 기사단에 속했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낸 사이였고, 그만큼 슬퍼했던 것이다.
“감히 내 기사들에게 손을 대다니!”
작디작은 꼬마 황자로부터 무시무시한 살기가 느껴졌다. 이 녀석도 얕볼 수 없는 레벨을 가진 강자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분노를 마음껏 표출하던 리오 리카온이 이를 바스라질 듯 깨물더니 말했다.
“본국에 변고가 생긴 듯합니다. 아마 계획에도 차질이 생겨나겠죠.”
그러더니 리오 리카온이 중얼거린다.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요. 제아무리 강경파의 의지가 강하다고 해도, 이쪽으로 넘어온 이들은 죄다 침략질만 일삼고 있었어요. 그건 말이 안 되는 얘기죠.”
리카온 제국의 정세는 크게 둘로 나뉜다.
한데 현시점에서 연결이 닿은 도시마다 말하는 건, 리카온 제국인들이 지구인들을 공격한다는 사실이었다.
모두 ‘강경파’ 쪽 인원들인 것이다.
“뭐든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건 분명해요. 젠장……!”
욕지거리를 내뱉던 리오 리카온은 심호흡을 하더니 말했다.
“아무래도 계획을 바꿔야겠어요.”
본래의 계획대로라면 초기 포탈을 타고 넘어온 온건파들을 규합하여, 협상을 진행하고 상황을 다르게 전개시키려 했을 것이다.
싸우는 것보다 평화롭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것 없을 테니까.
하지만 상황은 협상이고 나발이고 모든 게 엎어질 위기였다.
계획은 이미 망가지고 말았다.
‘이대로면 전면전이겠지.’
부산으로 넘어올 ‘차원 게이트’는 막아도, 놈들의 군세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전 세계에 흩어진 ‘마족의 알’.
그리고 그곳을 위주로 등장하는 리카온 제국인들.
그 모두를 동시에 막을 수는 없다.
“돌아가야겠어요. 본국의 상태를 확인해 보는 게 우선입니다.”
강서준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 의견에 긍정했다.
“하지만 돌아갈 방법은 있습니까?”
“네?”
“지구에서 리카온 제국으로 넘어가는 길은 이미 막힌 걸로 압니다.”
포탈 던전에서 그러했듯, 리카온 제국에서 지구로 넘어오는 건 가능해도…… 여기서 그쪽으로 넘어가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드림 사이드 1의 NPC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지구로 건너갈 수 없었던 과거와도 같은 문제다.
한데 리오 리카온이 의외의 답을 내놨다.
“방법은 있습니다. 당신들 세계의 대리자를 만났으니까요.”
“……대리자라고요?”
“아마 당신들의 말로는 ‘관리자’라 하겠죠.”
말하자면 0115 채널의 관리자를 만났다는 것이다.
“그는 저희 제국의 대리자를 몹시 불쾌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권력 남용이라며 몹시 화를 냈죠.”
그럴 만도 했다.
만약 ‘마족’의 일이나, ‘리카온 제국의 침공’이 전부 0116 채널의 관리자가 개입한 결과라면…….
0115 채널의 관리자 입장에선 화가 날 법한 일이다. 이 모든 건 채널 운영에 방해가 되는 요소니까.
“대리자로부터 받은 게 있습니다. 그걸 사용하면 돌아갈 수 있어요.”
강서준은 잠시 리오 리카온을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급변한 상황에 맞게 그의 머리가 팽팽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잠깐…… 이거 잘하면.’
그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터무니없는 작전을 떠올리고야 말았다. 처음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갈수록 이것 말고는 다른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강서준은 고민 끝에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리오 리카온. 당신에게 제안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
잠시 후, 강서준은 리오 리카온을 제외하고 나머지 일행들과 회의를 주최하고 있었다.
부산의 연희연부터 김강렬 대위, 늘 그랬듯 강서준과 함께하는 최하나와 다른 일행들.
그들을 향해 강서준이 입을 열었다.
“다소 터무니없는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제게 작전이 하나 있습니다.”
강서준은 그 내용에 대해서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 나갔다. 일행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일단 경청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곧 김강렬이 반대 의사를 표했다.
“너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위험하겠죠. 하지만 성공한다면 그만한 성과가 따라올 겁니다.”
“그건 그렇지만…….”
강서준은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마 이대로면 협상이고 뭐고 없습니다.”
알 수 없는 모종의 일이 리카온 제국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여기서 추측할 수 있는 건 ‘온건파’에게 좋은 소식은 아니라는 거다.
‘어쩌면 세력 자체가 무너졌을지도 몰라.’
강경파만이 지구로 넘어온다는 사실이 그런 추측도 가능하게 만든다.
“또한 이대로 리오 리카온만 보낸다면 그를 잃을 수도 있어요. 최악의 상황이 될 겁니다.”
적어도 그의 친위대가 살해당했다는 건, 리오 리카온도 살해당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걸 말한다.
아이템으로 변하여 본체로 넘어온 게 아니었다면…… 그는 진즉에 살해당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전 리오 리카온을 따라 차원을 넘을 생각입니다. 다소 위험할 수도 있겠지만 이보다 좋은 방법은 없어요.”
여전히 걱정이 많은 얼굴로 김강렬이 말했다.
“……강서준 님. 이건 단순히 던전을 공략하거나 달로 올라가는 수준이 아닙니다.”
“압니다.”
“무려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일입니다.”
강서준은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이번 일의 핵심은 리카온 제국으로 넘어가 직접적으로 온건파 인사를 만나 새로 일을 도모하는 거니까.
하지만.
“다르지 않습니다.”
“네?”
“리카온 제국도 사실 큰 던전에 불과하니까요.”
강서준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이건 그저 ‘드림 사이드 3’를 공략할 뿐인 일입니다.”